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에서 잠시 쉬려고 하늘을 본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너무나 청명하고 아름답다.
흐린 날도 많던 여름도 가고 도시를 뒤덮은 스모그도 사라진 하늘은 길을 떠나자고 유혹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여행을 좋아했다.
아무런 생각도, 계획도 없는 여행을 갔다.
무작정 떠난 목적지에 가서 어디를 왔는지 지명을 묻는 게 버릇처럼 됐었다.
늘 다니는 여행도 아니다.
여행을 다닐 만한 환경이 없었던 나는 불현듯 생각나면 떠나곤 했다.
그래서 나는 내게 '역마살'이 붙었다고 생각했다.
국내는 안 다닌 곳이 없을 만큼 다녔다.
차가 있기 전엔 버스나 기차를 탔는데, 차가 생기며 다른 교통을 이용할 수 없었다.
차를 이용하는 것은 편할지라도 여행하는 운치를 즐기는 것은 별로이다.
'여행' 하면 먹고 마시고 부담이 없어야 하며, 산천경계를 두루 섭렵해야 즐겁다.
운전에 몰두하다 보면 그것들을 즐길 여유가 없고 지겨운 차들만 보고 오는 여행이 되고 만다.
거기에다 옆자리에 누구도 없이 혼자만 가는 여행은 더욱 싫다.
하다 못해 '잔소리'를 달고 다니는 아내라도 옆에 있으면 좋은 게 차를 이용하는 여행이다.
아내 몰래 아름다운 여인이라도 있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그런 행운을 기대할 순 없다.
기구한 내 팔자는 아내 이외의 여자는 붙을 팔자가 아니란다.
겨우 있어봤자 동네 술 즐기는 늙수그레한 아줌마들이나 얻어먹으려고 붙는 정도이다.
이젠 그런 아줌마들도 술을 끊고나니 오지도 않는다.
그런 팔자에 '김보애' 같은 아름다운 여인을 앉힌다는 꿈을 꾼다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엊그제, '김보애' 그녀가 타계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굵게 쌍꺼풀진 눈 ㅡ
웃으면 가지런한 하얀 치아가 유독 넓게 보였던 그녀는 한 때 나의 이상형이었다.
기차여행 때, 모자를 깊게 눌러 쓴 내 옆자리에 앉은 그녀를 상상하며 떠나곤 했다.
'김보애' 그녀뿐만은 아니다.
'김지미' '도금봉' '최은희' '선우용녀' '채시라' 등 많은 여인이 내 곁에 머물다 떠나갔다.
이젠 그녀들을 잊어야 한다.
벌써부터 그녀들은 내 곁에 없었으며 언제나 나의 허상 속에서만 존재했다.
오래 전, 외로운 내게도 들꽃처럼 청순하고 아름다운 어떤 여인이 나타났다.
하얀 얼굴, 가녀린 몸매의 그녀는 가을밤 돌담 위에 핀 박꽃 같은 아름다움을 안고 내 곁으로 왔다.
그녀와 여행을 갔다.
나는 그때도 계획도 없었고, 목적지도 없었다.
버스가 머문 곳에 내려 거리를 걷다 어두워진 골목 안 '모텔'로 들어갔다.
그녀는 나를 믿었던지 주저 없이 모텔로 따라 들어왔다.
우린 한 침대에 누워 먼 미래를 설계했다.
우린 손도 잡지 않았다.
그곳은 내가 첫날밤을 상상했던 장소가 아니었다.
그녀는 나의 아내로 만들어 한 평생 오순도순 정답게 살고 싶은 여자였다.
그런 여인을 숱한 '불륜남녀'가 머물다간 곳에서 '첫날밤'을 치르고 싶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청결한 곳, 가장 성스러운 곳에서 '첫날밤'을 맞고 싶었다.
어떤 녀석들은 아꼈다 첫날밤을 맞으려다 도둑맞고 한평생 슬픈 사랑을 노래한다.
나는 그녀를 믿었다.
그리고 그녀는 나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아현동' 고갯마루에서 '웨딩드래스'를 맞춰주었다.
누구도 입지 않은, 누구보다 아름다운, 이 세상 단 한 벌의 웨딩드래스를 입히고 싶었다.
그녀는 그 옷을 입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우리는 많은 사람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했다.
나는 그녀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으로 만들어주겠다는 다짐을 했다.
행복에 겨워 죽을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런데,,,,,,,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녀는 행복은 커녕 죽을 만큼 고생만 시켰다.
수돗물도 없는 집에서, 연탄 아궁이에서 데운 물로 분유를 타먹이는 엄마를 만들었다.
시부모를 모시며 돌아가실 때까지 정성을 다해 모시는 착한 아내를 고생만 시켰다.
우린 여행도 가지 못했다.
아이들이 세 살과 네 살 때, 제주도 가는 비행기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탔다.
이태 전, 어머님을 먼저 제주도를 보내드리고 다음으로 우리가 갔다.
비 내리는 김해공항에서 이륙하여 구름 위에 솟아 보는 하얀 구름은 천당이 이런 곳이란 상상을 했다.
뛰어내리고 싶은 하얀 솜이불 같은 아름다운 구름을 본 게 처음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중국 상하이, 황산'을 함께 갔다.
세 번째, 아들 녀석 결혼식 때문에 '대만'을 갔다.
그게 우리가 부부되어 갔던 여행의 전부이다.
못난 남편 만나 죽도록 고생만 한 아내 ㅡ
지금도 이어지는 고생 ㅡ
그런 내 아내가 여행을 간다.
나는 함께 가지 못하지만, 내 아내가 고생한 평생을 보상받을 만큼 즐거운 여행을 만들어주고 싶다.
해외에서 주재원으로 오래 근무한 사위 녀석이, 어떤 캐리어를 사야할지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주문했다.
국내에서 가장 선전을 많이 본 무슨 '투어리스트' 캐리어 가방이다.
어제, 퇴근하여 집에 오니 시름에 잠겨 소파에 앉아 턱을 괴고 가방을 보고 있다.
이런 곤장을 100대를 때려도 시원찮을 녀석 ㅡ
160cm의 장모가 어떻게 들으라고 80cm의 가방을 주문했을까!
옷 몇 장 팬티 몇 장 넣어갈 여행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행 가서 돌아올 때 사 올 물건 때문에 큰 게 좋다고 시킨 것이다.
녀석들이 돈이나 많이 주면서 그랬다면 모를까!
아내는 전 세계를 무대로 다니는 여편네의 꾐에 빠져 가는데 ㅡ
주머닛돈, 쌈짓돈 다 털어 가는데 무엇을 살 게 많을까!
오늘, 새벽에 일어나 거실에 있는 '캐리어'를 보아도 정말 크다.
사람 하나 들어가고도 남을 크기이다.
열흘 간 저걸 들고 5대 '캐니언'을 돌아보려면 살아서 귀국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혼자 떠나는 미국여행이라도 저것보다 작고 아담한 사이즈를 하나 더 주문하려고 한다.
말도 통하지 않는 동네에 가서 가방을 낑낑거리며 끌고다니면 '어글리 코리안' 소리를 들을 게 아닌가?
작고 아담한 가방을 끌며 한평생 고생만 시킨 남편의 허물을 조금이나마 내려놓고 오기만 바란다.
첫댓글 ㅎㅎ 글보다는 순정파이시네... 하기는 그런 남자들 좀 있긴 있어요. 믿을랍니다. ^*^
여행실적이. 넘. 허접하네요.
앞으로 부지런히 돈벌에 부부여행
많이 다니세욧.
인생에. 남는거. 여행이 최곱디다.
저는 짧은 동남아여행때도,
남들이 보면 이민가는것처럼
24인치 커다란 케리어를 가지고 갑니다
아메리칸 투어 리스트 캐리어.
뱅기 탈때 가장 튼튼한 동반자입니다요
정말 몰라서 묻는 겁니다.
이게 28인치 같은데, 2/3 정도면 몇 인치인가요?
높이가 약 50cm되는 것이면 될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싸나이로써 할일 다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