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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1세기에 한 번쯤 나올 희귀한 천재"
그녀를 독일어 강사로 기용했던 서울법대 학장 신태환 교수는 전혜린을 이렇게 말했다.
무엇보다 머리가 좋았고,
광범위한 분야를 관통하는 지식의 양.
거기에 당시 '여성'하면 떠오르는 고정관념을 벗어난 기이한 행동까지..
분명 전혜린이란 작가는 특이했다.
그의 평이 엇갈리는 것을 떠나서 충분히 논란의 대상이 될만한 불가사의한 인물이었다.
그가 죽은지 몇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러 사람의 화두에 오르내리고,
또한 아직까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같은 작품들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만 봐도 현대 문학사에 그녀가 몰고 온 파장을 무시할 수 없다.
('전혜린 신화'라고 불리우는 이 현상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자살'이라는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한때는 20대의 여성이라면 반드시 자의든 타의든 거쳐가야 하던 작가가 전혜린이었으며,
<어떤 날>로 대표되는 전혜린의 글들은 사춘기를 지나 어느정도 머리가 자란 젊은 가슴에
속된 말로 '있어 보이는' '심오한 듯한' 그녀의 글들은 아는 것 자체가 지성을 대표하는 아이콘이었던 적도 있었다.
31살의 짧은 나이에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자살 후,
어쩌면 그저 평범한 여교수, 평범한 번역가, 평범한 문학가로 남을 수 있었던 그녀의 인생은 한순간 드라마틱하게 변모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몇년 뒤에 출간된 유고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불티나게 팔렸고,
이후 출간된 [전혜린, 천재의 불꽃놀이]와 같은 평전은
'요절한 천재 여류 작가'라는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완성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전혜린, 그녀는 정말 천재였고 진정 지식인이었을까.
그리고 후대에 지금처럼 이토록 '굉장한 인물'로 평가될만한 사람이었을까.
과거 한 사람의 평가에 대해선 모두 주관적인 견해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미 있었던 '사실'들 조차 인간의 기억에 의지해 후대에 전해져 내려오며 변질되어 가는 것임을..
한국 문학사중 진정한 천재라고 생각하는 이상에 대한 평가조차도 엇갈리는 시점에서
한 여류작가의 평가는 당연히 엇갈릴수 밖에 없는 일이지만, 생뚱맞게 전혜린이라는 인물을 걸고 넘어지는 이유는
문학사에서 이처럼 과대평가된 인물도 (도통 생각해봐도 근 50년간)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1살, 전혜린을 처음 알았다.
그녀의 알듯 모를듯 아리송한 사물에 대한 통찰력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어딘가 광기에 젖어 있었고, 끝없이 현실을 비판하고 이상을 갈구하는 그 모습이 멋져 보였고 왠지 '있어' 보였다.
그녀의 글들을 채 모두 접하기 전에 "천재"라는, 그녀를 항상 따라다니던 수식어는 그녀를 더더욱 비범한 존재로 만들었고,
도저히 50년대 여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개방적인 행동과 괴짜스러운 생각들,
거기에 화룡점정을 찍은 '31살에 요절' 이란 대목에서 난.. 뻑이 가버렸던 것 같다.
10번을 읽고 100번을 읽어도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추상적인 표현과 단어들의 집합체들을 그 때는 동경했다.
( <어떤 날>을 외우고 다녔던 연유는 아마도.. 유일하게 '알 것 같았던' 그녀의 글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분명 나조차도 그녀를 작가의 입장에서, 순수하게 '글'로써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녀의 외적인 요인들, 후대의 평가들을 보고 "편견"을 가진 채로 만났다.
과거의 인물들을 (특히나 유명하고 훌륭한 인사들을)현재 우리가 바라볼 땐 객관적인 시각으로의 판단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미 그 인물을 철저히 해부한 수많은 정보들이 지천에 떠돌아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예능계나 문학계에서 두드러지는 이런 현상은 단순히 그 인물의 '작품'만 갖고 판단하기에는 더더욱 어려워지고,
내게 있어 전혜린이란 인물은 그 중 하나였다.
유복한 가정환경..
29세에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 행정 양과에 합격한 천재소리를 듣던 아버지의 밑에서,
8남매의 장녀로서, 조선총독부 고급관리 부친.. 친일파 부모 밑에서 전혀 부족함 없이 넉넉히 살았다.
(그녀가 가장 빈곤하게 살았던 독일 뮌헨 유학시절 조차 당시 수많은 국민들의 생계형편보다 훨씬 나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부모님의 구속과 속박을 싫어했다.
두뇌가 명석한 아버지 밑에서 거진 모든 교육과정을 교육받고,
공부에 관한한 완벽하리만치 전적으로 후원해주고,
서울 법대 교수직에 오르기까지 많은 덕을 부모님에게 받았음에도
'어머니의 모성애를 느끼지 못했고,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다.'라고 그녀는 말하고 있다.
물론 모성애와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유복한 가정환경은 당연히 별개의 문제이지만,
받을건 다 받고 최대 수혜자인 당사자가 단순히 후원자의 의미와 존재를 '부모'란 울타리에 한정지어
부정해버리는 일은 참으로 뻔뻔한 일이 아닐수가 없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
등 따시고 배부르게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모성애'의 유무에 괴로워하던 그 시간에
최소한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시각이 있었다면, 너의 이웃이 굶주림에 고통받던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자신의 내적 괴로움에 앞서 다른 이들의 원초적 고통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21살, 내가 좋아했던 전혜린에 대한 지금의 내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글'에 앞서 미사여구에 현혹된 내 자신이
그녀를 비판함에 있어 또다시 '글' 외의 것으로 넘어온 것에 대해
나 역시 모순을 저지르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녀가 생전 가장 많이 썼던 말은 '권태'와 '광기'였다.
그 생활 자체를 권태로워했고, 항상 어디에 미쳐있고 싶어 했다.
이런 그녀의 성향은 아주 어릴때부터 나타나는데,
전혜린을 다룬 많은 평전을 보면 어린 시절부터 (아마도 중등교육 시절부터)그녀는 항상
'남들과는 다르게' '비범해야 한다' 라는 압박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시험기간 남들 앞에서는 공부를 전혀 하지 않으면서 뒤에서 피터지게 공부하는 스타일.
이 모습이 딱 전혜린의 학창시절의 모습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수없이 있다. 많은 이들과 그녀가 다른 점은 그녀는 '완벽한 결과'로 나타난다는 점이지만..
그때부터 그녀는 다른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동경어린 시선을 느끼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맛보았고 강박관념과도 같은 이 모습은 후에도 쭉 이어진다.
때문에 그녀가 남겼던 많은 수의 길고 짧은 글들은 '독특해야 한다'는 관념의 지배 하에 있었고
그 울타리에 갖힌 표현의 스펙트럼은 한정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추상적이고 비범해야 한다'는 틀안에 갖힌 그녀의 대다수의 글들이 '새롭다'는 느낌에 앞서 '난해하다'는 느낌이 드는 연유다.
다시금 언급하지만 전혜린을 얘기함에 있어 가정환경은 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표면적으로는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을 때조차도 안온한
소시민적 생활에 안주해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언제나 꿈과 이상에 쫒겨 방황했다."
-이덕희 [전혜린]中-
"나도 집시처럼 정처없이 춤과 노래와 사랑과 점치는 일로서 생활하면서 온 세계를 방랑했으면!"
"아무것에도, 아무 곳에도 안주 못하는 내 마음이 개탄스럽다. 아무 직업에도 질긴 욕망을 못 느낀다."
누구에게나 갈구하는 이상향은 있다.
부자라고, 가난하다고 자아실현의 의지에 대한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부자라고, 가난하다고 내적인 갈등의 차이가 있고 없는 것은 아니다.
부자리고, 가난하다고 고민과 근심없고, 괴롭고 죽고 싶은 것은 아니다.
허나 6.25 이후의 극심한 가난 속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아의 고민'은 커녕
하루 먹고 살기가 어려운 그 시대적 상황에서
단순히 현재 상황에 만족 못하고 '집시가 되고싶다'고 말하는 그 모습은...
그 시대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시대를 앞서 갔다고 해석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체험만큼의 위대한 가르침은 없다. 독일 유학 시절 생활이 '집시'에 대한 환상을 길러내준 것이라면 이 얼마나 철없는 생각일까.
(실제로 그녀는 줄곧 한국에 와서도 유학 시절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진정 후대에 남는 위대한 작품과 위대한 인물은 그 시대와 동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다.
한국의 근대문학사에서만 보아도 지금까지 '명작' '위인'이라고 평가되는 수많은 작품들과 인물들을 보면
일제치하 아래 시대적 상황을 관통하며 주옥같은 작품들을 만들어냈으며,
시대와의 교감이 있었기에 '신화'로 남을 수 있었다.
그녀의 배부른 투정으로 보이는 집시타령은.. 앞서간게 아니라 '시대에 무지'한 것일수 밖에 없다.
바꿔 생각해보면 지금 누가 이 말을 한다면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전혜린의 이 말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1960년과 2007년,
47년이란 기간의 격차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각의 차이다.
일명 '전혜린 신화'는 젊은 나이의 자살로 인해 완성되었다.
불꽃처럼 살다간 인생.
강렬했던 인상과 비범한 행동들.
1세기에 한번 나올까 한 희귀한 천재.
한국 여류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
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건 개개인의 몫이다.
허나 그녀를 단순히 '신화적인 존재'로 당당히 한국 문학사의 천재의 대열에 올리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녀에 관한 전설적인 이미지들은 단순히 주변 지인들의 입을 통한 정보들일 뿐이며,
이 모든 것들을 그녀의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을 수 있는 '글'로써 다른이들에게 그의 재능을 설득시키기엔 부족한게 사실이다.
전혜린, 그녀는 어쩌면 20세기 최고의 이미지 메이킹을 통해 '천재'의 옷을 입은 평범한 여인이었을지도 모른다.
(현시대에 전혜린이란 문화적 아이콘을 만들어낸 8할은 그녀의 죽음 이후 출간된 평전에 의한 이미지 메이킹이라 생각한다.)
"참으로 중대한 철학적 문제는 하나밖에 없으니 그것은 자살이다" 라는 카뮈을 말을 가슴이 깊이 품었던..
끝없이 갈구하던 현실도피를 '글'이 아닌 자살이란 방법으로 비겁하게 피해갔던 나약한.. 한 여인.
나의 운명이 고독이라면
그렇다. 그것도 좋다.
이 거대한 도회의 기구 속에서
나는 허무를 뼛속까지 씹어보자.
몇 번씩 몇 번씩
나는 죽고 죽음 속에서,
또 새로운 누에가 눈뜨듯
또 한번,
또 한번!
하면서
나는 고쳐 사는 것이다.
다시 더!
하고 소리치며
나는 웃고 다시 사는 것이다.
과거는 그림자 같은 것, 창백한 것,
본질은 나이고
현실은, 태양은 나인 것이다.
모든 것은 나의 분신,
자아의 반사에 불과했던 것이다.
-전혜린 <어떤 날>-
ps.그냥 잠 잘려다가.. 전혜린 에세이를 읽다가 문득 생각나서 써 봤어요.
너무 심각하게 읽지는 말아주세요..^^;;
첫댓글 전혜린 하면........뭐랄까 느낌이 묘하다긔.............옛날 작가들은 뭔가 심적고통이 컸던거같아요.....
재미있다규!!!! 게시물 멋지네용
전혜린을 천재라거나 문학사의 획을 긋는 작가라고는 생각해본적은 없지만, 전혜린이 느꼈던 권태와 욕망을 가지고 싶어한 마음을 이해해서 그런지 꼭 그 어려운 시대에 그런 배부른 투정을 했다고 비난할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되요. 단지 그런마음이 시대상황과 어울리지 않았을 뿐이죠- 객관적 상황이라는게.. 꼭 사람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꼭 올바른 잣대는 아니고, 주관적인 상황이라는건 상대적이니까요
22222222222 저도 이 분 댓글에 동감한다긔. 인간 내면에 스며든 걸 꼭 객관적인 시대 상황과 결부시켜서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긔. 나도 권태와 욕망에 대한 심정을 이해해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객관적 상황들과 자신의 내면과는 별개인거 같다긔. 그리고 다른 사람들 또한 시대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겪는다고 가정해도 그 마음에 담겨있는 고독과 고통이 피어날수 있다고 생각한다긔.
3333. 동감... 전혜린에 대한 지나친 미화는 싫어하지만 자기 나름대로 치열한 내적 투쟁을 한 작가라는 점에서 이견은 없음. 고독, 고통, 방황, 반항은... 배고픈 자에게는 배부른 자의 투정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삶의 근간을 뒤흔드는 끝없이 채워지지 않는 욕구..그래서 더 고통스러운 것.
테클은 아니지만 그 범인은 이해할수 없는 치열한 내적투쟁이라는 것이 과연 전혜린에게 존재 했을까가 저는 의문. 고작해야 결혼생활에까지 권태를 느끼고 불륜을 저지르고, 결국은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자살하고. 저는 그냥 스무살에 처음 여자애들이 전혜린 전혜린 하길래 한번 읽어보고 천재라기보다 호르몬 이상에 의한 우울증이라고 생각했음. 천재랑 '비범'함과는 동의어가 아닌것 같아요. 천재란 말은, 특히나 문학적 천재란 말은 전혜린한텐 어울리지 않는것 같아요. 그래서 전 그냥 그녀가 원했던 것처럼 좀 특이했다고 말하고 싶네요 그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과한 풍요의 결과랄까.
김명민이정재 님말도 공감해요~ 저도 전혜린이 내적투쟁을 철저히 했다기 보다는 우울증때문에 그랬다고 생각하는 편이니까요. 위에도 밝혔듯이 전혜린이 천재라고 생각해본적은 없구요, 그냥 그녀가 느꼈던 권태와 우울함 혹은 몸부림 같은 심정까지 묶어서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닌것 같다는 뜻이었어요 ㅋ
전혜린 책들 읽다보면 괜히 독일 슈바빙에 가야할것 같은 세뇌를 당한다규 ㅋㅋ
님 생각이 저랑 비슷해서 놀랬어요 전혜린좋아하면서도 항상 글을읽으면서 이런생각했었는데 반가워요 !
222222222 고등학교때 전혜린 참 좋아했는데 대학와서 에세이며 시며 다시 읽어보니 또 느낌이 다르더라구요. 저런 시대적 상황까지 고려에 넣으면 더 그렇겠죠.
완전 ..갠 소 할게요!
하도 전혜린 전혜린 그래서 누군가 하고 저도 저 에세이들 읽어보고 평전도 살짝 읽어봤는데 그냥...천재라기 보단 우울증걸린 허영쟁이 같았어요.예술가 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저랑 비슷하시다.
사실 저도요..생각보다 과장되어 있는 느낌
저도 왜 이 사람이 천재인지 알수 없어요. 적어도 작가라는건 시대와 같이 살아가야하는게 아닐까요
저도 사실 좀 이렇긔................너무 자기 꿈과 허영에만 사로잡힌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기억이 나네요.
불꽃같이..살진 못했죠. 요절의 문제가 아니라 그녀는 집시의 삶을 갈구했지만 아내였으며 어머니였고 생활을 위해 일을 하였으니까요. 결과적으로 그녀가 내놓은 작품들도 에세이, 번역 뿐인것 처럼.. 오히려 자신의 이상에 구속당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걸.. 하지만 그래도 전혜린이란 존재자체를 알게 된거에 굉장히 감사하게 되요.
와~~~ 저도 스크랩하겠습니다!! 감사해요!!
천재가 되고 싶어했던 것 같아요 굉장히 유식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그치만 본인도 자기 한계를 잘 아니까 그래서 좌절했겠죠 저도 학림다방에 가보고 싶어요 (아 동생 전채린씨도 번역일을 하더라고요 이분은 불어던데, 깜짝 놀랐음)
게시물 정말 잘읽었어요!
음.........천재도 아니지만 범재도 아니고........시대를 보지 못하고 유복한 생활을 누린 주제에 불평을 했다라.....인간의 감정이 다 같을 순 없는데......어쨌든 글들의 쓸데없는 미사여구들. 난해한 추상적 표현들이 그저 멋들린 글이라는 것엔 동감하긔.
죽기 전에 소설을 구상중이었다고 하던데 그 소설이 나왔다면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를 일이죠. 에세이만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운 듯. 저 에세이들은 발표용으로 쓴 것도 아니고 대부분 일기에서 발췌한 것들인데요.. 시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것만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권력에 야합한 것도 아니고..
똑똑하고 굉장히 감성이 풍부하다못해 넘치고, 지극히 예민한 우울증 소녀
오 잘읽을께요~~~고맙습니다^^
담아갈게요...생각을 참 깔끔하게 정리해서 쓰시는 것 같아요...전혜린 책 다시 읽어봐야 겠어요 ^^
고딩때 전혜린책봤다가 너무 난해해서 머리아팠던 기억이 새록새록....지금 보면 또 어떨지모르겠음
우와~ 재밌게 잘 읽었다긔~ ^^ 근데 위에 전혜린 글들 보니까 정말 겉멋 작렬이라는 말밖엔 안떠오르네요;;ㅋㅋ
천재가 맞다 아니다를 시대와 같이 했다 안했다로 판단할 순 없는 것이지 않냐긔; 세상의 모든 천재들이 시대에 관심을 갖었던 건 아니니까 ....그리고 전혜린을 모르고 전혜린 글을 하나도 읽지 않고 이 글만 보면 ..진짜 전혜린은 허영덩어리 철부지같이 느껴진다긔 ㅋ 근데..전혜린이 천재라는 의견엔 차이가 있을 수 있어도..그 시대에 대단한 여자였던 건 맞는 것 같다긔...그리고 누가 보면 배부른 투정같아도 당사자에겐 그게 고통일 수 있는 것이 마음속 문제 정신의 문제라긔.....
222222222222 동감...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이 글은 그녀가 '천재가 아니다'라는 전제하에 쓴 글이 아니예요. 그녀를 바라보는 수많은 시각 중에 일부분일 뿐이죠. 비범했던 여인이었던것만큼은 확실하니 논외의 문제고, 이런 시각으로 전혜린을 바라본 이유는 검증되기조차 힘든 짧은 단편들과 지인들의 입만을 통해 심히 과대포장된 그녀의 이미지와 평가를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보면 이렇게 받아들일수도 있다. 라는 관점에서 써보았어요. 이 글로 인해 처음 이름을 접하시는 분들에게 생각없는 허영덩어리라는 생각을 심어주마! 라는 의도는 아니었음을 밝힙니다..ㅠ_ㅠ
맞아요. 저두 전혜린이 시대를 넘나드는 총아! 이렇게 생각되지는 않구 다만 그 시대에서 여자로서 뭐랄까 한 인간으로 대접받고싶었던 마음이 너무 강해서 고뇌가 깊고 깊어서 결국 폭발한 인간이라고 생각해서리..그리구 전혜린에 대한 마음은 다들 존경, 찬양, 부러움..이런것과는 거리가 멀지 않나요? 그 시대에 느꼈을 전혜린 마음같은것에 대한 조금의 동감이랄까..아련함이랄까 뭐 그런 느낌. 물론 동경이 있기도 하겠지만 그건 그 여자 인간의 삶에 대한 회의랄까 그런것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승화시킨거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지 짜여지고 멋진 삶을 산 한 인간으로서 동경하는 건 아니었기때문에..
전혜린이 과대평가 되었다는 것에는 동감하지만, 사람은 항상 자기 처지에서, 자기가 타고난 밑바탕에서 사고하고, 고뇌하고 생활하는거니까요. 가난하다고 꼭 불행한것도 아니고 부자라고 꼭 행복한것도 아니라는 것은 아닌것처럼... 자기만의 고뇌는 아무도 모르는거지용 ㅋ
좋아요 이런 관점. 좋아요~ 한평생 내면이 고단했던 여자 같기는 해요
잘읽었어요 스크랩해갈께요 ㅎㅎ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상도, 천재가 아닐 수 있긔.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어요?
그런데 저 시대에서는 정말 천재일 수 밖에 없어요. 그 시대만 해도 자아에 대해서 저정도로 생각하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지 않나요? 해방이후 문학들 중에서 전혜린만큼 진지하게 내면으로 파고들어가는 작품은 거의 없는듯 하고. 지금 시대에서 보면 별로 느껴지는게 없을 지 모르겠지만 우리 한세대 전만 해도 거의 센세이션을 일으켰죠. 모든 대학생들이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신호탄(?)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난 전혜린 글이 어렵다고 느낀적 한번도 없었는데.. 오히려 전문작가들에 비해 글이 서툴다고 할까.. 하고싶은 말은 한가득인데 세련되지 못하고 거친, 그래도 자기내면에 솔직한 모습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죠.. 물론 전혜린이 과대평가된 부분은 확실히 있지만 한 작가를 사회주의적 관점에서만 판단하려는것도 한국문학자들의 특징일듯.. 그런 기준이면 제인오스틴도 욕먹어야 마땅해요. 암튼 난 전혜린이 스무살 전후 시기의 소녀들의 가슴을 관통하는 풋사랑같은 작가라고 생각해요.ㅎㅎ
2222222222222222222222222 자기마음속에서 하고싶은말은 많은데 표현하는게 서투른듯...............
저분 책 두권 다 샀어요. 읽을때마다 이게 어떻게 1950년대에, 50년도 더 전에 나온 책인지....진짜 지금 현대에 나왔다고 해도 믿을걸요. 읽을때마다 그 음울하고 습기찬 분위기에 폭 빠져버려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
전혜린을 왜 천재라고 하는데요? 그 이유가 이 글에 안나와서, 뭐라 말할 수 없음.. 천재라고 하는 이유를 반박하지 않고, 단지 배부른 투정이라고 단정짓기 때문에 뭔가 합리적이지 않은 비판. 전혜린은 잘 모르지만, 이 글만 읽어봤을 때, 이 여자는 자아성찰 능력이 탁월한데요,,
내가 소피아를 좋아하는것 만큼.. 나에겐 앞으로도 전혜린~ '나는 언제나 내가 되겠다~'
모든게 너무 풍족하면 삶이 지루해지는법.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라는 책이 생각나네요. 전쟁이 끝난후에 수많은 정신병자가 생겨날것을 대비해 만들어진 정신병원에 오히려 환자가없었다고. 사람들은 당장의 생계를 걱정하면 오히려 우울증 이런게 걸릴시간이 없었다는거죠. 나는 전혜린 좋아요. 자기자신에게 질렸을수도 있겠죠. 노력한것보다 더 잘나오는 결과와 모든게 풍족한삶이 허무해졌겠죠. 더이상 이룰수 있는게 없는듯한느낌. 그리고 풍족한 삶이 다가 아니겠죠. 부모에게 받는것은 넉넉한 물질이 전부가 아니기때무에.
22 지긋지긋한 권태로움이야 말로 정말 힘겨운 자신과의 싸움...
전혜린 글은 딱 사춘기 소녀때나 감동받죠. 대학와서 보면 참 허세에 웃음나오는....전혜린 자체가 좀 깊이가 얕다고 할까 그런 사람같아요. 고심이 없었으니 자기고민안에 갇힌 고독과 고통..그것뿐
그녀의 예술성이나 문학성에 대한 것보다도 어려웠던 시절에 부유하게 자라 남들 고통 모르고 방황했다라는 식의 주장에 좀 더 초점이 가 있는 거 같아요. 전혜린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리고 부유한 환경에 고마움을 갖고 주변 사람들의 어려움까지도 살펴보는 '대인'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생각은 하지만, 인간 개인이 그러기가 쉽지가 않죠. 객관적 지표의 우수성이 그 사람의 내면적 행복과 불행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도 아니고, 또 그러한 환경이기에 오히려 그 개인에게는 또 다른 굴레가 있었을 수도 있고요. 위에 몇 분들이 지적했듯이 모든 것이 풍요롭기에 오히려 삶이 비어있는, 이성으로는 컨트롤하기 어려운 허무에 빠지고,
방황에 몸을 맡기는게 인간이라는 생물이기도 하니까요. 또 전혜린의 어린 시절이 정확히 어땠는지 알 수는 없지만 사랑과 정이라는 인간적 교류의 부재가 객관적 조건을 뛰어넘는 행복의 기준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고요. 단적으로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50년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지만 오히려 정신적으로는 빈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적지 않죠.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