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엔 시계가 고가품이었다.
너무나 갖고 싶은 물건 1호였다.
우리 반에 단 한 명 아버지가 의사인 친구만 시계를 차고 있었다.
누가 몇 시냐고 물으면 그 빛나는 손목을 들어올려 시간을 불러주곤 하던 그 시절.
드디어 나도 시계를 사게되었다.
추석과 설날에 모은 돈으로 아버지가 사 주시기로 했다.
그 날 저녁 아버지의 퇴근 시간은 왜그리도 더디게 가는지.
은색 줄로 된 번쩍거리는 시계.
그렇게 뛸듯이 좋아해 본 물건이 없을정도로 흥분이 되었다.
다음날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친구들은 일제히
"야! 니 시계샀네"
"함 보자"
"몇 시고"
".........."
애들은 정신없이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목에 힘깨나 주고 시간을 불러줬던것도 같다.
그때 집에 갈 때 같이 가던 친구가 있었다.
부모님은 벽돌공장에서 벽돌을 찍는 인부로 일하셨다.
눈치가 없었는지 아니면 순진했었는지 난 그 친구집이 어려운 살림인 걸 알지 못했다.
하루는 그 아이 집에 갔더니
"우리 어제 혼합미 한 말 팔았다"
하며 파란 플라스틱 바케스 뚜껑을 열어보였다.
그 바케스 속엔 쌀과 보리가 섞여 있는 '혼합미'란 것이 가득 들어있었다.
난 그 집이 쌀집을 하는 줄 알았다.
쌀을 팔았다기에.
그리고 '혼합미'란 것이 되게 좋은 것인 줄 알았다.
어느날 부터인가 난 다른 아이들과 하교를 하게되었다.
아마 추측컨데 그 때 난 '악대부'에 있어서 연습을 하느라 그리 되었지 않았나 싶다.
자연스레 그 아이완 점점 멀어지고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게 된 어느 날이었다.
선생님께서 그 아이가 며칠 동안 무단결석한다고 나보고 집에 가보라고 시키셨다.
오랜만에 그 아이 집에 들렀다.
커다란 플라스틱 다라이에 상추를 씻으며 갓난쟁이 동생을 돌보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가 요즘 집에서 산수 가르쳐 주신다"
그러면서 요즘 우리가 배우고 있는 부분을 펴 보여주며 자기는 집에서도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다고 열심히 변론을 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가 시계도 사 주신다고 했어"
그리고 그 아인 내내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어 우연히 그 아이가 가는 뒷모습을 보았다.
난 부를 수가 없었다.
왠지 나와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같아서.
여러 무리의 조금은 불량기가 있어보이는 남자아이들과 깔깔거리며 가는 뒷모습이 이젠 얘기조차 통하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그 아이 머리엔 좀 불량기있는 아이들이 쓰고 다니는 연속극에서 일본순사들이 많이 쓰고다니는 따깨비 모자를 쓰고있었고, 손목엔 시계를 차고 있었다.
지금껏 그 아이가 초등학교조차 졸업 못 하고 그리 된 데엔 나의 작은 책임도 있는듯해 늘 불편하다.
지금은 치킨을 시켜먹어도 사은품으로 나오는 손목시계가 내가 자라던 시절엔 너무나도 부러웠던 물건이었던 것을.....
카페 게시글
자 유 게시판
스크랩
손목시계
아네스
추천 0
조회 46
04.11.11 12:36
댓글 5
북마크
번역하기
공유하기
기능 더보기
다음검색
첫댓글 아네스님.. 사람이 살다보면 마음에 개운치 않은 뭔가가 한두개 씩은 있게마련인가봅니다. 그치만 그아이(?)는 이미 잊었을겁니다. 아네스님은 마음이 순수해서 그토록 오래 가슴속의 작은상처가 되어 마음을 괴롭히게 되나봅니다..남들에겐 별거 아니겠지만 본인에겐 상처가되는 그런일들.. 저도 그런일들이 많이 있지만..
웬만하면 초연해지려고 노력합니다. 그래봐야 저만 괴롭기 때문이지요 아문것 같지만 절대 아물지 않는 지난 상처들.. 날이 흐리면 신경통증세가 나타나듯 잊은듯 싶었는데 문득 떠올라 마음을 아리게 하는일들.. 요즘은 마음을 비우고 살려고 노력합니다. 하긴 늘 그렇게 노력은 하지만 마음대로 되진 않더군요..^^
철 없던 시절에 누구나 한 두 번씩은 그런 경험들을 하지 않았을까요? 불편하시다는 마음 이해가 되어요. 그렇담 저도 !!...물론이지요.
며칠 안들어온 사이에 스크랩이란 것이 생겼네요. 이게 뭐지요? 다른 기능이 있나요?역시 아네스님은 첨단이야!!
첨단? 크하하하. 뭔지도 모르고 막 누른게 이 결과랍니다. 때론 오해가 위대해지기도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