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본문 : 에베소서 5:22-33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오늘 본문을 문자 대로만 읽게 되면 세상 남편들에게는 참으로 은혜로운 말씀이 되겠습니다.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저도 가끔씩 이 말씀을 집사람에게 들려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 김 권사가 하는 말이 “너나 잘하세요.”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심같이 그렇게 사랑했느냐는 것이지요. 그래서 제가 그러지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아브라함이 자기를 두 번씩이나 팔아먹었는데도 아브라함을 주로 섬기지 않았느냐..
(벧전 3장)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어떻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과 이 베드로전서 말씀이 전부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을 말하는 것일까요? 또 남편은 아내를 예수님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뜻입니까? 그렇다면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이 말씀 앞에 절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강론 제목이 ‘아내들이여’입니다. ‘남편들이여 아내들이여’가 아니라 그냥 ‘아내들이여’입니다. 오늘 말씀은 단순히 남편과 아내에 관한 가정의 질서 문제와 같은 교훈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한 몸 된 교회, 신부들에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이 시간에는 이 비밀에 관하여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5장 21절을 보겠습니다.
(엡 5장)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이 말씀 역시 그리스도께 피차 복종하는 성도의 삶에 대한 구체적 실례 중 부부에 관한 설명이거든요. 성도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자들로서 성도입니다. 그렇게 성령을 받은 자들에게 피차 복종하는 삶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이 먼저 성도의 가정에서부터 나타나야 하고, 그 피차 복종의 근거로 제시되는 게 25절에서 27절입니다.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남편과 아내는 한 몸이라는 뜻이에요. 그리스도와 교회가 한 몸이듯이 그 한 몸이 무엇인지를 배우기 위해서 남편과 아내가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가정을 이루는 것 역시 천국이 어떤 하나님의 희생과 섬김으로 영원한 곳인지를 배우는 학습장으로서 가정이기 때문에 성도의 가정은 세상 사람들의 가정과 같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진짜 가족, 진짜 가정은 천국에 있음을 세상 가정과 가족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천국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영원한 가정이에요.
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결혼이 뭐라고 합니까? 천국의 왕이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 된 교회의 관계를 배우기 위해서 결혼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부모 자식의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다음에 공부할 6장 1절에서 3절을 보겠습니다.
(엡 6장)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좀 헷갈리죠?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면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한다.. 맞습니까? 이건 유교에서 하는 말과 다른 게 하나도 없잖아요.
이 말씀은 출애굽기 20장 12절 말씀, 즉 십계명 중 다섯 번째 말씀을 사도가 인용하고 있는 겁니다.
(출 20장)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그런데 바울 사도는 열 계명, 열 말씀 중에서 유독 다섯 번째 계명을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합니다. 이 다섯째 계명만 계명을 지켰을 때 우리에게 유익 되는 약속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약속이에요? 장수하는 약속이죠. 그런데 여기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면 어디에서 장수한다고 합니까?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장수한다고 하죠. 그 땅이 어디입니까?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이란 말이에요.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하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가나안 땅이 아니에요.
그런데 그 천국의 삶을 이 땅에서부터 가정을 통해서 살아보라는 뜻이에요. 부모를 공경해야 구원받고 영생한다는 뜻이 아니라, 너희들은 이미 그 천국을 이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자들이므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복종과 섬김을 배우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게 가정의 존재 목적이에요.
지금 저와 여러분이 여기에 있는 건 우리 부모님의 희생과 보살핌 때문이잖아요. 먹이시고 입히시고 가르치시고 아프면 온갖 정성으로 치료해 주시는 부모님의 돌보심과 사랑과 기도가 있어서 우리의 지금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지극하신 돌보심과 기도와 끝까지의 사랑이 그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의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그걸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 하나님과 하나님이 다 이루신 게 무엇인지를 배우는 곳이 가정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가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필수적인 게 남자와 여자의 결혼이죠. 성경에서 결혼의 시작이 어디에 나옵니까?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의 결혼, 그 둘의 하나 됨이에요.
그런데 창세기 창조 기사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을 보면서 보시기에 참 좋았다고 하셨는데, 유일하게 보시기에 좋지 않다고 하신 적이 있어요. 그게 뭡니까? 토브가 아니라 로 토브.
(창 2장)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독처하는 남자는 좋지 않다. 로 토브. 보시기에 안 좋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좋지 않은 남자에게 여자가 연합됩니다. 그렇게 그 여자와 연합이 되자 그 하나님의 피조물이 완벽하게 아름답더라. 참으로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 거예요. 여기에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창 2장)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오늘 본문 31절 말씀(“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이 이 창세기 2장 24절 말씀을 그대로 가져온 거예요. 그런데 본문 32절에 보면 이 말씀에 이어서 ‘이 비밀이 크도다’라고 하잖아요. 그럼, 이 비밀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라는 그 피조물에서부터 감추어 두신 비밀인 거예요.
방금 읽은 창세기 2장 21절에서 24절을 다시 한번 봅시다.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하나님께서 완전하지 못한 남자 아담에게 여자를 만들어 주시는데, 먼저 그 아담을 어떻게 했다고 하십니까? 깊이 잠들게 하셨다고 하죠. 여기서 ‘잠들다’는 말은 죽음을 메타포(은유)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담에게 신부인 하와가 주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아담의 죽음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아담에게서 갈비뼈가 적출됩니다. 그렇게 남자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쏟아지면서 여자가 탄생하는 거예요.
이 그림이 똑같이 겹치는 게 있죠?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옆구리가 뚫리고 피와 물이 쏟아지는 그 장면입니다. 이게 교회의 탄생이에요.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은 신부 된 교회의 탄생을 위해서 자기 육체에서 피와 물을 쏟아내시고 마침내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와 영원히 하나가 되신 것입니다. 이게 그 비밀이에요.
이렇게 예수님은 아담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하와라는 존재처럼 우리 교회가 없으면 스스로 완전하지 않기로 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그 사랑입니다.
(엡 1장)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교회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으로서 교회입니다. 완전한 한 몸으로서 그리스도와 교회란 말입니다. 이 한 몸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부부가 있고 가정이 있다는 게 사도의 진술이에요. 이제 사도가 이야기하는 이 비밀이 무엇인지를 아시겠지요?
그럼, 본문 22절부터 다시 보겠습니다. 아내의 남편에 대한 복종. 24절에 반복해서 아내들은 범사에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는데요, 어떤 일에는 하고 어떤 일에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니고 범사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명령문이에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충고 정도가 아니라 명령이에요. 그럼, 왜 사도는 이런 명령을 기록했을까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고대 유대인들 사회는 정말 가부장적 사회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다르지 않았잖아요. 남존여비의 유교 사상에 젖어있었던 적이 있었어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여자들은 밥도 같이 안 먹을 정도였어요. 한 상에서 먹지 않았어요. 남자들만 따로 상을 차려줬다니까요.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식사하고 심지어는 여자들은 부엌에서 먹기도 했어요. 유대인들 사회는 더 심했습니다. 유대인들 기도 중에 이런 게 있었다고 해요. ‘하나님 제가 여자로 태어나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실제 있는 유대인들 기도예요. 심지어 여자는 수에도 들어가지 않았어요. 사람 수를 셀 때 여자는 제하고 셌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범죄 현장을 목격했다고 하더라도 여자의 증언은 효력이 없어요. 왜 그렇습니까? 여자 자체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죄인? 에덴에서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고 그것을 또 남자에게 준 죄인이에요.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아담이 에덴에서 쫓겨난 이유가 여자에게 있다고 본 거예요.
이와 유사한 내용의 말씀이 신약 성경에 있습니다. 오해하기 딱 좋은 말씀인데요, 앞에서 말씀드린 그 비밀을 모르면 오해할 수밖에 없는 말씀입니다.
(딤전 2장)
11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12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당시 유대인들의 사고가 그대로 들어있는 말씀이거든요. 그런데 사도는 결정적인 한 구절로 결론을 맺습니다.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믿음과 사랑과 거룩이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연합하면 새 생명이 출산 된다는 그 복음을 이야기한 거예요. 복음 이야기란 말입니다. 문자 그대로 하자면 여자가 결혼 안 하고 출산 안 하면 구원을 못 얻는다는 뜻이잖아요. 그런 뜻이 아니죠. 복음, 즉 신랑이신 예수님의 죽음 안에서 잉태되는 새 생명이 바로 복음인데, 그 생명의 출생에는 반드시 남자의 희생과 끝까지의 사랑이라는 약속, 즉 창세 전 하나님의 약속, 영원 전 그 약속이 먼저 있었고 그 약속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그 남편에게 교회는 복종해야 한다. 그게 머리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교회의 질서이며 본분이라는 말씀인 거예요. 교회에서 여자는 종용하라는 말씀도 같은 뜻이에요 머리이신 그리스도. 곧 말씀을 타 넘는 인간들의 가르침은 허용해서 안 된다는 뜻입니다. 여자 목사 세워선 안된다는 뜻이 아니라.
이 디모데전서 말씀이 하나님의 창조, 곧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신 그 창조의 질서에 대한 회복을 이야기하는 거란 말입니다. 아담을 먼저 지으시고 그 아담에게서 여자가 나온 그 창조의 질서를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하면 둘째 아담에 의한 새 창조의 완성,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에 의한 새 창조의 완성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5장에서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고, 모형이라고 하는 거예요.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같은 일을 했다는 뜻입니다. 참 놀라운 이야기죠?
그래서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이 비밀이 크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된 교회의 탄생은 이 하나님의 창조 기사에서부터 나타난 십자가 복음이고, 만대로부터 감추어진 비밀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비밀한 복음이 실행되는 곳으로 부부와 가정이 있다는 게 오늘 본문의 증언이에요. 결혼과 가정은 바로 그 하나님의 창조, 그리고 그 새 창조의 복음이 실행되는 공간으로서 결혼과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복음 안에서의 가정의 모습은 구약에서부터 계시되어 왔어요. 그 대표적인 게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사라는 자기를 두 번씩이나 팔아먹은 남편 아브라함을 주로 섬겼어요. 제 말이 아니라 베드로 사도가 그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라가 자기를 단장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벧전 3장)
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사라는 어떻게 이런 못난 남편을 주로 섬겼을까요? 그 이유는 사라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했고 약속 있는 믿음이 주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창세기 2장에 나오는, 아담을 돕는 배필로서 아담에게서 나온 하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사라가 알았던 거에요.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 이 사라가 나오는 겁니다.
여러분, 구약의 모든 선지자는 오실 그리스도를 앞당겨 보여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아브라함 역시 믿음의 조상이라는 역할, 다시 말하면 믿음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역할로서 아브라함이에요. 그가 특별히 믿음이 좋아서 믿음의 조상이 된 게 아니고,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그를 어떻게 이끌고 가는지를 보여주는 역할로서 믿음이었단 말이에요.
(히 11장)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며 경배하였으며
이렇게 아브라함은 오실 그리스도를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작동하는 인생을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히브리서에서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사라는’ 이렇게 기록한 거예요.
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붙여주신 사람이 사라예요. 그래서 사라는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믿음으로’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돕는 배필로서의 역할이 있었고 그것을 사라의 아브라함에 대한 복종이라고 하고 사라 역시 믿음으로 자신의 역할에 충성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어가 믿음이에요. 또 그것을 여인의 아름다운 단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약으로 하자면 그리스도에 대한 교회의 복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 자기 몸 된 교회를 피로 사신 남편에 대한 순종이 교회의 본무요 교회의 아름다움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에요.
그런데도 오늘날 세상 교회들은 그 남편을 몰라요. 성경에서 주를 안다는 건 그 남편이신 예수와 하나 됨, 한 몸 됨을 말하거든요. 교회를 한 몸 된 교회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남편을 모르고 남편과 한 몸이 된 적이 없기에 남편의 사랑은 외면하고 세상과 간음하기에만 열심인 게 오늘날 세상 교회들입니다. 주께서 내어버려 두시면 그렇게 갈 수밖에 없어요. 창녀 고멜처럼 말입니다. 호세아가 계속 찾아가고 은 열다섯,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다시 사서 데려오는 용서와 긍휼이 아니면 세상과 간음하다가 영원한 심판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죄인들인 겁니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가 그렇게 세상과 간음하고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버렸지만, 주님은 자기 사람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그들 가운데서 불러내시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만 신랑 예수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고멜과 호세아, 창녀 고멜과 예수의 혼인 잔치가 벌어지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부부로, 가정으로 영원한 곳이 천국이에요. 그 천국을 지금부터 배우고 오라고 교회가 있고 가정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있어야 할 자리는 그 예수를 배우고 말씀이 나누어지는 바로 이 자리인 것입니다. 어디서든지 이 자리를 사모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빕니다.
이와 같이 가정 안에서도 아내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남편과 자녀들을 예수님의 주되심을 바라볼 수 있는 그 자리로 인도하고 지켜주는 일이에요. 또 그 일을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하는 역할입니다. 사라가 못난 아브라함을 묵묵히 돕는 배필로서 자기 역할을 다한 것처럼 우리의 남편 되신 예수님, 우리를 위해 언약의 피를 흘리신 진짜 남편인 예수님의 아내 역할로서 교회의 본분을 다할 수 있도록 그렇게 부부와 가정이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이 옥중 서신으로 우리에게 지금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6장에는 성도의 치열한 영적 전투를 기록하는 것으로 이 에베소서를 마치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항상 악한 영들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사도가 경고해 주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기를 쉬어서 안 되는 거에요 언제나 말씀으로 무장하고, 어떤 위기에서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손길에 의지하면서 그분 뒤로 숨을 수 있는 그 믿음 안에서 우리 모두 그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히스기야의 기도처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주님은 자기 등 뒤에 우리 죄를 던지셨습니다. 그렇게 우리 입에 새 노래를 주시고 찬송을 주시는 그 주님만 섬기는 우리 가정, 우리 교회가 되기를 빕니다.
끝으로 본문 22절부터 33절을 함께 읽고 오늘 강론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틈만 나면 도망치려고 하는 창녀 고멜 같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셔서 아들의 피 값으로 사신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알게 하시고 우리의 허물과 죄를 간과하시고 우리 모든 죄를 십자가로 대신하신 그 사랑만으로 부족함이 없는 성도들이 되게 하시고 언제 어디서나 그 사랑, 그 남편, 그 십자가만 자랑하는 주님의 신부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