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마의 변 (대구에서)
저는 유승민 의원과 그를 둘러싼 구태 정치를 심판하고 대한민국 도약의 심장인 고향 대구로부터 국익, 법치, 책임이 꽃피어나는 선진 정치를 실현하고자 출마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유승민 의원은 1976년 대입 예비고사에서 차석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저는 11년 뒤인 1987년 수창초, 경상중, 대구고를 거쳐 대입 학력고사에서 대구·경북 지역 전체 수석을 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대입 후 초엘리트 코스를 밟은 유승민 의원과 달리 저는 1987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입학 후 3학기만에 중퇴를 하였고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새로 시험을 쳐 입학한 뒤, 30세에 문학지를 통해 정식 소설가로 등단하였다가, 30대 중반에 다시 법률을 공부하여 40세에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파란의 삶을 거쳤습니다.
급기야 4년 전 유승민 의원은 대선후보급 정치인의 자리에서 오늘의 국가위기, 체제위기를 낳은 결정적 계기가 된 탄핵 사태를 주도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고, 저는 당시 진행과정의 위헌성, 법치 파괴, 체제 위기 초래의 측면을 지적하며 단호한 저항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이후 4년 간 헌정 파괴, 국가 파괴, 체제 위기 심화의 과정은 일관되게 계속되었고, 그에 대한 유승민 의원의 저항은 미미했으며, 오히려 그 파괴세력에 이용당하는 면이 농후했습니다. 저는 맨몸으로 아스팔트 위에서, 때로는 박근혜 전대통령의 변호인으로 법정에서, 스러져가는 대한민국을 지탱하기 위해 몸부림쳐 왔습니다.
이제 국가적 운명의 갈림길에 다가왔다고 여겨집니다. 안보와 경제, 가치 면에서 국익이 파괴되고 헌법적 원리와 법의 지배, 사법부의 독립이 파괴되며 책임정부의 기초가 파괴되어 온 지난 4년 간 유승민 의원은 과연 무슨 일을 해 왔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탄핵 주도만이 아니라 그 후의 사태 전개에 확고하게 대항하지 못한 점에 대해 더욱 엄중한 정치적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사태를 낳은 뿌리가 되는 구태 정치로부터의 환골탈태, 선진정치의 구현이 간절히 요망됩니다. 미력하나마 저는 온몸을 던져 정치 발전을 통한 대한민국의 재도약에 매진하고자 합니다.
그 출발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뿌리이자, 자유 호국의 성지이며, 평화적 민주화 이행의 본산인 고향 대구로부터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유승민 의원의 역사적 소임은 이제 수명을 다했으며, 그의 공언처럼 그의 지역구에서 정치적 평가의 결론이 내려져야 합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감히 이 순간 유승민 의원과 그를 둘러싼 대한민국 구태 정치의 심판을 위한 대항마로 쓰이기 위해 운명적인 예비 과정을 거쳐 왔다고 확신합니다.
도의를 저버린 정치공학적 계산, 자리와 이권, 이념적 무방비로 쇠락해진 구태 정치를 극복하고, 국익·법치·책임의 기치 아래 개인의 자유를 활짝 꽃피우는 선진강국 자유통일 코리아로 도약할 날을 함께 고대합니다.
2020년 1월 19일
대구 동구을 자유한국당 예비후보 도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