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에 해야 할이 있으니 움직이기 어중간하다. 한 순간이라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하지만 백수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 게으름뱅이가 된다. 결혼이주여성들과 한국어 공부를 하는데 준비도 하는 듯하더니 너무 어렵게 말하지 말라는 말을 듣자 공부도 시들해진다. 잘 알수록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해야 하는데 난 어리석다. 공부할수록 어려운 걸 말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까? 게으름을 피우다 후다닥 점심을 챙겨 먹는다. 1시에 나서 4시까지 3시간 동안 오봉산에 다녀오기로 한다. 땀을 흘리고 씻어야 할 곳으로 예당공공목욕탕을 찾아보지만 용추폭포에서 씻고 내려오자고 정한다. 칼바위 주차장 위 다리를 건너 나무 아래 차를 세우고 속옷과 겉옷을 배낭에 넣고 오른다. 경남의 관광버스 한 대가 서 있다. 모자가 없어 머리가 뜨겁다. 손수건을 꺼내 펼쳐 덮는다. 날파리들이 금방 달려들지만 수건이 막아준다. 맑은 계곡엔 사람들이 앉아 있다. 용추폭포를 지나 정상으로 바로 오른다. 정상에 한 사나이가 앉아 있다. 득량만 너머 고흥반도와 멀리 완도 섬을 본다. 푸른 하늘 아래 푸른 산과 파랑 바다가 그리고 청암 마을의 집과 논밭이 보기 좋다. 그 사나이가 떠날 때까지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예당 벌판 쪽을 보는 사이 그 사나이가 떠난다. 정상 인증을 하고 용추폭포로 내려간다. 정상에서 만난 사나이가 내 바지의 페인트를 보고 놀라며 피흘렸느냐 한다. 폭포 앞 물엔 한 젊은이가 폰을 세워놓고 사진찍고 있다. 난 신발을 벗고 옷을 입은 채 물로 들어간다. 물 잠긴 바위는 미끄럽다. 기어가다 깊은 곳에서 머릴 담군다. 이리저리 옮겨다니다가 석벽의 이름들을 또 본다. 난 구례의 칠의사도 잘 외우지 못하고 보성이 근대 명사 이 사람들도 잘 모른다. 어느새 3시 반이 다 되어간다. 서둘러 신발을 신고 뛰듯이 내려간다. 월평 다릴 건너 강골마을 쪽을 지나 고개를 넘는다. 예당저수지 낚시꾼 다니는 길로 들어가 앞뒤문을 열어 가리고 옷을 갈아 입는다. 4시가 지나 2층 공부방으로 올라간다. 민우 엄마 등이 간식을 나누고 있다. 바보는 프랑을 아직 가져 오지 않고 곧 오겠다고 전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