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도락과 음식문화
김 난 석
어느 회원이 먹는 재미를 이야기했다.
일본음식 중 생선초밥 만드는 과정과 맛을 소개했는데
저마다 다른 식도락이 있을 게다.
즐거움 중 하나가 식도락일 텐데
어려운 시절엔 많이만 먹었으면 좋겠다,였다.
허나, 이젠 살만하니
맛있는 거 골고루 먹어보는 게 즐거움이 아닐까?
격세지감을 느낀다.
로마 전성기에, 귀족들은 닭털을 하나 가지고 다녔다 한다.
종로에서 먹고 닭털로 목구멍을 후벼 토해내고
을지로에서 먹고 또 토해내고
퇴계로에서 먹고 또 토해내고
그러면서 해 다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
전쟁마다 승리해 동서양의 온갖 것 착취해 갔으니
그러고도 남았을 거다.
우리는 아침을 후다닥 먹고 출근하고
점심도 살짝 시늉만 내고 일을 시작했었는데
(그래서 점심이다)
서양의 선진국들은 점심시간이 길기로 소문이 나있다.
식도락을 즐기는 걸 텐데
그게 사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
현직시절, 직장의 내 선배는 동신참치만 고집했다.
그게 다른 것과 달리 해동(解凍)을 잘해서
감칠맛이 난다는 거다.
그래서 한 번 대접을 받으면 대접을 해야 했기에
비싼 돈을 쓰기도 했는데
나는 맛도 모르면서 부질없는 짓이나 했던 기억이다.
전라도 무안에 출장 갔을 때의 일인데
일요일에 상경하지도 못하고 시장을 배회하던 중
홍어를 가마니에 덮어놓고 파는 생선장수를 만났다.
신기해서 멈춰 들여다보려니
칼로 한 점 베어주면서, 먹어보라는 거였다.
잘 삭았다나...?
그것 참!!
그래서 홍어 한 마리 사들고 여관으로 들어왔더니
직원들은 모여서 고스톱을 치고 있더라.
"아주머니, 이거 요리 좀 해주세요."
"어떻게 요리할까요?"
"그냥 알아서 해주세요."
"그런데 이거 좀 상했는데요?"
"그거 발효되어서 그렇다던데요!"
아주머니는 그걸 살짝 데쳐서 척척 썰어대더니
식초고추장에 무쳐 내놨다.
"선배님들 이거 드시지요!"
"와아아~ 홍어다, 홍어!"
나는 냄새가 나서 방에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고스톱에 정신 나갔던지, 맛이 있던지
잘도 자시더라.
비가 추적거리던 어느 날, 한 선배가
탁 쏘는 홍어회에 막걸리 한 잔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기억해 뒀다가 퇴근길에 홍어집에 들렀는데
홍어회 한 점 입에 넣더니 크아아~ 하고는
더 이상 먹질 않더라.
그 선배 출신지가 충북 청주인데
성장기에 홍어를 구경이나 해봤을까...?
나는 새우젓, 된장, 고추장이나 먹고 자라서
생선회도 그 깊은 맛을 모르는데..
그렇다고 나라고 식도락이 없을 소냐.
어느 선배가 저녁이나 하자면서
을지로의 어느 일식집으로 갔다.
무얼 먹겠느냐기에, 아무거나 좋다고 했더니
여기 아라다께를 잘한다고 하더라.
아라다께?
"여기 아라다께 둘만 해주쇼."
아라다께가 무어냐고 물으니
도미 머리를 왜간장에 적셔서
은근한 불에 두 시간을 조려내는 거라더라.
그 맛이 좋았던 기억이어서
나는 손님을 대접하려면
잠실 롯데호텔 식당으로 가는데
도미 대가리 여기저기에 붙어있는 살점을 발라 먹노라면
포만감은 느끼지 못하지만
2차 후식이 들어갈 자리가 있어서 좋더라.
아무리 식도락이라지만
먹고 나서 더 먹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쯤
자제하고 일어서는 게 좋던데,
어느 조류학자가 오래 관찰해 본 결과
학(鶴)은 배를 70프로 이상 채우는 일이 없다 하더라.
음식문화의 고급 정도는
식재료의 원형에서 얼마나 멀어졌느냐에 달려있다 한다.
이 말을 받아들인다면
즉석에서 밥을 뭉쳐내는 일본의 초밥보다야
두 시간을 은근하게 조려내는 도미머리찜이
더 고급스러운 게 아닐까?
몇 해 전 삼팔선 부근 한국전쟁의 폐가에서
간장독을 발견했는데
이게 화제가 되었던 일이 있었다.
그건 감칠맛 나는 씨간장으로
값이 엄청 나간다는 거였다.
콩을 삶고 찧고 뭉쳐서 처마 밑에 매달아 놓으면,
그리고 그걸 항아리에 넣고 소금물에 담가놓으면,
거기에 빨간 고추, 숯덩이 등을 띄워 오랫동안 숙성시키면
감칠맛 나는 간장, 된장이 만들어진다.
이것과 유사한 게 고추장인데
밥에 갖은 식재료를 넣고 거기에 고추장을 얹어
무언지도 모르게 사뭇 비벼대면 비빔밥이 된다.
이게 언젠가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음식콘테스트에서
장원을 했는데
가히 음식문화의 최정점에 오른 게 아니던가.
오늘은 탁구동호회에 나가는 날이다.
도미머리찜은 아니더라도
남은 나물에 고추장을 얹어
비빔밥이나 해 먹고 나가야겠다.
2025. 2. 17. 도반(道伴)
첫댓글 먹는 얘기로 아침을 열으셨으니
7시 라디오 영어공부 하기전에
댓글 답니다.
어제는 완도에서 전복 양식장 하는 지인에게
주문한 전복 도착하였길래
손질해 날 회로 실컷 먹고
내장은 전복죽 끓이느라 하루 종일 분주했습니다.ㅎㅎ
잘하셨네요.
몇 끼 맛있게 드시겠네요.
@도반(道伴) 저는 입이 짧아서 두번은 먹기 싫더군요.
밥솥 가득한 전복죽은 나눠 주려고합니다.
냉동실에 들어가면 냉동실 냄새로 못 먹겠어요.
그리고 도미 머리 조림은 달고 감질납니다.
나물에 고추장 넣어 비벼먹는 비빔밥이
훠어~~ㄹ 씬 맛납니다. ㅎㅎ
@사명이 그렇군요.
하긴 저마다 취향이 다르니까요.
맛있는거 많이 드시고
건강하세요.
저 사진 보니 돌솥밭이 보이네요
무척 좋아해서 모임도 찾아서 하지요
롯데타워 옆에 도꼭지는 돌솥밥 전문 식당 인데
독특하지만 구수한 숭늉하기는 안되더군요
밥위에 얹은재로가 많아서...
예약해서 몇번 갔어요
한번 오세요.
제가 안내할테니 요.ㅎ
그런데 이젠 많이 안 먹으니
독특하고 맛스러운거
그런걸 찾게 되데요.
안단테님이 추천할만한 음식점도 공개해보세요.
비빔밥이 최고의 별미죠 무엇을 넣어 비빔을 하는 방법에 의하여
천차만별의 맛을 내니까요
홍어회 처음엔 기급을 했는데 지금은 잘 먹는 답니다 ㅎㅎㅎㅎㅎ
간단하게 먹었던 그리고 빨리 먹었던 문화가 다양한 음식 그리고 천천히......
글 잘 읽고 갑니다^^
맞아요, 비빔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