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의 Empire State Building의 건설]
Frank Sinatra-New York, New York
Empire State Building은 미국 자동차 회사의 대표들인 Walter Chrysler와 General Motors의 John Jakob Raskob 둘 사이에서 누가 더 높은 건물을 만들 수 있는지 겨루는 경쟁에서 만들어졌다.
크라이슬러가 맨해튼 미드타운에 고층 건물을 이미 지은 것을 보고 Raskob은 전 뉴욕 주지사인 Alfred E. Smith를 포함한 투자자 팀을 구성하고 건축 회사인 Shreve, Lamb 및 Harmon을 선택하여 건물을 설계했다.
팀은 원래 Waldorf-Astoria Hotel이 있던 자리인 350 Fifth Avenue에 있는 부지를 구입하고 호텔을 철거하고 곧 도시를 상징할 수 있는 건물 건설에 착수했다.
원래 설계에서는 꼭대기가 평평한 건물이었지만 나중에 200피트 계류 마스트가 추가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1930년 3월 17일에 210개의 강철 기둥을 세우는 구조로 건설이 시작되었다. 프로젝트의 거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설계, 계획 및 건설은 시작부터 완료까지 단 20개월이 걸렸다.
매일 3,400명이나 되는 인력을 동원하여 일주일에 4.5층이라는 기록적인 속도로 건설을 해나갔다.
너무 빨라서 1층의 특정 세부 사항이 완성되기 전에 처음 30개의 층이 완성되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결국 예정보다 앞당겨 예산도 적게 들여서 완공되었지만 건설 과정에서 5명의 작업자가 사망했다. 건설 회사 Starrett Bros. & Eken은 "건물이 더 빨리 완성될수록 세입자로부터 임대료를 받아 더 빨리 돈을 벌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처음 건설할 당시 대서양 횡단 비행선이 미래의 주요 교통수단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 건물 소유자는 비행선을 위한 도킹 포트로 돛대를 건설했다.
비행선에서 내린 승객이 세관에서 체크인을 마치고 단 7분 만에 맨해튼 거리로 갈 수 있다는 계획이었는데, 건물 옥상 근처의 강풍 때문에 이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1931년 5월 1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고 대공황 속에서 뉴요커들에게 자부심을 선사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주로 기업의 사무실을 수용하도록 설계되었지만 1929년 주식 시장 붕괴와 대공황의 시작으로 시작이 불안정했다. 건물의 공간 중 25% 미만이 1931년 개장 당시 점유되어 "Empty State Building"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세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빌딩의 상반부는 1930년대 대부분의 기간 동안 거의 완전히 비어 있었다. 비어 있는 사무실이 많아지만 건물에 사람들이 많이 일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고층에 불을 켜기도 했다.
건물이 마침내 수익성을 갖게 된 것은 2차 세계 대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1945년 7월 28일 B-25 폭격기가 건물에 충돌하여 14명이 사망하고 건물 정면에 18피트 너비의 균열을 남겼지만 건물의 구조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9.11 사태로 무너진 세계 무역 센터의 쌍둥이 빌딩이 완공된 1972년까지 40년 동안 세계 최고층 빌딩이라는 명성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