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원통암 약15.5키로 4시간20분
코스:우리집-방학천-정의공주릉-방학능선-원통암-무수골-서울둘레길 20길 방학동구간-안방학-방학천-우리집
오늘도 점심을 먹고 산행에 나선다.
올해의 마지막 날이라 등산객은 가믐에 콩나듯하다.
방학능선이 끝나고 우이암쪽 오름은 북사면이라 아이젠을 차고 겨울 산행의 맛을 느낀다.
오늘의 산행 지도
고도정보
오늘의 기록
*정의공주릉:서울시 도봉구 방학동 산 63번지에는 세종의 둘째따님 정의공주(貞懿公主, 1415~1477)와 남편 안맹담(安孟聃, 1415~1462) 무덤이 단아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이곳은 1982년 11월 13일 시도유형문화재 50호(도봉구)로 지정된 곳이지요. 집현전 학자였던 정인지가 비문을 쓰고 공주의 넷째아들인 안빈세가 글씨를 썼다고 전해지는 '양효 안공 신도비'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과 비석 위에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받든 섬세한 모양이 새겨진 이수를 모두 갖춰 조선 시대 신도비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한 보기 드문 것입니다.
정의공주는 세종 임금의 8남 2녀 중 둘째딸로 태어났는데 언니 정소공주가 일찍 죽는 바람에 세종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면서 자랐습니다. 매우 총명하여 훈민정음 창제 때에 세종을 크게 도왔다고 알려졌습니다. 출가 뒤에도 공주의 네 아들 이름을 세종이 손수 지어줄 정도로 아버지 세종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는데 공주의 둘째아들이 태어났을 때 닭이 뽕나무 위에서 울었다 해서 상계(桑雞)라고 지어주었지요. 또한 여러 대군이 풀지 못한 사투리 문제를 곧 풀어내어 큰 상을 받았다고 《죽산안씨대동보》에 전해 내려옵니다.
공주는 관찰사 안망지(安望之)의 아들 안맹담과 혼인하여 궐 밖에 살면서도 아버지 일이라면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무언가 만들기 좋아하던 세종이 발목에 조그만 칼심이 박혀 의원들마저 당황해할 때 정의공주가 자석으로 칼심조각을 빼낸 뒤 술찌개미로 붓기를 가라앉히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부부금슬과 불심(佛心)도 깊어 남편 안맹담이 죽자 그의 명복을 빌고자 《지장보살본원경》을 지었는데 이 책은 보물 96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서울 둘레길 20구간 방학동길
북한산 정상
북사면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다
기암
우이암
원통암이 보입니다
원통암 범종각
창동 랜마크가 보이네요
원통암
원통암에서 바라본 우이암
불암산이 보입니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