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에서 부산까지, 동해안을 따라 걷고 있다.
'해파랑길' 770K다.
일이 바빠서 평일엔 시간을 낼 수 없고, 주말을 이용해 짬이 나는대로 열심히 트레킹을 이어가고 있다.
'지리산 둘레길' 260K는 작년에 마쳤다.
금년엔 '해파랑길'인데 50구간부터 시작해 49, 48, 47...이렇게 벌써 40구간까지 마쳤고, 내주엔 39코스부터 시작한다.
'시작이 반'이란 말은 영원한 진리다.
시작하면 금방 끝이 보인다.
마지막 구간인 1코스 끄트머리(오륙도 앞 해맞이공원)도 멀지 않았다.
내 자녀들은 이미 장성하여 세상으로 나갔다.
딸이 서른, 아들이 스물아홉이니 적은 나이도 아니다.
애들이 어렸을 적부터 내가 자주 했던 말이 있었다.
사기, 폭행, 절도 등등 나쁜 일만 빼고, 무엇이든지 너희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직접 경험해 보라고 했다.
특히 가능하다면 여행을 자주 떠나라고 일렀다.
여행보다 사람을 성장케 하고 발전시키는 건 없다고 강조했다.
여행이야말로 최고의 살아 있는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사랑하는 자녀들뿐만 아니라, 나는 누굴 만나든지 비슷한 내용을 얘기하곤 했다.
'자연을 접하자', '여행을 떠나자', '걷자', '느끼자', '운동하자', '사랑하고 감사하자'고 했다.
일도 좋고 돈도 좋지만 짧은 인생길, 더 자주 감동하고, 더 자주 자연과 한몸이 되도록 노력해 보자고 했다.
내 개인적으로도 이 세상과의 옹골진 '오체투지'를 통해 진정으로 소통하고 교감하는 삶을 엮어가고자 힘썼던 건 사실이었다.
특히, 몇 번 탐방했던 쓰촨과 윈난의 '차마고도'에서 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기도했고 다짐했다.
천길 낭떠러지, 그 위험천만한 죽음의 길에서 나는 오히려 질박하고 애틋한 삶을 되짚어 가며 찬양했다.
패러독스였다.
어렵게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생의 찬미를 위한 기도를 웅대한 히말라야 신령님께 간구하곤 했었다.
희한했다.
그럴 때마다 탐욕과 나태를 버리고 감사와 헌신의 인생길을 가겠노라는 고백이 저절로 흘렀다.
캐나다 록키에선 '판타스틱'과 '뷰티풀'을 연발했지만, 그곳에선 한없는 낮아짐과 배움이 스며들었다.
그랬다.
세상의 어느 길이나 그건 곧 뜨거운 삶의 여정이었고 생을 가리키는 최후의 이정표였다.
마치 거대한 자연을 멋지게 담아낸 한 편의 옴니버스 시네마처럼.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작년에 동티벳 '따꾸냥봉' 등정과 러시아 '바이칼호수' 트레킹이 무산되었고, 금년엔 아예 해외일정을 생각조차 할 수도 없었던 심각한 상황이었다.
세계는 비상이 걸렸고 생난리였지만 그래도 한국이 제일이었다.
여느 나라에 비해 국민들의 이동과 활동에 큰 제약이 없었던 점은 엄청난 행운이었고 축복이었다.
정부의 리더십도 빛났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의 공동체를 우선시하고 배려했던 국민들 개개인의 수준 높은 질서와 시민의식 덕분이었다.
그런 까닭에 금수강산 어느 한 자락을 비교적 자유롭게 나의 두 발로 걸을 수 있었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기도를 꼭 예배당에서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수행을 꼭 수련원에서만 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자연이 도량이고, 삼라만상이 곧 가람 아니던가?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은 세월이다.
언젠가 나도 더이상 '보행불가' 판정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것이며, 작금에 흐르는 시간의 속도를 감안했을 때 그리 먼 미래의 일도 아닐 듯하다.
건강할 때 각자의 '버킷리스트'를 재점검하고, 아끼는 그 누군가가 존재할 때 더 사랑하고 소통하자.
그게 현명한 삶이라고 믿는다.
지난 주 주말에 작렬하는 땡볕 아래서 꼬박 이틀을 걸었다.
나는 원래 시커먼스였다.
그런 사람에게도 유월말의 이글거리는 태양열은 무지 강하고 매서웠다.
내 볼품없는 다리가 더 타고 더 익어버렸다.
끝내 따갑기까지 했다.
그래도 위대한 자연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연방 감사하며 찬양했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우리강토, 우리산하.
그 시종도 역시 감사와 감동이었음을 고백한다.
해파랑길,
해피워크.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