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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서 놓았던 유럽 여행기입니다. 미숙한 부분이 있더라도 넓게 양해해 주시기를,,
走車 看유럽記 其Ⅰ
국세 공무원으로 근무하기 29년, 많은 우여 곡절이 있었으며, 그에 따른 어려웠던 일과 즐거웠던 일을 어이 다 말로 하랴마는, 이번에 우연찮게 과장님과 서장님의 배려로 평생 기회가 있을까한 유럽여행을 가게 되었음이니, 업무 유공자로 내가 과연 자격이 있을까 하는 자괴심은 별도로 하고, 이러한 기회를 주신 여러분께 두루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2005.11.05일 인천을 출발하여 동년 11.14일 귀국하게 된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스위스 인터라켄(융프라우), 이태리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를 경유한 여정을 무디고 무딘 글로써 그 소회를 되새기고자 한다.
국외 문화유적답사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해외여행 경험이 전무한 본인으로는 상당한 걱정과 기대, 설레임으로 여러 날을 보낸 후, 여행 방법으로 제시된 그룹여행과 개별여행의 방법 중, 고민 끝에 본인이 희망하는 여행지 및 기타 여러 사정을 감안하여 개별여행을 하기로 결정하고, L 여행사와 여행계약(여권 교부 포함)을 체결하고 여행 준비를 위해 동분서주하니 어느새 출발할 날자가 되었다.
2005년 11월 5일, 잘 다녀오라는 서장님과 사무실 선 후배의 격려의 말을 뒤로 하고, 3년 전 20여일간 영국과 프랑스를 단독으로 배낭여행을 하고 돌아온 딸내미의 코디와 세심한 코치에 의한 계절에 따른 두터운 옷과 기타 준비물(우산, 팩 소주, 고추장 등)로 가득 찬 가방을 끌고 여행팀의 미팅 장소인 인천공항 출국장에 오전 10시쯤 도착하였다.
L 여행사의 인솔자(30대 미모의 여성 백 모씨)와 9박 10일을 같이 지낼 본인 포함 14명의 여행객이 모여 서로 인사를 하고, 주의 사항과 출국에 관련한 여러 가지 교육을 받은 후, 오후 1시 5분에 출발하는 런던행 비행기를 탑승하기 위한 티켓팅, 소요 용돈의 유로화 환전, 수화물탁송, 보안검색 등 수속을 마치니 오전 12시로 두어 시간이 소비되었다.
출국장은 출국하는 사람들로 북적북적, 우글우글, 물 반 고기 반이다. (내, 외국인의 비율이 거의 반반이다.) 면세점이란 곳을 둘러보니, 역시 북적북적, 우글우글 국내 경기가 어려워 한 푼이라도 싼 이곳 면세점을 찾아온 건가? 문득 의문이 든다.
대한항공 KE907편, 다행히도 좌석이 만석이 아니라 드믄 드믄 빈자리가 보이는 데, 좌석표 대로 앉고 보니 옆자리가 비어있고 같은 여행 팀원인 다른 사람들의 좌석도 띄어져 있어 초보 여행자(본인), 인솔자에게 의문의 눈초리를 보내니 인솔자 한눈을 찡끗하며 조금 있다 보자 한다.
아닌게 아니라 두어 시간 후 그 이유를 자연히 알게 되었다. 인천에서부터 런던 히드로 공항까지 12시간의 비행, 폐쇄된 좁은 공간에서의 12시간은 감옥 아닌 감옥이다. 그 12시간을 보내는 동안 빈 옆 좌석을 활용키 위해 일부러 좌석 예매시 하나씩 건너뛰어 좌석 번호를 지정 구입한 거란다.
그 빈 옆 좌석을 120% 활용하여 식사를 두 번하고 화장실을 수시로 이용하는 사이 눕고, 쪼그려 앉고, 승무원 아가씨에게 맥주 얻어먹고, 엎어져서 졸고 깨기를 반복하며 12시간 30분 만에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였다.
인천에서 분명히 오후 1시 5분에 출발하여 12시간 30여분을 비행해왔는데, 여기 히드로 공항에의 도착 시간은 당일 오후 5시 40분, (우리나라와 시간차 9시간으로 하루를 벌었다. 귀국시에 도로 까먹었지만) 히드로 공항은 어둠침침하며, 비행기로부터 입국 심사대까지의 낡고 어두컴컴한 통로도 길어 10여분의 걸음을 요구한다.
공항을 나오며 우리 인천공항이 훨씬 깨끗하며 능률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어찌보면 하 당연한 일이다. 우리 인천공항은 신축된 지 얼마 되지 아니한 새로운 건물인데 반하여 런던의 히드로 공항은 건축한지 60년이 경과된 할아버지 건축물이라는 거다.
60여년 전 건축시 년간 5~6만명이 이용하던 시설이 작금에 이르러 년간 5~6천만 명이 이용한단다. 그래서 현재 개축은 엄두도 못 낸다든가 어쨌든가.
입국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나와 음침한 기후에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영국날씨는 하루 중에 4계절이 있다’ 라는 말이 있고 그 중 비오는 날이 으뜸이다)에서 우리의 전세버스로 저녁 식사를 위해 런던 소재 한국식당을 찾았다.
런던시내의 이층 버스
김치에 된장국까지는 좋았는데 우리의 인솔자, “물 드실겁니까?” “아니, 밥 먹으며 그럼 물 먹어야지” 했더니 우리의 인솔자 또 왈 “물 한 병에 2유로입니다.”
‘뜨악,, 아니 식당에서 밥 팔며 물 따로 팔어? 어디 이런 경우가’ 깜짝 놀랬다. 여기 유럽지역(영국은 유럽대륙은 아니다.)은 지하수가 석회질을 포함하고 있어 식수로 부적합하기 때문에 식수는 별도로 정제된 물을 마신다 한다.
식수는 사서 먹는다고는 알았으나 식당에서까지 물을 따로 팔 줄이야! 그 가격이 맥주와 형님 동생 한다. 그래서 유럽의 맥주 문화가 발전했다 하던가. 우리나라 금수강산 좋은 나라 몸으로 현실로 실감하는 순간이다.
식사 후 런던 시내를 누비며 런던 시내의 야경을 보는 줄 알았는데, 어느 장소에선가 하차를 하더니 어느 상점으로 몰고 들어간다. 우리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영국의 명품점 면세점이란다.
종업원 대부분이 우리 한국 아가씨 아줌마다. 어쨌든 반가운데 그럴듯한 버버리 표 바바리 한 벌이 우리 돈으로 150만원 정도, 만만치 않은 가격임에도 여행 온 아줌마 아가씨들 눈이 돌아간다.
각자 형편에 따른 소정의 쇼핑 후 숙소로 이동, 오늘 묵을 방을 배정 받았는데, 배정 된 방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의 인솔자 욕실에 물 흘리지 말 것과 준비해온 컵라면, 김치 등을 절대적으로 개봉하지 말 것을 강조, 또 강조 한다. 우리의 김치 냄새가 이곳 사람들에게는 테러에 준하는 폭력행위라든가, 어쩼든가, 지네들 노린내는 어쩌고,,,,
배정 된 방에 들어가 일단 짐을 풀고 씻기 위해 욕탕에 들어가 보니, 오호라 서양인들 그 커다란 덩치에 욕조는 아담 사이즈로 아담 사이즈 중 아담 사이즈인 내가 운신하기 불편할 정도이며 욕조와 욕실 경계에 커튼이 설치되어 있고 욕실 바닥에는 배수구가 없다.
흠 이 사람들은 물을 금 같이 아는 구나. 최소한 이곳 유럽에서는 돈을 물 같이 쓴다는 속담은 성립되지 아니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 재삼 실감나는 순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곧 물 부족 국가가 된다는 국가적 염려가 있는 바, 우리 모두 정말 물을 물 같이 보지 말고 아껴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 관광 첫째 날 아침, 모닝콜에 눈 비비고 일어나 대강 씻고 지정 된 식당에 가니 딱딱한 빵과 치즈, 햄류 그리고 우유 한잔이다.
억지로 요기하고 역시 우중중한 날씨에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우리를 환영하는 가운데(그래서 우산이 필수품으로 영국의 평균 기후가 이렇단다. 이러한 분위기로 영국은 유령 이야기가 매우 흔하다.) 이곳에 거주하는 현지 가이드의 안내와 우리의 전용버스로 드디어 실제 상황, 런던 시내로 들어가 요리 조리 가는데, 어제는 의식을 못했건만 버스의 운전석이 오른쪽, 좌측통행, 무언가 상당히 어색해 보인다.
영국은 대륙과 떨어진 섬나라로 유럽인이라는 하나의 '집단'에 묶이는데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 지금도 EU에 가입하지 아니하고 자기만의 옹고집을 부리는 나라임을 증명한다.
그 증거가 또 하나 있다. 전기 제품을 사용하기 위한 코드에 발이 세 개다. 좌우로 두 개는 납작하니 비스듬히 서있고, 하나만 둥근 것이 대각선 방향으로 세워져 있다. 별난 것을 되게 좋아하나 보다.
런던 시내로 들어가는데 이 덩치 큰 양반들의 오가는 차량의 70~ 80%가 우리의 마티스급 소형차이며, 대부분의 건물도 기 백년이 넘은 것으로 이곳 사람들 오래된 것을 귀중히 여겨 건물의 신 개축을 정부에서 허가하지도 아니하고 영국 국민들 스스로도 신 개축의 의사가 별로 없다 한다.
런던의 시가지
그래서인지 도로가 일부분을 제외 하고는 옛날 옛적에 마차가 다니던 길을 확장하지 못하고 포장만 하였기에 대부분 우리 동내 뒷길 같이 좁다. 그 좁은 길을 덩치 큰 버스가 운행하는 것을 보니 서울의 교통 혼잡은 ‘저리 가 계시오’ 한다. 왠만한 도로에는 차선 표시가 없다. 알아서 가기다.
템즈강을 사이에 두고 멀리 영국의 국회의사당 건물을 본다. 예전에 박모 아나운서가 실황 중개 방송하던 위치란다.
템즈강 건너편의 영국 국회의사당
이동하여 국회 의사당 앞,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건너려는데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 구간 도로 바닥에 글이 써져 있다. 나도 알만한 글이다. ‘LOOK LEFT' 'LOOK RIGHT', 신호 관계없이 좌우 잘 살피고 알아서 건너가란 이야기다.
영국 국회의사당 앞, 흠 세계 각국의 각종 인종이 모여 있다.
700년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딕스타일의 영국의회정치의 전당이란다. 1834년 화재로 1860년에야 재건된 예술 작품이다. 건물의 길이가 300미터가 넘고, 1천개 이상의 방을 갖추고 있단다.
기념으로 우산 들고(? 비가 부슬부슬 오니까) 사진 한방 찍고, 이동하여 ‘천일의 앤’으로 유명한 앤의 궁전을 마주한 타워브리지를 보러 간다. 강안 양쪽에 탑을 세우고 다리의 상판을 양쪽으로 들어 올려 대형선박의 통행이 가능하도록 했다는 것으로 강에는 옛날 전함인 템프킨호가 정박(?)해 있다. 지금은 카페로 이용한단다.
템즈강의 타워 브리지 앞에서
오늘이 일요일이어선지 조금 늦은 오전이건만 강변으로 조깅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그리고 보니 조금은 이상타, 런던의 일기는 우중충 그 자체인데 공기는 우리의 서울에 비하여 상당히 맑게 느껴진다.
그 이유를 금방 알게 된다.
‘천일의 앤’으로 유명한 앤의 궁전
하이드 파크의 극히 일부분
영국은 전 국토의 80% 가량이 평야란다. 우리나라와는 사정이 거꾸로다. 그래서인지 도심지 곳곳에 정말 장난 아니게 공원을 조성해 놓고 있다. 무지 넓다. 무지 많다. 그저 곳곳이 공원이다. 일인당 녹지율이 세계 제일이란다. 거기다 입장료 받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모두 무료다. 부럽다.
얼른 보고 버킹검 궁으로 이동한다. 버킹검 궁 꼭대기에 영국 국기가 휘날리며 비를 맞고 있는데 그 사연이 여왕마마께서 부재중에는 국기를 게양한단다. 궁 앞에는 역시 각종 인종들이 주르르 몰려있다. 우리의 가이드선생께서 오늘은 아무 행사도 없다고 침을 놓는다.(별 볼일 없다는 얘기다).
버킹검을 이웃하여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있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고딕 건축 사원으로 영국에서 가장 높은 고딕 양식의 중세교회란다. 13세기에 착공해 약 250여년 동안 만들어져 16세기(1503년)에 완성된 사원 건물은 건축학적 견지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친단다.
영국기 휘날리는 버킹검 궁
1066년부터 모두 42명의 영국 왕과 여왕들의 웅장하고 화려한 대관식이 펼쳐진 장소로도 유명하다. 역대 영국의 왕족, 정치가, 작가, 음악가, 기사, 배우 등 3,000명이 넘는 이들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대표적인 무덤으로 처칠의 묘, 엘리자베스 1세의 묘, 헨리 7세의 묘, 스코틀랜드 메리여왕의 묘 등 유명한 무덤이 있다.
그 옆 유명한 빅벤은 높이 95m로 아직도 손으로 태엽을 감는 전문적인 시간지기가 있다고 한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한 컷
버킹검궁을 떠나 로얄 알버트 기념비와 그 동상이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50여 미터 높이의 첨탑과 지붕 등 웅장한 보호막 속에 금박(진짜 금으로 도금했단다)을 입힌 오페라의 카달로그를 들고 있는 동상이다. 앉아있는 동상의 높이만 5미터는 넘는 것 같다.
동상 건너편에 유수의 오페라와 연극이 공연된 알버트홀이 동상과 마주 보고 있다. 몇 년 전 조수미씨와 정명훈씨가 이곳 알버트홀에서 공연을 한 것이 우리 교포들에게 대단한 자랑이였단다.
알버트 동상앞에서
[알버트 동상과 알버트 홀이 생기게 된 이야기.]
명문 귀족 출신인 미스터 알버트께서 어찌 어찌하여 당시 여왕이던 빅토리아 여왕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첫날 밤, 일정을 마친 빅토리아께서 신랑이 기다리는 신방으로 찾아 왔다.
‘똑 똑’
알버트 왈 “누구시오?”
빅토리아 왈 “국왕이요!!.”
알버트씨 “.....................” (묵묵부답 : 묵비권 행사)
빅토리아 한참을 기다리다 화가 나서 그냥 돌아갔다.
다음날.
‘똑 똑’
알버트 왈 “누구시오?”
빅토리아 왈 “국왕이요!! ”
알버트씨 “.....................” (묵비권 행사 : 어제와 같음 )
빅토리아 한참을 기다리다 더 화가 나서 그냥 돌아갔다.
또 그 다음날.
‘똑 똑’
알버트 왈 “누구시오?”
빅토리아 왈 “국왕이요!! ”
알버트씨 “.....................” (묵비권 행사 : 어제 그제와 똑 같다 )
빅토리아 한참을 기다리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으로
빅토리아 “도대체 어찌하여 이러시는 게요. 우리는 결혼한 사이가 아닌가요? 이 문을 열어 주시오.”
알버트씨 왈 “ 나는 나의 신부 빅토리아와 결혼한 것이지 국왕 빅토리아와 결혼한 것이 아니오. 잘못 오셨으니 돌아가시오.”
그때서야 깨달음을 가진 빅토리아. “내가 잘못하였소. 소녀는 국왕이기 전에 당신의
아내인 빅토리아이니 이 문을 열어 주시오”
그리하여 신방의 문은 열리고 첫날밤을 무사히(?) 치르고 20여년을 둘이서 깨가 쏟아지도록 잘 먹고 잘 살아 9명의 자녀를 두었단다.
그 후 알버트씨가 저 세상으로 가니 빅토리아, 그 정을 못 잊어 이 동상을 세우고 알버트 홀까지 건설하여 그 정을 과시했다 한다.
남자도 여자를 잘 만나면 이렇게 죽어서도 호강한다.
알버트씨를 보고 대영 박물관으로 향한다. 무료 입장이다. 영국은 이런데 인심이 후한가 보다. 그런데 제목은 대영 박물관이건만 자랑스런 진열품은 거의 전부가 그리스나 이집트에서 강탈 내지 훔쳐온 스핑크스, 피라밋 관련 유품이다. 이집트의 반환 요구에 유네스코 판정으로 관리능력 등 감안하여 ‘영국에서 보관하는 것이 맞다’ 고 결정됐단다.
대영박물관의 로제타석
박물관 한 귀퉁이에 우리 한국관이 조금은 쓸쓸하게 설치되어 있다.
나라에서는 관심이 별로이고 S모 대기업에서 50억쯤 자금을 대어 빈약한대로 우리 옛날 물건이 진열 되어 있으나, 역시 관심 갖는 사람들은 한국 사람뿐이다.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계속)
첫댓글 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