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가 최악의 '입법공장'으로 전락했다. 하루 평균 수십건의 법안이 올라온다. 선진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과잉입법이다. 과부하가 걸린 국회의 입법 시스템은 법안을 제대로 심사하기 힘들 정도다. 입법공장으로 전락한 국회의 부작용도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정작 필요한 법안은 정쟁으로 제 때 통과되지 못하는 반면 불필요한 중복법안으로 과잉 규제 등 졸속 입법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4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21대 국회에서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을 전수조사한 결과 공동 발의자 중 반대나 기권 표결을 한 의원은 총 19명이다. 이들은 법안 발의자에 이름을 올려놓고도 정작 본회의 표결에선 찬성 투표를 하지 않았다.
공동 발의자로서 반대 표결을 한 의원은 3명이다.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이 공동 발의한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 개정안에 반대 표결을 했다. 이 법안은 상임위원회에서 수정 없이 원안 가결됐다. 박 의원 측은 "공동발의를 했는데 반대를 누를 이유가 없다"며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21대 국회에서 공동 발의자 중 본회의에서 기권표를 행사한 의원은 16명이다. 상당수 의원들은 "단순실수"라고 해명했다. "투표 과정에서 잘못 눌렀다"(이상직 무소속 의원), "회의 속도가 너무 빨라 찬성을 누른다는 게 반영되지 않았다"(박완수 국민의힘 의원) 등의 설명은 유사했다.
실수라는 해명 외에 '합리적인' 해명을 내놓은 의원실은 한 곳 뿐이었다.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본인이 공동발의한 사립학교교직원 연급법 개정안에 기권했다. 개정안은 사학연금의 공매도 금지를 규정한다. 당초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등 다른 직역연금과 시리즈로 발의된 법안이었다.
허 의원 측은 "본회의에 다른 (시리즈)법은 안 올라고 사립학교교직원 연급법 개정안 하나만 올라왔다"며 "다른 법안은 그대로 두고 사립학교교직원 연급법에서만 제한을 할 경우 형평성 문제가 있을 수 있어 기권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안 폭증 여파로 법안 반영률은 떨어지고 있다. 17대 50.3%(3766건), 18대 44.4%(6178건), 19대 7429건(41.7%), 20대 8799건(36.4%)를 기록했다. 20대에서 반영되지 못한 법안은 1만5342건으로, 10건 중 6건에 해당한다. 20대가 역대 최악의 국회로 기록된 이유 중 하나다. 가결률도 하락 추세다. 17대 25.5%, 18대 16.9%, 19대 15.7%, 20대 13.2%로 떨어졌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발의 건수보다 법안을 만드는 절차가 부실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게 문제”라며 “부실 심사와 축조심사 생략으로 법안 앞뒤가 상충 되는 등 부실 법안을 양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원들이 발의 건수를 일종의 성적표라고 생각하니 쓸데없는 비용과 규제를 초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