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오늘 뭐 별다른 일은 없어요. 그런데 무슨......”
전도사는 상희에게 임시 교사를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교사 두 명이 직장의 휴가
가 끝나 오는 아침에 서울로 돌아가서 인솔 교사가 부족하다는 사정 얘기를 하고 밤
부터 시작하는 담력훈련에 교사로서 인솔을 부탁한다는 말이었다.
“어머, 저는 교사 경험이 없는데요. 게다가 크리스천도 아니잖아요....”
“아아, 그거라면 괜찮아요..... 그냥 어두운데 숨어 있다가 아이들을 조금 놀래
켜 주시면 돼요....”
상희는 그 담력 훈련에 대해서 방법이나 내용과 같은 것 등을 물었다.
“별 것 아녜요. 그냥 귀신놀이라고 보시면 되요.”
“왜 교회에서 그런 놀이를 하죠?”
상희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귀신놀이가 담력 테스트란 명목으로 어느 교회에나
수련회대 곡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았다.
“별 다른 의미는 없어요.... 그냥....여름이니까 아이들의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
을 준비한거죠. 꼭 의미를 부여하자면 귀신에 대해 담대함을 갖자 정도일까....”
상희에겐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혼란스러운 사회는 종종 괴담 형식의 괴물을 만들어 낸다. 군사정권 아래서 군화
발에 국민의 기본권이 무너질 때에도, 계속 집권하기를 바라는 정부여당의 선거철
정치공략에도, 어김없이 유령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유령은 소기의 목적이 달성 되
고나면 아침 햇살의 안개처럼 소리 없이 사라지곤 했다. 예를 들어 어릴 때 유행하
던 홍콩할매 귀신이나 빨간 마스크가 불길처럼 번졌다 소리 없이 사라졌던 유령의
한 예이다.
일본 기후 현에서 시작된 빨간 마스크의 괴담은 일본 전역을 거쳐 우리나라에 까지
건너와 수많은 아이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공포를 퍼트린 주체가
바로 일본 기후현의 아이들을 사설 학원에 보낼 수 없을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
부모들이었다는 사실은 듣는 이에게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그 학부모들에게는 배고픔이 그들 스스로 만들어낸 유령보다 더 두려운 대상이었을
지도 모른다. 유령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배고픔은 눈에 보인다. 꿈속에서의 괴물
은 우리를 파괴할 수 없지만 현실의 괴물은 우리를 한순간에 몰락시킨다. 바로 사회
의 현실적 어려움이 우리의 마음속에 유령을 만들어내고 우리는 그 유령에 공포를
느끼며 현실의 공포로부터 잠시 동안 벗어난다. 공포는 그것을 만들어낸 창조자에게
는 욕망의 달성을 또 그것을 느끼는 대중에게는 두려움과 현실을 잠시 잊게 만드는
달콤한 꿀물을 제공한다. 그 공포란 녀석은 어느 정도의 협박과 함께 중독성 강한
마약을 우리의 혈관에 깊숙이 주사하는 방법으로 대중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아
는 것이다. .......교회에서의 귀신놀음이라...... 교인들의 믿음에 반하는 행동을
전도사는 교인특유의 괴변으로 정당화 시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귀신의 존재는
목사보다도 더 교회에 필요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교인의 수를 늘려가고 하늘나라
의 창고 보다는 은행의 금고를 더 신임하는 다수의 목사들에게는 귀신이란 필요 불
가결한 절실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인자하시며, 사랑이 많으시며.....사탄은 항상 우리를 집어삼키
려 들며, 죽이고 모함하고 파괴하는 존재라.....더구나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는 절
대로 그들을 이길 수 없다.....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 해야만 한다.... 이
런 관점 에서보면 교회 수련회의 귀신 놀이는 그 어떤 찬양 집회보다 귀신놀이가 더
욱더 강력한 선교 수단인 셈으로 무척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사람이 귀신과 지옥을
무서워하면 무서워할수록 교회에 교인수와 쌓이는 헌금의 양은 점점 더 늘어갈 테니
까..... 하지만 상희의 생각에는 대부분의 귀신은 자신들을 팔아 먹고사는 인간의
행태에도 침묵할 뿐이었다.-
“상희씨?... 아직 대답을 안했어요....”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상희를 전도사가 불러 깨웠다.
“아....네.... 몇시죠 정확한 시간이...?”
“저녁식사 후예요....한 9시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좋아요...어떻게 하면 되죠?”
상희는 승낙했다. 사실 이제까지 상희가 놀랄만한 일만 일어났었는데 모처럼 다른
사람을 한번 놀래켜 주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상희의 원고 작
업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아, 고마워요. 이따가 자세한 것은 가르쳐 드릴게요.”
전도사는 기뻐하며 돌아갔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아이들은 예배당에 모여서 찬양을
불렀다. 유난히 악마를 무찌르자는 내용의 찬양이 많았다. 교회학교 교사들이 마당
으로 나와서 작전회의 하는 게 보였고 전도사는 상희의 방문 앞으로 다가와 상희에
게 같이 참여하기를 권했다. 마당으로 나온 상희는 무슨 역적모의나 하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더 무섭게 놀래 킬까 하는 지혜들을 짜 내었다.
여름 수련회에서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을 많이 해본 듯한 교사 하나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며 회의는 시작되었다. 회의는 20여 분만에 끝났고 교사들은 각자가 준비
해온 소품들을 꺼내 중무장하듯 몸에 둘러보았다. 교사들 얼굴에는 묘한 기대감과
재미있어 하는 모습이 어려 있었다. 상희에게도 특별히 교사 중 한명이 일본유학중
사가지고 왔다는 처녀귀신가면 하나가 돌아갔다. 보기만 해도 끔직한 그 가면은 말
라비틀어진 여자 미이라의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형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만졌
을 때의 촉감이 사람의 피부와 흡사해 정말 들고 다니기에도 기분 나쁜 물건이었다.
전도사의 작전 설명에 따라 교사들은 각각 맡은바 책임을 다하기 위해 뿔뿔이 흩어
졌다. 상희와 교사들의 임무는 간단했다.
먼저 아이들이 이동할 코스를 정한다. 아이들은 플라시는 물론이고 손에 촛불하나
없이 인근의 개울가와 마을 어귀 2Km를 돌아와야 한다. 만약 아이들에게 플라시를
나누어줄 경우 아이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 숨어 있던 교사들의 위치가 발각되기 때
문이다. 또, 그 이동 장소는 당연히 인가와 떨어진 장소이며 버려진 폐가나 우물가
아니면 망가진 외양간등 인적이 없고 음습한 곳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진행방법에 대해 설명하자면 우선, 아이들은 전도사가 교회에 남아 각 조별
로 10분 간격으로 출발시킨다. 교사들은 준비해 온 귀신 소품으로 변장을 하고 미
리 배정받은 장소로 일곱 군데로 각각 이동을 해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린다. ...등
등 이었다.
교사들은 무섭다는 이유로 둘씩 짝을 지어 자신들의 임무지로 출발했다. 상희는 작
이 없어 홀로 가야했다.
“괜찮으시겠어요? 상희씨.”
걱정이 되는 듯 상희를 보며 무서우면 장소가지 같이 가주겠다는 눈치를 보였다. 상
희는 혼자서 어두운 시골길을 헤매야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조금 기다리면 아이
들이 연이어 올 것이란 생각에 씩씩하게 괜찮다고 대답했다.
상희가 배정받은 장소는 아이들이 통과해야 할 귀신분장 교사들이 숨어있는 장소
중 여섯 번째 장소로 상희 뒤쪽으로 300m 쯤 되는 지점에 마지막 교사들이 숨어있었
고 10분 간격으로 아이들을 출발시키기 때문에 마지막 10조가 상희의 앞을 통과하기
까지는 적어도 2시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상희는 전도사가 건네준 검은 담요
를 망토처럼 두르고 괴기스런 가면의 고무줄을 목에 건채로 교사들과 함께 자신의
지정 장소로 향했다. 교회로부터 상희가 지정받은 장소까지는 불과 10분 정도의 거
리였지만 다른 교사들의 장소를 일일이 지나 여섯 번째 장소로 이동해야했기 때문
에 30분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여섯 번째 장소에 도착하자 교사 두 명과 홍 전도사
는 상희에게 수고하시라는 말만 남겨놓고 마지막 장소로 향했다. 상희가 배정받은
장소는 교회로부터 산길을 헤치고 500m 가량 떨어진 곳으로 개울물을 따라 높이2m
정도의 둑이 기다랗게 쌓여진 곳이었다. 주위에는 전혀 손질되지 않은 덤불들이 제
멋대로 자라나고 있었으며 몇m 밖에 부서진 폐가와 축사가 두서너 개 있었다. 배경
그 자체로는 정말 귀신이 나오기에 닥 알맞은 장소였다. 밤부터 깔리기 시작한
먹구름이 희미한 달을 삼켜버렸고 주위는 이내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상희는 둑 방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거의 바닥을 기다시피해서 고목나무아래 자리를 잡았다.
이제 조금 후면 아이들이 교회를 출발할 것이고 자신들을 놀라게 할 교사들을 차례
로 지나 여섯 번째 귀신인 상희에게 올 것이다. 상희는 여기에서 난감함을 느꼈다.
왜냐하면 플라시를 든 상희도 주변이 너무 어두워 고목아래가지 오는데 애를 먹었
기 때문이다. 개울가는 사람 한명이 간신히 지날 수 있는 둑이 개울을 양옆으로 감
싸고 있기 때문에 여러 명의 아이들이 오려면 한 줄로 사람 키 보다 높은 둑 방을
걸어야 한다. 그것은 플라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상희가 귀신 가면으로 놀라게 했을 경우에는 대형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 만약 아이들이 도착하면 조신하라고 그냥 일러줘야겠다...... -
상희는 속으로 생각했다.
- 정말 어처구니없는 장난이네....교회학교 교사는 학교 선생들처럼 책임감이 없
다. 과연 그들이 교사라고 불릴만한 자격이 있는 걸까? 그들도 그냥 재미와 장난을
위해 교회에 다니는 철부지 어린아이에 불과하다....교사란 명목으로 아이들과 연애
나 해대고.... -
상희는 전날 보았던 앳돼 보이는 청년 교사와 어린 여학생을 떠올리고 자신이 정말
철없는 장난에 휘말려 들어온 것을 후회했다.
산골의 밤은 깊어만 갔으며 아직 아이들이 출발을 안했는지 한참의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도 기척이 없었다. 오랜 비로 풍부해진 수량이 개구리의 울음소리에 박자를
맞추어 경쾌하게 흘러내려갔다. 몇 백m 밖에 도로가 있을 텐데도 차소리하나 들리
지 않았다. 오직 상희의 귀에는 개울물 소리와 개구리, 그리고 풀 섶의 쓰르라미 소
리가 세상을 깨우는 유일한 소리였다. 하늘에 달은 없었고 한두 개의 별빛만이 넓
고 어두운 밤하늘의 한 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희미한 안개가 수면위로 흘러나와
그렇지 않아도 캄캄한 주변을 더욱 분간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사아- 하고 불어온
바람에 어디서 날아왔는지 수십 마리의 반딧불들이 꼬리를 깜박이며 모닥불의 불씨
처럼 하늘거리며 날아다녔다. 약간 서늘한 기운에 상희는 전도사가 건네준 소품 가
면을 얼굴에 쓰고 검은색 가면을 몸에 두른 채 오래된 고목의 썩은 뿌리에 몸을 기
대었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해지면서 눈꺼풀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상
희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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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으아아 ㅇ_ㅇ; 무슨 일 있으면 어떻게 해요~;
무슨 일이 벌어질것 같네요~근데 캣츠아이님,빨간 마스크 괴담이 정말로 일본에서 그런 사연으로 시작된건가요?처음 알았네요^^
네....... 빨간 마스크. 요즘 초등학생들 돼게 무서워 하더군요...저도 어렸으면 무서워 했겠죠? ^^
그런데 대부분의 교회가 다 담력훈련을 하진 않는데....(사실 그런교회 본적,들은적 한번도 없는데요) 너무 그렇게 몰고가신다. 하지만 그걸 제외하곤 재밌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