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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8일 오늘의 역사
2022년 캄보디아 호텔 화재 발생 19명 사망
2022년 한국의 달 궤도 탐사선 다누리 달 궤도 진입 성공 세계 7번째 달 탐사국
2021년 고대 이집트 통치했던 파라오의 미라, 3,500년 만에 모습 공개
고대 이집트를 통치했던 파라오의 미라가 첨단 의학 기술의 힘을 빌려 3,500년 만에 처음 공개됐다. 국제학술지 첨단의학을 인용해 이집트 카이로대 사하르 살림 교수 연구진이 지난 28일(현지 시각) 이집트 아멘호텝 1세 파라오 미라 내부의 두개골과 골격을 공개했다 아멘호텝 1세는 기원 전 1,525~1,504년 고대 이집트를 통치했던 파라오다. 1,881년 프랑스 학자에 의해 발굴됐다.
파라오의 미라는 천으로 완벽하게 감싼 상태로 얼굴 가면을 쓴 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카이로대 연구진이 인체를 수백 장의 고해상도 평면 X선 영상으로 분할하는 컴퓨터 단층촬영 기술을 활용해 파라오의 골격과 연조직을 확인했다.
복원한 파라오의 얼굴은 좁은 턱과 작은 코, 곱슬머리에 윗니가 약간 튀어나온 모습이다.
키는 약 169cm이며 사망 당시 나이는 35세로 추정됐다.
연구진은 아멘호텝 1세가 아버지인 아흐모세 1세를 닮았다고 설명했다. 또 3,500년이라는 세월에도 치아는 여전히 튼튼한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2018년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 기간 36개월(현역의 2배) 복무기관 교정시설(교도소) 합숙근무 확정
2018년 대법원 1부 삼청교육대 설치근거인 계엄포고 제13호에 위헌·위법으로 무효 판결
2015년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한일외교장관회담 결과 합의안 발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정부 책임 통감, 아베 총리가 사죄와 반성 표명, 일본정부가 예산을 투입한 위안부 관련 재단을 한국정부가 설립 양국 협력운영, 불가역적이고 최종적인 해결 선언
“한일간 어려운 관계가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데 박 대통령이 올바른 용단을 내렸다.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이다.”-반기문
“절차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중대한 흠결이 있었다.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문재인 대통령(2017.12.28)
2016.8.31. 일본정부가 ‘화해·치유 재단’에 10억엔 송금
2014년 인도네시아 에어아시아 여객기(인도네시아 수라바야 -> 싱가포르) 추락 162명 전원사망
2011년 남수단의 톤즈, 다른 종족의 습격 받아 74명 목숨 잃음
2010년 인터넷 허위글 처벌조항(미네르바법) 위헌 판결
헌법재판소는 2010년 12월 28일 '공익을 해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인터넷, 휴대전화 등)에 의해 허위통신을 한 사람을 5년 이하의 징역형 혹은 5000만원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한 전기통신기본법 47조1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이번 헌재 결정은 허위사실 표명 행위 역시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 중 하나이며, 기본권의 제한은 명확한 법 규정에 따라 최소한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인터넷을 '가장 참여적인 시장' , '표현촉진적인 매체'로 규정하며, 인터넷의 쌍방향적 특성을 통해 유언비어의 자발적 규제가 가능다고 보았다. 해당 법은 입법 당시(1961년) '허위명의를 이용한 통신'을 규제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법 규정이 불명확하여 몇 년 사이 '통신 내용상의 허위'에 대한 규제 수단으로 악용되었다고 밝혔다. 이날 위헌결정으로 정보통신망법이 적용되는 특정인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국가보안법으로 처벌 가능한 북한 주장에 대한 명시적 찬양·동조행위, 북한과 연계한 허위사실 유포 행위 등을 제외한 인터넷상의 허위사실 유포행위는 처벌이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헌재는 허위사실의 표현도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에 속하지만, "만약 허위의 통신에 의해 법익 침해의 실질적 위험이 발생할 것이 명백한 경우라면 구체적으로 내용을 적시해 (법으로) 규율해야 할 것"이라며, 헌법 37조2항의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서'라는 원칙에 따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처벌요건을 보다 구체적으로 열거하여,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국가안보나 사회질서를 교란하는 악의적인 유언비어 유포행위를 적법하게 규제할 보안입법의 필요성이 나타났다.
전기통신기본법 47조1항은 1961년 제정됐으나, 40여년간 거의 적용되지 않다가 2008년 '촛불사태'를 계기로 인터넷을 통한 유언비어 유포자를 기소하는데 적용되었다. 또한 2008년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가 고갈됐다는 글을 인터넷에 게재해 2009년 1월 기소됐다가 1심 무죄판결을 받은 '미네르바' 박대성씨가 해당 법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며, '미네르바법'이라고도 불렸다.
2010년 인천공항철도 전구간 완전 개통
2010년 김연아 미국 스포츠아카데미와 NBC방송/USA Today 공동수여한 여자부문 ‘올해의 선수상’ 받음
2007년 경기인천지역 민영방송 OBS 경인방송 개국
2006년 인간 면역 유전자 지닌 ‘복제돼지’ 새끼 출산
경기도 이천에 있는 생명공학기업인 엠젠(mgen) 연구소. 새해 한국 바이오 산업의 희망인 ‘복(福) 돼지’ 10마리가 지난해 12월 28일 오전 9시 이곳에서 태어났다. 2005년 5월, 세계 최초로 태어났던, 당뇨병 치료용 복제돼지가 1년7개월 뒤 10마리의 새끼를 출산한 것이다. 이 복돼지들은 당뇨병 환자에게 면역 거부반응이 없는 인슐린(혈당량조절물질) 분비세포를 제공할 귀한 몸이다.
복돼지 산파역은 엠젠 박광욱(朴光旭.40) 대표. 그는 미국 미주리대학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2001년 인체 면역 유전자가 들어간 복제돼지를 세계 최초로 탄생시켜 전 세계 과학자를 놀라게 한 주인공이다. 박 대표는 이 귀한 기술을 한국에서 꽃피우기 위해 2002년 귀국, 서울대 의대 바이오이종(異種)장기연구센터, 축산기술연구소 등과 함께 공동연구 중이다.
박 대표는 “보통 돼지는 한밤중이나 새벽녘에 출산을 하는데 이날은 아침에 출산한 덕분에 엄마, 아빠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대표가 말한 ‘돼지 엄마’는 최현민(30) 연구원. 이천 연구소에 상주하며 밤낮없이 돼지들을 돌보고 있다. ‘돼지 아빠’는 박 대표와 홍승표(35) 연구원. 인간유전자를 가진 복제돼지 수정란을 만든 주역이다.
2000년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주한미군에 관한 한미행정협정(SOFA) 개정 협상이 5년 만에 타결됐다. 양국의 협상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부 북미국장과 프레드 스미스 미국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는 2000년 12월 28일 서울에서, 미군 피의자의 신병 인도 시기를 앞당기고 환경조항을 신설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는 개정 내용에 가서명했다.
양국은 살인·강간 등 흉악범죄는 미군 피의자를 한국이 체포 때부터 계속 구금할 수 있게 했으며, 마약거래·강도 등 12개 중요 범죄에 대해서는 미군 피의자의 신병을 한국이 넘겨받는 시점을 종래의 ‘재판 종결 후’ 에서 ‘기소시’ 로 앞당기도록 했다. 양국은 또 SOFA의 ‘합의의사록`에 `미군은 한국의 환경법령을 존중한다’ 는 환경조항과 `한국은 미군과 군무원의 안전을 고려한다`는 요지의 조항을 신설하기로 했다.
양국은 이 조항에 근거해 별도의 특별 양해각서를 만들기로 하고, 여기에 1.환경관련 정보공유 강화 및 공동조사 2.환경관리실적 평가 및 오염제거 등의 내용을 포함시키기로 했다. 이번 협상에서는 한국 내에서 미군이 사용하는 모든 토지를 연1회 합동 실사하기로 합의해 미군이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계획이 없는 토지를 돌려받을 수 있는 근거를 확보했다. 또 미군이 한국 내 지역사회의 건강과 공공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시설을 신·개축할 때는 한국측에 사전 통보하고 협의하도록 규정했다.
1994년 일본 동북구, 7.5도 강진 발생
1991년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 선포
1990년 중앙기상대, 기상청으로 발족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 의회, 두브체크를 의장으로 선출
1989년 한국-유고슬라비아 국교 수립
1988년 강영훈 총리, 북한에 남북총리회담 제의
1982년 국무회의 공직자윤리법 시행령 확대
1978년 이란 반정부 폭동, 최대규모로 확대
1976년 정부, 국회평화통일협의회서 박동선 사건 등 한미3대현안 내용 보고
1976년 살인마 김대두 사형
1974년 파키스탄에 대지진. 4천700명 사망
1974년 대구 상이군경 200여명. 신민당 경북지부당사서 난동
대한상이군경회 소속회원 2백여명이 1974년 12월 28일 신민당 경북지구당사를 점거하고 `병신육갑운운` 발언에 대해 김영삼 신민당 총재가 공개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난동을 벌였다.
이들은 이날 5시간 반 동안 당사의 창문을 부수고 진입해 의자와 당기, 플래카드 등을 부수고 저지하는 당원들을 폭행, 실신시키는 등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이들은 당사 옥상에 올라가 `북괴남침 위협 있다` `국가유공자 모독 발언을 공개사과하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연좌에 들어갔다.
이들이 당사를 점거하고 있는 동안 김영삼 총재와 신민당원들은 숙소인 금호호텔를 나와 50분동안 개헌과 독재헌법개정을 요구하는 가두행진을 벌였다
1973년 솔제니친 소설 `수용소 군도` 출간
1972년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5기 1차 회의에서 사회주의 헌법을 대의원 전원 찬성으로 채택
1972년 12월 28일, 북한은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5기 1차 회의에서 사회주의헌법을 대의원 전원 찬성으로 채택했다.
이에 따라 정권수립 이후 4반세기 동안 국가권력구조의 골격으로 유지돼온 내각제 형태의 수상제가 폐기되고 대통령 중심제와 유사한 주석제가 새로 출범했다. 공교롭게도 하루전인 27일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투표(72.11.21)를 통해 확정된 유신헌법을 공포, 제4공화국 유신체제를 정식 발족시켰다.
남북한의 정치체제 변화가 연이어 이루어진 것이다. 유신체제가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한국적 민주주의` 토착화를, 북한의 주석제가 조국통일과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각각 명분으로 내세운 점도 흥미롭다.
북한이 1970년대 초 헌법을 개정해 주석제를 골간으로 하는 새로운 국가권력구조를 탄생시킨 것은 1950년대 이후 권력투쟁을 겪으면서 부쩍 향상된 김일성의 지위와 역할을 반영한 것이었다. 김일성은 1950년대 초 남로당계 숙청을 시작으로 8월 종파사건과 1960년대 갑산파 제거, 1969년 군부파 축출로 이어지는 일련의 권력투쟁을 통해 유일체제를 구축했으며 1970년 11월 제5차 당대회에서 이를 공식화했다.
주석제는 유일사상체계·수령제를 제도화하고 법적으로 고착화하는 의미를 띠는 것으로, 김정일 후계체제를 등장시키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의 성격도 내포했다. 김정일 후계구도는 김일성이 회갑을 맞는 1972년을 기점으로 가시화되어 1974년 2월 후계지명으로 구체화됐는데, 주석제가 나옴으로써 김일성은 국가를 맡고 김정일은 당을 매개로 후계체제를 구축하는 역할분담이 가능해졌다. 대외적으로 보면 1969년 닉슨독트린등의 국제적인 화해분위기, 1972년 2월 닉슨-주은래의 만남과 상해 코뮈니케로 상징되는 미-중 관계개선, 중-일접근, 남북대화 시작 등 일련의 국내외정세 변화와 그로부터 예상되는 외풍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내부 체제정비의 성격을 함축하고 있었다.
1970년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국회 동의
1967년 공화당 단독으로 68년도 예산안 강제통과(제2의 2.4파동)
1966년 중국, 5차 핵실험
1965년 일본, 재일교포 2명에 한국 여행 첫 허가
1965년 한국-프랑스 문화기술협정 체결
1961년 향토예비군설치법률 공포
1959년 국회, 호적법 통과
1959년 미국의 노동운동 지도자 비버 출생
1956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저온하의 핵융합반응에 성공했다고 발표
1949년 대한농민회 결성
1948년 이집트 마후무드 노크라시 라샤 수상, 카이로서 피살
1947년 이탈리아의 마지막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3세 사망
1945년 모스크바 3상회담(미국-영국-소련) 한국 5개년 신탁통치 결정
1937년 프랑스 작곡가 라벨 사망
1929년 북아메리카 프로 아이스 하키 골키퍼 테리 소척 출생
1927년 조선토지개량령 공포
1926년 나석주,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투탄 후 자결
중국천진에 본부를 두고 활동하던 항일독립단체인 의열단 소속 나석주 의사가 1926년 12월28일 일제의 경제침탈을 응징할 목적으로 경제침탈의 총 본산인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식산은행에 폭탄을 던지고 권총으로 자살했다
서른다섯의 나이였다
나석주 의사는 죽기전에 일본경찰이 이름을 묻자 자신의 성명과 의열단원임을 밝히고 순국했다
1925년 러시아 시인 세르게이 예세닌 자살
1924년 우간다 초대 대통령 오보테 출생
1923년 프랑스 건축가 에펠 사망
‘철(鐵)의 마술사’ 구스타프 에펠은 프랑스 파리의 독일계 가정에서 태어나 원래 반평생을 유럽횡단철도 교량건설에 매달린 기술자였다.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한 파리국제박람회가 1889년 개막 예정이었다.
박람회를 빛낼 건축물 설계전이 열려 700여개 작품이 응모했고, 에펠의 설계안이 최종 채택됐다. 1889년 3월 31일, 25개월간의 공사 끝에 완성된 에펠탑은 당시 최고 건물보다 2배나 높았고, 1930년 뉴욕 크라이슬러빌딩이 세워지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었다. 250만개 나사못으로 1만5000여 금속조각을 연결시킨 에펠의 공법은 근대 산업문명의 상징이었다. 계단 1652개, 높이 320.75m(안테나 포함), 무게 7000톤이나 됐다. ‘파리의 귀부인’이란 애칭을 얻은 에펠탑이 완성되자 모파상도 “흉측한 에펠탑을 안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란 핑계로 자주 찾았다.
1909년 헐릴 위기에 처했으나 통신안테나 설치라는 새로운 용도 덕에 요절을 면했다. 그러나 라디오(1918년)와 TV(1957년) 안테나 설치로 몸무게가 1만1000톤으로 늘자 ‘귀부인’도 비만에 시달렸고, 1981년 2월 대대적인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콘크리트 전망대를 강철로 바꾸고 엘리베이터를 전기식으로 교체해 1000톤의 군살을 뺐다.
1926년 의열단원 나석주 동양척식회사와 식산은행에 폭탄투척후 자살
1925년 러시아의 마지막 농촌시인 세르게이 예세닌 상트페테스부르크의 여관방에서 자살(30세)
1921년 이승만 등 워싱턴 군축회의에 한국독립청원서 제출
1910년 주시경 등 한국어연구회 조직
1908년 동양척식회사 설립
1908년 12월 28일 일본은 조선의 경제수탈을 목적으로 영국의 동인도회사와 유사한 동양척식회사를 설립했다. 동양척식회사는 농민에게는 진보된 농법을 제공하고, 기업가에게는 이자가 싼 자금을 제공한다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사실상 이 회사는 조선의 식민지화에 목적이 있었기에 한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동양척식회사의 설립으로 한국정부는 토지 1만7714정을 출자하고 1913년까지는 토지 4만7148정을 헐값으로 팔아야만 했다. 1920년대말에는 동양척식회사 소유지가 경작지의 3분의1인 9만7천여정이나 됐다. 또한, 일본은 국유지를 강제로 팔게 하여 우리나라의 산림지를 가로채, 1942년에는 16만여정의 임야를 가지게 됐다.
일본은 강제로 빼앗은 토지를 영세 소작농에게 빌려주어 고액의 소작료를 징수했고, 일본인 이민 희망자에게는 각종 특혜를 주기도 했다. 1917년에는 동양척식회사 회사법을 개정하고 본사를 도쿄로 옮겨 조선뿐만 아니라 몽골, 러시아령 아시아, 중국, 말레이반도 등 대륙 침략의 범위를 넓혔다. 1937년 중일전쟁 후에는 한국을 병참기지화하기 위해 중공업에 투자하기도 했다.
1908년 이탈리아 시실리섬 메시나 대지진으로 12만명 사망
1905년 미국의 재즈 피아니스트 하인스 출생
1902년 중국의 현대 문학가 선충원 출생
1902년 미국 시카고 이러쿼이 극장서 화재, 602명 사망
1896년 미국의 교향곡 작곡가 세션슨 출생
1895년 프랑스 뤼미에르 형제, 세계최초의 영화 상영
프랑스의 발명가 오귀스트 뤼미에르와 루이 뤼미에르 형제가 1895년 12월 28일 새로운 타입의 대중영화를 상영했다.
토요일 저녁. 카푸친느가 14번지 그랑 카페의 한 살롱을 빌려 1프랑의 입장료를 내고 처음 일반에게 영화를 상영했다. 난생 처음 스크린에서 ‘뤼미에르 공장’ ‘바다’ ‘열차도착’ 등 10여편의 영화를 보게된 관객들의 반응은 환호 그 자체였고, 바로 이날 영화의 시대가 시작됐다.
뤼미에르 형제는 ‘시네마토그라프’(Cinemato graphe:시네마란 단어가 여기에서 유래됨)라는 초창기의 영화 카메라 겸 영사기를 발명한 선구적인 제작가들로 20년간 그들은 무려 400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1895년 대만북부도민, 일본군정에 반란
1894년 미국의 고생물학자 로머 출생
1889년 독일의 영화감독 무르나우 출생
1885년 인도 국민회의파 창립대회
1882년 영국의 천문학자 스텐리 에딩턴 출생
1859년 영국의 역사가 매컬리 사망
1856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 출생
1828년 일본 월후에 지진. 3만명 사망
1767년 스위스의 법학자 바텔 사망 - 국제관계에 자연법이론을 적용한 `국제법`(1758)의 저자
1636년 병자호란 발생
인조 14년 병자년 음력 12월 2일부터 정축년 음력 1월 30일까지, 양력으로는 1636년 12월 28일부터 1637년 2월 24일까지 벌어진 조선과 청나라의 전쟁이다
1627년 정묘호란 발발후 9년만에 다시 일어난 전란이다.
정묘호란으로 조선과 형제관계를 맺은 후금은 국력이 강해지자 나라이름을 청으로 바꾸고 조선과의 관계도 상하관계로 바꾸려고 하였다
조선을 형제가 아닌 신하로 규정하고 이에 합당한 예를 다하도록 조선에 압력을 가했다
조선은 끝까지 싸우자는 척화파와 화해를 하자는 조화파로 나뉘어 극렬하게 대립했다
결국 척화파의 주장이 우세해 지면서 청의 요구를 묵살했다
1636년 청나라는 군대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순식간에 한양까지 밀고 내려왔다
인조와 대신들은 남한산성으로 피신 하여 45일간 싸웠으나 추위와 식량부족으로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내려와 청태종에게 삼배구고두를 했다
이에 청의 신하가 되었고 군신관계는 1894년 청일전쟁때 까지 계속되었다
1537년 권율장군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