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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친구의 친구
글쓴이. 미요(美耀)
“희조야, 조금만 기다려줘. 얼른 올게.”
“알았어.”
겨울 방학. 방학에도 학교를 오는 이유는 보충 수업이 있기 때문이었다. 12시가 되면 모든 수업이 끝나고 난 지인이를 기다린다. 문학 보충 수업반 반장인 지인이는 교무실로 가서 선생님을 돕는다. 아무도 없는 텅빈 교실에는 아직 따뜻한 공기가 남아있었다.
“어, 어. 알았어.”
드르륵, 하고 교실 뒷문이 열렸다. 전화를 받으며 들어오는 사람은 같은 반 이시온. 1년 동안 같은 반이면서도 별로 이야기를 나눠본 기억이 없는 녀석이었다. 그 애는 복도쪽 분단 세 번째 자리로 가서 앉았다. 뭐야, 저 애는 왜 여길 온 거야? 귀에서 전화기를 뗀 이시온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얼굴을 묻었다. 나를 못 본 건가. 아무리 친하지 않은 사이라고 해도 인사 정도는… 그래, 안 해도 되지.
지―잉
책상 위에 올려놓은 내 핸드폰이 교실 안에 짧게 울려 퍼지자, 난 당황해서 호들갑스럽게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무심결에 나와 떨어져 있는 그를 보게 되었다. 눈이 마주쳤다. 저 무심한 눈동자.
“어, 있었냐?”
어? 어. 나도 그처럼 목소리를 무심하게 내뱉어 버렸다. 그리곤 다시 침묵. 무슨 말을 하는 것이 더 어색할, 그런 사이였다, 우리는. 이시온은 그대로 책상 위에 엎드렸고 나는 의자에 기대어 창밖을 내다보았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운동장.
눈부실 정도로 예쁘지만 춥고, 귀찮음이 그 아름다움을 다 즐기지 못하게 했다. 창밖에 수북이 쌓인 눈을 보며 한숨을 내쉬고 다시 책상에 눈이 갔다. 근데… 근데… 근데에―!
“바, 바, 바퀴― 아악!”
한 단어를 끝까지 내뱉지도 못하고 비명을 질러버렸다. 당연히 내 몸은 교실 뒤 사물함에 딱 달라붙었다. 그 덕에 의자는 쿵쾅거리며 교실을 나뒹굴고 있었고. 바퀴벌레가 내 책상 위에 꼼짝도 안 하고 서있다. 엄마가 호들갑인 나를 보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바퀴벌레가 네 비명 소리 때문에 더 놀라겠다. 쟤보다 몇 백배, 수천배 큰 네가 왜 무서워해?’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벽에만 붙어 있는데, 앞으로 스윽 지나가는 이시온이 보였다. 그리고는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나를 돌아보는 녀석.
“잡았다.”
녀석은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
나는 남자 애들과 친하지 않다. 남자가 싫어서 일부러 피한 건 아니고, 친해지는 방법을 모르는 것뿐이었다. 이시온도 마찬가지다.
내 친구 지인이의 남자 친구 고우혁의 친구 이시온.
지인이는 나와는 다르게 남자 애들과도 친하게 지내는 애였다. 고우혁, 이시온은 모두 중학교 친구였고, 오랜만에 같은 반이 되었다고 했다. 이시온은 여자 애들과는 별로 말을 섞지 않았지만, 남자 애들과는 막 뛰어 놀기도 하고 장난도 많이 치는 것 같았다. 뭐, 나야 별로 관심은 없었지만.
씨익- 웃던 이시온은 뚜벅 뚜벅 다가와 내 앞에 섰다. 키가 작은 나에 비해 엄청 큰 그의 거인 같은 그림자가 내 위로 쏟아졌다. 솔직히 그렇게 큰건 아니었고 내가 그토록 작았다.
“은희조.”
“어, 어?”
“여기.”
그는 내 앞에 책 하나를 내밀었다. 건내는 손길에 이유도 모른 채 책을 받아 들었다. 그 때, 손끝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감촉. 묘사하기도 싫은, 방금 전 나를 기겁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순간 나는 책을 구석으로 던져버렸고, 손을 신명나게 털었다.
“엄마야! 아아―”
핑글- 하고 눈물이 맺히고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아- 나 바퀴벌레 만져버렸어. 으앙.
어느새 주저앉아 울고 있는 내 머리위로 미안함 가득한, 그리고 어쩔줄 몰라 하는 이시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 미안. 야, 괜찮아? 장난으로 그런 건데…”
훌쩍이는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또 다시 사과를 한다.
“아, 진짜 미치겠네. ……나도 모르게 장난이 튀어나와버렸어. 미안해. 그만 좀 울어. 은희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고개를 들었을 때는 내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이시온의 얼굴이 보였다. 빤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눈빛이 큰 죄를 진 사람의 것이었다. 순간, 나는 그의 눈빛이 너무 웃기기도 하고, 조금… 귀엽기도 해서 눈물을 머금은 얼굴로 웃고야 말았다.
“풉-”
“……야, 너… 뭐야?”
“아……”
입을 가리며 표정을 굳히니 앞에 앉은 그의 표정도 굳어버렸다. 아- 실수 한 건가?
“웃어?”
“미안.”
은근 무서웠다. 무표정을 한 녀석의 얼굴은 그렇게 온화롭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는 이내 환하게 웃었다. 그것도 고개를 젖히며 박장대소를 말이다.
“너 완전 웃기다. 푸하핫.”
“뭐…가?”
“울다가 웃냐? 크하하.”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보지도 않은 사이인데도 녀석은 스스럼없이 나에게 다가왔다.
***
“그럼 너는 서지인 기다려?”
“응. 너는? ……아, 고우혁?”
“커플이 완전 쌍으로 민폐구만.”
“오늘 지인이네 집에서 다 같이 놀기로 했거든.”
이시온은 같이 시내에서 놀기로 했다며 고우혁을 기다린다고 했다. 우리 둘은 아까 그 자세로 쭈그려 앉은 채 대화를 이어갔다. 초록색 후드티를 입고 있는 이시온은 교복을 입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평소에 교복을 입은 모습은 -적어도 나에게는- 날카로운 모습이었는데 오늘 보니 잘 웃고, 말도 잘 했다.
“보충 뭐 들어?”
“국어.”
“아- 김영남 샘 꺼?”
“응. 너는?”
“수학. 나 수학 완전 못 하거든.”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교실 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다.
“어? 얘 어디 갔지?”
“야, 이시온!”
“왔냐?”
“그래. 형님이 왔…… 어? 은희조네. 안녕?”
“아, 안녕?”
“근데 여기서 둘이 뭐해?”
위를 올려다보던 나는 고우혁의 말에 벌떡 일어나며 치마를 털었다. 그 뒤로 오는 지인이가 보였다.
“여기 같이 있었네?”
“으, 응.”
“고우혁, 우리 어디 가는데?”
“음반 매장 먼저 가기로 했잖아, 짜샤.”
“아, 맞다. 가자.”
이시온은 아까 앉아 있던 자리에 가서 가방을 맸다. 내가 우뚝 서 있자 지인인 얼른 가방이나 매라며 부추겼다.
“어? 그렇게 입고 왔어? 완전 춥겠다. 목도리라도 하고 오지-”
“아침에 늦잠 자는 바람에 후다닥 나오느라 까먹었어.”
“춥겠다. 목이 다 얼겠어.”
겨울에 목도리를 챙기지 않으면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나.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찬바람을 맞이하자마자 목도리가 없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지각을 면하기 위해 그냥 뛰어 나왔었다. 지인이는 나를 걱정하다가 교실을 나가려는 고우혁에게 잘 가라며 인사를 했다.
“이시온, 안 가?”
“잠깐만.”
이시온은 나가려던 걸 멈추고 책상을 지나 내 앞으로 다가왔다. 무슨 할 말 있나- 빤히 쳐다본 내 앞에서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목도리를 풀러 내 앞에 건냈다.
“이거 해.”
“아, 아냐. 괜찮아.”
“그냥 해. 난 이렇게 후드 쓰면 돼. 잘 가라.”
그리곤 그렇게 가버렸다. 목에 닿은 따스한 온기에 내 가슴은 주책맞게도 두근거리며 평소보다 빠르고 깊게 뛰었다. 곤색 체크 목도리 하나가 이렇게 떨리는 물건일 줄이야, 나는 그 때 처음 알았다.
남자애들과는 거리가 먼 나는 이시온도 먼 존재였다. 아니, 어떤 애인지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그런 애. 그런데 어제 만난 이후로 그 녀석이 신경이 쓰이는 것이었다. 어제 지인이의 집에서 친구들과 얘기를 하는데 내가 멍하게 있었나 보다. 쉬지 않고 말을 하던 명은이는 나를 부르며 물었다. 그러나 멍하니 있던 내가 그 질문을 들었을 리가 없었다.
“어?”
“뭐야, 안 듣고 있었던 거야?”
“아, 뭐라고 그랬지?”
“넌 어떤 타입이 좋냐고- 우리 반에서.”
“난 그런 거 없는데?”
“에이- 거짓말.”
“아냐, 진짜야.”
내가 눈을 크게 뜨며 손사레를 치자 명은이는 장난이라면서 다시 말을 이어갔다. 진짜였다. 남자에 대한 안 좋은 기억도 없는데 유난히 또래 친구들에 비해 남자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명은이가 나에게 물었을 때, 어째서 이시온의 얼굴이 떠올랐던 걸까.
“오늘도 지인이 기다려?”
“아, 응. 너도?”
“응.”
보충이 끝나고 이미 모두가 떠난 자리에 이시온이 들어왔다. 이시온은 환하게 웃으며 내가 앉은 자리의 대각선으로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얘가 원래 이렇게 환하게 웃었던 앤가? 난 녀석에게 웃어주지 못하고 텅 빈 교실 어딘가를 응시했다. 침묵이 잠시 가라앉고 나는 눈길을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녀석은 망설이는 것 없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음악 들을래?”
“뭐, 그래.”
태연한 척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에 있는 자리로 옮겨왔다. 털썩 앉는 녀석에게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MP3을 꺼내더니 이어폰을 하나 건냈다. 남자애가 앞에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히 긴장이 되어 녀석의 얼굴을 힐끔 보고는 이어폰을 귀에 꼽았다.
노래를 틀더니 녀석도 이어폰을 귀에 꽂으려 했다. 그러다 이어폰이 짧아 내 귀에서 폭- 하고 빠졌다.
“아, 미안.”
“아냐.”
이시온은 몸을 내 쪽으로 기울이고 다시 이어폰을 꼈다. 녀석은 MP3 화면을 내게 들이밀면서 더 가까이 다가왔다. 눈썹 위에서 녀석의 부드러운 머리칼이 내게 살짝 닿았다 떨어졌다.
“이 노래 알아?”
“무, 무슨… 아, 알아.”
당황한 나는 그만 말을 더듬고 말았는데, 그럴 겨를도 없이 녀석은 내 눈을 바라보며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나 이 가수 되게 좋아하는데.”
“……나도.”
“너도? 정말? 와- 이 가수 아는 사람 처음 봤어. 별로 유명하지도 않고 애들은 가요만 들어서 모르는 애들이 더 많은데.”
내게 맞춰오는 이시온의 눈동자는 아주 까만색이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그래서 평온하기까지 한 그런 눈을 지녔다. 그러고 보니 창가에 스며든 햇빛이 녀석의 머리칼도 아주 검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녀석의 피부는 여자인 나보다도 매끄러웠다. 손이 저절로 올라가 이시온의 뺨을 만져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 정도로. 날카로워 보였던 눈매는 따뜻함이 묻어나는 눈빛 덕분에 더욱 멋져 보였다.
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배경음악이 되어 녀석과 정말 잘 어울렸다. 이시온을 보고 지은 노래인 것처럼 닮았다.
“나도 이 노래 좋아하는 사람 처음 봐. 이 가수 노래 중에서 이 노래가 제일 좋거든.”
“나도, 나도! 오- 은희조, 뭘 아는데?”
보는 사람마저 기분 좋아지게 하는 미소는 고른 치아를 내보였고, 내 얼굴에도 빨간 빛으로 내보이게 했다.
“오늘 뭐해?”
“……어?”
“오늘 서지인이랑 뭐하냐구.”
“음- 글쎄. 그냥 잠깐 놀다가 들어가려고.”
내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뜻밖의 말을 꺼냈다.
“그럼 넷이서 같이 놀자- 오늘.”
“넷이서?”
“어. 우혁이랑 나랑 지인이랑 너.”
시내로 향한 우리 네 사람. 우리는 주린 배를 붙잡고 패스트 푸드점으로 갔다. 사람이 길게 줄 서 있는 걸 보고 우리는 절망했다.
“고우혁! 네가 늦게 나오는 바람에 벌써 점심시간이 돼버렸잖아.”
“미안, 미안. 나라고 늦게 나오고 싶었나? 담팅이 붙잡고 설교를 하는 바람에-”
“그러게 공부 좀 하지. 쪽지시험에 46점이 뭐냐?”
티격태격하는 지인이와 고우혁의 뒤에 서서 무슨 메뉴를 먹을까 고민하며 까치발을 들었다. 앞에 서있던 키가 큰 사내에 가려 메뉴판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키가 작은 나를 탓해야지.
고개를 이리저리 추켜세우며 아무리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자 난 그저 한숨만 쉬었다. 그런데 뒤에서 쿡-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왜, 왜 웃어?”
“아니. 그냥 귀여워서.”
화르륵-
불길에 달아오른 내 얼굴이 보이지 않는지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메뉴판을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저런 말을 하고도 태연하게 있을 수가 있지? 혹시 선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메뉴판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이시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불고기 버거, 한우 스테이크 버거, 새우버거, 치즈 징거버거, 스파이시 치킨 버거…”
메뉴판을 쫘르륵 읽더니, 이런다.
“뭐 먹을래?”
“…….”
“안 보이는 것 같아서…”
난 멍하니 녀석만 바라봤다. 멋쩍은 얼굴로 웃는 이시온. 키가 큰 녀석을 위로 올려다보는 고개가 살짝 아려왔지만. 이내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새우버거.”
“뭐야- 왜 둘이 새우버거 먹어? 너네 버거 먹을줄 모르는구나?”
“왜 이러셔? 새우버거의 진정한 맛을 모르는 애들은 가라.”
지인이의 말에 이시온이 대꾸하며 한 입을 크게 앙- 하고 물었다. 녀석은 나와 같이 새우버거를 시키면서 또 다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더랬다.
“나도 새우버거 좋아하는데. 너도 좋아해?”
우리는 넷이서 처음 나온 걸 기념해서 영화관으로 갔다. 도대체 무얼 기념하느냐 내가 물었지만 고우혁은 끝까지 우기며 우리를 끌었다. 추운 바람이 불자 나는 칭칭 감은 목도리 속으로 고개를 푹- 파묻었다. 그렇게 앞에 가는 이시온의 발치만 바라보고 있는데 퍼뜩! 생각이 들었다.
“아, 목도리.”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코트를 입고 목이 다 드러난 채 걸어가는 이시온이 보였다. 난 그대로 멈춰 가방에 있는 녀석의 목도리를 꺼냈다. 진작에 줬어야 했는데.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체크무늬 목도리를 보자 나는 어제 느꼈던 설레임이 느껴졌다. 발을 살짝 빨리해서 이시온의 팔을 잡았다.
“어? 왜?”
멈춰서 돌아선 녀석은 무슨 일이냐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같이 가던 고우혁과 지인이도 우리쪽을 봤다.
“이거.”
목도리를 내밀자 녀석은 빙긋이 웃으며 내 손에서 그것을 가져간다. 내 손에서 따뜻함이 담긴 물건이 없어지자 찬바람이 손을 채웠다.
“고마웠어.”
“고맙긴 뭘- 오늘은 안 까먹고 했네. 근데 완전 따뜻하겠다. 거북이 같아, 빨간 거북이.”
칭칭 감은 목도리가 얼굴을 반쯤 가리는 걸 보고 말하는 것이었다. 내게서 받은 목도리를 간단하게 하며 장난스럽게 웃자 가슴이 욱씬 하고 반응이 왔다. 눈길을 돌리던 나와 지인이의 눈이 마주쳤다. 지인이는 내 눈을 보며 씨익 하고 웃었다. 마치 내 마음의 사정을 아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애써 모르는척 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서.
녀석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서.
이시온이 좋아져서.
순식간의 일이라 모르고 지나갈 정도로 빨리, 이시온이 내 마음 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
보충수업을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늦잠을 자기 일쑤인 내가 스스로 7시에 눈을 뜬 것도 기적적인데 학교 가는 길이 이렇게 가볍고 즐겁다니. 오묘한 일이다. 버스정류장 앞에 섰다. 발밑에 수북이 쌓여 있는 눈이 밟힐 때마다 꾸우욱 하며 소리를 냈다. 하- 하고 뱉는 숨결에 하얗게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누굴 혼자 좋아하는 것이 이런 것일까. 그 사람을 보면 화르륵 감정을 드러내다가, 이내 들킬까봐 숨겨버리는 그런 감정이 짝 사랑일까.
시온이와 말을 건지도 이제 일주일. 보충수업도 한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엄마가 이런 나를 안다면 분명 칭찬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교실로 들어서니 내가 제일 일찍 왔다. 그도 그럴 것이 설레임에 한 시간이나 빨리 와버렸으니까. 불을 켜고, 온풍기도 틀었다. 찬 공간 안에 혼자 앉는 것이 싫어 교탁 앞에 섰다. 워낙 추위를 잘 타는 나는 겹겹이 입고 목도리까지 두른 지금도 추워 죽을맛이었다. 덜덜 떨며 반을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훑어 봤다.
“저긴 내 자리… 저어긴 시온이 자리.”
녀석과 나는 서로 가장 먼 1분단과 5분단에 앉았었다. 그래서 녀석이 내 눈에 띄지 않았던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나를 깜짝 놀래키는 소리가 교실을 울렸다. 엄마야! 하고 놀랜 나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소리를 따라간 곳은 시온이의 자리였다. 왜 여기 핸드폰이 있지? 핸드폰을 들고 ‘형’이라고 쓰여 있는 액정을 한번 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어! 받았다. 여보세요?」
“네. 여보세요?”
「네. 여보세요?」
여보세요만 몇 번인지. 나는 인상을 피우며 액정을 한번 들여다보고 다시 귀에 가져다 댔다.
“누구세요?”
「전 핸드폰 주인인데, 누구세요?」
“주인? 그럼 이시온?”
「누구…… 희조야?」
시온이가 나를 희조라고 부르는 순간, 평소의 걸음보다 빠르게 뛰는 심장. 나에게 희조라고 하는 건 당연한 건데, 녀석이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는 순간 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쌔어버렸다. 어디냐고 묻길래 교실이라고 그랬더니 뚝- 하고 끊기는 전화에 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바로 교실 문이 드르륵 열렸다.
“하- 하- 여기 있었네.”
달려왔는지 숨을 헥헥 거리는 녀석이 날 보며 섰다.
“핸드폰 잃어버린줄 알고 완전 식겁했어.”
“그럼 주말동안 핸드폰 없이 산거야?”
“응. 뭐- 연락 올 데는 없지만 할부가 일년이나 남았거든. 잃어버리는 순간 아빠한테 끝장이지 뭐.”
녀석의 표정은 무표정일 때가 많다. 그래서 차가운 인상, 혹은 다가가기 힘든 인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며칠 새 내게 보여준 시온이의 얼굴은 따뜻함이었다. 웃는 모습은 물론이고 무표정일 때도 보이지 않는 따뜻함이 느껴졌다. 이 사람을 알게 되었다는 뜻일까, 나는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는 녀석을 바라봤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그냥, 눈이 떠져서.”
“헉. 그건 우리 할머니 대사! 베이비 페이스 가지고 그런 말 하니까 웃기다.”
“내가 무슨 베이비 페이스야?”
“내가 본 친구들 중에 제일 어려 보여. 5살이라고 해도 믿겠어.”
녀석은 이렇게 말하고는 개구지게 웃었다. 무표정일 때와 차이가 너무 큰 이 표정.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간지러움이 느껴진다.
다시 교탁 앞으로 가서 기댔다. 교실 안에 너와 나. 괜스레 기분이 좋다. 알게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는데, 녀석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뚜벅거리며 나에게 다가왔다. 1미터 앞에서 멈춰선 시온이는 한 발자국 더 앞으로 와 내 앞에 우뚝 선다. 녀석의 가슴팍이 내 코에 닿을 것 같다. 내가 녀석을 올려다보자 손을 내 머리에 턱하니 올리고 다시 내리도록 힘을 줬다.
“뭐, 뭐해?”
“잠깐만 가만히 있어봐.”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 웃으며 말하는 것 같다. 잠시 후, 녀석이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히익- 너 키 몇이야?”
“백 오십 오.”
“완전 작다! 여기까지밖에 안 와.”
시온이는 가슴팍 중간에 손바닥을 펴고 나를 바라봤다. 진심으로 놀란 표정이다. 갑자기 다가와 나를 놀래킨 것치고는 어이가 없는 이유여서 난 일부러 인상을 피우며 말했다.
“넌 몇인데?”
“백 팔십 육.”
“키 커서 좋으시겠어요-”
“헐. 그럼 삼십센티나 차이가 나는 거야? 완전 귀엽네. 꼬마야 꼬마.”
빈정거리며 말하는데 돌아오는 건 ‘귀엽다’는 말 뿐. 아니, 내 귀에 들리는 건 그것뿐이었다. 설레게 하는 말만 골라서 한다. 186센티나 되는 녀석을 올려보며 붉어진 얼굴을 숨기기 위해 눈을 흘겼다. 그렇지만 녀석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아- 갑자기 따뜻해졌어.
***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보충 수업이 끝나는 마지막 날. 막내 동생이 아픈 바람에 학교를 가지 못했다. 하루 종일 기운 없이 간병만 했다. 기운이 없었던 것은 그저 오늘이 보충수업의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라는 말은 아픈 동생 앞에서 하지 못하겠다. 열이 어느 정도 떨어지자 겨우 잠이 든 아홉 살짜리 동생. 방문을 빼꼼 열고 들어오는 도 다른 아홉 살짜리 동생이 보인다.
“희민이는 다 나았어?”
“응. 이제 괜찮을 거야.”
“근데 왜 언니가 더 힘이 없어? 어디 아파?”
“아프긴. 희수는 오늘 언니 방에서 자. 희민이 아프니까 혼자서 자라고 그러고.”
“응. 알았어.”
평소 까불거리던 희수는 쌍둥이 동생이 아플 때면 풀이 죽어서 희민 앓이를 한다. 귀여운 녀석들. 오늘 하루 그 녀석, 시온이의 얼굴을 보지 못한 건데 나는 왜 시온 앓이를 하는 걸까. 지잉- 하고 진동이 울렸다.
「동생은 다 나았어?」
문자의 밑에 번호가 떴다. 그 밑에는 이름이 보였다. 이시온 이라고. 곤히 자고 있는 희민이의 얼굴을 한번 들여다보고는 문자를 보냈다. 자음, 모음 한 자 한 자가 내 마음을 담아 줄까싶어 입술을 살짝 깨물고 집중하며 버튼을 눌렀다.
「응. 열이 이제야 내려서 방금 잠들었어.」
「힘들었겠다. 은희조! 나 배고파아아아아.」
「밥 안 먹었어? 지금 밤 열신데?」
「응. 완전 불쌍하지. 밥 좀 사줘.」
「크흐흐. 어딘데?」
「학교 앞. 빨리 와서 사줘 사줘 사줘 사줘.」
생긴 것과는 다르게 애교도 피우는 녀석의 문자에 피식 웃었다. 근데 부모님이 없는 지금, 동생들만 놔두고 나갈 수는 없었다. 입술을 꾹 깨물었다. 괜스레 서럽다. 만나고 싶다. 보고 싶다. 눈물도 날 것만 같다.
“희조야, 엄마 왔다.”
방문이 열리며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엄마의 얼굴을 보자마자 달려가 와락 껴안았다.
“엄마 고마워.”
“어머 얘가 왜 이래? 희민이는 괜찮니?”
“응. 열 다 내렸어요. 엄마, 나 잠깐만 나갔다가 올게.”
“이 시간에?”
“잠깐만. 친구가 여기 앞에 왔다가 얼굴만 보고 간데. 갔다 올게?!”
나는 엄마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겉옷을 챙기고 후다닥 달려 나갔다. 버스도 바로 오고, 뛰어 간 탓에 학교 앞에 15분 만에 도착했다. 학교 정문 앞에 서서 문자를 보냈다.
「나 왔어.」
문자를 보내고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무심결에 고개를 돌리는데 이마를 콩 부딪칠 정도로 가까이 있던 시온이. 아얏! 하고 작게 내뱉자 녀석은 날 내려다보았다. 가깝다. 키가 큰 시온이의 얼굴과는 많이 떨어져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별걸 다 다행이라고 한다. 눈을 위로 돌리며 녀석을 바라봤다.
“빨리 왔네.”
“아, 그게… 차가 빨리 달려서.”
얼버무렸다.
“어! 또 목도리 안 했네?”
“아……”
시온이는 내가 뭐라고 할 새도 없이 목도리를 풀렀다. 그때 그 목도리다. 내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던 체크무늬 목도리. 동생 돌보듯이 녀석은 내 목에 목도리를 두 번 감더니 한번 매듭을 맺는다. 따뜻한 목도리만큼 따뜻한 손길이다. 시온이의 손길은 내 마음을 성가시게 했지만, 그만큼 더 행복했다.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녀석을 올려다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검은빛을 뿜어내는 녀석의 눈동자는 여전히 따스한 검은빛이었다.
“됐다.”
“고마워.”
“고마우면, 밥 사.”
녀석은 손가락으로 코를 쓸으며 먼 곳을 바라봤다. 어디서 사줄까. 정말 사주는 거야? 응. 그럼 비싼 거. 비싼 거 말고 다른 거 사줄 건데? 싫은데, 난 비싼 거 먹을 건데.
유치한 말장난을 하는데 자꾸 웃음이 삐져나온다. 2주만에 우리는 친구의 친구의 친구라는 신분을 벗어 던지고 친구가 된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치 녀석의 옆자리가 내 자리 같았다. 그렇게 착각했다.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오늘 만큼은 그랬다.
***
오랜만에 교복을 입었다. 보충 수업이 끝나고 오랜만에 학교를 찾은 우리들은 친구들과 못다한 이야기 보따리를 푸느라 정신이 없었다. 교실 문 밖에서 있던 나는 그 애를 보는 떨림으로 교실 문을 열었다.
“어, 희조야!”
맨 앞자리에 앉아 나를 반기는 명은이의 얼굴이 보인다. 안녕- 하고 인사하고는 그 뒤에, 뒤에 자리를 바라봤다. 뒤를 돌아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이시온의 뒷모습이 보였다. 조금 짧게 머리통을 감싸는 밤톨 같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보충 수업이 아닌, 같은 반 친구로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더 반가웠다.
반가운 만큼 기운이 빠진다. 마지막 날이다. ‘이시온’과 같은 반인 날이. 책상에 엎드려 창가를 바라봤다. 보충 수업을 하는 동안 녀석과 나는 조금 친해졌다. 녀석이 스스럼없이 나를 대해줘서 난 가슴을 졸이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녀석과 함께했다. 좋았다. 이시온과 함께 했던 날들이. 1년 동안 왜 친하게 지내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의 마음이 가득 찼다. 방학 사이에 마음이 커져버린 걸까, 녀석이 내 가슴 안에 가득 찼다.
고개를 돌려 멀리 있는 시온이를 봤다. 이렇게 같은 반인데도 인사하기 힘든데, 다른 반이면 마주쳐도 인사하지 않겠지? 많이 친해진 것 같아도 함께 지낸 날들은 얼마 되지 않았고, 내가 생각해도 나는 시온이에게 보충 수업 2주동안 같이 지냈던 친구일 뿐이었다. 아니, 아직도 그저 친구의 친구의 친구일지도 모른다. 한 다리도 아니고 두 다리 건넌 사이의 우리의 연결은 여기서 끝이었다. 한숨을 깊게 쉬었다.
“그냥 고백해.”
내 뒷자리에서 소근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벌떡 일으켜 뒤를 돌아보니 지인이의 얼굴이 보였다. 흥미진진한 얼굴을 하고.
“뭐, 뭐?”
“그냥 고백하라고. 그렇게 죽으려고 하지 말고. 난 친구를 이렇게 잃고 싶지 않다.”
“무, 무슨 말 하는 거야-”
난 흘려들으려고 노력하며 무시했다. 그러나 내 친구 서지인은 끈기가 대단했다.
“이시온, 내 친구긴 해도 괜찮은 놈이야. 친구인 내가 보장할테니까 그냥 고백해.”
난 누가 들을새라 지인이의 입을 세게 막으며 조용히 하라고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조용히해.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맞구나? 하핫. 이 서지인님의 예감은 빗나가지 않으시고.”
“마, 마, 맞긴 뭐가! 참 너도 웃긴다.”
애써 변명을 하려 해도 난 결국 지인이의 끈질긴 공격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지인인 내 손을 잡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게 엎드려서 한숨만 쉬어봤자 해결 되는 건 하나도 없어. 용기내서 말 해봐. 너 분명 저 녀석 좋아해. 내 눈은 틀림없다구.”
“그렇지만, 너무 갑자기 좋아하게 되어서- 이 감정이 지나가는 거면…”
“아니. 분명 너는 이시온을 더 좋아하게 될 걸?”
지인인 확신을 담은 목소리를 냈다. 언니처럼 내 머리를 쓰다듬는 지인이. 내 짧은 머리카락을 따라 지인이의 손길이 닿자 괜히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자신감을 가져. 너처럼 귀엽고 예쁜 애가 또 어디 있다고?”
“에이- 그건 아니다.”
나는 괜히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반배정 표를 들고 끊임없이 쳐다보았다. 3학년 3반.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시온은 몇 반일까- 하는 생각에. 그런 내 생각을 끊은 사람은 지인이었다. 내 등을 툭 쳤다.
“오늘은 나 먼저 간다?”
“왜?”
“너 시온이 만나야 하잖아.”
“……뭐?!”
가방을 챙기며 나가는 아이들 틈에 내 큰 목소리가 짧게 울렸다. 이시온의 시선이 잠시 닿았다가 떨어진 것 같다. 어째서 이렇게 짧은 시간에 내가 너를 인식하고 신경쓰게 된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내가 문자로 이시온한테 이따가 끝나고 농구장 뒤편 수돗가에서 만나자고 했어. 아- 물론 네 번호로.”
“뭐?!”
이번엔 작게 소리를 냈다.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지인아- 어떡해! 나 어떡하냐고.”
울상을 지으며 지인이의 팔을 붙들었다. 이렇게 밀어주는 친구 있으면 나와보라그래! 지인인 장난스런 목소리를 낮추며 내 등을 토닥이고는 따뜻하게 말했다.
전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난 몇 명 남지 않은 교실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러는 사이 가방을 매고 시온이는 앞문으로 나가버렸다. 아- 먼저 가는 건가? 아니면 내 문자를 까먹은 건가? 카멜 색 코트를 입은 시온이의 뒷모습은 누구보다 멋졌다.
뒷모습만을 보고도 뛰는 내 가슴을 주체하지 못해, 일단 걸음을 옮겼다.
“후- 뭐라고 해야 하지?”
고백을 하라고? 나처럼 우유부단한 사람은 태초부터 고백이란 건 무리였다.
좋아해. 아냐, 임팩트가 부족해.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너를 보고 뛰는 내 가슴이 주체가 안 되고, 방학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네 생각이 나고…… 아냐, 이건 너무 구구절절 쓸데없어.
할 거란 계획도 없으면서 무슨 말로 고백할지 생각하고 있다.
어느새 발걸음은 농구장 뒤에 있는 수돗가로 향했다.
***
“좋아해.”
“아…… 나는…”
녀석의 당황한 얼굴이 보였다. 나는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숙이고 눈을 질끈 감았다. 망설이던 시온이가 입을 열었다.
“나는.”
“좋아해.”
“은지야.”
그렇다. 지금 고백하는 사람은 화단 속에 숨어 있는 은희조가 아니라, 같은 반 오은지였다. 은지는 얼굴도 작고 키도 크고 몸매도 예쁜- 그야말로 지나가다가 한 번씩 눈길이 돌아가는 인형 같은 애였다. 그만큼 예쁜데다가 애교도 부릴 줄 아는 남자 애들이 떠받들던 아이. 그런 애가 시온이를 좋아한다고?
난 기운이 쭈욱 빠졌다. 벽에 기대며 풀 사이에 털썩 주저앉았다. 저렇게 예쁜 애가 고백을 하면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남자들은 오케이겠지. 무릎을 세워 두 팔로 안아 고개를 묻었다.
내 첫 사랑의 첫 시련은 너무도 빨리 찾아왔다. 있는 용기, 없는 용기 다 꺼내서 여기까지 내려왔는데 그 용기가 쓸데없다고, 쟤가 다 가져갈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눈물까지 핑- 돌았다. 내가 녀석을 정말 좋아하나 보다. 핑- 돌고 말 것 같았던 눈물은 갑자기 강물이 되어서 무릎을 적셨다. 안고 있던 무릎에 내 눈을 묻었기 때문이다.
“……너는 내가 싫어?”
“아니, 친구로서 좋지만… 그 이상은 아니야.”
나는 얼굴을 묻은 채 귀를 기울였다.
은지는 웃는 얼굴로 -그렇지만 분명 쓰린 마음으로- 수돗가에서 발을 옮겼다.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사람이 고백 받는 장면을 봐버렸다. 쓰린 마음을 가지고 무릎에서고개를 들었을 때 난 흐엑- 하는 이상한 소리를 냈다.
이시온이 내 앞에 앉아 있다. 마치 처음 말을 건 날 같다.
“여기서 뭐하고 있어? 언제 왔어?”
“아까… 전에.”
“왜 불렀어?”
아, 이 상태로는 도저히 고백 할 수 없다.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눈알을 굴렸다.
“…안, 녕?”
난 인사말을 내뱉고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리 그래도 ‘안녕’은 영 아니었다. 풉- 하고 웃는 소리가 내 귓가를 찌른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인사도 못 했네?”
“…….”
“희조, 안녕?”
손을 흔드는 녀석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고, 나도 결국 픽 하고 웃어버렸다.
“왜 불렀냐니까? 완전 궁금해-”
그래. 고백하지 말자. 이대로가 좋다. 이렇게 인사해주는 녀석만으로도 좋다. 나를 보고 웃어주는 녀석으로 만족한다.
“몇 반이야?”
“뭐? 그거 물어보려고 나 부른 거야?”
“응.”
설마 그럴 리가. 피식 웃더니 또 내 마음을 간질이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이놈아, 너가 이러니까 내 가슴이 남아나지 않지.
“3반.”
“……어?”
“3학년 3반.”
“…….”
“너는?”
어떡해. 자꾸 입꼬리가 올라간다. 나는 기쁜 나머지 녀석을 보고 베시시 웃어버렸다.
“나도.”
진짜? 잘 됐다! 또 같은 반 됐네? 좋아좋아. 울 귀여운 꼬마랑 같은 반이네.
녀석의 웃는 모습에 용기를 내어 고백했다.
“우리 친구하자.”
“우리 친구 아니었어?”
“음… 그런가? 그렇지, 하하.”
친구의 친구의 친구 말고, 친구 하자고. 씨익 웃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녀석도 나를 보며 미소지었다. 어쩜, 시크하고 멋지고 댄디하고 따뜻하다. 단단히 빠져들었나보다, 너에게.
2월인데 봄이 왔나? 녀석의 온기 덕분인가? 따스함이 나를 감쌌다.
[★]
미요입니다.
써야하는 장편은 안 쓰고 이러고 있습니다.
단편이 너무 길어지고 말았으나, 올릴 곳이 여기밖에 없어서ㅠ.ㅠ 그냥 쭈욱 붙여버렸어요.
아아, 저도 사랑스러운 소설을 쓰고 싶으네요... ;ㅂ;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 복 받으실 거에요^_~★
잇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랑합니다.
첫댓글 ㅠㅠ우왕 뒷내용 완전 궁금해요ㅠㅠㅠ이어지길 바랫는대ㅠㅠ뒷이야기좀 써주세요1!!!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외를 쓸까, 편 수를 늘려서 조금 더 길게 이야기를 이어갈까 생각하고 있답니다!♥
충!분!히! 사랑스럽습니다! 끝까지 맺어진게 아니라서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나름 추리라도 할렵니다. 으힛.
바퀴벌레 등장으로 시작된 인연이라, 아 나는 왜 벌레라곤 눈곱만큼도 싫어하질 않을까요. 덥석덥석 잡으니 그게 더 문젠가;
재밌게 잘 읽었어요. 희조의 감정이 잘 표현되어서 점점 동화되며 읽었네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
바퀴벌레ㅋㅋㅋ 제가 벌레를 무서워 하거든요. 번외를 생각하고 마무리를 이렇게 아쉽게 써 버렸네요. 헤헷.
감정선이 잘 드러 나나요?ㅠㅠ 제가 제일 어려워하는 부분인데, 잘 표현되었다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0^♥
안이어지나요?? 저두 뒷내용 짱 궁금해요!!!
이어지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ㅋㅋㅋ 번외 혹은 조금 긴 단편으로 찾아뵐테니 기다려주세용! 감사합니다♥
아아아 고백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런......뭔가 배신당한 이기분....... 뒷이야기 써주세요!!!제발..ㅠㅠ
젭알ㅠㅠ 배신의 기분을 달달하게 채우기 위해서 고심을 하며 뒷 이야기를 잇고 있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헤헷. 감사합니다♥
흐헝....ㅠㅠㅠㅠ 결국안이어지는건가요?/ㅠ 번외 써주세여
흐엉- 울지 마쎄요ㅠㅠ 번외 준비 중입니다. 열씸히! 쓰고 있는데 이전보다 잘 써지지 않아서 고심하고 있어요ㅠ.ㅠ
뒷 이야기 나오면 그 때도 읽어 주세요! 감사합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번외기다려야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감사합니다! 번외란 참 좋은 것이죠! ㅋㅋㅋㅋ
뒷 이야기편도 읽어주신다면 전 정말 혼심의 힘을 다해서 쓰겠어요! ^_^ 기다려 주세요♥
요님빨리 써주세요ㅠ-ㅠ 진짜 오늘밤에 잠못자요 저
하핫 감사합니다! 잠을 못이루신다니ㅠㅠㅠ 번외(...라기엔 조금 긴) 올렸어요~
보러 와 주세요^.^♥
이보세요!!! 제발 번외 써 주세요ㅠㅠ ㅋㅋㅋㅋㅋㅋ 꼭 기다릴거예요!!
아앗! 1편 다시 올린 곳에 댓글 달아주신 헤민님!? 늦게 댓글을 봤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외를 읽고 싶은데 업네요 ㅠㅠㅠㅠㅠ궁금한데 ㅠㅠㅠㅠ
안녕하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외는 꽃잎 1번 방으로 옮겨서 연재를 했습니닷! 거기서 뵈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