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슬픈 수도자는 안 됩니다.
불평하기 전에 고통받는 이웃을 먼저 생각하세요”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4년 11월 7일 스페인 아우구스티노 관상 수녀회 탈라베라 데 라 레이나 수도원 순례단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이날 교황은 최근 집중호우로 홍수 피해를 입은 발렌시아 지역 주민들을 위한 기도를 당부했다. 아울러 좋은 유머 감각을 잃지 말고 “언제나 다른 이들의 필요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며, 특별히 기본적인 생필품조차 없이 살아가는 이들의 처지를 기억하라고 권고했다.
“여러분은 실업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나요? 일이 너무 많다고 불평할 때에는 일자리조차 없는 이웃을 생각해 보십시오. 월세를 내지 못해 길거리로 내몰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수도원과 사제관에 들어설 때마다 이 모든 것이 ‘거저 주어진 은총’임을 깊이 되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수도원과 사제관이라는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평안히 지내고 있지만, 머리 둘 곳조차 없이 하늘을 이불 삼아 떨며 잠드는 이웃을 기억해야 합니다.”
봉사와 사도직은 하느님과의 만남에서 나옵니다
교황은 아우구스티노 관상 수녀회 탈라베라 데 라 레이나 수도원 순례단을 맞이한 자리에서 자신의 모국어로 “여러분을 만나 기쁘다”고 말했다. 이번 순례단은 수도 공동체 설립 450주년 기념행사의 절정을 맞아 로마를 찾았다. 교황은 이 수도 공동체가 설립 이래로 “관상 생활과 그리스도교 교육 봉사를 하나로 엮어왔다”고 상기했다.
“기도의 해인 올해에, 우리의 봉사와 사도직이 주님과의 만남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참된 본보기를 이 수도원의 삶이 생생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스승들
교황은 아우구스티노회 수녀들에게 자신의 축복을 전해달라며 “늘 내적 삶의 모범이 되고 기도의 스승이 되라”고 당부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전할 수 있는 모든 지식 가운데 특히 하느님과 대화하고,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며, 삶의 모든 순간에 그분의 현존을 느끼고, 그분의 뜻을 겸손되이 받아들이는 마음을 길러주는 것이 두드러져야 합니다.”
수해 피해를 입은 스페인 사람들과 가까이
교황은 준비된 연설문을 잠시 내려놓고 순례단을 바라보며, 최근 집중호우와 홍수로 인해 220여 명의 사망자와 수많은 실종자가 발생한 발렌시아 지역의 비극적인 상황을 언급했다. “여러분은 스페인에서 오셨습니다. 요즘 저는 발렌시아의 비극 때문에 스페인 사람들과 마음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교황은 전날 수요 일반알현 단상에 모셨던 발렌시아의 수호성인 ‘버림받은 이들의 성모님’ 성상 앞에서 잠시 기도를 바쳤다고 말했다. “발렌시아에서 많은 이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도 피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만, 다행히 사람들은 이제 대처 방법을 알고 있고, 피해 수습에 나서고 있으며, 상황을 통제해 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교황은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불평하기보다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을 돌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유머 감각을 잃지 마세요
교황은 “기쁨을 잃지 말고, 유머 감각을 잃지 말라”고 권고했다. “그리스도인이, 특히 수도자가 유머 감각을 잃으면 영혼이 신 맛이 나게 됩니다. 사제나 수도자가 그렇게 시큼하게 변해버린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교황이 “마치 식초에 절인 것 같죠”라며 재치 있게 말하자 참석자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늘 미소 짓고 유머 감각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교황은 최근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 공동체에 권고한 것처럼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서 우리의 영혼을 생기 있게 유지해 주는” 성 토마스 모어의 아름다운 기도를 매일 바치라고 권고했다. 이 기도는 유머 감각을 청하는 기도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슬픈 성인은 성인답지 않습니다. 성덕은 언제나 기쁨으로 가득한 법입니다. 성 필립보 네리 신부님의 유쾌한 웃음소리에서부터 더 차분한 기쁨의 표현인 미소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여러분은 가식 없는 미소를 지으십시오. 늘 충만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미소를 지으십시오.”
성 토마스 모어의 기도
교황은 성 토마스 모어의 기도문을 소개하며 “이 기도를 매일 바치고 마음에 새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님, 좋은 소화력과 소화할 양식을 베풀어 주소서. 육신의 건강과 이를 지켜갈 유머 감각도 더하여 주소서.
주님, 선하고 순수한 것을 식별하는 거룩한 영혼을 주시어 죄를 보고도 겁먹지 않고 당신의 현존 안에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게 하소서.
무료함을 모르고 불평과 탄식과 원망을 모르는 영혼을 주시고 ‘나’라는 이름의 거추장스러운 짐에 스스로를 얽매이지 않게 하소서.
주님, 유머의 은총을 내려주시어 농담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너그러움을 주소서. 이로써 제 삶에 작은 기쁨이 스미게 하시고 그 기쁨을 이웃과 나누게 하소서. 아멘.”
탈라베라 데 라 레이나의 수도원 공동체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자였던 성 알론소 데 오로스코 신부는 1573년 5월 9일, 스페인 탈라베라 데 라 레이나에 수녀원을 설립했다. 경건한 삶을 살아가며 자선활동에 헌신하던 프란치스카는 과부가 된 후, 이곳에서 묵상과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된 삶을 살고자 했다. 설립 초기부터 수도원은 당시의 관습에 따라 청소년들을 받아들여 교육했다. 이들 중 일부는 수도 성소를 받아들였고, 또 다른 이들은 혼인 생활을 준비했다. 이 수도 공동체는 엄격한 관상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교육 사도직을 발전시켜 왔다. 오늘날 수녀들은 ‘성심학교’에서의 교육 활동과 함께 다양한 사목단체들 – ‘아우구스티노의 친구들’(어린이 대상), ‘한마음’(청소년과 청년 대상), ‘성녀 모니카회’(가족 대상), ‘성녀 모니카 그리스도인 어머니회’(학부모 대상) – 을 통해 세 가지 지향을 추구한다. 곧,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찾아가는 여정에 동반자가 되어주고, 참된 복음적 형제애의 길을 함께 걸으며, 수도자로서의 삶을 통해 사랑의 문명을 건설하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다.
번역 김호열 신부
- 바티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