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처럼 생긴 뱀… 어두운 땅 밑에 살면서 시력 퇴화했대요
장님뱀
지렁이를 닮은 장님뱀. 이 뱀은 대부분 몸길이가 15~30㎝ 정도예요. /호주 박물관
얼마 전 미국 애리조나주 한 국립공원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애리조나에서 살고 있는 뱀들을 소개하는 동영상이 올라왔어요. 크기도 색깔도 제각각인 뱀들 사이에서 뱀보다 지렁이에 가까워 보이는 자그마한 뱀이 유독 눈에 들어왔어요. 이 뱀 이름은 서부장님뱀(western blind snake). 세계에 200여 종류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장님뱀의 하나랍니다.
뱀 하면 커다란 아나콘다, 독을 뿜는 살모사나 코브라처럼 무시무시한 뱀들이 먼저 생각나죠? 그런데 독도 없고 크기도 자그마해 우리가 아는 뱀과 사뭇 다른 종류가 바로 장님뱀이에요. 장님뱀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좀 커다란 지렁이’로 오해하곤 하는데요. 이 뱀 생김새를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답니다. 우선 장님뱀은 대부분 몸길이가 15~30cm 정도예요. 심지어 10cm에 불과하기도 해요. 다 자란 지렁이와 별 차이가 없죠. 게다가 몸 색깔도 지렁이처럼 불그스름해요.
장님뱀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건 눈이 퇴화했기 때문인데요. 머리 부분에 검은 점이 박혀있는 것처럼 보일락 말락 한 눈으로 간신히 빛과 어둠만 구별할 수 있어요. 이렇게 눈의 기능이 퇴화한 건 거의 한평생을 어두운 땅 밑에서 살아가기 때문이에요.
덩치는 작지만 다른 뱀들과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먹잇감을 쫓는 사냥꾼이랍니다. 그런데 여느 뱀과는 뼈 구조가 달라서 아래턱과 위턱을 쩍 벌려서 커다란 먹잇감을 삼키지는 못해요. 가장 즐기는 먹잇감은 개미와 애벌레·알이죠. 덩치가 큰 종류는 노래기나 지네까지도 사냥하고요. 특히 개미 굴까지 들어가 사냥하는데, 개미들이 동족끼리 연락을 주고받느라 뿌리는 물질인 페로몬의 냄새를 맡고 위치를 알아낸대요. 덩치는 작지만 아주 무서운 사냥꾼이죠.
그런데 몸집이 작다 보니 장님뱀을 노리는 포식자도 정말 많답니다. 포유동물과 새, 다른 뱀뿐 아니라 거미에게 잡아먹히기도 해요. 이렇게 천적에게 쫓길 때면 꼬리 끝에서 고약한 냄새를 뿜어댄대요.
장님뱀이 가장 작은 뱀 무리라면, 반대로 가장 큰 뱀 무리는 비단뱀·아나콘다 등이 속해 있는 보아인데요. 이 두 가지 뱀은 덩치 차이는 엄청나지만 공통점이 있답니다. 바로 뼈에 뒷발 흔적이 남아있다는 거예요.
이는 상대적으로 진화가 덜 된 원시적 뱀의 무리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인데요. 뱀이 아주 오래전에 도마뱀과 비슷하게 생긴 조상에게서 네 발이 없는 지금 모습으로 진화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로 여겨지고 있죠.
최근엔 장님뱀이 없었던 지역에 외래종으로 침투하는 일도 생겨나고 있는데요. 꽃과 작물을 외국으로 보낼 때 장님뱀이 살고 있던 흙까지 함께 화분에 담기면서 벌어지는 일이래요.
정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