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부터 영가를 보았다. 처음엔 남들도 모두 나처럼 보는 줄 알았다.
성장하면서 내 눈에만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모른 채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다. 그런 말을 하면 이상한 눈초리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남들처럼 지내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1960년 4·19 혁명 때였다.
중학교 1학년이던 나는 기이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독재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옳지 않은 권력에 대한 저항의식으로 어느 날 갑자기 데모행렬에 휩쓸리게 됐다.
시위 첫날 나는 서울 동대문 전차 종점에 있었다. 학교 선배의 지휘로 목이 터져라 ‘독재정권 타도!’를 외쳐대고 있었다.
자동차가 위에 한 선배가 올라가 힘차게
‘타도! 이승만 정권!’ ---을 소리치며 대열을 주도했다.
그런데 선배가 갑자기 몸을 휘청하더니 차 아래로 툭 떨어지는 게 아닌가. 그만 고압선에 감전, 그대로 죽고 만 것이다.
모인 사람들은 당황해서 한 동안 어리둥절 했다.
그리고 ‘악!’하는 비명도 잠깐, 나는 다시 한 번 놀라야 했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나는 떨어져 죽은 선배의 몸이 두 개로 스르륵 분리되면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것이다.
분명 하나는 시체였고, 다른 하나는 영혼이었다.
선배의 영혼은 이미 죽어버린 자신의 육체를 보고 매우 당황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지만, 사람들의 눈에 선배의 영혼이 보일 리 없었다.
처음으로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현상을 보게 된 것이었다.
얼마 후 덕수중학교 교정에서는 그 선배와 함께 4·19 시위 도중 숨진 다른 선배의 죽음을 기리는 탑이 세워졌다.
윤보선 대통령도 참석한 제막식 행사에서
나의 눈길을 끈 것은 화려한 행사가 아닌 죽은 두 사람의 영혼이었다.
두 사람의 영혼은 행사장을 내려다보며 매우 흐뭇해하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영혼을 보고 나도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다.
육신에서 분리 된 영혼뿐 아니라 다시 육신으로 들어가는 영혼을 보기도 한다.
80년대 초, 한 주지 스님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나를 찾아왔다.
한 눈에 봐도 불안감과 초조함이 가득한 표정을 한 주지 스님이 말을 꺼냈다.
“제가 더위를 잊을 수 있는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 들려 드릴 테니, 그 대신 제 소원을 하나 들어주시겠습니까?”
나는 흥미롭게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주지스님이 중부지방의 한 암자에 주지로 가게 되었는데 밤마다 기이한 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했다.
매일 새벽 3시만 되면 어김없이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외우는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
자기만 들은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 모두가 매일 공포에 시달렸지만, 누구도 감히 그 문을 열어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는 몇 번이고 법당 문고리를 잡았지만 별안간 오금이 저리고 등골이 서늘해져서 매번 뒤돌아 설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절을 떠나는 바람에 더욱 썰렁해진 법당에는 여자의 염불 소리만 낭랑했다고.
“법사님,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 신성한 수행처에 이게 웬 변고입니까? 저랑 같이 가셔서 제발 방문 한 번만 열어 주십시오.
이게 제 소원입니다.”
나는 겁도 없이 스님을 따라나섰다. 그 문제의 절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정말 정확히 새벽 3시가 되자 과연 목탁 소리와 함께 낭랑한 여인의 염불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공포영화에서 배우들이 분장한 귀신들을 보면 무서워서 눈을 질끈 감곤 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진짜 영가를 만나면 오히려 담담해진다는 것이다.
땅꾼은 뱀을 무서워하지 않고 수의사는 개를 무서워하지 않듯이 나와 영가도 그런 관계가 아닌가 싶다.
그 와중에도 나는 장난기가 발동해
----“같이 들어갑시다” ---하며 주지 스님을 잡아끌었다.
스님은 사색이 되어 뒤로 물러섰다.
----“죽으면 죽었지 저는 도저히 못합니다.”
나는 억지로 스님을 문 앞에 세웠다. 그리고 문을 확 열어젖혔다.
얼굴이 백짓장처럼 창백하고 입안에 피가 살짝 흐르는 웬 여인이 나를 돌아보는 게 아닌가.
너무나 요괴스런 귀신을 보면 옛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간이 뒤집혀 죽는다고 했는데, 그때가 딱 그런 장면이었다.
하지만 주지 스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 보세요. 아무것도 없잖아요.”
내 말에 주지 스님은 텅 빈 법당을 휘휘 둘러보고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심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여인 영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행색을 보아하니 머리를 깎은 비구니 영가가 틀림없었다.
창백한 푸른빛이 도는 영가는 얼음에 미끄러지듯 스르륵 내가 있는 방문 쪽으로 다가왔다.
----“너는 누구인가? 무엇 때문에 수행처에 나타나 떠나지 못하는가?”
영가는 주지 스님의 몸을 통과하듯 지나갔다. 순간 주지스님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주지스님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의 음성은 이미 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비구니 영가의 음성이었다.
영가가 주지 스님 몸속으로 들어가 빙의가 된 것이다.
여인 영가는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았다.
예상대로 그 여인은 비구니로 과거에 이 절의 주지였다.
절 살림을 늘리고 법당을 넓히는 불사를 치르다 그만 동네 사람들에게 큰 빚을 지고 말았다.
어려서부터 절간 생활을 해오던 비구니는 동네 사람들의 빚 독촉이 너무나 두려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던 것이었다.
죽었으면서도 수행하던 염(念)이 그대로 남아 법당에 머물며 살아생전 습관대로 새벽부터 열심히 염불을 외웠던 것이다.
----“댓돌 아래에 금붙이가 있습니다. 돌아가서 담장 아래에도 있습니다.”
깨어난 주지 스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눈만 껌벅였다.
나는 영가가 말한 곳을 파보았다.
그 영가의 말대로 귀금속 보따리가 흙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부처님이 계시는 신성한 수행처에 원귀가 출몰을 하고, 수십 년간 수행을 했다는 자도 깨닫기는 커녕 원혼이 되어 이승을 떠나지 못했다니 믿기지가 않습니다.”
주지 스님의 한탄에 나는 이렇게 답을 대신했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듭니다. 수행처에 있다고 하여 저절로 마음이 닦이겠습니까. 최초의 한 생각이 최후의 한 생각입니다. 죽기 직전에 하는 한 생각이 너무나 많은 것을 결정합니다.”
언젠가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
남자주인공이 죽는 순간, 매미가 탈피하는 것처럼 육체로부터 빠져나오고,
다시 원한을 갚기 위해 영매의 몸속으로 들어가 빙의되는 장면을 보면서
‘나 말고도 영혼을 보는 사람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태국에서 태어나면 불교, 인도에서 태어나면 힌두교, 미국에서 태어나면 기독교를 믿게 된다.
하지만 영혼 현상은 세계 어느 나라건 공통적이다. 영혼과 종교의 이런 관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첫댓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