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의 출근차를 운전해 보성에 간다.
손이 허전해 차에서 몽실언니를 꺼낸다.
북문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책을 읽는다. 9시 12분에 온 광주행 직행버스에서도 조금 읽는다.
소태에서 내려 지하철에서도 조금 읽는다.
그의 삶이 불쌍하고 그의 용기와 선함에 혼자 눈물도 닦는다.
쌍촌역에 내려 영암마트에 가 막걸리와 빵으로 점심을 준비한다.
변한 길을 따라 아파트 밖에 세워둔 나의 차를 오랜만에 만난다.
차를 끌고 선교에 들러 남겨진 배낭을 챙긴다.
11시 반이 지난다. 어디로 갈까?
담양이나 장성의 산이 생각나지만 모후산을 택한다.
주암호엔 물이 가득 차 붉은 배롱나무꽃과 산위의 흰구름을 반영한다.
차를 멈추고 사진을 찍고 싶지만 어렵다.
유마사 앞 나무 아래 차를 세운다.
보안교 양쪽엔 쇠막대문이 서 있다.
해련부도 주변의 키 큰 전나무도 잘려 휑댕하다. 왜 잘랐을까?
다리 건너기 전 오른쪽 등산로 없음 뒤로 들어간다.
모시인지 초파리인지 귀를 울리며 앵앵거리는 벌레들이 계속 따라온다.
다리를 건너 오르는 길은 제초를 해 두었다.
조금 오르니 차나무 뒤 단풍 나무 사이에 꽃무릇이 올리오고 있다.
몇 개는 피어났다. 먼저 핀꽃이 먼저 지리라.
썩어가는 정자를 지나쳐 용문재까지 오르는 길이 힘들다.
힘겹게 모노레일이 아래를 지나 용문재 정자에 닿는다.
정자 난간에 앉을 곳이 없어 새로 놓인 돌길 위에 앉아 막걸리를 마신다.
빵을 반쯤 먹는다.
다시 일어나 기상관측소 가는 모노레일을 따라 걷는다.
가끔 조망이 나타난다.
무등은 흐리고 백아산도 보이지만 원추리에 나타나던 지리산은 보이지 않는다.
정상에 닿으니 바람이 좋다.
고려인삼 시배지라며 인삼 조형물 의자가 놓여있다.
주암호가 물이 차고 건너 조계산 자락 위로 흰구름이 가득이다.
도마치로 가는 하산길의 입구 그늘을 찾아 앉는다.
남은 막걸리와 빵 그리고 과자도 먹는다.
눕고 싶은데 어렵다. 폰을 뒤적이며 논다. 어리석은 행위다.
중봉으로 내려와 집게봉 생각을 하다가 조망이 부족할 거라고 철철폭포 쪽으로 내려간다.
가파른 길은 빗물에 패여 황토가 드러났다.
스틱을 길게 빼어 짚으며 내려온다.
암반 위의 물은 가느랗다. 철철폭포로 들어가 씻으려다가 참는다.
내가 들어가곤 했던 작은 소도 지나친다.
다리 건너 아래 유마사 가는 길에 물이 깊을 것이다.
석축이 높아 내려갈 수 없다. 작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유마사로 들어가 건물의 편액들을 읽어본다.
모두 학정 이선생의 글씨다. 설청구민루를 찾아보니 오대산 월정사 설청구민이 나온다.
귀 기울이면 말하는 이의 생각이 내 속에 들어온단다.
여노스님이 문을 열고 지팡이를 짚으며 계단을 내려오신다.
난 얼른 나와 씻을 곳을 보며 보안교 쪽으로 걷지만 물로 내려갈 만한 여건이 아니다.
돌아오는 길에 소나기를 만나 집에 널어 둔 배낭 빨래와 여주를 걱정하며 과속한다.
다행이 우리집 쪽은 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