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피안의 새 원문보기 글쓴이: 피안의 새
[노봉마을]입구 풍경 |
노봉마을 부근의 들녘 |
혼불마을 입구 장승 |
최명희님 문학비 |
“일필휘지(一筆揮之)를 믿지 않는다. 언어는 정신의 지문(指紋)이다” 최명희님의 삶과 문학은 그가 남긴 이 말에 담겨 있다. 그는 뼈를 깎고 살을 바르는 듯한 혼신의 자세로 혼불을 썼다. 80년 등단 이후 초기에 단편소설 몇 편을 쓴 것 외에는 17년동안 혼불집필에만 전념했다. 마치 가느다란 명주실을 한 올 한 올 짜서 거대한 벽화를 그려나가듯 한 시대 한국인의 역사와 삶과 정신을 문학으로 복원해냈다.
혼불은 일제시대인 1930년대 이후 해방까지 전북 남원땅의 매안 이씨 가문에서 무너지는 종가를 일으키려는 종부(宗婦) 3대(청암부인, 율촌댁, 효원)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원고지 약 1만5000여장 분량(5부 10권)의 대하소설로 뛰어난 문학성과 함께 당시 서민의 관혼상제 등을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묘사해[풍속사의 보고]로 평가받고 있다. 내용은 무너져가는 종가를 지키는 며느리 3대와 잡초같은 삶을 이어가는 보통사람들의 얘기로 이어진다. 일제라는 시대적 배경과 독립운동과 같은 숨가쁜 역사도 담고 있지만 정작 그 내용은 고난의 시대를 이겨나가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집중적으로 그리고 있다.일제의 수탈과 근대사의 격동 속에서 양반사회의 기품을 지키려는 주인공들의 노력, 한편으로 평민·천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서럽게 살면서도 민족혼의 회복을 위해 몸부림쳤던 민중의 피와 눈물이 배어 있다. 혼불은 사건, 인물 중심의 소설이 아니다. 서사시의 장중함과 판소리의 흥이 있는 이야기다. 작가가 철저한 자료 수집과 고증, 중국현지답사 등을 바탕으로 요즘 감각으로는 따라 읽기도 힘들 만큼 꼼꼼한 문체로, 보석처럼 숨겨진 우리말을 찾아내고 조탁해 전래의 세시풍속 관혼상제 음식 노래와 관제(官制)등 생활사와 풍속사를 기록한 이 소설은 그대로 생생한 한국학·민속학 자료이다.
15년 10개월의 각고의 시간80년 봄 4월부터 쓰기 시작한 {혼불}은 지금까지 제1부(82년, 동아일보사), 제1·2부(91년, 한길사)로 먼저 출간 된 바 있다. 이번에 묶여지는 3·4부는 91년에 나온 1·2부에 이어지는 것으로 1부에서 4부(전8권)에 이르기까지 모두 15년 10개월이 걸렸다. 특히 3·4부는 88년 9월부터 95년 10월까지 월간 {신동아}에 7년 2개월 동안 총85 회가 연재되었다. {혼불}은 한국 월간지 사상 가장 오랫동안 연재된 소설이란 새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시간과 기록이 작품성을 담보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작품이 씌어지는 시간은 산술적으로 계산하기 어려 운 성질의 것이다. 작품 주위의 온갖 '소문'과 일화들(파라 텍스트)은 그 작품이 인정받고 난 뒤에라야 활동하 는, 신작로를 달려나는 자동차 뒤에 일어나는 먼지일 뿐이다. 작품은 오로지 작품이다. 작품은 작품일 때만 순결한 대중성과 고전으로서의 보편성을 얻는 것이다. 문학은 문학의 이름으로 평가받고 문학으로서 독자들과 살아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최명희님은은 어 느 작가 못지 않게 갖고 있다. 그의 생애가 이 믿음을 떠받치고 있는데, 그의 삶은 ‘문학적’이 아니다. 그의 생은 문학 그것이었다.
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쓰러지는 빛]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그는 그해 봄 뜻밖의 교통사고를 당해 병상에 눕고 말았다. 그 병상에서 씌어진 첫 장편이 바로 {혼불} 제1부였다. 그때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혼 불에 쏟아온 그의 열정은 거의 종교적이었다(작가의 절친한 친구들은 그가 살던 아파트에 庵자를 붙여 ‘성보 암’이라고들 불렀다). {혼불}은 흡월(吸月)의 소설이었던 것이다. 작가는 우선 근원, 즉 작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그리움을 흡월하였다. “우주 공간에 구체적인 존재로서 생물학 적인 '나'를 있게 한 어머니와 아버지를 비롯, 그 어머니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그 형제들과 그 보다 더 윗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세보(世譜)의 사다리는 항상 나에게 설레는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고 작가는 말했다. 저러한 상상력은 추상이나 관념이 아니었으니 그 조상들이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생각 하며, 어떤 옷을 어떻게 또 왜 입었고, 어떤 집에서 무엇을 먹었는지, 위와 아래 그리고 좌와 우와는 어떤 관계 와 입장이었는지를 궁금해한 것이었다. 이 궁금증이 {혼불}이라는 극사실주의 세밀화를 가능케 한 추진력이었다 .
만년필과 최명희님은와의 '문학사'는 각별하다. 만년필 꿈을 꾸고 10년 동 안의 고독에서 벗어났으며, 이번에 완성한 {혼불} 제3·4부, 아 니 그 이전에 나온 1·2부는 물론이고 그의 모든 글을 만년필이 아니었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최명희님은 는 '독실한 만년필주의자'이다. 독실한 만년필주의와 승화된 영물의 전율시간이 지날수록 만년필이 돌올해지는 까닭은 두말할 나위없이 컴퓨터의 위력 탓이다. 최명희님이 한 신문의 칼럼에 적은 만년필 예찬론의 한 대목에서 그의 만년필은 확장된 손가락(지문 이 선명하게 남는)이며, 먼길을 떠나는 말(馬)이고, 인광을 밝히며 접신하는 도구(神物)이다. 그 글을 조금만 더 읽자.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황홀하게 사로잡는 것은 만년필의 촉끝이다. 글님은을 쓰면서도 흘리어 순간순간 그 파랗 게 번뜩이는 인광에 한숨을 죽이게 하는 촉끝은, 한밤중에도 눈 뜨고 새파란 불을 밝힌다(…)나는 때때로 내가 본 이 세상의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이 이 만년필 눈이 아닌가, 찬탄을 금치 못한다.”이 영물은 마 침내 우주와 혼교(魂交)하는데, 우주의 혼인 새벽 푸른빛을 만년필은 우선 등으로 받아들인다. 만년필에 내려앉 은 푸른빛이 “만년필 등에서 날렵한 촉끝으로 쏟아지며 또 다른 불꽃을 일으킬 때, 나는 우주와 만년필의 교감 에 전율하였다.” 이 순간, 만년필은 변신하며 확장하는 것이어서 결국에는 작가 자신일 것이었다. 그렇게 {혼 불}은 한 자 한 자 씌어졌으니 {혼불}은 암각화였다.
그리움을 찾아가는 힘 '혼불'작가는 {혼불}의 무대인 전북 남원의 노봉 마을을 자주 찾았다.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하지만, 그래서 근원적인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마을의 입구에서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입향할 적에 처음으로 마주 쳤을 노봉의 하늘과 운명적인 만남을 이룬다. 작가는 그 순간을 다음과 같이 돌이켰다.“어느 해 여름 석양의 고향 정거장에서 백일홍 꽃밭에 앉아, 하염없이 불타는 저녁 노을을 바라보며 울었다. 무심코 기차에서 내린 나의 눈에 고향 마을의 어깨 뒤편 서산(노봉) 너머로, 장엄하게 지는 해와 황홀하게 물드 는 주홍의 구름이 들어왔다. 찬란하면서도 순결한 비의를 머금은 낙조는 그때까지 내가 본 일이 없는 신비로운 날개를 온 하늘에 펼쳐 나를 맞이했다. '어서오라'고. 나는 그 함성과도 같은 구름 속에서 입향조 할아버지의 눈빛을 섬광처럼 만났다. 나는 전율하였다.” 이 또한 흡월이었다.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소설, 혼불
소설 만들기에 대한 최명희의 '혼불' 같은 투신의 결정이 곧 {혼불}이다. 만 17년 동안 이 작품에 매달린 신들림과 각고의 세월이 그렇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이런 표현에 엄밀한 사실성을 부여한다. 그래서 그가 묘사한 우리 삶의 진짜배기 원형질이 슬프고 아름답게 차근차근 다가온다. 이 소설의 특기할 만한 미덕은 바로 이 점에 있는 듯하다. 탄생과 결혼과 죽음의 의식(리추얼)이나 그 사이에 낀 여러 풍속사의 극채색에 가까운 묘사는 놀랍다. 그 속에 포괄된 의미들이 한국인의 생활을 규정하는 것인지, 우리네 정신의 본향이 그걸 요구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면서, 어떻든 먼 회상여행을 거쳐 오늘의 나를 탐색하게 만드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아, 이런 소설도 있구나 싶고 이건 미싱으로 박은 이야기가 아니라 수바늘로 한 땀 한 땀 뜬 '이바구'라는 걸 새삼 느낀다.....최일남(소설가).
이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소설 {혼불}은 여성적인 넋의 고혹스러움과 섬세한 문체의 마력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러면서도 대하 서사시적인 규모를 지닌 일대 거작이며 엄청나게 폭이 넓은 사회소설이다. 이야기 중심, 사건 중심이 아닌 소설 장르의 새로운 영토를 개척한 이 작품으로, 최명희의 소설사적 지위는 이미 확고한 것으로 굳어졌다. 그는 우리가 대대로 전승해온 풍속의 세계를 최대한 정밀하고 자상하게 또한 아름답게 복원시키는 작업을 통하여, 마치 우리 민족의 참된 정체를 지키려는 수호여신과 같은 풍모를 띠게 된다. {혼불}은 앞으로 소설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우리 민족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중요한 문헌의 하나로 남게 될 것이다......이동하(문학평론가)
최명희는 원고지 한 칸 한 칸에 글님은을 써넣는 것이 아니라 새겨넣고 있다. 그의 글님은은 철필이나 만년필로 쓰는 것이 아니다. 아주 정교하게 만든 정신의 끌로 피를 묻혀 가면서 새기는 처절한 기호이다. {혼불}은 나를 숨막히게 한다. {혼불}은 지금 우리 문학에 횡행하는 온갖 소음과 기만을 무섭게 경고한다. 최명희, 그는 분명 신들린 작가이다......고은(시인).
최명희는 문체에 관심하는 희유한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정겨운 서정성과 예스러운 정취를 지향하는 문장으로 된 {혼불}은 우리 말의 보고로서 주술적인 힘과 기운마저 가지고 있다. 우리 겨레의 풀뿌리 숨결과 삶의 결을 드러내는 풍속사이기도 한 이 소설은 소리 내어 읽으면 판소리의 가락이 된다. 독특한 울림이 호소력을 발휘하는 노작이다......유종호(이화여대 교수)
일제 식민지의 외래문화를 거부하는 토착적인 서민생활 풍속사가 {혼불}에 이르러 비로소 정확하고 아름답게 형상화된다. 역사의 격심한 갈등과 대변혁 속에서도 의연히 민족혼의 알맹이를 마모시키지 않고 영글 수 있게 만든 것은 옹골찬 여인들의 한 많은 삶이 다져낸 넋의 아름다움 때문이리라. 청암부인을 비롯한 숱한 우리 민족의 어머니와 아내, 여인상을 최명희는 애절함과 그리움으로 우리 시대에 부상시켜 준다.......임헌영(문학평론가)
혼불... .
[혼불]의 작가 崔明姬(최명희)님은 혼불처럼 목숨이 다할 때까지 한 작품에만 매달리다가 끝내 혼불처럼 꺼져갔다. 자그마치 17년동안 오직 「혼불」에만 온 정성을 기울여 왔던 작가는 5부 10권으로 된 전집이 발간되기 전 이미 자신이 암에 걸린 것을 알았지만 아무에게도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병원에 입원을 했다.「또 다른 깊이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결국 올 10월 암수술을 받았지만 세상을 떠났다.오직 혼불을 살리는 작업에만 줄곧 「투혼」해 왔으니 기진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작가는 생전에 『인삼을 캐고 나면 地靈(지령)이 빠져서 그 땅엔 아무 것도 심을 수 없다』고 비유했다. 더욱이 사람이야 온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감동한 것은 그 문장이 우리말 고유의 리듬과 울림을 고스란히 살리고 있다는 데 있다.소리 내어 읽으면 그대로 판소리가 되었다. 실제로 작가는 원고지 한칸을 메울 때마다 누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소리 내어 읽어 나갔다고 한다. 눈으로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운율을 타고 가슴에 척 안겨드는 것이 아닌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소설의 배경인 남원땅은 羽調(우조)가 많고 산천초목도 떠는 듯한 호령조의 동편제의 산실이었으까 꿋꿋했던 조상들의 정신을 담기에는 제격이었다.또 하나는 당시의 세시풍속 관혼상제 음식 노래 등을 담아 남원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정월 대보름날의 달맞이나 상가의 풍속,상여 나가는 모습은 민속조사보고서처럼 치밀했다.사찰의 사천왕상을 취재한 원고지만도 9백쪽에 달했으니까 혼불은 한낱 소설만은 아니었다.『남녀가 만나 옷고름 한번 제대로 푸는 일이 없다』고 할 만큼 말초적 재미라곤 전혀 없는 이 소설이 지금까지 80여만부가 팔려나간 것은 90년대 한국문학이 거둔 가장 큰 성과였다.소설들이 기교만을 앞세운 언어를 찾아서 혼란을 부추길 때 작가는 그 앞에서 「모국어정신」으로 버틴 것도 잊을 수가 없다.『시인은 끝끝내 언어를 통해서만 자신을 완결하는 사람』(「백석전집」 이동순)이라고 했지만 작가에게서 언어란 민족의 순수 그것이었다.그 고유어를 찾아서 중국 옌볜과 선양을 두달 넘게 두루 찾아다녔다. 순수한 우리말을 찾아서 작품으로 되살린 것이다.지난해 9월 문화계와 정재계인사 1백50명이 모여 「혼불을사랑하는 모임」을 가진 적이 있다. 작가의 고독한 창작작업을정신적으로 지원하고 작품읽기를 널리 펼치자는 취지였다. 위대한 작가와 예술활동은 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그 사회와 동시대인들의 관심과 격려를 통해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날 혼불이란 우리 몸안에 있는 불덩어리라고 했다.사람이 제수명을 다하고 죽을 때 미리 그 몸에서 빠져나간다는 혼불은 목숨의 불,정신의 불이었다. 그러니까 존재의 핵이 되는 불꽃이다. 혼불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재생시켰고 풍속사를 정리해줬다. 무대는 1930년대부터 43년까지였다. 그 이후의 현대사를 이어가기 위해서 작가는 「완간」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소설은 한 시대를 증언하는 역사책이다. 양반들의 허위를 고발한 박지원의 「호질」이나 신분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허균의 「홍길동전」은 곧 그 시대의 역사였다. 홍명희의 「임꺽정」은 왕조실록에도 등장하는 내용이어서 더욱 그렇다. 잃어버린 역사와 말을 복원하는 데는 한 시대를 닮은 소설이 제격이다. 「혼불」은 훌륭한 역사자료이다. 현지에서 조사한 우리말사전이다.그 속에 담긴 민속을 모아 풍속사를 만들 수 있고 천민들이 사용하던 말을 찾아 문학사전을 만들 수도 있다. 또 외국어로 번역해서 「혼불」이 세계 속에서 타오르게 하는 사업도 잊지 말기 바란다.작가 최명희의 뜻이 계속 이어져서 민족혼을 찾아야 할 때다.
[노봉마을]의 문학비 |
복원된 종가집 |
종가집의 모습 |
종가집 정원 |
작가 최명희와'혼불을 사랑하는 사람들' 결성식이 진행되었다. 모임에는 어느 문학가의 수상식 자리에서는 볼 수 없는 다소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작가 최명희는 이른바 문단활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오직 작품으로 스스로를 말하는 편이었다. 그의 작품과 문학적 성과를 일찍부터 평가하기 시작한 평론가들도 문단조직과는 별로 인연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그 극한까지 보여주었고,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해 이토록 절실한 작가가 없었던 점을 새삼 상기하지 않더라도 작가는 흔한 문단계의 사람은 아닌, 그것이 일부러 의도된 것이 아닌, 그의 생활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를 이끌었던 점을 참고하더라도 이것은 어떤 순수 열광 마니아들을 만들어내기 좋은 토양이 되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혼불}을 사랑하고 거기에 빠져드는 사람은 감성과 이성의 인자들이 흡사한 이른바 동류의식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나이도, 계층도, 성별도 상관하지 않는 진폭의 세계이다.
그리하여 이 단재상 시상식 자리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작가 최명희와 혼불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의 결성이 이루어진 것이다. 사실, 책이 출간되면서부터 이런 움직임이 있었지만 작가가 이것을 알게 되고서는 "죄송하고 쑥스럽다"며 한사코 반대했었다. 그러나 주변사람들로부터 더 이상 {혼불}은 작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 동시대인들의 문화적 자산이라는 설득에 그도 "그저 고마울 뿐"이라며 "저는 정말 천군만마가 아니어도 좋은 단지 한 사람만이라도 내가 하는 일을 저버리지 않고 오래오래 지켜봐주기를 바랬는데, 이렇게 귀한 분들이 『혼불』을 사랑한다고, 그것도 큰 소리로 말씀해주셔서 더 열심히 살고, 더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뿐"이라고 하였다.
혼불마을
소설 `혼불'을 유작으로 남기고 1998년 겨울 세상을 뜬 소설가 최명희.
조선시대 양반집 종가 여인들의 인생역정을 그린소설 '혼불' 의 주무대인 전북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과 매안마을 일대가 '혼불 문화마을' 로 새롭게 단장됐다. 이곳은 혼불을 쓴 소설가 고 최명희(崔明姬)님은의 고향이자 소설 속에 나오는 청암부인의 생가가 있던 곳이다. 노봉마을 입구에는 崔님은의 문학세계를 기리는 문학비와 '꽃심을 지닌 땅' '아소님하' 를 새긴 한쌍의 장승이 나란히 세워졌다. 남원시는 사매면 매안리∼면소재지∼서도역 삼거리∼노봉마을에 이르는 길을 ‘혼불의 거리’로 정하고 이정표를 세웠다. 마을 안에는 양반집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종갓집을 그대로 복원,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이 소설 속의 체취를 한껏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또 매안마을 입구에는 '혼불마을' 이라는 자연석을 세우고 사매면 소재지에는 崔님은의 문학혼이 길이 이어지기를 기원하는 '기념비' 도 건립됐다. 이와 함께 노봉마을서 매안마을까지는 '혼불의 거리' 로 이름을 붙이고, 앞으로 노봉마을 입구에 쉼터로 이용할 수 있는 쌈지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핏줄에 휘감기는 옛사람의 넋(김수연-2000년『혼불』독후감 공모 최우수상 수상작)
찬 계절로 접어드는 새벽 공기가 알싸하다. 잠든 아이의 발치에서 나는 『혼불』의 마지막장을 덮었다. 태어나 처음 아이를 키우며 내 시간은 오로지 아이에게만 묶여진 것처럼 느껴졌다. 책을 읽는다는 건, 게다가장편소설을 읽는다는 건, 내겐 어울리지 않는 사치인 것만 같았다. 그래서 『혼불』을 잡기까지 망설임을 거듭했고, 잡고 나서도 과연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밤잠을 쪼개며 1권부터 차근차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혼례장면을 한 줄 한 줄 읽어가며 알 수 없는 설렘에 책으로부터 눈을 뗄 수 없었다.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 그럴 필요조차 염두(念頭)에 두지 않았던 가치들이 감전된 듯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이 책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다 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표현하기 벅찬 문장이었다. 효원의 화관에 내려앉은 나비 날개의 떨림마냥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이 바르르 떨렸다. 조금도 서두르지 말아라. 겁을 내서도 안 되지……. 혼행하는 강모에게 이기채는 이렇게 당부했다. 이 말은 『혼불』을 읽는 내게 내려지는 분부이기도 했다. 이 세계에 발 들여놓음이 쉬운 이 아니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겁을 내고 주춤거려서도 안 된다는 엄명 같은 것. 끝까지 나는 이 말을 기억하고자 애썼다. 서두르지 말고, 겁내지도 말아라……. 그리고 결국 5부의 끝까지 한 계절을 꼬박 쪼개어 다다를 수 있었다. '산다는 것'의 의미가 화악 와닿지 않던 시간이었다. 종손에게 시집와서 한복을 입은 채 산에 올라가 조상의 산소에 예를 올리던 신혼의 날……. 촌각을 다투며 변화해 가는 세상에 나 혼자만 거꾸로 놓여져 있는 것만 같았다. 남편과 나는 온라인 채팅을 통해서 만났던데다 둘 다 지극히 평범한 젊은이들의 삶을 누리고 있던 터라, 나는 결혼 전까지 남편의 뒤에 그렇게 커다란 책임감이 지워져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한편으로는 속은 것도 같았다. 한편으로는 되돌리고도 싶었다. 나는 구습의 굴레로부터 자유롭고 싶었고, 어른을 대하는 모든 동작은 하나같이 힘에 겨워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집안의 모든 행사는 여자를 혹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는 당치않은 생각마저 들었다. 한 해 한 해 지나가며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조금 생각이 달라지기는 했으나, 내게 있어서 여전히 풍습은 어느 정도 불필요한 구습이었고, 그것에 아름다움이 깃든 혼을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한 때 나는 『혼불』을 만났다. 정확히는 시어머니로부터 『혼불』을 물려받았다. 어머니께서는 전화를 걸어 '『혼불』 한번 읽어볼래?' 하셨다. 나는 『혼불』이 어떤 책인지 알지 못했지만, 어머니께서 읽고 건네주실 정도라면 정말 좋은 책일 듯싶었다. '10권인데, 갓난이 키우면서 읽겠냐?' 하셨다. '읽어볼래요.' 했다. '천천히 한번 읽어보니라' 하셨다. 그렇게 만난 『혼불』의 세계는 미지의 것인 동시에 미지의 것으로 남아서는 안 되는 우리 민족의 역사였다. 시대 배경으로는 구한말과 일제 강점시대를 아우르지만, 고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를 관통하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주체적으로 한 획 한 획 짚고 넘어간 기록이었다. 읽다 보면 어느새 한민족으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러워지고, 머릿속이 시원해지곤 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까지 어느 교과과정에서도 이처럼 분명하게 내 조상의 발자취를 가슴 복판에 찍어주지는 못했다. 지금까지 번거로운 구습으로만, 힘든 노역으로만 보여지던 관혼상제의 전통이 여명을 받고 깨어나듯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절기를 지내고, 제를 올리는 그 모든 절차와 법도에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생각하며, 현세와 내세를 모두 거두는 깊은 철학이 숨겨져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조상들의 축제 한쪽에 서서 그 향기를 마시고, 체온을 느꼈다. 같이 달을 맞으러 가고, 연을 날렸으며, 혼백을 거두고, 상여를 뒤따랐다. 그것은 신비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애틋한 체험이었다. 내 것이면서도 잊고 살았던 삶의 한 조각을 찾아가는 것마냥 가슴 벅차오르기도 했다.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경이로움이었다.
작가는 책의 어느 구석에서도 직접적으로 이 말을 토해낸 적이 없지만, 나는 빽빽하게 종이를 채운 글자의 병풍 너머 작가의 혼이 전하는 이 한 줄의 문장을 발견했던 것이다. 어느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에 미칠 수가 있을까. 하나의 소설로 인해 인생이 뒤바뀐다는 얘기는 한낱 지어낸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머니께서 굳이 이 먼 곳까지 책을 실어 나르신 데에는 뜻이 있으셨던 게다. 어머님 속뜻을 10분의 1이나 깨달았을지 모르지만, 그간 『혼불』에 취하고 젖어서 살았던 한 계절이 인생의 스펙트럼에서 유달리 빛나는 한 지점이 되리라는 것은 굳이 말로 이르지 않아도 벌써 짚어내고 계시리라. 종손의 아내라는 똑같은 운명을 지닌 어머니와 나 사이에 세대차라는 이름으로 쌓여 있던 높은 담장이 한 치 내려졌음을 어머니께서는 이미 예견하셨으리라. 고마우며 속 깊으신 분. 몇 마디의 훈계보다 에두르신 이 말씀이 더욱 가슴 깊이 꽂히어든다. 막 잠에서 깨어난 딸은 말간 눈망울로 빤히 나를 쳐다본다. 너는 아직 알지 못하겠지만, 네 핏줄 안에도 '혼불'이 타오르고 있을 테지. 한민족의 삶을 관통하는 시퍼런 혼불. 그것은 네가 어느 망망대해의 고도(孤島)에 떨어지게 되더라도 너를 너이게 하는 것. '민족혼'이라는 것이다. 엄마가 지금 깨달은 삶 속에 숨겨진 비밀을 너도 언젠가는 깨닫게 되겠지. 네가 어미만큼 자라기 전에 네게도 이 책을 물려주마. 엄마의 입으로는 차마 다 전하지 못할 먼먼 옛날의 이야기, 그리고 또 앞으로 다가올 세상을 볼 수 있는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을 말이다.
종가집 뒤안 풍경 |
[혼불]의 종가집 정원풍경 |
마을 산자락에 위치한 저수지 |
[혼불]이 서려있는 저수지에서.. |
출처: 피안의 새 원문보기 글쓴이: 피안의 새
첫댓글 아... 최명희님이 쓰신 혼불... 제목만 들어서 익숙하지 읽어보진 못했는데.. 여기에 쓰여진 글을 보니 꼭 읽고 싶네요. 여유 챙기게 되면 꼭꼭 읽어야겠어요.
고즈넉한 한국의 정취가 느껴지는 작품인가보군요..
일반 독자들이 읽기는 좀 어려워요. 허나 하나 하나 시를 읉듯 읽어보면 참 아름다운 소설이라는 걸 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