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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에베소서 6:10-13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우리가 앞으로 살펴볼 6장 10절부터의 내용은 에베소서의 결론 부분입니다.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6장 10절이 ‘끝으로’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최종적으로 우리의 삶에 나타나는 영적 싸움이 어떤 것인지를 말하고 있고, 그 영적 싸움을 위해서 우리에게 입혀주신 하나님의 전신 갑주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기에 그렇습니다. 6장 10절 이전까지는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는 성도의 정체성, 그리고 죄로부터의 구원에 관한 은혜의 필연성, 그리고 그 은혜를 살아내야 하는 자들에게 필요한 성령 충만한 삶에 대해서 사도가 언급한 후에 그 전투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반드시 주어지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왜 우리에게 하나님이 입혀주시는 전신 갑주가 필요한가? 그 이유가 12절이에요.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여러분, 마귀나 악한 영들을 보신 적 있습니까? 마귀는요 그리 멀리 있지 않아요. 우리 안에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영적 전투는 우리 내부에 있는 우리의 옛사람과 싸워야 하고 동시에 외부에서 우리를 미혹하는 마귀의 세력과도 싸워야 하기에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게 에베소서의 결론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10절 시작이 ‘끝으로’인데요, 거기에 이어지는 말이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입니다. 그럼,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이 무엇인지부터 보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엡 1장)
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이 바울 사도의 기도 내용 중에 그 힘의 능력이 나옵니다. 그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는 것을 구한다.. 지극히 크신 능력이 무엇입니까? 창세 전에 확정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그 언약의 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해서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권세, 이 능력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능력, 곧 그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된 자들을 거룩하고 흠이 없는 아들들로 재창조하시는 능력이 우리 안에 역사하고, 우리의 영적 전투는 그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그리고 그분이 다 이루신 그 일, 그 능력과 권세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주 안에서 그의 힘으로 강건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 마귀의 간계입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 6:11).. 이건 먼저 마귀의 간계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지 우리 주님의 힘과 능력으로 전투를 치를 수가 있다는 말이에요. 손자병법에도 나오잖아요.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우리가 영적 전투를 치르면서 우리 주님의 능력과 마귀의 간계를 모르면 어떻게 이 치열한 전투에 나설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먼저 마귀의 간계, 마귀의 궤계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마귀의 간계라는 단어는 속인다는 뜻이에요. 마귀는 처음부터 속인 자잖아요. 에덴에서 하와를 속인 옛 뱀이 바로 마귀였던 것입니다. 이 마귀, 사단을 헬라어로는 디아블로스라고 하는데, ‘고발자’, ‘헐뜯는 자’, ‘서로 갈라지게 하는 자’라는 의미예요. 이 사단 마귀가 하는 일은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하늘에서 쫓겨 내려와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갈라지게 하고 또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는 것입니다.
자 그럼, 오늘 본문과 성경에 나오는 그 악한 영,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우리가 대적해야 하는 그 악의 존재에 대해서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원래 스스로 존재하시는 자존자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창세기 1장 1절에 나오는 천지의 그 천(하늘)은 복수예요. 솨마임, 하나님께서 태초에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 하늘들에는 우리가 보는 우주뿐만 아니라 우주를 넘어서 하나님께서 하늘에 속한 영들인 천사들과 함께 있는 그 하나님 나라까지 포함해서 하늘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천사들은 하나님이 어떤 목적을 위해서 창조하신 영적 존재들인데요, 하나님이 부리시는 존재이자 우리 성도가 부리게 될 영적 존재예요. 재밌죠?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영적 존재인 천사들이 우리를 지키고 있단 말입니다. 성경은 그 천사들을 우리를 섬기는 영이라고 말합니다.
(히 1장)
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천사들, 심지어는 악한 천사, 쫓겨난 천사들까지도 우리 성도들을 섬기라고 보낸 영입니다. 이 천사들은 이 우주, 이 지구가 창조되기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어요.
(욥 38장)
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5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6 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7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예요.
그런데 이 우주가 창조되기 전에 이미 하늘에서는 어떤 천사들 무리가 반란을 일으켰어요. 그 천사들 중 누가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자리를 넘봤단 말이에요. 그래서 구약에는 그 악의 원조 사단 마귀 세력들에 대한 심판의 말씀들이 나옵니다.
(겔 28장)
12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13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14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불타는 돌들 사이에 왕래하였도다
15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16 네 무역이 많으므로 네 가운데에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지키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냈고 불타는 돌들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17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왕들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18 네가 죄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하므로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네 가운데에서 불을 내어 너를 사르게 하고 너를 보고 있는 모든 자 앞에서 너를 땅 위에 재가 되게 하였도다
19 만민 중에 너를 아는 자가 너로 말미암아 다 놀랄 것임이여 네가 공포의 대상이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로다 하셨다 하라
여기서 두로와 바벨론으로 표현된 그 천사장, 아름답고 완전한 존재 사단은 하나님께 반역했고, 하나님은 그런 사단을 완전히 없애버리지 않고 하늘에서 땅으로 쫓아내셨어요. 그 마귀와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땅으로 쫓겨났고, 그렇게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된 그들을 성경이 악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이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신 이 세상을 더럽히고 파괴하기로 작정하고 에덴에 나타나서 하와를 유혹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자를 통해서 남자가 범죄하게 되지요.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타락할 가능성이 있는 천사를 만드셨을까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일부 천사가 타락할 것을 아시면서 만드셨는가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타락하고 반역했을 때 왜 그들을 멸하시지 않았을까요? 그들을 없앴으면 에덴에서의 범죄도 없었을 테고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 악한 존재가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시는 인간을 미혹해서 범죄하도록 놔두셨을까 하는 의문이 든단 말이에요.
그런데 제가 드릴 수 있는 답변은 한 가지예요. 하나님께는 하나님대로의 계획이 있었고, 하나님이 하신 그 모든 일은 선하시며 옳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습니다.
자,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모든 성경은 시간을 제하고 읽어야 합니다. 영원에서 영원으로 돌아가는 무시간적 사건들이 기록된 책이 성경이거든요. 그래서 성경에는 그 악한 존재들에 대한 심판이 이미 실행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벧후 2장)
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완료형이에요. 이미 심판받았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유 1장)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이것도 완료형이에요. 그러니까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은 무시간적 말씀이에요.
그렇다면 이 타락한 천사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잠시 사용되었음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목적입니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영원을 살게 되는 하늘적 존재로 아들들이 되게 하는 목적을 위해서 우리가 잠시 죄로부터 구원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방식, 하나님의 새 창조에 동원되기 위해 이 마귀 악한 영들이 있단 말이에요.
그렇게 악의 세력에 의해서 장악된 이 세상에서 구출되는 그 과정에서 성도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절대적 은혜에 대해서 배워야 하고, 왜 우리는 그 은혜가 아니면 안 되는지를 배우기 위해서, 또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순종, 우리의 전 인생을 통해서 그 순종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그 관계, 우리가 있어야 할 그 자리를 배운단 말이에요. 그래서 다시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선악 열매를 먹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성도, 그런 아들들로 새롭게 지어지는 일에 악한 천사까지도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서 읽은 히브리서에 보면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상속자들을 위하여 보내심이 아니냐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무슨 뜻인지를 아시겠죠? 예를 들면 하나님이 굳이 이스라엘을 애굽에 집어넣었다가 출애굽 시키시잖아요. 아브라함과의 약속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되면 그 이스라엘을 어린양의 피로 출애굽 시키신 것처럼 이 어둠의 세상 권세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시는 것을 성경이 구원이라고 합니다. 이 구원의 역사를 위해서 아담에게서 난 모든 인간은 먼저 죄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귀는 자기 본분에 충실하기 위해 모든 것으로 무장하고 이 세상을 촘촘한 그물로 가두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기 소유물들을 지키고 있어요. 가두리 양식장처럼 그렇게 가두어놓고 지키고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 마귀보다 더 강한 분이 나타나서 그 마귀를 결박하고 그가 소유한 것들을 늑탈하는 것을 구약에서 여호와의 전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전쟁의 결과물로서 구원이에요. 그래서 본질적으로 그 전쟁은 우리가 하는 전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쟁이에요. 그리고 그 전쟁이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게 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십자가의 승리, 그 영광의 승리입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성도의 구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눅 11장)
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으니라
21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22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분명하죠?
(시 68)
18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들을 취하시고 선물들을 사람들에게서 받으시며 반역자들로부터도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로다
이 전쟁이에요. 이와 같이 강한 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여호와 전쟁의 전리품으로서 우리의 구원인 것을 예수님이 직접 설명하고 계신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마귀에 의해 사로잡힌 자들을 예수님의 십자가 승리로 구출해 내는 그 일에 마귀의 세간으로 있던 우리가 협조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세간 가구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요? 그냥 마귀의 세간으로 사로잡혀 있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오직 하나님의 선택과 하나님의 약속만으로 우리가 구원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오직 은혜라고 하고, 다른 말로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은혜와 믿음은 동의어예요. 그리고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게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기 때문에 사단 마귀도 우리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는 일에 쓰임 받는 도구에 다름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고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로서 마귀란 말이지요.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악의 영과의 전투는 우리가 그 전투에서 이겨서 구원받는 전투가 아닌 겁니다. 우리의 전투가 아니라 이미 십자가로 승리하신 예수님의 그 승리가 어떤 것인지를 우리로 체험하고 확인하게 하는 전투이며 아무 한것 없이 그 승리에 참여케 하신 전투인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등장하는 전신 갑주는 우리가 준비하고 챙겨 입어야 하는 것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전신 갑주’입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평안의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 중에 어느 한 가지도 우리가 스스로 갖출 수 있는 게 없어요. 전부 하나님이 준비해서 우리에게 입혀주시고 손에 쥐여주시는 것들이에요. 그런 영적 전장에서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전투를 치르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라고 주신 거란 말이에요. 우리가 잘 싸워서 마귀를 퇴치하고 이기는 게 아니라 장렬하게 전사하는 전투예요. 잘 죽어야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전투를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승리와 그 은혜의 필연성을 배우고 우리의 무력함과 무능함, 그리고 마귀에게 포로가 되어서 끌려다니는 죄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마귀가 마치 장기판의 장기알처럼 우리를 가지고 놀았던 지나간 현실들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싸워야 하는 것은 혈과 육이 아닌 영적 존재 마귀와 그 세력임을 우리는 새롭게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 신에 장악된 이 세상 모든 비리와 악의 현상들을 개선하고 뜯어고치고 개혁해서 정의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게 우리 싸움의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은 본질적이고, 또 분명한 상대가 있는 영적 싸움임을 사도가 에베소서를 마치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치러 냈던 그 전투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문제는 그 싸움의 본질을 망각하고 쓸데없는 짓들, 무슨 사회 정화 운동, 민주화 운동, 노동 운동, 통일운동 환경 운동.. 등에 뛰어드는 것인데, 그건 마치 병의 원인도 모르면서 병의 증상만 보고 진통제 해열제만 먹는 것과 같습니다.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하단 말이에요. 그래서 영적 전투의 현장을 바로 보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붙들고 헛된 싸움만 하는 사람들이 오늘날 종교인들이에요. 전투의 대상도 모르고 하나님이 입혀주시는 전투 장비도 없는 채 그냥 향방 없이 허공만 치는 싸움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들은 백전백패입니다. 아니 싸움이라고도 할 수 없어요. 그냥 종교 놀이에 빠진 겁니다.
그중 하나가 종교인들의 수행, 고행 그런 것들입니다. 중세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수도원 운동 같은 거 있잖아요. 그리고 순례자의 길이니 묵언 수행, 금식기도, 탁발 수행 등. 결국 싸워야 할 상대를 모르고 기껏 한다는 게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겁니다. 이건 답이 없어요. 어떤 종교 행위로도 자기에게서 한발 짝도 벗어나지 못해요. 끝없는 미끄러짐이지요. 마귀를 참 우습게 본 거예요.
여기서 인간들의 종교성에 대해서 잠깐 보고 가야겠습니다. 인간의 종교성은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신앙이 아닙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한 죄인이 자신의 안정성과 자신의 존재 가치를 챙기기 위해서 발동시키는 가장 고단수의 죄적 본능이에요.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성이 가장 고차원적으로 발현되는 게 바로 종교성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자꾸 종교 행위에 열심을 내는 건 하나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다스림을 피하고 자기 자아를 어떤 교회나 경전이나 어떤 신에게 투사해서 확장하기 위한 죄성의 발동이에요.
그럼, 인간이 종교성을 가지게 되는 근본적 이유가 뭘까요?
인간에게 종교성이 나타나는 이유는 첫째로 창조주를 반역한 인간의 두려움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결별한 인간의 두려움.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이 죄를 짓고 나서 가장 먼저 한 행동이 나무 뒤에 숨는 거였지요. 자기 영역 확보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그 순간부터 그에게 찾아온 게 그 두려움이에요. 하나님이 아담에게 네가 왜 숨었느냐고 하시자 두려워서 숨었다고 했죠. 벌거벗어서. 선악과를 먹기 전의 아담은 하나님과 자기가 별개라고 인식하지 않았어요. 자아가 없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자 하나님은 하나님, 나는 나가 되었죠. 그런 자기를 보니 벌거벗은 겁니다. 그게 두려웠어요. 그래서 실존적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서 종교를 만든 겁니다. 인간이 왜 종교를 가지는가에 대한 근본적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두려워서예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마음속에는 본질적인 두려움과 공포가 있어요. 장차 닥칠 심판, 뭡니까? 죽음이죠. 정녕 죽으리라, 죽고 또 죽으리라는 두려움. 그리고 내일에 대한 염려입니다. 미지의 내일에 대한 두려움. 그래서 인간은 자기 손으로 신이라는 대상을 만들어 놓고 그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시간과 물질을 바쳐서 신의 노여움을 피하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 보면 집에 부적 하나씩 붙여놓잖아요. 지갑에 넣고 다니는 사람도 있고요. 전부 두려움 때문입니다. 내가 신에게 이만큼 정성을 바쳤으니 나를 해치지 마세요. 일종의 뇌물이죠. 이게 타락한 인간의 종교성을 발동시키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자기 정당성 확보와 자기 가치 챙기기라는 탐심과 정욕입니다.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라는 복, 하나님과 하나 된 복이 끊어진 죄인은 자기 힘으로 자기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비참한 처지에 처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그들이 찾은 게 바로 종교입니다.
여러분, 죄의 본질이 뭐예요? 선악과가 뭡니까? 내가 하나님처럼 된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내 인생에 내가 주인 노릇을 하겠다는 것이고, 이게 아담의 주체성입니다. 그들이 세상에서 자기 주체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돈, 건강, 권력 등이 필요해요. 좀 더 나가면 지혜. 그런데 그보다 훨씬 고차원적 방법이 있는데, 그게 종교입니다. 도덕과 윤리, 종교적 행위로 나는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다, 너희와는 다르게 깨끗하고 거룩하다.. 이렇게 자기가치를 챙겨서 자신에게 확인 도장을 찍으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의 종교성은 결국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 주는 게 아니라 종교라는 장치를 이용해서 ‘나’라고 하는 우상을 숭배하는 겁니다. 자기 숭배, 자기 사랑이죠.
이런 종교성이 세상 종교뿐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와 교회 안에서도 똑같이, 아니 다른 종교보다 더 교묘하게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인과율에 의한 기복주의입니다. 영어로 give and take. 내가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고 바치는 만큼 내게 돌아오는 게 있다는 거죠. 그렇게 종교성에 사로잡힌 교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사랑과 은혜의 관계가 아닌, 내가 하나님께 이만큼 했으니 하나님도 이만큼 주셔야 한다는 그런 거래 관계로 바꾸었어요. 오늘날 교회에서 일어나는 종교 행위들을 한번 보세요. 새벽기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하면 복 받고, 십일조 잘하면 물질 축복 받고, 교회 봉사 열심히 하면 자녀가 좋은 대학교에 들어간다.. 이건 무당한테 가서 복채 내고 굿하는 것과 다를 게 하나도 없어요. 이름만 예수로 바뀐 것이지 본질은 똑같은 미신적 종교란 말에요,
그러나 진짜 기독교는 그런 인과율을 부수고 은혜 앞에 무릎 꿇는 거예요. 은혜의 복음입니다. 아무 자격도 없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은혜의 복음. 그러나 종교성에 사로잡힌 인간들은 이 은혜의 복음을 아주 싫어해요. 내 행위와 공로를 조건으로 들이밀면서 내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을 조종하려고 합니다. 이게 오늘날 기독교예요.
두 번째는 ‘자기 의’ 쌓기입니다. 로마서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실패, 자기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애써 무시하고 하나님의 의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외면하는 자기 의 쌓기.
이렇게 종교성이 극대화되면 반드시 외식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타인을 향한 정죄로 이어집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종교적 마일리지가 나의 힘이고 권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종교성이 열심을 내게 되면 어떤 괴물이 탄생하게 되는가? 예수님이 가장 꾸짖으신 사람들이 누굽니까?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이죠. 그들이 바로 대표적 종교인들이에요. 그들이 뭐라고 합니까? 나는 이레에 두 번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고 구제도 하고 나는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종교적 성취에 도취해서 그런 눈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합니다. 교회 안에도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저 집사는 새벽 기도 한 번도 안 나오고, 금요 기도회도 안 나오고, 성경도 잘 모르고, 교회 나오는 사람이 술 담배를 다 하고 왜 저 모양이야... 하면서 정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꾸짖으셨던 그들이 바로 그런 종교인들이었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말할 수 없이 착하고 율법 잘 지키고 인간성 좋고 한데,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고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셨다니까요. 하나님의 의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르고 오히려 자기 의를 지키려고 예수님을 살해하려고 했던 그들 종교인들이에요.
그렇게 인간의 종교성은 인간의 가능성을 믿기 때문에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예수님 십자가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고 하는 은혜의 복음을 본능적으로 싫어하고 거부합니다. 그러나 은혜의 복음은 먼저 인간에게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죽은 흙이야.. 라고 폭로합니다. 그게 십자가 복음이에요. 나의 힘으로는 0.01%도 내 구원을 이룰 수가 없다.. 그래서 오직 예수 피만 붙들어야 한다.. 이런 게 인간 자존심을 완전히 박살 내는 말이다 보니 그래도 내가 조금은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조금은 내 성화를 위해서 노력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조금은 있잖아요?.. 이런 자기 주체성 가능성을 절대 포기 하지 않는 게 종교인들이에요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오늘날 기독교.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저 주신 기쁜 소식, 하나님의 의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대적하는 게 오늘날 기독교인들 종교인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그런 종교성을 길러 주고 확장해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 안에 있는 종교성을 고발하고 해체하고 오직 예수 이름 앞에 무릎 꿇게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 복음의 능력으로서 구원입니다.
그렇게 모든 인간의 종교성은(선악과 따먹은 인간은 다 종교인입니다) 죄인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부리는 가장 거룩해 보이는 사기술이고 꼼수예요. 그래서 진짜 성령이 임한 성도의 삶에는 종교적 열심이 증가하고 그것으로 자기 이익을 챙겨 가지는 현상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도리어 내 안에 가득했던 종교성이 복음 앞에 낱낱이 해체되고 털려 나가고 폭로되는 아픔이 먼저 찾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저는 어떤 종교적 열심으로도 구원될 수 없는 완전 타락한 비참한 죄인 맞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 의지합니다.. 저는 그 은혜만 꼭 붙듭니다.. 이런 자기 부인의 자리로 인도되게 하는 것이 주님의 다스림, 복음의 능력입니다.
그럼, 마귀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정 반대겠죠? 인간들의 이런 종교성을 펌프질하고 헛된 싸움을 부추기고 엉뚱한 대적과 싸우게 만들고 그런 일을 도와줍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어떤 능력으로도 그 마귀를 이길 방법이 없습니다. 그걸 알아야 해요. 영화 보면 십자가 들고 귀신 들린 사람들을 쫓아내고 하는 장면들이 있는데, 참 웃기는 이야기죠. 마귀가 그런 거 무서워 하겠습니까? 계속 하라고 하겠지요... 선악과 따먹은 인간은 어느 누구도 ‘자기’로부터 자유롭지 않아요 설사 우리 몸을 불사른다고 해도 그건 모두 헛된 죽음이에요. 결국 자기 목적을 위한 것이니까요. 민주화 운동하고 노동 운동한다고 몸에 신나 붓고 불 지르는 것도 결국 자기 목적이죠. 잡념 없애겠다고 스님들 소지 공양 하는 거 다 자기 구원을 위한 겁니다.자신을 깨끗이 해서 신의 경지에 이르겠다는 탐심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승리는 예수님의 승리예요. 그분의 승리에 거저 참여된 것뿐이에요. 우리는 절대 마귀를 못 이깁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성 마귀성을 우리 스스로 이기지 못합니다. 계시록에 보면 마귀를 666으로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 때문에 666번 버스 안 탄다고 하던데, 그런 게 아니죠. 심지어 마귀를 세상 신이라고 합니다. 777이 하나님의 수거든요. 그러니까 666은 하나님과 거의 방불할 정도의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의 영광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도록 가리는 것. 모든 인간의 눈과 귀를 가릴 정도로 능력 있는 존재가 마귀 세상 신입니다.
(고후 4장)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여기서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한 자 모두입니다. 교회 다니고 장로 목사 해도 믿지 아니하는 자가 많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창조와 새 창조에 대해서 알고 있어요. 우리보다 더 잘 알아요. 그리고 그 일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는 것까지 압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라고 하는 영광의 복음이 가려지도록, 다시 말하면 구원받지 못할 자는 절대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일을 세상 신이 하고 있어요. 그게 마귀의 역할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주위에 예전에 같이 종교 생활을 했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도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게 당연합니다. 마귀가 눈과 귀를 다 가려버렸다니까요. 안 들려요. 같은 조선말을 하는데 같은 단어를 사용해도 그들이 알고 있는 건 의미가 다 달라요. 아무리 설명해도 못 알아들어야 정상이에요. 제가 몇 년 전에 대전 모임 할 때 일 년 내내 단어 공부를 했잖아요. 하나님의 은혜, 믿음, 죄, 용서, 십자가, 하나님 나라 등 모든 단어가 다 달라요. 성경이 말하는 진의가 모두 가려져 있다니까요. 세상 교회에서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들을 사로잡은 마귀로부터 해방시켜 주시지 않으면 어떤 훌륭한 설교자, 바울 사도가 와도 안 돼요. 쉽게 말 하면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건 죽은 시체에 대고 떠드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를 주님이 살리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엡 2장)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우리가 죄로 죽어있었다는 말이에요. 그렇게 살리시니까 그때부터 복음이 들리는 겁니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이렇게 주께서 살리신 자들만 이 영적 현실에 대해서 눈이 열리게 됩니다. 공중 권세 잡았던 자를 따르고 그가 끌면 끄는 대로 끌려갔던 죄의 권세 아래 있던 자들을 주님이 일방적으로 탈취해서 옮겨놓으신 거예요. 은혜의 왕 노릇이 있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놓으셨어요. ‘그리스도 안’이에요. 그래서 바울이 그의 모든 서신에서 이야기하는 게 그리스도 안입니다. 엔 크리스토스. 이 세상은 절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영역. 세상과 피로 경계 지어진 그리스도 안.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주름도 없는 거룩한 아들들이에요. 다른 거룩은 없어요. 그리스도 안에만 거룩이 있습니다. 구약에서부터 계시하신 피에 의한 정결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셨다니까요. 우리가 어떻게 그리고 가게 됐습니까? 십자가의 승리 때문이죠.
그 십자가의 승리, 하나님의 승리, 그 하나님의 희생을 배우는 과정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처럼 예수 믿고 날마다 홀리홀리 하고 기쁨과 감사 찬송이 넘치는 그게 신앙의 성숙이 아니에요. 날마다 피 터지게 싸우면서 악의 세력에 의해서 무참히 패배를 당하면서도 우리 죄를 지신 주님의 십자가 은혜만 꼭 붙들게 되는 그 믿음. 비겁하게 주님 뒤로 숨을 수밖에 없는 그 믿음이 우리의 승리란 말입니다. 바울이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쓴 편지에서 자기를 뭐라고 합니까? 죄인의 괴수라고 하죠. 나는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와 긍휼이 아니면 도저히 가망이 없는 죄인의 괴수가 맞습니다.. 이게 성화의 절정이에요. 최고 단계란 말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의 승리예요.
그렇게 믿음에 장성한 자가 되게 하시려고 아직 이 세상 어둠의 주관자들, 권세와 악한 영들의 통치를 허락하고 계신 것입니다.
(요일 5장)(새번역성경)
19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런데, 온 세상은 악마의 세력 아래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났는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아직 악마의 세력 아래 놓여 있음을 성도들만 아는 거예요.
(벧전 5장)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이게 우리의 영적 현실이에요. 안 보인다고 없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오히려 안 보이는 영적 세계가 진짜 현실이에요.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은 앞으로 사라질 것들뿐이니까.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무엇으로 대적하라고 합니까? 믿음으로 대적하라..
우리가 살고 있는 영적 환경은 이런 환경이에요.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고 믿음에 굳게 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특권이 있잖아요. 기도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기도는 언제 하는 겁니까? 나의 약함과 불가능을 알 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게 기도잖아요. 믿음 역시 나에게 믿음이 없음을 아는 게 믿음을 선물로 받은 자들의 믿음이란 말입니다. 믿음이 선물로 주어지면 나는 정말 믿음이 없는 자라는 것을 먼저 알게 돼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 믿음의 방패가 있는 거에요.
이런 우리의 신분과 정체성,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현실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12절에 나오는 정사와 권세들, 세상 주관자들, 하늘의 악한 영들이 존재한다고 사도가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세상 사람들이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이게 진짜 현실이에요.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통치자들’을 옛날 성경에서는 ‘정사’라고 번역했어요. 이 정사는 마귀의 졸개들(알케)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마귀의 세력들도 어떤 질서가 있단 말이에요. 아래위가 있고 어떤 체계를 가지고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어요.
그다음에 ‘권세’(엑수시아)는 정치적 권력이나 힘뿐 아니라 이 세상 문화, 철학, 예술, 사상, 과학 등 전반에 걸쳐서 체계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어떤 힘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정사와 권세는 하늘나라에도 존재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천사가 하나님 보좌에 둘러서 있다고 하잖아요. 거기에는 천사장이 있고 그 아래의 천사들도 있어요. 각기 맡은 역할이 있단 말이에요. 마찬가지로 사단도 따르는 졸개들을 부리면서 그들을 다스리고 있어요.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작업하게 합니다. 넌 이 집사, 넌 정 집사, 마귀는 인간 각자의 가장 약한 부분을 알고 그것을 집중 공격합니다. 그렇게 여러분은 마귀의 섬김을 받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전신 갑주를 입혀주신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체계적, 조직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십자가 복음을 훼방하고 성도들을 넘어뜨리는 일을 세상 끝 날까지 하는 존재가 바로 악의 세력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성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입은 성도는 한 사람도 구원에서 탈락시킬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고 하나님을 누리는 기쁨을 잠시 방해하고 멀어지게 하는 일을 할 뿐이에요. 그러나 그것까지도 성도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시편에 나오잖아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왜?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기 때문에.하나님은 그렇게 고난 가운데서 만나게 되는 하나님입니다. 가장 힘들 때 바닥에 주저 앉았을 때 손을 내밀어 주시고 우리는 그분의 체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12절에 그다음에 나오는 게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입니다. 이건 마귀의 다른 이름이에요.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하나님의 다스림 밖에 있는 세계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는 모든 것이라는 의미로 세상이에요. 그리고 그들을 다스리는 세상 주관자. 그러니까 성도를 제외한 세상 모든 사람을 지배하는 게 이 세상 주관자입니다. 에베소서 4장에 나오는 이방인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엡 4장)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행하지 말라
이 이방인이에요.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쉽게 말하면 다 죽은 자라는 말입니다.
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요한복음 1장에 보면 빛이 어둠에 비치었는데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하죠. 바로 그 어둠을 말합니다. 그 어둠의 세상에 속해서 총명이 어두워지고 감각이 없어지고 모든 더러운 것을 정욕으로 행하게 되는 그 상태, 그러니까 세상에서 벌어지는 각종 범죄, 살인, 마약, 사기, 도둑질 성 폭행.. 등을 주관하는 배후가 바로 악한 영 마귀란 말입니다.
그다음에는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이 나오죠. 하늘에 있는 악한 군대들을 말하는데, 여기서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그 하나님 나라가 아니고 땅의 것이 아닌 그 반대 것으로의 하늘이에요. 이 말은 우리가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지상의 현상들을 초월한 영적 존재로서의 악한 영이라는 뜻이에요. 성경은 그들이 하늘에서 불도 내릴 수 있고 온갖 기적과 이 세상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신비한 현상들을 보여줄 능력이 있다는 게 바로 이 하늘의 악한 영들이에요. 그래서 하늘의 악한 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욥기서를 보면 하나님의 어전 회의에 사단이 참석해서 욥을 시험하는 일에 하나님의 허락을 구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렇게 사단은 하나님의 성도까지도 넘어뜨리고 밀 까부르듯 합니다. 택한 자라도 넘어뜨리게 하는 것이죠. 그러나 중요한 건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허락하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이에요. 결국 성도의 유익과 자라남을 위한 시험이며 우리가 영영 넘어지지 않게 하려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고전 4장)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질그릇은 언제라도 깨어질 수 있는 흙그릇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보배를 그런 질그릇에 담아주셨다고 해요. 왜 그렇까요? 질그릇은 깨어지고 보배만 오롯이 남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참 놀랍죠? 이게 성도들이 살아가는 영적 현실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욱여쌈이 있고 박해와 거꾸러뜨림이 있는 것은 보배,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미 이루어진 십자가의 승리, 부활의 생명에 우리가 참여되는 게 무엇인지를 가르치시려고 하늘의 악한 영들의 역사가 성도들의 삶에 나타날 수 있지만, 그것까지도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지극하신 보살피심이라는 것을 우리는 우리의 약한 질그릇을 통해서 마침내 배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사단의 세력까지도 성도들의 양육을 위해서 사용하시는 분이에요.
(계 12장)
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이게 교회예요. 남자, 예수를 낳은 여자 교회.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아까 말씀드렸듯이 성경은 시간을 빼고 읽는 책입니다. 이게 묵시의 현실로 이미 이루어졌고 또 앞으로 이루어질 일들.
용 사단이 교회를 핍박하는데, 그것을 14절에는 교회가 광야에서 양육 받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마귀의 세력은 교회의 양육을 위해서 하나님이 남겨두신 거란 말입니다.
그리고 그 마귀, 하늘의 악한 영들은 각종 자연 현상에서부터 사회적, 국가적 정치권력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고 세상의 전쟁과 살육, 각종 질병의 확산까지도 관여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성도의 생각과 마음에까지 작용해서 그리스도의 복음, 그 십자가에 대해서 의심하게 하고 때로는 두려움과 공포를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그렇게 성도를 낙심하게 하고 자괴감을 가지게도 하는 게 마귀의 역사예요. 그리고 선악과의 죄성, 즉 교만과 자존심 자기 주체성을 부채질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하기도 합니다.
구약에 보면 다윗이 그 마귀의 교만에 빠져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죠. 역대상에 보면 사단이 다윗을 격동시켜서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해요.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하자 그것으로 다윗의 공적을 스스로 챙기도록 만드는 거예요. 승리에 자만심을 가지게 해요. 왜 이게 여호와만의 전쟁이냐?.. 너도 보탠 게 있잖아.. 왜 하나님의 승리만 승리야?.. 그 승리에 기여한 게 다윗 바로 너잖아.. 그러니까 너의 승리를 계수해 보고 자랑해 봐.. 이렇게 스스로 자만심을 가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다윗도 사단의 꼬드김에 당한 거예요. 그래서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가르칩니다.
(딤전 3장)
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이건 교회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한테 직분을 주지 말라는 말이에요. 가르치는 일을 시키지 말라는 거지요. 교회에 보면 그런 사람들 있습니다. 자기 지식을 자랑하려고 아무나 붙들고 가르치려고 드는 사람 말입니다. 그게 바로 마귀의 정죄예요.
마귀는 이렇게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전략과 전술로 우리를 공격해 옵니다. 그런 영적 전투의 현장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 갑주가 아니면 단 한 순간도 우리 성도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낼 수가 없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모든 삶에는 이런 영적 전투라고 하는 전장이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기도하기를 쉬지 말고 항상 말씀으로 무장하고 깨어있도록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를 끝내면서 마귀 이야기, 영적 전투 이야기, 전신 갑주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겁니다.
이렇게 악한 마귀는 인간이 에덴에 태어난 그때로부터 하나님과 우리를 분리하려고 그 일에만 전력을 다하는 존재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할 만큼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진 세력이에요.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그런 그들 마귀를 대적하라고 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마귀의 간계를 대적하라.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앞으로 3주에 걸쳐서 아주 심도 있게 살펴볼 것입니다. 여러분도 집에 가셔서 6장 10절부터 마지막까지 짧은 본문이니까 여러 번 읽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전신 갑주, 우리의 영적 전투에 대해서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을 가지기 바랍니다.
때가 악합니다. 바울이 자기 서신에서 여러 번 이야기하죠. 복음이 실종된 악한 세대입니다. 세상 교회들은 온통 거짓 복음, 거짓 신학, 거짓 가르침에 장악되어 있고 어딜 가도 참된 복음, 그 복음의 진리를 들을 수 없는 악한 이 때에 그리스도의 복음만으로 충분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는 그런 여러분들을 악한 마귀가 끊임없이 시험하려고 할 것이고 넘어뜨리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장에서 우리 주님의 십자가, 그 승리의 영광을 온몸으로 체험하면서 승리의 영광의 찬송이 울려 퍼지는 그런 역사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우리와 함께하는 하늘의 천군 천사가 있기에, 주께서 강하신 오른 팔로 저와 여러분을 늘 지켜주시므로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끝으로 요한일서 4장을 함께 읽고 오늘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요일 4장)
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의 아들 됨을 위해서, 그 자라남을 위해서, 그 양육을 위해서 마귀와 천사까지도 우리를 섬기는 이 영적 현실을 우리로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고 나니 어찌 기뻐하고 찬송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원하기는 이 어둠의 세상을 향해서 당연히 할 말을 담대하게 외칠 수 있는 그런 복음의 군사들, 장성한 군사들이 되게 하시고 그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하는,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의 생명에 넘겨지게 되는 그 복된 교회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악한 세대에서 하나님을 만난 기드온처럼, 바알의 제단을 헐고 아세라 상을 찍는 그런 용사들이 다 되게 하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