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한국경제, ‘피크코리아’의 초입일까
김소연 매경이코노미 편집장2024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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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통신은 최근 “2022년 글로벌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년보다 감소한 20%(명목 GDP 기준)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비중 축소는 1994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일명 ‘피크차이나’다. 일차적인 요인은 여타 국가보다 훨씬 강력하게 펼친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오랫동안 중국경제를 이끌어온 소비가 급격하게 꺾여버린 탓이다. 그 사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 대출이 유행했던 부동산시장은 만신창이가 됐고 고용시장은 매년 쏟아져 나올 1,200만 명 이상의 대학생을 받아줄 기업이 없다는 전망이다. 당장의 모습도 그렇지만 미래가 불안정하다는 점도 ‘피크차이나’론에 힘을 싣고 있다. 중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09명으로, 중국 신생아가 최근 5년 만에 약 40% 줄었다는 전언이다.
올해 한국경제 키워드는 저성장
묘하게 중국 얘기인지 한국 얘기인지 헷갈린다. 최근 일본 한 경제지가 ‘한국은 끝났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이 피크차이나를 얘기하지만, 한국이 다른 나라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라고 못 박아 화제가 됐다. ‘피크차이나’ 판박이 ‘피크코리아’다.
정말 ‘피크코리아’에 들어가는 초입일까. 2024년 한국경제 키워드는 ‘저성장’이다. 일본 매체가 ‘피크코리아’라고 단언한 배경에도 역시 유례없는 ‘저성장’이 자리한다.
2023년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사상 최초로 1%대로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OECD는 한국의 2023년 잠재성장률을 1.9%로 추정했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13년(3.5%) 이후부터 2024년까지 12년간 계속 낮아졌다. 잠재성장률은 노동과 자본 등을 최대한 투입해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로, 한 나라 경제의 기초체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OECD가 한국 잠재성장률이 2%에 못 미칠 것이라고 추정한 것은 2023년이 처음이다. OECD는 한국 잠재성장률이 2024년에는 더 낮아져 1.7%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수치는 미국 잠재성장률 전망치(2024년 1.9%)보다 낮은 수준이다. 통상적으로 성장률은 경제 덩치에 반비례한다. 어른보다 어린이가 쑥쑥 성장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미국보다 낮다는 것은 덩치가 훨씬 큰 미국경제보다도 활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한국은행의 한국경제 잠재성장률 추정치는 2001~2005년 연평균 5.0~5.2%에서 2006~2010년에는 4.1~4.2%, 2011~2015년에는 3.1~3.2%, 2016~2020년 2.5~2.7%로 낮아졌다. 2021~2022년은 2.0% 안팎인데, 지금 같은 추세면 한국은행이 수치를 하향조정할 수도 있다.
잠재성장률이 급락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가파른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감소가 꼽힌다. 0.7명대 초저출산 탓에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반면, 초고령화 속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니 경제활력이 생기는 게 이상할 정도다. 통계청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는 2019년 3,762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계속 하락하고 있다. 2060년에는 2천만 명 수준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경제활동이 활발한 핵심생산가능인구(25~49세)는 심지어 2008년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앞으로는 더 암담하다. 국회예산정책처 추계에 따르면 2040년 15세 미만 유소년 인구는 318만 명으로 2020년 632만 명의 절반으로 쪼그라든다.
노동력과 함께 잠재성장률을 좌우하는 또 다른 요인이 자본과 생산성이다. 한국경제는 특히 생산성이 좋지 않다. 노동시간당 전 산업 노동생산성 수준을 비교했을 때 OECD 38개국 중 1위는 아일랜드(130.6달러)다. 한국은 일본(22위, 47.6달러)보다 낮은 28위, 43.1달러다. 1위 아일랜드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잠재성장률이 낮아지면 실질성장률 역시 좋을 수 없다. 골드만삭스는 50년 후 세계를 전망하는 보고서에서 2023년 12위인 한국경제가 2075년에는 말레이시아, 나이지리아에도 뒤처지면서 세계 15위권 밖으로 밀려난다고 예측했다. 낮은 잠재성장률 고착화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전철을 밟는 수순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뼈아프다.
2024 한국경제 압박요인 수출과 건설투자
2024년 한국경제 성장률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3년 내내 뒷걸음쳤다. 2021년 4.1%에서 2022년 2%대 중반, 2023년에는 1% 초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그뿐인가. IMF 전망치 기준 2022~2023년 2년 합산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4.1%다. IMF가 분류하는 41개 선진경제권 가운데 미국(4.15%)에 이어 25위다. 41개국 평균 5.9%보다도 낮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24년은 조금이나마 사정이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가장 낮게 예상한 국회예산정책처가 2024년 한국경제 성장률을 2.0%로 제시했다. 가장 높게 본 KDI 전망치는 2023년 5월 기준 2.3%다(12월 기준 2.2%로 하향조정). 그러나 2023년보다 조금 나아졌을 뿐,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경기 침체 후 큰 폭의 반등세를 보였던 과거 추세와는 달리 2024년 경제성장률은 2023년 1%대 저성장에 따른 기저효과를 반영하더라도 잠재성장률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는 수준”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2023년 한국경제를 압박한 두 요인이 수출과 설비투자였다면 올해는 수출과 건설투자가 될 듯하다. 무엇보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발 건설업계 연쇄부도가 걱정이다. 지난 12월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설’에 휩싸였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태영건설의 PF 우발채무(불확정채무)는 3조4,800억 원에 달한다. 롯데건설, 코오롱글로벌 등도 PF 우발채무로 인한 위기 가능성이 제기된다. 건설업계는 총선 이후 부동산 PF 문제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를 것으로 우려한다.
2017년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는 수출도 문제다. 관건은 IT 수요 회복세다. 반도체 가격이 2023년 3분기 저점을 찍고 상승세로 돌아선 것은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요인이다. 반도체 단가가 이르면 2023년 4분기부터 본격적으로 오를 것이라는 예측이다. 2023년 9월까지 누계한 대중국 수출은 916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4.3% 줄어들었다.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양국 간 교역이 어려움에 직면했던 2022년보다 부진하다. 피크차이나가 거론되고 있는 만큼 2024년 대중국 수출이 좋아지리라 예상하기는 어렵다.
중국 수출 실적이 계속 좋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다. 중국의 경기 회복 지연과 중국의 중간재 자급률 상승 등 구조적인 요인과 함께 글로벌 IT 경기 부진으로 인한 수요 침체를 들 수 있다. 중국 수출이 단기적으로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중국이 산업을 고도화하고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면서 중국산 중간재 자급률이 상승한 것도 한국 입장에서는 골칫거리다. 화학제품, 자동차 등 중고위 기술과 전자기계, 선박 등 중저위 기술 산업에서는 한국이 중국보다 비교 우위에 있지만 그 격차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한국산이 중국산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중국에 치우쳤던 수출 구조를 다변화하는 데 성공할 것인가, 2024년 총선 이후 본격적으로 난리가 날 것이라 예상이 나오는 부동산 PF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등이 2024년 한국경제의 나침반이 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