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 슬프지 않은 이유
- 침묵속의淚多 -
벚꽃 흩날리는 아름다운 봄 날. 길가에 만개한 벚꽃은 그 아름다움을 만끽할 새도 없이 하나둘, 그렇게 떨어져갔다. 어쩌면 그렇게 떨어지는 꽃잎이 더 아름다울지도 모르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즐겁지만은 않다.
바람에 날리어 사뿐히 떨어지는 꽃잎을 손바닥위에 안착시킨다.
‘그렇게 해선 달아나. 꽉 움켜쥐어야지.’
‘나도 알아. 하지만 내 안에서 마지막을 보내게 할 순 없잖아. 내 것이 아닌데….’
벚꽃나무 아래, 만개한 꽃잎에 가려진 하늘이 하나 둘 떨어져간 꽃잎으로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낼 때, 아직 놓지 못하였다. 그래서 생각을 떨칠수는 없다. 하지만 슬프지는 않다. 내 선택에 의해 나는 아프겠지만, 그녀는 웃을 수 있겠지…. 나의 욕심에 나의 행복을 채웠던 시간은 5년이면, 그만하면 족하다.
“저와…. 결혼해주세요.”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무릎을 꿇고 그 앞에 장미꽃을 건넨다. 여자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벚꽃으로 가득한 그 길 위는 다행히 사람이 많이 오가지 않았지만, 고백한 남자도 고백받은 여자도 부끄러움은 같았다.
“전, 민준씨를 사랑하지 않아요.”
“나도 알아요.”
정중히 거절하고픈 그녀의 마음은 난감하기 그지 없다. 민준을 만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편하고 좋은 사람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그에게 닿아있지를 않았다. 좋은 사람 곁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간다는건 큰 축복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에게도 슬픈 일이었다.
“미안해요. 제 욕심인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다래씨 제 곁에 두고 싶어요.”
“…”
“사랑해달라고 애원하지 않을께요. 그저 제 곁에서 잠시 쉬어간다고 생각하면 안될까요?”
“…”
“다래씨에게 좋은 남자친구보다, 좋은 남편이 되고 싶어요. 그게 얼마의 시간이든 그렇게 함께하고 싶습니다. 제 마음을…. 받아주실 순 없으신가요?”
그녀를 올려다보는 민준의 눈빛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반짝인다. 아름다운 사람. 어쩌다 나 같은 여자를….
봄이 찾아들었다.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조금 떨어지긴 하지만, 봄은 언제나 설레임을 가져다주었다.
“아이. 왜 이래요.”
“좋아서….”
식탁위에서 김밥을 말고 있던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은 민준. 그녀는 가벼운 어깻짓으로 민준을 떼어놓으려 하지만, 그럴수록 두 손에 깍지를 껴 악착같이 버티는 민준이었다. 그녀는 못말린다는듯 가벼운 웃음소리를 한숨과 함께 뱉어낸다.
매년 봄이면 벚꽃놀이를 하러가는 부부. 여느때와 다름없이 김밥과 샌드위치, 몇가지 과일을 곁들여 도시락을 싼다. 결혼 초기엔 음식을 잘 할줄 몰랐던 그녀였기에 민준의 곁에서 그를 거드는 역할만 했었다. 그런 그녀가 어느샌가 스스로 도시락을 싸고, 맛도 제법 낸다. 제대로 배웠다면 한국 최고의 쉐프가 됐을거라고 민준은 장난스럽게 말하곤 했었다.
“음…. 역시 최고야. 최고. 정말 이런 인재가 내 집 주방에서 썩히고 있다는게 안타깝다!”
“풋. 그 소리 질리지도 않아요?”
어느샌가 다 말려진 김밥을 썰어내자 민준이 끄트머리를 집어먹으며 과장을 곁들여 한 말에 그녀가 웃는다. 언제나 그녀를 웃게해주는 민준이었다. 결혼 후에도 늘 변하지 않았고, 아니. 오히려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잘했던 민준이었다. 마치 떠나보내기 싫다는 듯이.
그들은 언제나 한적한 곳을 골라 소풍을 왔었다. 그녀도 민준도 사람이 북적이는 곳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짧은 봄에 다녀가는 이 아름다운 풍경을 놓칠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장소에 자리를 깔고 앉는다. 하늘이 열려있고 양 옆으로 벚꽃이 만개한, 그야말로 명당자리였다. 그들이 자리에 누워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본다. 바람에 날려 하늘거리는 꽃잎이 하나 둘 그들의 자리에 떨어진다. 아름다운 날이다. 고요하고, 따뜻하고, 무엇보다 함께한다.
“나, 정말 당신 놓치지 않은거 잘한 것 같아.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어.”
“…”
“…”
“…고마워요.”
그녀의 말을 끝으로 긴 침묵이 흐른다. 알 수 없지만 고요한 침묵은 무거움을 안고 다가온다. 말하지 않았지만 느낄수는 있다. 그럴 수 있을만큼 민준은 그녀를 사랑하니까. 그럴 수 있을만큼 그녀는 민준을 신뢰하니까.
“정오네. 도시락 먹을까?”
“그래요.”
햇빛이 강해졌다.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던 민준이 그녀를 보고 묻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에 차곡차곡 쌓아둔 도시락을 바닥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민준은 함께 챙겨온 와인을 따고 그녀는 놓여진 도시락의 뚜껑을 연다. 민준이 와인잔에 와인을 ‘쪼르르’ 따르면 그녀는 수저를 세팅하고, 언제나 그렇지만 5년째 변하지 않는 두 사람이다.
“우리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하여…”
민준이 잔을 들어보인다. 그녀의 표정이 무겁게 변한다. 민준은 그저 웃는다. 보낼때가 되었다. 사랑하지만 그 욕심은 오늘로 끝내야한다. 그것이 지난 5년간 자신에게 최선을 다해준 그녀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한다. 언제나 함께였지만, 언제나 함께 웃었지만, 자신의 소유가 아니란걸 알고 있었다. 언제든 보내야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한 번씩 잡아야겠단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이 그녀에게 아픔이 될까, 그럴까봐 민준은 생각을 접어야했다. 그녀가 아프지 않길 바란다. 민준이 그녀를 사랑하는 방법은, 그러하니까….
“당신의 행복한 인생을 위하여…”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던 그녀가 민준이 꺼낸 말에 그제야 시선을 마주한다. 웃는 얼굴. 어느때보다 더 밝게 웃어주는 사람. 그게 더 슬퍼보이는데도, 그게 더 아파보이는데도 그녀는 무어라 말할 수 없었다. 민준에 대한 그녀의 신뢰는 사랑보다 더 깊은 것. 딱히 무어라 단정지을 수 없는 그런것이었다.
“행복했어요. 고마워요.”
그녀가 웃는다. 그 미소가 시릴만큼 아파보여도, 민준은 그저 웃으며 그 얼굴을 마주할 뿐이다. 지난 5년간 많이 닮아있었지만, 같은 곳을 볼 수 없었던 두 사람. 사랑해서 아프고, 사랑하지 못해 아팠던 지난 5년의 부부생활은… 그렇게 끝맺어야했다.
“그렇게 해선 달아나잖아요. 왜 안쥐고 있어요?”
손 위에 올려진 벚꽃잎이 살랑이는 바람결에 손 안에서 춤을 춘다. 용케도 녀석은 손바닥 위를 벗어나지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자신이 내려앉아야할 공간을 찾으려는 듯 그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내 안에서 마지막을 보내게 할 순 없잖아요.”
처음보는 여성이 걸어오는 말에, 민준은 거리낌없이 대답을 한다. 마치 준비된 답변인듯, 자연스럽게….
그 여자는 민준의 가까이로 다가왔다. 금방 그의 앞까지 닿은 여자는 여전히 민준의 손 위에서 노니고 있는 꽃잎을 집어들었다. 꽃잎을 잡은 손이 하늘위로 뻗친다. 햇빛이 반가운 듯 꽃잎이 또 살랑인다.
“이 녀석… 그 쪽이 좋은가봐요.”
하늘에 닿을 듯 높게 뻗은 손에 잡힌 꽃잎을 바라보던 여자가 민준에게 시선을 돌리며 웃는다. 그 미소가 그녀와 닮아있다. 이목구비는 어디 하나 닮은곳이 없는데, 웃는 모습이 닮아있다. 민준은 멍-하니 그 여자를 바라본다. 여전히 미소를 놓지않고 있는 여자는 얼어붙어있는 민준의 손 위로 꽃잎을 다시 올려준다. 꽃잎이 다시 춤을 춘다. 하지만 여전히 달아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 쓰고보니 많이 짧네요. 억지로 늘리다가 낭패볼까봐 그냥 올려요.
이걸 작년5월쯤에 구상하고 첫 부분만 덩그러니 써놨다가 말았는데
이번에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인가? 아무튼 그 영화 소재가
불륜(?)을 저지른 아내를 떠나보내는 남자 이야기?
대충, 예고보니 그렇던데. 그거보다보니 생각나서 결국 끝맺었네요.
처음엔 제목을 '데이트'라고 지을려다가, 많이 막히더라고요.
그래서 제목을 바꿨더니 어느정도 막힘없이 쓰긴 썼는데
그래서 그런지 내용은 짧아요. = _ = 뭐.. 그럴수도 있죠? 하.하.하
첫댓글 짧았지만 강해서 좋았어요! *.* 저도 이렇게 써야되는데 . . 전 너무 길어서 문제예요 헝헝
길고 짧은게 중요한가요! 강한게 중요하죠! ㅋㅋ
아, 올린지 얼마안됐는데 댓글달려있어서 깜짝 놀랬네요. 감사드려요 (__) ㅋ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와우, 그래요? 다행이네요. 항상 그런게 부족하다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기분이 좋네요 ^ _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_)
루다님 소설이 올라와있어서 바로 들어왔어요! 잘 읽고갑니다^^ 간결해서 참 좋은것같아요 쓸모없는 부분이 없고... 정말 저도 이렇게 하이퀄리티(?)의 글을쓰고싶어여ㅠㅠㅋㅋㅋㅋ
하하, 하이퀄리티(?)까진 아닌 것 같은데 칭찬이 과하시네요. 이 몸 어디다 숨겨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쭈뼛쭈뼛)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__)
님소설을 읽으면서 하나하나 장면들이 떠오르는게 ㅠㅠ
전 언제쯤 저렇게 표현하는 문장을 쓸수있을지........
재미있게 잘읽고 가요^^!!!!
와아. 생각지 못한 반응을 보니 이거 완전 감격에 겨운데요? ㅎㅎ
저는 아무래도 문장 하나하나 쓸때마다 머릿속에 상상해서 그런가봐요. 그것도 한참을 하니 문제긴 한데 ;
얼마나 한참을 하는지 뭐 하나 쓸려면 몇 달이 걸릴때도 있고 그렇죠 -_-; 그러다 버리기도 하고..
어쨋든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__)
잔잔하면서.. 잘 읽었어요..ㅎㅎ
오호, 안녕하세요? ㅎㅎ 꽤 잔잔하죠? 잔잔한 것 밖에 못써요 -_-; 그게 아니면 잔인한거 ☞☜
ㅋㅋ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_)
잘읽었어요^^
앗,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_) 좋은하루 보내세요.
우와우와! 제가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문체에요!
잘읽었어요! 내용이 되게 부드럽게 흘러가는것 같애요!
우와우와! 진짜요? +_+ㅋㅋ
휴. 다행이네요. 저는 자꾸 읽으면서 뭔가 걸리적 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보고 또 봐도 뭔가 이상한 느낌도 들고 그러는데 부드럽게 흘러간다니.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__)
캔커피 보고 왔는데 이것도 재밌네요! 마지막에 민준이 새로운 사랑을 만나서 다행이네요ㅎㅎㅎ
흐흐. 방금 캔커피 댓글 달고왔는데!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아무래도 민준을 너무 외롭게 두는게 마음에 걸려서 마지막에 마음을 바꿔서 조금 늘리긴 했어요.. ㅎㅎ
좋은 하루 보내세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