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27일 오늘의 역사
2022년 이명박 전 대통령 특별사면
2020년 무극보양뜸 창안한 침뜸의 대가 김남수 세상 떠남(105세)
2019년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국회 통과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지역구 253석·비례대표 47석 규모인 현재의 국회의원 의석구조를 유지하되 비례대표 의석 중 30석에 연동형 비례대표제(연동률 50%)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선거 연령도 만 19세 이상에서 만 18세로 하향 조정된다.
국회는 이날 한국당이 강력 반발하는 가운데 4+1 협의체(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가 제출한 선거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선거법 개정안은 찬성 156표, 반대 10표, 기권 1표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현행 선거제도인 병립형 비례대표제와 비교했을 때 결과적으로 지역구·비례대표 의석수에 변화는 없지만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은 이전과 현저히 달라진다.
이번에 통과된 개정안에 따르면 소선거구 253석에 대해선 현행 방식대로 지역구 의원을 뽑지만, 비례대표 의석은 전체 300석 의석과 비례대표 득표율 50%를 연동해 산출된다.
2018년 청주 담배 폐공장에 네 번째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국내 첫 ‘보이는 수장고’ 운영
2016년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 29명 새누리당 탈당 신당창당선언
2011년 LG디스플레이가 세계 최초로 55인치 TV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개발에 성공.
2009년 아랍에미리트 원자력발전소 컨소시엄 수주
2009년 UAE(아랍에미리트)가 발주한 총 400억달러(한화 47조원대) 규모의 원자력발전소 건설공사를 한국전력공사 컨소시엄이 수주했다.
이는 우리나라의 첫 원전 플랜트 수출이자 사상 최대규모의 해외수주로, 이명박(MB) 대통령이 막판 UAE를 직접 방문하는 등 적극적인 수주외교를 펼치면서 앞서 나가던 프랑스 컨소시엄을 제친 것으로 알려졌다. 수주액만 200억 달러로, 중형 승용차 100만대 또는 초대형 유조선(30만t급) 180척을 수출하는 금액과 맞먹고, 원전 수명 60년 동안의 운전, 기기교체 등의 운영에 참여해 추가로 200억 달러를 받을 수 있다.
2009년 삼국시대 조조 무덤 발견
2009년 12월 27일 조조(曹操·155~220)의 무덤이 허난(河南)성에서 발견됐다. 조조는 유비(劉備), 손권(孫權)과 함께 중국의 패권을 다툰 인물로 이번 발견은 조조의 사후 1789년 만이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는 의심이 많았던 조조가 사후 자신의 무덤이 도굴될 것을 우려해 72개의 의총(疑塚·가짜 무덤)을 만들었다고 기록돼 있으며, 지금까지 그의 무덤 위치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허난성 문물국은 이날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허난성 안양(安陽)현에 있는 동한(東韓)시대의 무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문헌으로만 전해져오던 위(魏) 무왕(武王) 조조의 진짜 무덤인 '고릉(高陵)'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안양현은 조조가 숨진 곳으로 문헌에 나오는 뤄양(洛陽)에서 동북쪽으로 230㎞가량 떨어져 있다.
전형적인 토갱(土坑)묘인 고릉은 깊이 15m가량에 길이 60m, 넓이 740㎡의 대형 무덤이다. '중(中)'자 형태로 된 무덤은 동서 방향으로 통로가 나 있고, 천장부와 묘실, 통로 등은 모두 벽돌로 건축돼 있었다. 허난성 문물국은 이 무덤이 여러 차례 도굴된 흔적이 발견됐지만 금은 같은 보석류와 도기(陶器), 철제 갑옷, 철검, 비석 등 250여 점의 부장품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고고학자들은 부장품 중 '위 무왕이 사용했다'는 명문(銘文)이 새겨진 창과 돌베개를 근거로 이 무덤이 조조의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무덤에서는 또 60대로 추정되는 남성과 20대, 40대로 보이는 여성 등 3명의 유골이 발견됐다. 남성 유골의 연령대는 역사 기록에 나오는 조조의 사망 시 연령(66세)과 비슷하다고 중국 언론은 보도했다. 조조는 정치적으로 실권을 잡았으나 스스로 제위에 오르지는 않았고 사후에 무왕(武王)으로 추존됐다.
2008년 이스라엘, 가자지구 하마스 근거지 공습
2008년 12월 27일 이스라엘군이 이슬람 무장정파 하마스가 장악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가자(Gaza) 지구에 대해 대규모 공습을 시작했다. 이스라엘군은 공습을 시작한지 8일 만에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전격 투입했으며 이날까지 480여 명이 사망하고 800명 이상이 부상하는 등 이 지역에서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41년 만에 최대 규모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27일 오전 11시30분(현지시각)부터 수분 동안 60여대의 이스라엘 F-16 전투기가 가자 지구 내 50여 곳의 타깃에 미사일과 폭탄 100발을 퍼부었으며 타격 목표물엔 하마스 보안시설과 훈련 캠프 등 230여곳이 포함됐다.
이번 공습은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지난 6월 이집트의 중재로 6개월간 맺은 휴전기간이 지나 발생했으며,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작년 6월 이후 라이벌 정파인 파타 당을 무력으로 몰아내고 가자 지구를 장악한 이래 인근 유대인 정착촌에 로켓공격을 감행하면서 예견된 것이었다.
한편, 팔레스타인의 강경 무장정파인 하마스는 이슬람 저항 운동(Islamic Resistance Movement)을 뜻하는 아랍어 단어 첫 글자를 차례로 적은 것이며, 아랍어로 ’열정’이라는 뜻이다. 1987년에 아흐마드 야신이 조직했으며 그 이전에 이집트의 모슬렘 형제단(Muslim Brothers)의 팔레스타인 지부가 모체다.
하마스는 1987년 팔레스타인 무장봉기를 의미하는 인티파다 발생을 계기로 팔레스타인 온건파인 파타의 경쟁 정파로서 팔레스타인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6년 팔레스타인 입법의회 선거에서 파타를 누르고 총 132석 가운데 76석을 차지해 마흐무드 압바스 수반은 2007년 하마스와 연립정부를 구성했지만, 이런 동거는 오래가지 않았고 하마스는 같은 해 6월 가자에서 파타를 내쫓고 가자를 차지했으며 이스라엘 남부에 로켓공격을 지속해왔다.
2007년 파키스탄 베나지르 부토 (당시 PPP의 대통령후보) 테러로 사망.
2006년 삼성전자, 세계 최초 1 기가비트 모바일 D램 개발.
2006년 미국 유일의 선출되지 않은 대통령 제럴드 포드 세상 떠남
2005년 노무현 대통령 전용철 홍덕표 농민이 시위참가중 경찰에 맞아 숨진 데 대해 대국민사과
2003년 미국에서 광우병 걸린 소 발견되어 미국산 쇠고기 수입금지
2002년 북한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 추방 발표
2002년 복제인간 탄생
사상 최초로 복제 인간이 태어났다고 미국의 인간복제 회사 클로네이드의 대표인 브리지트 부아셀리에 박사가 2002년 12월 27일 발표했다.
12월 26일, 30세의 미국 여성의 DNA를 기증받아 복제된 몸무게 3.2kg의 여아 ‘이브’가 태어났다. 그러나 아기의 출생지 등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고, 과학적인 검증을 거치지 않은 상태여서, 진위 여부에 대해 많은 학자들은 회의적이었다. 부아셀리에 박사는 “아기는 제왕절개에 의해 태어났고, 출산과정도 매우 순조로웠다”고 전했다. 이번 복제과정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그 원리는 성숙한 난자에서 핵을 제거하고 대신 복제대상자의 체세포에서 핵을 추출해 난자에 집어넣은 뒤 그 난자를 수정란처럼 키움으로써 복제아를 탄생시킨 것이다.
복제인간 출생을 발표한 클로네이드라는 회사는 프랑스 언론인 출신의 클로드 보리옹이 1973년 설립한 종교집단 ‘라엘리안스’의 비밀 생명과학 회사이다. 클로네이드는 2002년 4월 “연구진이 만들어낸 복제 인간배아를 10명의 여성의 자궁에 착상시켜 5명은 유산됐으나 1명은 2002년 말, 나머지 4명은 2003년 2월 말 이전 출산할 예정”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1999년 시리아, 19년만에 이라크와 외교 재개.
1995년 서울지법,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관련 이준 이한상 피고인에게 각각 징역
10년6월 징역7년을 선고
1994년 프랑스, 특공대 알제리 무장테러단 피랍기 인질 구출
1991년 정부, 러시아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
1990년 국토통일원을 통일원으로 이름 바꾸고 부총리 부처로 격상
1990년 노재봉 국무총리 서리 취임
1990년 대법원 인명용 한자로 2,731자만 이름에 사용하도록 결정(1991.4.1부터 실시)
1990년 교육방송, KBS에서 독립. 한국교육방송국(EBS)개국
한국교육방송이 KBS에서 독립해 한국교육방송의 명칭으로 1990년 12월 27일 첫 전파를 띄웠다.
이날 개국식은 서울 서초구 우면동 한국교육개발에서 정원식 문교부장관과 김원기 국회문교체육위원장을 비롯한 교육계, 방송계인사 3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개국초기 TV는 하루 7시간 40분씩, 라디오는 오전 5시부터 하루 20시간씩 방송했다. 전문가들은 교육방송의 개국으로 본격적인 원격교육의 장이 열린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현재의 도시와 시골간 교육내용의 격차가 상당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다.
1990년 화가 장욱진 사망
장욱진(1917~1990)은 동심의 작가다. 동화처럼 순진무구한 심상을 우화적 기법으로 형상화해 인간의 삶을 해맑은 동심으로 정화하려 한 그를 가리켜 지인들은 ‘늙은 아이’라 불렀다.
장욱진은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나 7살 때 부모를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보통학교 3학년 때이던 1926년 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가 주최한 전국 소학생 미술전에서 1등상을 받아 그림에 재능이 있음을 드러내 보였다.
장욱진이 충남 예산 수덕사의 한 암자로 보내져 요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그림 인생에 우연히 찾아온 또 하나의 행운이었다. 그곳에서 조선의 첫 여류작가로 유명한 나혜석을 만난 것이다.
1938년 10월 조선일보 주최 제2회 전조선학생미술전람회에 출품한 ‘공기놀이’라는 작품이 특선의 영예를 안았다. 1939년 양정고보를 졸업한 장욱진은 도쿄의 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로 유학을 떠났다가 1943년 귀국했다. 1944년 겨울 일제의 강제 징용에 끌려갔으나 9개월 뒤 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조국으로 돌아와 1947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의 학예관으로 근무했다.
1980년 다시 화구를 챙겨 수안보 온천으로 유명한 충북 중원군으로 옮겨갔다. 그 산골마을에서도 개발 붐이 일자 1985년 6월 네 번째 개인전을 마치고 다시 경기도 용인의 구성으로 옮겨 세상 잡사를 잊은 채 그림에만 몰두하다가 1990년 12월 27일 타계했다.
1990년 전주교도소 집단 탈옥
박봉선 신광재 김모군 3인의 탈주범은 전북 완산구 평화동 전주교도소 기결 1사 하층 25방에 함께 수감돼 있었다. 이들은 27일 새벽 4시 30분 탈옥을 감행했다. 감방 화장실 창문에 설치된 쇠창살(길이 1m, 직경 2㎝) 2개를 쇠톱으로 자른 뒤 사물을 얹어 놓는 나무선반(길이 2.5m, 폭 20㎝, 두께 3㎝)을 가지고 감방을 탈출, 20m 떨어진 곳에 있는 4.5m 높이의 담에 사다리를 놓고 탈옥했다. 담 밖에는 2중 철조망이 처져 있었고 제1, 2 감시초소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으나 이들의 탈옥을 눈치채지 못했다.
교도서를 빠져나온 이들은 택시를 탈취해 대전까지 이동했다. 이곳 식당에서 검문 나온 경찰에 상해를 입히고 실탄 6발이 장전된 38구 경리벌버권총을 빼앗았다. 탈옥범들은 승합차를 훔쳐 신탄진까지 달아난 뒤 검문에 걸리자 차를 버리고 야산으로 도주, 다시 대청호에서 고기잡이 목선을 타고 800여 m 떨어진 맞은편 기슭으로 건너갔다.
경찰과 대치 중 박씨가 "먹을 것을 주면 자수하겠다"고 말하자 경찰이 "한 명을 보내주면 갈전으로 함께 나가 음식을 가져오겠다"고 하였다. 탈옥범들은 김군을 보냈고, 경찰은 그를 곧바로 고무보트에 태워 연행했다.
낮 12시 20분께 경찰헬기에서 경고 방송이 나오는 가운데 검거조가 권총을 겨누며 서서히 접근했다. 순간 앉은 자세의 박씨가 머리에 권총 한 발을 발사, 자살했으며 신씨도 권총을 주워 왼쪽 가슴에 총을 쏘았다. 경찰도 신씨를 향해 동시에 여섯 발을 발사, 한때 사살설이 있었으나 먼저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1989년 루마니아 임시정부(37인구국전선평의회), 공산주의와 결별,
1989년 이집트-시리아, 77년에 단절된 외교관계 재개 공동발표.
1989년 경북 달성 무허가 카페 ‘명진’에 불 사망 11명 부상 3명
1988년 경북 포항 60일간 무강수(10월 29일부터)
1984년 서독·영·미 과학자들, 태양풍 등을 연구하기 위해 처음으로 인공혜성을 발사
1984년 전남 나주군 노안면 학산리 철도건널목서 열차와 버스가 충돌. 15명 사망, 12명 부상
1980년 반공법 폐지, 국가보안법으로 흡수
1979년 아프가니스탄, 바브라크 카르말 전 부수상이 쿠데타
아프가니스탄의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회교도들의 공산정권타도 무력투쟁이 1979년 3월부터 격화된 속에 12월 27일 친소강경파 카르말 전수상이 쿠데타로 집권하자 소련군 5만명이 아프가니스탄에 침공했다.
산악지대에 거점을 두고 소련군, 정부군과의 전투를 계속함에 따라 소련군의 개입도 11만 5천명으로까지 확대됐다. 또한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무자헤딘반군의 게릴라 전술이 효과를 거두어 소련은 대도시와 중소도시 등 주요 거점만 장악한 채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1988년에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1989년 2월로 소련군이 완전히 철수하였으나 나지불라 정권과 반군간의 전투는 계속되었으며, 1992년 4월 공산주의 정권이 붕괴되고 무자헤딘 지도자 랍바니를 수반으로 하는 회교정권이 수립됐다
1979년 계엄사, YWCA 위장결혼집회사건 발표
계엄하인 1979년 11월 24일 민주인사들이 결혼식을 가장, 서울 명동 YWCA강당에 모여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잠정 대통령 선출저지 국민대회`를 개최하고 유신철폐와 계엄해제를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감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12월 27일 계엄사가 발표한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 해직교수협의회, 민주청년협의회 회원 500여명이 명동 YWCA강당에 모여 최규하, 김종필의 유신정부 퇴진 및 건국민주내각 조직과 공화당, 유신정우회, 통일주체국민회의 해산을 요구한 뒤, 유신대통령을 다시 선출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반역이며 우리나라의 민주화에 대한 외부세력의 개입을 일절 거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가두시위를 벌였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함석헌, 박종태, 양순직, 김병걸 등 96명이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검거됐다.
1978년 박정희 대통령 9대 대통령에 취임 / 정부, 대사면 단행. 5,378명 석방(김대중 석방)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으로 복역중인 김대중씨가 박정희 대통령취임을 맞아 실시되는 특별사면 제1호로 1978년 12월 27일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1976년 3월 10일 명동사건과 관련, 다른 10명과 구속됐다가 8월 28일 서울형사지법에서 징역 8년-자격정지 8년을, 12월 19일 서울고법 항소심에선 징역 5년-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고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1977년 3월 22일 상고기각으로 형이 확정됐다.
진주교도소에 수감중이던 1977년 12월 29일 지병인 신경통의 악화로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교도감의 감호아래 치료를 받아왔다. 이날 흰 저고리와 하늘색 바지 차림의 김씨는 경찰기동순찰차 1대로 자택에 도착했다. 김씨는 기다리고 있던 국내외 기자들에게 “병원이 아닌 교도소에서 복역중이었다면 사면을 해준다해도 출감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함께 구속된 인사들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석방돼 기분이 언짢다”고 말했다.
1978년 부메디엔 알제리 대통령 사망.
1978년 베트남 난민선, 마닐라만서 침몰. 200여명 사망
1972년 박정희 8대 대통령 취임식 거행, 유신헌법 공포,
박정희는 파행적인 경제 상황과 정치적 위기를 강력한 체제 구축으로 대응하기 위해 1972년 10월 17일 '대통령 특별선언'(10월유신)을 발표했다. 비상계엄령의 선포, 국회해산, 정당 및 정치활동의 금지, 새 헌법개정안의 공고 등이 그 내용의 골자였다. 이후 비상국무회의가 마련한 유신헌법안, '조국의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새 헌법개정안'이 11월 21일 국민투표를 거쳐 확정되었다.
유신헌법의 주요 내용은 국민 기본권의 대폭 축소, 입법부의 국정감사권 박탈,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접선거에 의한 국회의원 1/3 선출, 긴급조치권 및 국회해산권 등 대통령에게 초헌법적 권한 부여, 6년으로 대통령 임기 연장과 중임제한조항 철폐,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 간접선거 등이다.
장기집권을 위한 박정희의 유신체제는 1979년 10·26사태로 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1971년 국가보위법 국회 변칙통과
1969년 대한민국-니제르, 무역협정 조인.
1969년 건설부 서울-강릉간 고속도로 확정
1969년 일본 총선거에서 자민당 압승
1969년 문교부로부터 4년제 정규대학인 총회신학대학(총신대학교) 설립인가
1968년 중국 8번째 대기권 수폭 실험.
1968년 통일신라기에 축조한 제방인 영천의 청제비 발견
1968년 미국 우주선 아폴로8호, 달주위 10회 회전후 지구 귀환.
1967년 삼각지 입체 교차로 개통
1962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민정이양 절차 발표, 대통령 출마 시사
1956년 창원에서 버스에 화재. 33명 소사
1949년 인도네시아 연방공화국 독립.
1949년 12월 27일, 인도네시아 연방공화국이 정식으로 독립했다. 네덜란드는 2차대전이 끝난 뒤에도 식민지 연장을 원했지만,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완강하게 저항하고 국제사회도 이를 비난하자 자카르타 반환, 정전, 관련회의 개최 등을 포함한 협정을 체결했다.
회의는 8월부터 11월까지 열려 1.네덜란드는 연방공화국에 대해 1949년 12월 30일까지 서부 뉴기니아를 제외한 인도네시아의 완전 주권을 이양한다. 2.주권이양 후 네덜란드군은 철수하고 舊네덜란드령 동인도군은 해체하며 일부는 인도네시아군에 편입한다. 3.舊네덜란드령 동인도정부의 부채는 연방공화국이 인수한다. 4.舊네덜란드령 동인도정부가 법률에 의해 부여된 모든 권리를 연방공화국은 앞으로도 인정한다 등을 합의했다.
1945년 8월에 인도네시아 독립을 선언했던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은 이날 4년 만에 자카르타로 되돌아왔다. 이로써 300년에 걸친 네덜란드의 동인도 제도 통치가 막을 내렸다.
1945년 국제통화기금(IMF) 출범.
1945년 7월27일 국제통화기금이 출범했다
IMF는 출범 1년전인 1944년 미국 브레이튼우즈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국제 통화체계를 안정을 위해 셜립이 결정욌다
국제 통화체계의 안정을 통해 교역을 촉진하고자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해 전 세계의 실업과 빈곤을 줄인다는 섯이 설립 의도였다 (공감 2017.12.27.호)
1945년 모스크바 미·영·소 3상 회담서 한국 5개년 신탁통치 실시 결정 발표
미국·영국·소련의 외무장관이 1945년 12월 16일부터 모스크바에 모여 전후처리문제를 매듭지은 ‘모스크바 3상(三相)회의’ 결과가 12월 27일 AP통신을 타고 국내에 알려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조선에 임시로 민주주의 정부를 세우고, 이를 위해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하며 최고 5년 기한으로 미·영·소·중 4개국 신탁통치를 실시한다는 내용을 전해들은 국민들이 새로운 굴레를 씌우려는 열강의 음모로 생각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김구와 임시정부계열이 먼저 강한 반발을 보였다. 28일에 긴급 임정 국무회의를 열어 ‘탁치반대 국민총동원위원회’를 설치했고 31일에는 수만명이 참가한 ‘서울시민반탁대회’를 개최했다. 처음에는 소극적이었던 이승만도 반탁정국에 뛰어들자 ‘결사반대’의 열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반탁을 알리는 각종 전단이 난무했고 곳곳에 벽보가 붙었다. 신문들도 반탁기사로 넘쳐났다.
하지만 반탁을 주장하던 좌익이 소련의 지령을 받아 이듬해 1월 2일 돌연 찬탁으로 돌아서면서 광복 후 친일세력과 민족세력 간의 대립구도가 갑자기 좌우의 대립구도로 바뀌는 예측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좌우의 극단적 편가르기는 중도파들의 설 자리를 빼앗았고, 국내 정세는 극심한 남남갈등의 대결구도로 급속히 재편됐다.
1933년 중국 감숙성에 지진. 3만명 사망
1933년 기독교교육연맹 창립
1927년 인도국민회의, 영국 배척결의.
1927년 레온 트로츠키(Leon Trotsky), 스탈린(Stalin)과의 정치적 다툼에서 패배하여 공산당에서 축출됨.
1916년 장로교 경북노회 설립
1910년 독립운동가 안명근, 신천역에서 테라우치 총독 암살 실패
1909년 남북감리교 포교구역 분리조정
1904년 대한제국, 친일외교관 미국인 스티븐스를 외교고문에 임명.
1904년 제임스 배리(James Barrie)의 아동극 <피터팬 Peter Pan>이 영국에서 초연됨.
1899년 정태성 출생. 장로교 장로, 실업인.
1893년 박연서 목사 출생. 공산당에게 가족 전부가 살해되었다.
1890년 영국, 노동자보호법 제정.
1889년 이종권 출생. 감리교 목사.
1877년 러시아 시인 니콜라이 네크라소프 세상 떠남
1863년 남궁억 출생. 기독교인 독립운동가 언론인 교육가 찬송가 작가. 호는 한서.
1854년 베르뇌 주교 요동에서 조선교구 4대 교구장으로 성성됨
1832년 테일러 출생. 침례교 목사.
1831년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박물학자로서 영국 해군 측량선
'비글(Beagle)'호를 타고 출항했다.
1822년 프랑스 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 출생(1822-1895)
1813년 올트라마레 출생. 목사이자 성서해석자.
1808년 하키트 출생. 침례교도.
1805년 크라베 출생. 독일 루터교신학자.
1783년 케 출생. 링컨의 주교.
1703년 영국과 포르투갈 사이에 메수엔 조약(Methuen Treaty)이 체결됨.
1669년 클라크 사망. 동양연구학자.
1603년 카트라이트 출생. 영국의 청교도이자 장로교도.
1585년 프랑스 시인 피에르 드 롱사르 사망
시골 귀족 가문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장래에 군인이나 외교관이 되고자 했던 그였지만, 여행 중 얻은 병으로 소리를 잃은 후 문필가가 되기로 결심, 이후 고대 문학 공부에 매진했다. 16세기 후반, 신구간 종교전쟁이 일어나자 극단적인 왕당파로서 그는 가톨릭 교도의 입장을 표명해 ‘논설’이라는 3부작의 작품을 발표했는데, 그 논조가 당당하고 성실하여 반대파로부터도 존경과 공감을 얻었다고 한다.
51세로 왕실 시인의 자리에서 물러나 지병인 통풍의 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시작(詩作)과 작품 퇴고를 쉬지 않았던 그가 1585년 12월 27일,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저 유명한 ‘마리의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들’, ‘엘렌에게 바치는 노래들’이 탄생한 뒤였다.
그로부터 200년 후 그의 독창성과 감수성을 이해하지 못했던 당시 국수파들의 질시로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그의 작품들이 19세기 낭만파의 물결을 타고 그 진가를 인정받았고, 그 명성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571년 독일 천문학자 케를러 출생(1571-1630)
1566년 뒤물랭 사망. 프랑스의 법학자.
1555년 아른트 출생. 독일의 신비주의자.
1548년 스피에라 사망. 이탈리아의 법학자.
1493년 페핑거 출생. 작센의 종교개혁자.그의 저서들은 윤리적이며, 금욕주의적인자
1478년 정인지 사망
1404년 티무르, 중국 원정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