장대 들고 따라와 외 2편
송진권
장대를 든 아이가 담장을 긁으며 걸어가요
또다른 아이도 집을 뒤져 장대를 찾아 들고 따라가요
장대 끝을 둥글게 휘어 거미줄 잔뜩 걷어 붙이고요
까치발 하고 몸을 길게 늘였어요
오늘 하늘은
푸르기만 해서요
구름 한점 없어요
매미 소리만 우렁차게 들려요
우리 할머니가 그러는데요
이렇게 기다란 장대를 높이 들고 가면
장대 끝에 우리를 데려갈 새가 날아와 앉는대요
장대를 높이 든 아이들은
키 작은 아이들을 따라가요
미루나무 길을 따라
마을 밖으로
도랑을 따라 강이 보이는 데까지
소나기 지나간 여름날
길마다 미꾸라지 올챙이 박실박실 기어나왔지
뻐끔뻐끔 입을 벌린 채 튀어나왔지
소낙비에 섞여 내려온 피라미 붕어 새끼
길가 웅덩이에서 놀았지
험상궂은 산은 안개를 쓰고
서리서리 열두발 늘인 용을 놀게 했지
해와 달이 한 하늘에서 놀고
명암이 음양이 한 자리에서
지지고 볶고 놀았지
사내와 계집이
사람과 짐승이 한 하늘에서 놀았지
애초에 구분된 것도 없고
사람이고 짐승이고 다 한 말을 하고
하늘이고 땅이고 따악 맞붙어서
우물이며 산골짝 도랑마다 용이 오르고
남에서는 주작이 북에서는 현묘가 놀았지
꼭 오늘만 같았지
길바닥 웅덩이마다 물고기가 뛰어오르고
산천초목 다 눈을 번히 뜨고
굼실굼실 승천하는 용을 보았지
무지갯빛 꼬리의 봉황이 날아다니는 걸 보았지
인연
팔랑이는 이파리 사이
녹둣빛 꽃 피운 대추나무
대추꽃이 피었다 지듯
오는 줄 모르게 왔다가
가는 줄 모르게 가버리는 것들은
저 대춧잎에 부서지는 햇살 같기도 하고
그 햇살 자잘히 부수는 바람 같은 그런 것
알 굵은 대추를 따서
호주머니 불룩하게 넣고
하나씩 발라 먹으며
다시 여기로 돌아오듯
그래 그때 거기에서
대추꽃같이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이파리 사이에 숨어서
―송진권, 2023제 10회 《박재삼문학상》 수상작품집 중에서
송진권
충북 옥천 출생. 2004년 창비신인시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자라는 돌』 『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 동시집 『새 그리는 방법』 『어떤 것』. 천상병시문학상, 고양행주문학상, 박재삼문학상, 백석문학상 수상.
첫댓글 시대가 비슷한 듯,
어린 날 풍경들이 흐르는
그 시간들이 그립고
아득하고 합니다.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