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의 정중앙, 국토의 배꼽으로 불리는 양구!
우리나라 최북단 양구엔 주민보다 군인이 더 많다는 얘기도 있다.
군사지역이라는 생각에 '여행지'로는 친근하지 않았던 그곳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래서'
더없이 좋은 여행지였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닳지 않은 곳,
오랜 세월 단절된 공간이었기에, 더 따뜻한 가슴으로 품을 수 있는 곳,
더욱 뜨거운 품으로 우리를 맞아주는 곳!
그곳이 양구였다.
46번 국도를 타고 북으로~ 북으로~ 향하는 길...
어느덧 양구가 '어서 오라'며 환영인사를 전한다.
그런데 그 환영 인사가 좀 특이하다.
"양구에 오시면 10년이 젊어집니다."
때 묻지 않은 청정 자연이 살아 있는 곳이니 어느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예고편 같다.
실제 미세먼지 농도가 전국에서 최저란다.
거기다가 국토 정중앙의 배꼽에서 나오는 정기를 받아 10년은 젊어진다는 것!
이 세상에 젊어지는 걸 싫어할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
그저 양구에 발을 디뎌놓는 것만으로도 젊어질 수 있다는
이 국가 기밀급 사실을 전 국민이 알게 된다면,
조만간 여기도 차량정체라는 고통을 감수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양구에 오면 10년이 젊어진다는 이 사실은 외부로 새어나가서는 안 될 것 같다.
양구 여행의 상징은 몇 년 전 일반에 공개된 두타연이다.
이곳은 방문전에 양구군청에 신청을 해야한다..
아무래도 민통선을 넘어가는거라,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곳은 아닌듯 싶다.
양구시내에 있는 양구군청 근처 집합지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인다.
간단히 인적사항을 기록하고, 두타연으로 이동하는데,
버스로 단체 이동을 하는 줄 알았더니,
각자의 차로 개별이동을 한단다.
열을 지어 맨앞 선두차를 천천히 따라오라고 하는데,
왕복 2차선 도로에 비상깜박이등을 켜고 줄지어 가는 10여대의 차량행렬의 정체가
맞은 편 차들은 꽤나 궁금 했을게다.
민통선에 이르자, 간단히 인원점검을 하느라 차가 멈춘다.
민통선...민간인 통제선!
민통선을 통과한는 것일 뿐인데도, 괜히 가슴이 뛴다..
이 철문을 지나자 네비게이션은 작동을 멈추고,
휴대전화를 꺼내보니, '통화불능지역'이라고 뜬다.
외부와의 완벽한 단절!
'신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전쟁이 나면 무너뜨려 적의 침공을 3분 늦추기 위한 '3분 저지선'!
살벌한 운명을 안고 서 있는 이 '3분 저지선'이
내가 꽤 많이 북쪽으로 들어와있구나 하는 것을 실감나게 한다..
한 눈에 봐도 꽤 오래된 듯한 다리...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두려움에서인지,
차들이 다니지 못하게 막아놓고,
그 옆에 새로운 다리를 하나 만들어놓았다.
새로운 다리를 만들면서, 옛다리를 허물어버리지 않은 것은 참 잘한 일이다.
낡아버린 이 다리 하나가 전하는 메시지는
100줄 글로도 다 담을 수 없을테니까...
이 길은 금강산 가는 옛길로 장안사가 30km 너머에 있다고 한다.
가깝지만 먼나라...
지척에 두고도 갈 수 없는 곳...
머리로만 생각하던 저 북녘땅을 마음으로 느끼는 순간이다.
드디어 두타연에 도착했다.
두타연은 국내 최대의 열목어 서식지라고 한다.
차갑고 깨끗한 강물에서만 산다는 열목어가 이 곳에 산다.
직접 보지 않아도, '열목에가 서식하는 곳'이라는 명성만으로도
두타연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문화해설사가 두타연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준 후
두타연을 돌아볼 수 있도록 1시간의 자유시간을 준다.
왕복 4km!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생태의 보고!
그 보호막은 DMZ였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관광객들에게 개방하면서, 인공적인 요소를 일부 가미했겠지만,
이곳의 오랜 주인은 계곡이요, 풀과 나무들임을 부인할 수 없다.
똑똑똑~ 잠시 들어가봐도 되겠냐고, 소리없는 노크를 해본다.
내금강에서 흘러온 물이 10m 폭포에서 떨어지면서 소(沼)를 만들었는데,
여름철엔 그 깊이가 20m가 넘는다고 한다..
그렇게 내려온 물이 평지를 만나서 만들어진 것이 두타연이다..
높이 40m의 바위가 병풍을 두른듯 둘러싸고 있고,
암벽에는 3평 정도의 굴이 있는데,
저 동굴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두타연은 비가 오면 물이 불어나서 징검다리가 자주 물에 잠긴다고 한다.
그래서 아래에 다리를 하나 따로 설치했으니!
그 다리가 바로 "두타교" 다.
두타교는 출렁다리인데, 한걸음 한걸음 내디딜때마다 출렁출렁~
여러 사람이 함께 건너려하면, 발걸음 수만큼 출렁출렁~
속도 울렁울렁~
후다닥 뛰어서 건너고 싶지만,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두타연 계곡의 풍경도 장관이라,
세상에서 가장 느린 걸음으로 걸어본다.
자연이 주인인 이 땅에,
사람이 편히 걷겠다고 곧게 낸 길을 보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좌우로 늘어서서 푸르른 손짓을 해주는 풀과 나무들이 고맙다.
그런데...
이곳 두타연엔 자연에 완전히 심취되는 것을 방해하는 무리들이 있다.
폭발물 위험 경고...
지뢰 및 폭발물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은 곳이란다.
영원한 군미필자라 M-14 대인 지뢰가 뭔지,
크레모아가 어느 정도의 폭발력이 있는 건지는 잘 모르나,
"폭발물" 이라는 세 글자가 안겨주는 공포는 꽤 크다.
어디에 지뢰가 묻혀 있는지 모르니,
산책로 외엔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말라고 경고한다.
어딘가에 있을 폭발물을 생각하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산책길은 안전하겠지만 어쩌다가 내가 지뢰를 밟는다면...??
으~ 끔찍하다.
그래도 설마...그런게 진짜 있기야 하겠는가.
적당히 겁을 주려 한 것이겠지...
생각하며 조금 긴장을 풀고 걷는데...
보는 순간 얼어붙게 만드는 안내문이 나타난다.
폭발할 수 있으니 접근하지 말라고??
뭐가 있기에??
하고 풀숲을 들여다보니 진짜 있다.
그러고 보니, 풀 숲 사이론 그러한 흔적이 꽤 여럿 있다.
그 무게만큼이나 가슴을 쿵 하고 짓누르는 포탄의 잔해들!
그 옆에서 생명력을 뽐내는 풀과 꽃들이 더 예뻐 보이고 대견해 보인다.
천천히~ 쉬엄쉬엄 걸어도 1시간이면 충분한 두타연길.
오는 이들의 편의를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여느 산책길에서나 볼 수 있는 인공적인 색채는 완전히 빼고,
"초자연"의 느낌으로 남겨두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살짝 남는다.
1시간 정도는 불편함이 다소 있어도 감수할 수 있는 시간이고,
최북단 민통선 넘어까지 달려온 것은
초자연의 세계를 느껴보고 싶어서인데...
너무 잘 가꾸어 놓았다는 것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두타연을 개방해 이렇게 와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데,
배부른 투정일까...
나무와 흙으로 만든 섶다리가 반갑다.
이 또한 매년 홍수때면 떠내려가 해마다 새로 만든다고 하는데,
이런 자연 친화적인 시설물들은 차라리 고맙다.
산책로 옆으로 또다른 길 하나가 있어 따라 가봤더니...
너른 마당이 나온다.
이곳은 옛날 "두타사"라는 절이 있었던 터라고 한다.
두타사는 <동국여지승람>에 등재되어 있어 창건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하는데,
조선중기 학자 이만부가 방문했더 1723년 이전에 폐사된 것으로 본다.
두타연이라는 지명 또한 1천년 전 두타사라는 절이 근처에 있었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한다.
지금은 마당 옆으로 탱크들만이 살벌하게 서 있다.
비무장지대는 살벌한 곳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이곳은 자연이 주인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임을,
닫혀 있었던 세월은,
단절과 고독의 시간이 아닌,
생명력을 맘껏 꽃피울 수 있는 시간이었음을...
오랫동안 자물쇠로 잠겨 있었던 상자를 열어보니,
그 상자 안엔 뜻밖에도 너무나 화려한 보물이 들어 있었음을,
그 상자를 열어버린 것을 후회하지 말아야 할텐데...
그렇게 내 발걸음 하나 옮기는 것도 조심스러움을...
두타연!
그곳에서 하나 하나 알아가고, 또 느꼈다.
글 & 사진
휴대전화가 안 터지는 자연으로 돌아가고픈
하 일 사 랑
※ 흐르는 노래는 우리 회원이신
이석현 법사님의 남인수 노래..
인생의 귀향지 입니다..
회원님들 즐감 하세요..
첫댓글 ...'자연이 주인인 이 땅에 사람이 편히 걷겠다고 곧게 낸 길을 보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감사합니다.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 셋째도 건강입니다, 하일사랑님.
청정지역을 노크하는 하일사랑 님의 겸허한 자세에 외경심 마저 듭니다.
사진이며 글이며 어쩜 이리도 때묻지 않은 소년의 시각으로 이끌어 주시는지요
아울러 이셕현 님의 '인생의 귀향지' 또한 가황님의 모창에 그치지 않고 혼과 열정이 가슴을 활짝 열게 하네요.
2015 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