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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초병 그 시간의 실루엣
-남루한 변색(變色) 파지(破紙)에 유폐되어있던 젊은 날의 타임, 안개발 실루엣을 망각의 강여울에서 건져보는 것도 노령에게 주어지는 앤딩 노트(Ending Note)-그 회귀의 모멘텀이 되리라.
생애 총량에서 빛나는 20대 청춘의 한 조각, 그 영혼의 아픔도 었었다.
K-6 (Camp Humpreys)
Hq & Hq Co, 802d Engr Bn (Const)
-60년대 초반부- 나는 여기서 병영생활을 시작했다. 단 본부 S-3에서, 공병 건설 製圖와 챠트에 Leroy set로 레터링을가하고 대형 청사진을 출력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나의 주특기는 측지 제도병이었지만 공인된 라이선스를 갖은 것은 아니었다.
-미군 포토그라퍼의 인화 현상실도 함께있어 기록영상과 더불어 이따금 포르노급 기이하고 은밀한 영상을 竊盜 감상을 하기도 했다, 서해안 평택 灣 대공 사이트에서 권총을 품은 미 공군이 보안 그래픽 문건을 가져와 출력해 가곤 했다.
사무실 내에는 제도대가 6개-그 위에는 복잡한 설계도면이 그려지고 트레싱 페이퍼가 펼쳐저 있었다. 공병건설 미군 제도병 2명 , 카투사 건축설계병 선임 2명, 한국인 문관 건축설계사 2명. 필리핀 문관 건축설계사 2명, 리로이 세트로 현황 챠트를 만드는 선임 1명이 있었다. 각자 나름대로의 정통 스킬을 보유하고있었다. 나는 브리핑 챠트와 행사 포스타를 만드는 설렁한 쫄병 스태프-시다바리(?) 였다.
그러나 재빨리 습득한 ‘레터링 킷트’를 다루는 데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모든 그래픽을 그려내는 필요 소도구는 종류 구별없이 풍부했다. 함께쓰는 사무실엔 미군과 카투사의 행정 요원들, 여성 타이피스트 2명, 그리고 통역관이 바쁘게 오가며 근무했다. 단본부 금색 영관장교의 별도 오피스도있었다.
바락크의 작은 쪽문 밖에 키가 쑥쑥 자라고 잎이 큰 홍초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본 순간들이 눈앞에 선하다.
이따금 나는 『쫄병』의 굴래 속에서 야간 ‘步哨兵’으로 나가야 했다.
근무 색션 보드에 메모기록! 선임에게 구두보고 후 메스홀에 가서 식사를 마친다. 배고플 때는, 식판 들고 꼼수 어게인 식사로 두탕을 뛰기도 한다. 식당으로 가는 한 켠에 펜스를 높이 친 테니스장이 있었는데, 탁! 탁! 땀 흘리며 소프트 테니스에 집중하는 하얀 운동복 차림의 몇몇 군인이 있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분이 한국전 참전 주둔군 사령관 이라는 소문에 상당한 흥미와 자유 시스템을 느끼고 있었다. 역시 군인은 戰功 커리어가 있어야하고, 어디로 가든 보스의 시튜에이션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 부럽다!
밤 초병으로 가장 고통스런 기억들이 소멸되지를 않는다.
그것은 중대 본부 사무를 관장하는 놈이 이따금 보초 회수를 돌려 끼워 넣고 자신이 빠지는 추악한 짓을 직보하지 못한 딜레마를 수용했다는 점이다. 군의 기강이 얼마나 후진적이었나!
60여년이 지난 일이지만 잊혀지지 않는 씁쓸함-지금도 나는 참나무 지게 작대기로 그 자슥의 어께죽지를 쳐 내버리고 싶다! 글고 64년 초 8군 방송멘트에 나온(타이피스트가 알려줌) 공병단 모범사병 선발 부상의 비행기 탑승권 1매를 돌려치기 해버린 국군파견 인사계 상사, 디룩디룩 살이찐 그 자슥의 인상이 떠오르며 인간 본성이 얼마나 누추한가의 감회로 떠 오른다.! 쩝!
오후 5시 본부중대와 가까운 위치의 장소-GI 10명, 카투사 10명이 좌우정열 간격을 유지한다. 복장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M14 소총을 오른쪽에 세워 잡고 있다. 훈련소에서 칼빈과 M1, LMG를 만지든 나는 신입 사병 몇명과 선임병으로부터 신형총기 M14에 대한 분해 결합, 초병 근무 자세를 교육 받았다. 언어불통은 병영생활의 최대 적이라고- 절대로 비굴한 자세를 보이지 말고, 사고를 치지 말라고 진심 어린 당부를 했다.
-은색 계급장을 단 캡틴이 도착하자, 일순간 긴장감이 분위기를 장악한다. 영화 대탈주(Great Escape)에서 St-McQuin이 포로 수용소를 탈출오트바이를 타고 국경 철조망을 돌파하려다 나치군에게 붙잡히며 목덜미에서 장교 계급장을 재빨리 꺼내 보이는 빛나든 그 계급장이다.
-미군 선임 하사의 별명은 ‘독일 병정’이었는데 2차대전에 참가했고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살인적 눈밫을 발산하는대 주눅이 드는 전형적인 군인 기질임을 간파할 수 있다. 그가 절도있게 젊은 장교에게 거수경례를 올려붙이고, 뒤돌아서 지정된 포스트에 야간 보초를 서야 할 사병들을 싹 훑어보며 명령을 내린다.
검사 총(Inspection!)
모두가 총열의 노리쇠를 후퇴시키며 자세를 바로잡는다. 총을 낚아챈 장교는 총을 한 바퀴 노련하게 돌린 후 약실 부분을 들여다본 후 눈빛 발사로 척 내민다! 철거 덕 노리쇠를 원상회복 시킨다.
일반보초수칙 3 -?
병기 담당 서프라이 룸 선임 병장이 통역을 한다.
한국어로 존나게 외워둔 수칙을 외친다. 잊거나 더듬거려도 대충 넘어가지만 큰 압력과 주의를 받아야 했다. 미군과 카투사 몇 명에게 불특정 선별 체킹한다. 카투사들은 한껏 주눅이 들어 있다.
-여기서 보초수칙을 잊어먹은 어느 역대 카투사 한 명이 느닷없이 애국가 한 소절을 뇌까리다가 - 본부 선임하사에게 진짜 존나게 얻어터진 전설이 회자 되고 있었다. 넌센스가 주는 의미는 그냥 웃어 넘길수 없는 의미와 분위기를 말해 준다. 크~ 실존은 본질에 우선 한다꼬? ㅎㅎ
- 모두 스리쿼터로 모터풀(Motor Pool)로 이동한다.
<제1 포스트, 모터풀(Motor Pool)>
2명이 동초 미션을 이행한다. 차량의 출입이 항상 열려있어, 게이트에는 야간 근무조가 별도 출입 관리 통제를 담당한다. 주둔지 내의 차량 주차와 기계 정비를 담당하는 시설의 넓은 에리어로 주유소와 각종 차량을 수리 보수하는 혼성 병사들의 근무지다.
각 포스트 배치순환을 관리하며 여기서 대기한다. -GI들이 근무 포스트 1, 2, 3, 4를 먼저 선택하고 나머지를 카투사들이 배정된다. 업무코너 관리 데스크의 라디오에서 AFKN 에서 비트 음악이 쉴새 없이 흘러나오고 덩치 큰 흑인들은 클럽에서 사온 콜라, 햄버그를 먹으면서 껑뚱거리며 리듬감이 볼만한 막춤을 추며 괴성을 질러 되기도 한다.
참으로 희한한 풍광의 헷갈림에 놀란다. 그래도 군기는 살아있다. 미군들 이탈해위는 단박에 강등조치를 시켜 버리거나 불명예 제대로 귀국조치, 고향 앞으로- 카투사들은 존나게 얻어터지고 국편 조치하거나 악명 높은 남한산성(?)으로 유배될 수도 있었다. 대형 대형 트럭으로 전국 미군기지로 들락거리는 수송 카투사 운전병은 기름을 만땅 넣어가지고 중간 어느 곳에서 휘발유를 대량 팔아치워 상납도 하고 파괴적 쾌락 추구에 열중 하는 놈이 있는가 하면, 고향에 잡을 구매했다는 전설의 미확인 찌라시도 떠 돌았다. 그러나 미군 당국은 거리 환산 필요 유류만 배급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 외 기가 막히는 사건들이 내재하고 있었으니 어디로 가나 부정의 요지경은 고구마 줄기처럼 얽혀있었다. 그 당시의 무질서는 그 당대의 한계였던 모양이다.
야간 당직 미군이 근무조를 편성하고 로테이션을 지휘하는 바라크 사무실과 분리된 대기실에는 야전 침대가 있어 2시간 3교대- 잠시 눈을 붙이기도 한다. 스프링 철재 침대에는 두터운 메트리스가 있지만 한켠으로 접혀있고 군화를 신은 채 분신과 같은 총을 껴안고 반수면 상태에서- 지난날의 회상, 전개되어 갈 불투명한 미래 생각으로 피곤한 시간을 죽인다. 잠들자 교대 시간이라며 명단을 확인하고 어께를 흔들어 깨우는 순간은 권태롭고 지겹다. 그러나 이동 스리쿼터에 승차 초소로 가야했다.
추운 겨울날이면 오일스토브가 지글지글 끓을 정도로 열기가 팽배하다. 바깥에는 수많은 차량들과 장비들이 서치라잍의 음영으로 마치 미지의 세계가 펼쳐지듯 보인다. 기지 전체에 전력을 보내는 발전기의 소음이 지축을 울리듯 길게 흘러 밤공기에 실려간다. 모타 풀에서는 이곳저곳을 이동하거나 경계 활동에 주목해야 했다. 장비 분실과 도난방지, 보호, 차량 이동, 유류 공급이 이뤄진다. 주로 GI들이 동초를 선다.
<제2포스트- 서플라이(Supply)> 소프트웨어 군수품 공급 건물-유달리 서치라잍이 촘촘하다. 영내 도로변에 있어 밤의 영내 움직임을 바라보며 시간 보내기가 용이한 편이었다.
<제3포스트-벙커(Bunker)>탄약 저장고,
영내 중심부에서 3km 거리의 아카시아 숲 구릉지에 숨겨져 있고 검은 철문으로 위장 된 곳까지 차량 접근로가 있다. 가로 세로 50여m 높이 약5m 정방형 에리어가 철망으로 에워쌓여있다. 작은 초소가 있고, 야전의 작은 포로수용소 같은 분위기다. 출입문은 견고하게 잠겨있다. 지금도 나는 그곳에서 총맨 실루엣 자세로 쳇바퀴 돌 듯 움직이는 내 모습의 영상을 뚜렸이 그려 본다. 마음은 적막강산이다.
아카시아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있다. 탄식과 감상을 씹어가며 마치 동물원의 동물처럼 움직인다. 가깝게 느껴진는 곳에 비행장 활주로가 전개되고 비행기 유도 불빛이 섬광처럼 움직인다. 불시에 뜨고 내리는 전투기 핼리콥터의 굉음이 귀청을 때린다. 수없이 많은 서치라이트가 곳곳을 밝히고, 밤의 적막이 내려도 기지는 움직인다. 서비스 클럽에서 들려오는 주둔지의 밤 문화 소리들은 이역 行星의 소음 같다.
아산灣으로 부터의 비바람과 안개 또는 폭풍의 눈보라가 몰아 칠 때는 외계에 던져진 존재 그 자체다. 통신선도 없었다. 그러나 겨울 혹한에도 추위를 방어 할 수 있는 복장장비 등은 완벽에 가깝다.
나는 이곳을 선호하여 야간 보초를 서 왔다. 그곳을 APO27(주한미군사P)로 기묘하게 입력 시켜놓고 있다. 총을 높이 쳐들고 햄릿의 대사를 고함쳐 외운다는 서강대 재학중 입대한 K이등병, 그는 훈련소에서 터트린 수류탄 파편을 자신의 수호신이라며 작은 면직 주머니에 넣어 가슴에 품고 있었다. (훗날 J신문 철학산책의 고정 연재 칼럼을 쓰는 명문대 교수 )-작은 초소 부스의 이곳저곳에 내뱉은 낙서의 글귀들은 탄식과 적막, 영혼의 아픔 들이다.
깊어가는 밤 속에 당직 장교나 하사관이 근무 자세를 체킹하기 위해서 스리쿼터의 헤드라이트를 밝히고 다가와 간단한 질문을 하고, 수고하라는 신호를 주고 간다.
<제4포스트- 락쿼리(Rock Quarry)> 거의 4km 원거리 서해 아산만 쪽 巖山, 채석장으로 바위를 폭파한 공병 자재의 컴프레셔 장비, 돌 자갈 등이 산재해 있는 石山은 사방이 황량히 열려있고 장비들을 지키는곳- 작은 초소가 있긴 하지만 판초 우의를 걸치고 밤비를 맞거나 눈보라도 맞았다. 여기서 밤의 K6 주둔지 각 부대 캠파운드를 내려다 보았을 때, 인간 문명의 바다로 착각이 든다. 어쩌면 환타스틱한 나니아의 어떤 움직이는 우주공간 도시로 착각할 정도다. 이미 엄청난 눈이 퍼부어 내려 대지를 덮은 Xmas 이브의 밤 주둔지의 밤바다는 장관 이었다. 생생하다. 클럽에선 노래 소리가 들리고 각 바락커 마다 불빛이 꿈틀거리며 실존하는 이국적 군사문화에의 기이함과 미래의 두려움도 피어올라 디스토피아의 진열장이 아닌가 하는 의혹에 매몰 되기도 했다.
3교대 보초 근무가 끝나면 이튿날은 샤워를 마치고 오전을 깨끗한 침대하얀 시트 속으로 기 들어가 취침을 한다. 피로가 온몸을 지배하지만 오후는 나의 색션(section)으로 출근해야 했다.
고향 풍광을 생각했다. 평화롭게 살아가는 길을 가자고 다짐했었다. 그후 나는 상병 계급장을 달고 국편하여 부산 가야동- 공병기지창 미 군사 고문단 부속실에서 근무했다. 근무시간이 끝나면 막사로 돌아가 제대를 앞둔 선임병의 눈치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빌런 놈-글마는 대가리를 빡빡 밀어버려 율브린너 아부지 같았는데 수시로- ‘병장이면 같은 병장인줄아나?’ 하고 존나게 나에게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편한 군생활 하다 온 놈이라꼬!
기억과 경험들이 서서히 희미한 단계로 접어 들었다. 망각의 강가에서 서성이고 있다.
지금은 K6가 극동의 A급 군사기지로- 쌍전벽해를 이루었지만, 현장을 가보지 못했다. 아마도 60년대 초반의 모습은 사라졌을 거로 보인다. 그당시 근무하던 동료들의 모습이 클로즈 업 되어 다가 온다. 기억의 한코너에 크게 남은 것은-당시 쿠바위기(Cuban Missile Crisis)때 최대의 비상이 걸리고 몇명에게 더불백에 개인 장비를 갖추고 봉투에 손톱을 깍아 넣어 제출하라는 넌센스(?)가 있었고, 긴급 해외파견 수송기를 탄다는 긴박한 헤프닝이 있었다, 주둔지의 무거운 중압감과그 긴장감은 곧 풀리고 안도로 끝났다.
군 생활의 기이한 에피소드는 ‘잡설 구라’로 치부되는 바람과 같다.
그러나 그것들은 당대가 지워준 젊은 날의 초상으로 우리들의 중요한 도정 순간이 아니었겠나? 현실과 모멸감의 인내를 배웠다고-
업데이터가 불투명한 시간 속의 과거 여행이 그래도 기억의 한 자락으로 남아 있다. 뭔가 정제되지 못한 허접한 지푸라기 뿍띠기가 가도에 굴러가는 블러핑일 뿐이지-모든 것은 흘러왔다! ~꾸뻑-
-End-
첫댓글 서론적 리뷰에 이어 드디어 짱 나타난 Baek. G. H. ㅎㅎㅎㅎㅎ
엄청 멋진 20대.
엊저녁 노승렬 후배님의 [성주(星州) 미니 산책]을 보면서 "이제야 panama회원의 본명을 알았구나"회심의 미소를 지었었는뎅.ㅍㅍ
반갑습니다. 백 길 현님.^^
수재의 전당 대구사범학교의 동문들의 살아 온 이야기를 듣는 것이 바람새/김능자의 소망이었습니다.
남성들의 세계 군생활 일기를 개인적으로 들어 본 일이 없답니다. 영화로는 볼 수 있었지만.
실화이기에 더욱 흥미롭게(?)읽었습니다.
고통의 추억도 아름다운 것.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