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기행4]# ㅡ압록강ㅡ 넷째날 새벽4시 반에 기상. 구름이 하늘을 덮었다. 길바닥이 촉촉하다. 길림성 통화通化 시내를 가로 지른 황토색 압록강물, 재부財富호텔 8층 뷔폐식당에서 내려다 보인다. 지도에서 보고 궁금해 했던 강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강 건너 북한 땅을 언젠가는 밟아 볼 기회를 기대해본다. 기능성 제품을 파는 금성완죽섬유 쇼핑센터에 잠시 들렀다. 구매욕이 생겨 바구니에 생필품을 가득 채우는 모습들. 아직도 대로를 누비는 소형삼륜차,리어카, 외제 고급승용차가 함께 공존하는 사회상을 보여주는 곳. 오토바이는 뜨문뜨문. ㅡ호태왕비好太王碑ㅡ 고구려19대 광개토대왕릉廣開土大王陵과 20대 장수왕릉을 보기 위해 8시 반 출발, 길림성 집안시集安市를 향해 국도로 달렸다. 하늘이 점점 거므스름하다. 집안集安(지안)에 도착할 무렵 비가 내린다. 비가 우리와 친해졌다. 어제는 행운의 날이었다. 하산 이후부터 태풍 폭우로 백두산 관광을 26일까지 봉쇄했다고 한다. 빗길을 달리던 버스가 휴식차 간이 휴게소에 잠시 들렀다. 비구름이 산수를 열심히 그린다. 검문소에서 공안이 안전벨트 확인차 차에 올라와 일일이 체크한다. 두 번 째 검문이다. 10시40분 쯤 집안集安에 도착했다. 안개를 감싸안고 구름을 봉우리에 이고 있는 사방의 먼 산들, 유리 건물 안에 세워진 호태왕의 비碑를 에워싼 듯하다. 비문이 새겨진 2층 높이의 큰 비석, 슬픈 역사를 되집게 한다. 하필 우리가 올 때 비가 심하게 내릴까! 해바라기밭길을 걸었다. 5백여 미터 왼쪽으로 돌무덤릉이 덩그러니 있다. 화강암 계단을 밟고 올랐다. 릉 안에 왕의 관棺이 놓였던 대리석이 있다. 광개토대왕의 관 앞에 우리나라 지폐가 수북이 쌓여 있다. 경비는 내부 사진을 못 찍게 한다. 빗방울이 더 굵어진다. 눈물이려나! 5분 거리의 장수왕릉長壽王陵. 화강암 1100개를 계단식으로 쌓은 피라밋처럼 생긴 릉이다. 보수를 해야 할 입장이다. 돌의 무게를 못이겨 사방에 큰돌을 고였다. 돌 색깔이 주황색이다. 비를 맞아 광채가 난다.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 복원을 원했지만 중국과 협상이 어렵다고 한다. 빨리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바로 옆 고인돌무덤은 마치 폭탄 맞은 모습이다. 여전히 손을 못대고 있다. 길림성 집안시集安市 곳곳에 고구려 적석총(돌무지 무덤)이 있다고 한다. 고구려 제2의 수도 국내성은 유리명왕22년에 도읍을 옮긴 곳이다. 집안시에 고구려인들의 무덤 흔적이 곳곳에 있는데 미처 볼 시간이 없다. 주몽이 기원 전 졸본에서 나라를 세우고, 2대 유리왕이 22년에 도읍을 옮긴 곳, 국내성. 97세를 살면서 79년을 재위한 장수왕(394~491),이름 값을 했다. 평양으로 천도할 때까지 425년간 고구려 수도였던 '국내성'(당시 위진남북조 시대)이다. 집안시 주변에는 고구려 역사의 흔적이 늘비하다. 학자들이 공곰히 생각해 볼 문제다. 비가 많이 내려 기념 사진도 못 남겼다 우리나라엔 목타고, 국내성은 하염없이 바지 가랑이를 적시는 비雨, 의미심장하다. ㅡ단동 가는 길ㅡ '조선족불고기집'에서 석쇠로 구운 살치살이 점심 메뉴였다. 비오는날 음식 궁합으로 좋았다. 점심 식사 후 요령성遙寧省 단동丹東을 향해 안개빗길을 갈랐다. 압록강鴨綠江을 따라 계속 내려가면서 왼쪽으로 보이는 북한 땅. 민둥산이 눈에 들어온다. 안개비에 가려 선명히 보이지 않는다. 키 낮은 해바라기밭, 옥수수밭길을 보며 쉬엄쉬엄 달렸다. 안개비로 차창 밖의 시야가 조여온다. 눈을 감은 것과 다름없다. 시속50킬로 시골길을 달리며 큰동네 작은 마을을 번갈아 지났다. 화장실이 급한 일행들은 체면을 잊었다. 옥수수 풀밭, 담장을 가릴 여유가 없었다. 일행을 인솔한 최재복 사장! 여행 박사,도사,달인, 기인, 인간문화재감이다. 예능도 수준급,음반을 낸 가수다. 못하는건 사기 ,도박, 술이다. 나와는 초면이다. 4박5일동안 여행 동반자들의 행복지수를 올려 놓았다. 가이드 대리 역할까지 했다. 그 많은 레퍼토리를 어디에 저장했을까. 박식한 사나이다. 중년인 그에게 생노병사가 없었으면 한다. 고향이 충청도 부용면, 지금은 세종시 강 건너라고 한다. 양반고을의 돌연변이다. 최선을 다하면 최고가 된다. ㅡ하구河口로ㅡ 장마가 범람해 강둑에 걸린 오물 쓰레기가 눈에 거슬린다. 한나절 가는 동안 비 맞은 옥수수밭, 끝도 없다. 단동 하구河口(허커우) 와 신의주로 이어진 긴 다리가 6ㆍ25 때 북한 쪽을 끊었다. 아직도 교각 사이를 잇지 못하고 반세기를 넘기도록 그대로다. 관광 명소다. 마주 보이는 신의주. 산에 나무는 듬성듬성, 잡풀만 파랗다. 안개비로 시야가 멀리까지 잡히지 않는다. 초원을 사진기에 담았다. 수영 선수가 건널만한 강폭, 스무명씩 배에 나누어 타고 신의주 땅을 보며 상류로 거슬러 올라 갔다. 북한 어부들이 열심히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다. 리어카 끄는 농부, 자전거타고 가는 모습도 보인다. 한가로운 길거리, 몸을 의지할 숲, 산의 주인공들이 둥지가 없어 사라졌다. ㅡ단동ㅡ 단동丹東을 향해 5시50분, 다시 버스를 탔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이다. 이내 단동 시내에 접어들었다. 이성계가 회군했던 작은섬 위화도(현재 북한땅)가 왼쪽으로 보인다. 단동과 바로 경계에 있다. 개발 호지다. 단동 거리에 유경식당, 홍원슈퍼 등 우리말 간판이 보인다. 시내 밤거리의 불빛이 멋스럽다. 고층건물 네온이 밤을 유혹한다. 중국에서의 마지막 만찬은 금산대가錦山大街324호 영빈호텔迎賓酒店이다. '압록강맥주'로 건배, 푸짐한 밥상이었다. 북한땅을 중국에서 투자한 금싸라기 작은 섬. 유럽식 威尼斯建國飯店이 숙소다. 일명 단동시 5성급 '베네치아 건국 호텔'이다. 섬島에 다리를 놓아 만든 신시가지다. 단동의 마카오라고 한다. 마지막 밤을 보낸다고 최재복 사장이 최고의 잠자리를 배려했다. 압록강이 바로 앞으로 흐르는 금융가다. 최사장이 죽기 전에 꼭 한 번 묵고 싶었다는 호텔이다. 소원을 풀었다. 이번 여행에서 다닌 길! 사라진 고구려, 대조영이 건국한 발해 역사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본다. 누굴 탓할까. 마음이 묘하다. 영원한 내것은 없는가! 2018.08.23. 넷째날,눈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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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기행 4
정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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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01 13:2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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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비가 많이 내리는 여정이었군요. 오늘은 역사 여행.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릉.
발해와 고구려의 위대한 역사들 떠올리는 과거로의 여행. 앞으로 회복해야 할
우리 땅들입니다.
국사공부 절로 되시는 여행길 지명 새롭습니다.
비하고 친한 사람은 소풍을 가도 비가 온다는 옛말을 오랫만에 들었네요.
백두산 여행과 순국선열 유적지 삼성과 햇 갈려서 묘소 참배하던 박약회와
내외가 손자 데리고 북경으로해서 간 백두산 뒤 범벅 아직은 동질감을 못 찾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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