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고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라고 증거된 아래의 본문 말씀에 있어 “스스로”라는 말씀이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혼동을 주는 면이 있고, 실제로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오해하고 있으며, 본의 아니게 그 자신은 하나님으로 인한 힘과 은혜로 행한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자기 자신이나 세상적인 힘과 방법에 우선을 두는 과오들을 적지 아니 범하곤 하는 현실과 실정인 것인데..
진정 여기서의 “스스로”는 자기 자신의 힘이나 세상적인 힘으로 인한 스스로가 아닌 것이고, 사실상 그 누구라도 그러한 것으로 진정한 할례를 행함과 함께 마음의 가죽을 베면서 여호와께 속하게 되는 것은 아예 불가능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이러한 “스스로”는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선물로 주신 자유의지에 의한 스스로로 인해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더욱 더 갈망하고 구하며 의지하고 누리게 되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아래 본문에서 증거되어 있고 강조하고 있듯이 심령과 영성에서의 묵을 땅을 갈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할례를 행하며 정말 마음의 가죽을 베고 제대로 하나님께 속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방법 외에는 달리 있을 수 없는 것으로..
그것은 다름 아니라 옛 사람과 같이 더 이상 자신의 힘과 의, 세상적인 능력과 방법들이 아닌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며 그 이름을 의지하는 것뿐인 것이고, 사실 그 외에의 다른 통로는 애초에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며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어둠과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을 어떤 식으로든 믿고 의지하는 것..
곧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여자의 후손에 대한 계시, 여러 모양의 피 제사와 희생 제물들, 회막, 유월절 어린 양, 모세를 통한 장대 위의 놋 뱀, 성전, 제사장, 선지자, 제사장과 선지자 역할을 했던 믿음의 선조들 등과 같은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서, 참으로 반드시 그렇게 덧입어야만 아무리 힘들고 심각해진 묵은 땅과 같은 심령과 영성이라도 기경할 수 있는 것이고, 진정하고 온전한 할례도 가능한 것으로 마음의 가죽을 날카롭게 베면서 하나님께로 제대로 돌이키고 속하게 될 수 있는 것인데..
실제로 반드시 그러한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로 인해서만 그 어떤 죄악들, 악한 세력들, 유혹들, 시험들 등과, 심지어는 절망과 불가능들과도 싸울 수 있는 것이고 이길 수도 있는 것이며, 게다가 수시로 범하게 되고 딱딱하게 만들며 추하게 하고 넘어지게 하며 병들게 하고 죽은 듯이 되게 하는 죄악과 세속과 정욕과 자기 소견과 우상과 불신앙들 등에서도 자복하고 돌이킬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그로 인해 사함과 나음들, 회복과 역전들도 생생히 누리게 될 수 있는 것이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최우선으로 하면서 다시 한 번 더욱 더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도 가능할 수 있는 것이고 그로 인해 가면 갈수록 더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충만케 될 수 있는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 잘 통찰해 보면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들부터도 하나님의 말씀에 있어 단 한 구절일지라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사모하고 읽으며 묵상하고 경험하게 됨에 있어서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열납하시며 생생하게 응답하시고 온갖 하늘의 은혜들을 부으심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누리고 강렬하게 체험하는 예배가 되고 기도가 됨에 있어서도, 더 나아가 삶의 자리에서의 산 제사, 산 제물과 같은 예배적 삶과 역사들, 누림과 열매들에 있어서도 결코 우리 스스로의 힘과 의, 세상적인 능력과 방법들로는 원론적으로는 아예 불가능인 것으로..
반드시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는 것이 절대적인 필수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와 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예레미야4:3~4)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6월 22일(토)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