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베소서 6:10-17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마귀의 간계를 어떻게 대적할 것인가에 대한 사도의 가르침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자 그럼 마귀의 간계란 무엇인가, 그 간계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에 대해서 지금부터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첫 번째는 지식의 문제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지식이 예수 믿음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믿음은 주님과의 관계로서 믿음이잖아요. 주께서 각 지체에 부어주시는 모든 것으로 부족함이 없는 상태가 믿음 안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주 되심, 하나님 되심, 그분의 이름 앞에 온전히 무릎 꿇고 찬양해야 할 성도에게 편협되고 사랑이 결여된 지식은 교회 안에서도 다른 이들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교만의 자리에 앉게 할뿐아니라 사람들을 비진리로 오염시키는 악행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죄인들의 문제는 성경 지식마저도 자기를 장식하고 자기 가치를 제고하는 데 써먹는다는 사실입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를 믿는 게 아니라 자기 지식을 믿고 자기 신학을 믿는 거예요. 그렇게 자기 지식에 갇혀버린 상태가 바로 '믿음 없음'이 됩니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비판, 세상에 대한 비판, 교회에 대한 비판은 잘하는데, 주님과의 관계 그 은혜와 용서와 믿음 사랑에 대해서는 무지하단 말이지요. 이거 굉장히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제가 아는 사람도 그런 사람이 있는데요 아주 천재적인 머리와 온갖 철학, 사회과학, 어떤 인문학에도 통달하고 심지어 신학에 관한 수십권의 책을 쓸 만큼 뛰어난 신학자예요. 그런데 예수를 믿지 않는단 말입니다.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라는 말을 못해요. 그 말을 하는 게 자기 신학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식이 믿음을 대체해 버린 겁니다. 결국 그 사람이 믿는 건 자기 신학이지 십자가 지신 예수가 아닙니다.
주 예수와 어떤 관계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 이게 참으로 무서운 마귀의 간계입니다. 예수를 연구하고 십자가를 공부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데,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예수님과의 관계는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게 마귀입니다. 성경 지식으로 십자가는 아는데 십자가 사랑이 부어진 적이 없어서 나누어 줄 사랑이 없단 말입니다.
이렇게 지식으로 믿음을 대신하는 것, 이게 마귀의 무서운 간계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에 보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룬다'고 합니다.
(골 2장)
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철학과 헛된 속임수는 인간을 최종 권위자로 믿는 것이고, 기독교는 하나님을 최종 권위자로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지식이나 자기 신학에 매몰된 사람에게는 그 지식이 오히려 그에게 해가 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주가 계시지 않습니다.
각자가 탐구하는 예수만 있어요. 그렇게 탐구 생활을 하도록 내어버려 두신 것입니다. 심판이지요.
여러분이 잘 아시는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처, 신학 박사 학위를 가진 그가 죽을 때까지도 예수님의 주 되심을 믿지 않았어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지 않았어요. 십자가 은혜 대신 인간의 가치와 가능성을 믿은 겁니다.
오늘날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보편 구원설, 만인 구원설. 성경 비평학, 인간의 경험과 이성에 근거한 다양한 성경해석, 종교 다원주의, 신율법주의 이런 것들.. 한 마디로 그런 신학은 인본주의의 바탕 위에서 예수 십자가라고 하는 포장만을 씌운 사단의 신학에 다름이 아닌 것입니다. 아주 무서운 거예요. 그래서 제가 젊은 사람들이 신학교에 가려고 하면 말리는 이유가 이것 때문입니다.
개혁주의의 기본 정신이 뭡니까?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의 영광인데, 오늘날 기독교는 오직 인간, 오직 교회로 돌아가 버렸어요. 이게 종교화된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복음의 반대말은 종교입니다. 인간의 종교성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아니라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에게서 나오는 자기 정당화, 자기 안정성, 자기 가치 챙기기라는 죄성의 발현이에요. 이게 종교성이죠. 그래서 인간들이 종교를 찾고 종교 행위에 열심을 내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기 확장을 위한 우상 숭배에 다름이 아닌 것입니다. 자기 사랑과 자기 숭배의 공간과 도구로서 종교란 말입니다.
그 밑바탕에는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의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은 아담을 찾으셨을 때 참 놀랍게도 그는 나무 뒤로 숨습니다. 하나님과 별도의 공간인 나무 뒤라고 하는 자기 공간을 만든 거예요. 하나님을 떠난 두려움이 만든 아담의 자기 공간, 그것을 종교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아담은 자기를 인정해 주고 자기가 섬기는 만큼, 바치는 만큼 갚아주는 신을 각자 만들어놓았어요. 그리고 그 신과의 거래를 통해서 자기 정당성과 자기 가치를 챙기려고 합니다. 이런 종교성, 종교 행위가 오늘날 세상 교회에 판을 치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아니고 거의가 그냥 종교인이에요. 갓바위 앞에 절하는 것이나 성당 가서 마리아 앞에 비는 거나 세상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거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겁니다.
이렇게 마귀가 심어놓은 종교성이 복음을 대신하고 복음을 훼방하는 악한 세대가 바로 종교화되어 버린 기독교, 무당 잡교가 되어 버린 기독교, 하나님의 원수가 된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것들이 전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주님의 십자가를 모욕하고 자기 의를 위한 마일리지 쌓기입니다. 이 모든 것이 사단의 간계에 놀아나는 종교인들의 음행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육신대로 살고자 하는 죄성이 낱낱이 폭로되고, 그 육이 십자가의 영에 의해 날마다 죽임을 당하는 자들이있는데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참된 교회입니다. 그들만 성도 그리스도인이에요. 나에게는 어떤 의도 어떤 거룩도 없습니다.. 주님의 피로 저를 정결케 하시고 벌거벗은 저를 그리스도로 옷 입혀주세요.. 라는 그런 자기 부인의 고백과 십자가의 공로만 꼭 붙드는 믿음 안에 있는 자들에게만 종교라고 하는 그 추악한 실체가 낱낱이 보이고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그런 마귀의 간계를 대적하라고 합니다. 왜? 너희 눈에는 그게 보이고 너희에게는 하나님이 입혀주신 전신 갑주가 있으니까.
두 번째는 인간의 감성과 경험에 편중된 그릇된 신앙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아주 냉철하면서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모든 여정이에요. 그러니까 올바른 이해나 깨달음이 없이 그냥 내가 기쁘고 내가 감동받고 내가 위로받고 내가 신나고 하는 건 부흥회에 가서 소리 지르고 박수 치고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지 며칠만 지나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어요. 그것을 맹신, 광신이라고 합니다. 그런 맹신, 광신에 빠지게 하는 게 바로 마귀의 간계예요. 거기에서 약간의 신비한 체험까지 더해지면 성경의 진리는 남의 동네 이야기가 되고 자기 체험이 바로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적 교만, 감성에 편중된 자기기만, 그리고 체험에 갇힌 맹신, 한편 말씀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죄책감, 그리고 열심 있는 봉사나 헌신으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는 탐심까지가 모두 마귀의 간계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가 그런 열심 있는 전도, 성경 공부, 기도회, 교회 봉사를 통해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라고 하는 실정이다 보니 십자가는 보이지 않게 한쪽으로 치워버린 거에요
요즘 보면 Back to the jerusalem.. 이스라엘에 복음이 전해지면 예수님이 오신다고 해서 예수님을 빨리 오시게 하려고 이스라엘에 가서 전도한다는 사람들 인터콥인가 별별 사람들이 다 있죠. 그런데 예루살렘은 중동 이스라엘에 있는 그 예루살렘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이에요. 이렇게 성경은 종교인들에게 비밀입니다 몰라야 되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마귀의 궤계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이 없지요. 세상 교회들이 여기에 대해서 전혀 무지한 상태예요. 그렇게 다들 눈멀고 귀 멀고 벙어리가 된 상태로 마귀가 끌면 끄는 대로 끌려가면서도 나는 예수 잘 믿고 있다, 나는 구원받은 자 맞다, 천국은 당연히 가는 것이고, 남들보다 더 나은 상급을 받으려면 목사가 교회가 시키는 대로,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이게 바로 마귀가 조제한 칵테일에 취해 버린 세상 종교인들이에요. 음녀의 섞은 술 음행의 칵테일이란 말입니다.
그렇게 성도의 눈에만 보이는, 술 취해 비틀거리는 기독교. 이사야서에 나오잖아요. 제사장들이, 율법사들이 모두 독주에 취해서 비틀거린다고. 바울은 이런 종교인들을 빌립보서에서 한 단어로 말합니다. ‘개’ 라고.. 바울은 손할례당과 개와는 말도 섞지 말라고 말합니다. 자기 육체를 신뢰하는 자들과는 만나지도 말고 말도 섞지 말라는 거예요. 그들은 입으로만 예수, 하나님을 떠들지 실제 섬기는 건 자기 배라는 것입니다. 육체로 봉사하고 육체를 자랑하는 자들이 행악하는 자들이고, 그들이 바로 십자가의 원수라고 하는 거예요.
(빌 3장)
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나는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이게 성령을 받은 사도의 눈에 비친 종교인들의 허상이었어요. 앞에서 말씀드린 신앙의 관념화, 지적 유희, 그리고 그런 성경 지식과 마찬가지로 열심 있는 종교 행위로 자기를 증명하려고 하는 자들, 그들 역시 마귀의 간계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영을 분별하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는 말씀 분별이에요.
(요일 4장)
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벌써 초대 교회 때부터 다른 영, 다른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많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요일 4장)
5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거짓 선지자들, 비진리는 세상에 속한 말을 한다고 합니다. 세상이 듣기 좋아하는 말, 세상 누구나 들었을 때 다 이해하는 말을 하는 겁니다.
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성령 받은 성도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 자들이 거의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전부 다 자기 귀에 듣기 좋은 말은 잘 알아듣고 그런 사람을 좇아가는데, 성령 받은 성도가 하는 십자가 복음은 다 싫어합니다. 본성적으로.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증거할 때 세상을 둘로 갈라집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와 세상에 속한 자로 갈라져요. 이렇게 진리의 말씀에 의해서 분명하게 갈라지게 되는 이게 복음의 능력입니다.
성도들도 불신자들과 똑같이 실수할 수 있어요. 그리고 세상을 살면서 갈등하고 좌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배워가는 과정으로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유익이고 선이 됩니다. 서로 넘나들 수 없는 경계가 있는 거에요
성도는 마귀의 어떤 공격에도 절대 빼앗길 수 없는 게 있어요. 그건 하나님의 의로 주어진 구원입니다. 그래서 마귀의 공격을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성도는 찬송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자격이나 우리의 공로나 우리의 헌신이나 심지어 회개까지도 그 조건이 될 수 없는 구원입니다. 그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의로만, 하나님의 의로 오신 예수님의 공로로만, 십자가 은혜로만 주어지는 구원이기 때문에 나의 지금 상태가 어떠하든지 또 내가 살아온 과거가 어떠하든지 상관이 없이 구원은 내가 있기도 전인 창세 전에 아들의 피로 확정된 구원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씌워주신 그 구원의 투구로 말미암아 찬송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알 때 비로소 우리의 찬송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죄는 하나님의 의를 위한 죄입니다. 우리의 죄까지도. 그래서 그 죄는 이미 용서받았고 지금 용서받고 있고 또 앞으로 용서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틈만 나면 우리의 허물과 죄를 들추어서 고발합니다. 이게 마귀의 일이에요. 정죄하는 일이죠. 죄책감에 사로잡혀서 구원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게 마귀의 간계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육체 가운데 살고 있지만, 성경은 너희가 죄에 대해서 죽었다고 과거형으로 선언하고 있단 말입니다. 우리는 다 죄에 대해 죽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날마다 죽는 거에요 바울처럼
(롬 6장)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제가 어제 우리 카페에 글을 하나 올렸는데, 놀랍게도 자기 자신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천 년 전 예수와 십자가에 함께 못 박힌 자라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나타난다니까요. 그들만 마귀의 정죄에서 벗어나요. 우리의 옛사람은 이미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게 진짜 현실이고 영원한 현실이에요. 그런데 그것을 가리고 믿지 못하게 하는 게 바로 마귀의 작업이죠.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어떤 행위도 하나님이 창세 전에 정하신 구원을 취소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어요.
따라서 우리는 에베소서 2장 5절에서 9절 말씀을 마음에 늘 keep 하고 있어야 해요.
(엡 2장)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이게 모두 완료형이에요. 이미 끝났다는 겁니다.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이렇게 구원은 우리 조건, 자격, 환경과 상관이 없이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거예요. 그리고 은혜로 거저 주어진 구원이기 때문에, 우리가 쟁취한 구원이 아니기 때문에 그 무엇도 이 구원을 취소하거나 빼앗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 죽음 같은 사랑이기 때문에 그 아들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낼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롬 8장)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나님의 그 사랑이 곧 우리의 구원이에요. 어떤 마귀의 공격, 어떤 불화살도 막아내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흉배입니다. 요즘 성경에는 의의 호심경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흉배는 우리의 심장을 적의 공격으로부터 막아주는 갑옷을 말해요. 그래서 그 사랑은 우리를 반드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아들들로 완성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마귀가 주는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지켜내고 또 우리로 하여금 그 사랑에 깊이 잠겨서 그 사랑에 모든 것을 맡길 수 있게 되는 것, 이게 바로 우리의 승리예요. 살든지 죽든지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 그 자리로 우리를 데려가 주세요. 그 사랑만 있으면 나는 죽어도 좋아..
(요일 4장)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분명하죠? 그러니까 마귀는 온전히 이루어진 그 사랑으로부터 우리 눈을 자꾸 다른 데로 돌리게 만듭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심장, 하트, 사랑이 부어진 그 마음을 지키는 의의 흉배는 바로 하나님이 자기 피로, 하나님의 의로 우리에게 입혀주신 전투용 장비입니다. 이 사랑 안에서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는 그런 우리가 되기를 빕니다. 쓸데없는 죄책감, 좌절감, 자괴감에서 벗어나서 복음의 군사로 세상 앞에 당당히 서서 종말의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이 영적 전투에서 물러나지 않고 힘써 싸우는 전투하는 교회가 바로 여러분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에서 17절을 다시 한번 봅시다.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그러니까 마귀는 우리가 믿음에 서지 못하도록 합니다. 힘이 빠져 주저앉게 만들고 좌절하게 만듭니다. 죄책감과 자괴감에 빠지게 만드는 게 마귀의 전략이에요.
그럼, 지금부터 하나님의 전신 갑주의 필요성과 그 목적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젊은 분들은 6.25를 잘 모르겠지만, 한국전쟁은 1950년에 시작해서 1953년에 휴전이됩니다. 그런데 그 후에도 공산주의 사상에 물든 자들이 남한의 산속에 들어가서 빨치산 활동을 했어요. 그와 마찬가지로 이미 악의 전쟁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완전한 승리가 이루어졌지만, 아직 육체로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여전히 죄의 잔재가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 일생 동안 그 빨치산과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성도에게 주어진 영적 전투입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는 그 죄의 잔재물과의 전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의로 주어진 구원, 은혜로 주어진 구원, 곧 예수님의 십자가 승리를 우리로 하여금 체험하고, 그 승리에 전인적으로 참여되는 일을 위해 주어지는 전투이며 전신 갑주인 것입니다. 전신 갑주의 용도는 그런 거예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주어진 구원입니다. 그래서 그 구원은 어떤 것으로도 빼앗길 수 없는 구원이에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이미 거룩하고 흠이 없는 교회입니다. 하나님과의 의의 관계가 회복되었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가 이루어진 교회, 그렇게 영적으로는 완성된 하나님의 작품이지만 이 세상 역사 속에서는 피 터지게 싸우면서 자라가야 하는 이중적 존재가 성도예요. 그리고 그 과정으로 주어지는 게 바로 성도들의 영적 전투입니다.
(엡 4장)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나도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투의 장을 펼쳐주십니다. 그 전투의 장으로 우리를 밀어 넣으십니다. 그리고 그 전투는 100% 하나님이 하시는 전투이며 또한 내가 온몸으로 싸워야 하는 전투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육적 자아가 죽어 나가야 하는 전투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승리예요.
전투에서 우리의 육적 자아가 죽는다는 것은 한 마디로 전인적 죽음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그 영적 전투에서의 죽음은 팔 하나, 다리 하나 잘려 나가는 게 아니라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모태 죄인인 내가, 우리의 옛사람이 완전히 죽는 죽음이에요. 그리고 그 죽음을 죽어야만 예수의 생명으로 살아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함께 못 박힌 그 죽음을 확인하고 그들에게 예수의 생명도 나타나는 그런 죽음입니다.
우리는 자기부인이라는 그런 죽음이 싫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을 잘 죽어야 진짜 사는 것입니다. 안 죽으려고 발버둥 치지 말고 주께서 이끌고 가시는 그 모든 전투에서 다들 장렬하게 전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죽는 게 사는 거예요.
우리는 그런 죽음이 참 싫지요. 자기 부인이 불가능한 죄인에요.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이런 게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제가 믿어주겠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요구하면 자신이 없어요.. 내 목숨같이 여기는 내 소유, 내 가족 건드리면 나 예수 안 믿을 거야.. 그러면서 교회에 안 가죠. 집안에 문제가 생기고 사업이 망하고 이혼을 한다든지 그러면 교회 안 가잖아요
그런데 죄송하지만,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예수만 믿는 겁니다. 그렇게 내 것이 다 털려 나가고 그 자리에 예수로 채워지는 게 구원이고 영생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의 삶에 고난이 있어요. 고난과 환난이라는 영적 전투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믿음만 오롯이 남기기 위해서..
성경은 그 죽음이 없으면 가짜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어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건 죽으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자기를 부인할 능력이나 믿음이 없기에 예수님의 자기 부인, 즉 십자가 의 죽으심에 우리를 강제로 결합시킨 것입니다. 우리를 이미 창세 전에 그 죽음에 연합시켜서 그 죽음을 우리 인생 동안 나누어주시는 게 바로 환난이고 고난입니다. 그냥 고생이 아니란 말입니다. 모든 성도에게 준비된 영적 전투예요. 그래서 그 전투에 나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입혀주시는 것이 본문에 나오는 전신 갑주입니다.
우리가 평소에는 잘 몰라요. 그런데 정말 감당할 수 없는 환난이나 고난이 우리에게 덮칠 그때 비로소 보이는 게 하나님이 입혀주신 전신 갑주입니다. 참 놀랍죠? 그 전쟁이 나의 전쟁이 아닌 하나님의 전쟁임을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예요. 마귀는 그 전쟁에 하나님이 소품으로 사용하시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우리더러 마귀를 이기라는 게 아니에요. 우리 힘으로 마귀와 싸우면 백전백패입니다. 마귀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신 예수님의 십자가가 무엇인지 그 하나님의 의와 사랑과 은혜를 배우기 위한 전투인 것입니다.
그럼, 본문에 나오는 첫 번째 전신 갑주인 ‘진리의 허리띠’부터 보겠습니다. 왜 ‘진리의 허리띠’라고 할까요? 진리와 허리띠 사이에는 어떤 연결점이 있습니까? 왜 진리의 허리띠라고 합니까?
고대 사회에는 남녀 모두 발목까지 치렁치렁 내려오는 옷을 입었어요. 치마처럼 길게 늘어뜨린 옷을 입다 보니 운동이나 격한 운동을 하기가 아주 불편했어요. 그래서 허리띠가 필요했습니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한복을 입고 있다가 일을 할 때는 걷어 올려서 허리띠를 맸잖아요. 그것과 마찬가지로 고대 전쟁에서도 군사들이 출전할 때 가장 먼저 하는 게 허리띠를 매는 것이었습니다. 옷에 허리띠를 묶고 그 위에 갑옷을 입었어요. 그러니까 전쟁에 출전하는 군사에게는 허리띠가 필수입니다.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허리띠란 말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하는 이스라엘에게도 유월절 양을 급히 먹으라고 하시면서 허리띠를 띠고 신을 신은 채로 지팡이를 짚고 먹으라고 하셨어요. 이스라엘에게는 출애굽과 함께 광야에서 많은 전투가 기다리고 있었단 말에요. 장장 40년 동안. 마찬가지로 일평생 영적 전투에 나선 성도에게 이 진리의 허리띠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벧전 1장)
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마음을 동이라고 하죠? 마음을 동이는 진리의 허리띠는 영적 전투의 필수 조건이란 말입니다.
그럼, 영적 전투에 임하는 성도들이 반드시 매야 하는 허리띠의 내용에 관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진리의 허리띠, 진리로 허리가 묶인 자들. 베드로 사도의 말 대로 진리로 마음을 동여맨 자들만 다른 무장도 갖출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진리는 가장 기본적 무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그리고 그 성경이 보여주는 모든 구속의 역사, 곧 그리스도의 승리를 마음으로 가져야 한다, 마음으로 keep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긴 역사 동안 이 성경을 완성시켜 우리 교회에게 넘겨주신 거예요. 그 진리를 마음으로 가지라고. 그래서 그들만 세상, 그리고 마귀의 역사로부터 자유 하게 됩니다.
(요 8장)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17장)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예수님의 기도예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 진리가 우리를 자유 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겁니다. 마귀가 손대지 못하도록. 죄에 얽매이지 않고 흠이나 주름이 잡힌 것 없이 의의 군사, 빛의 군사로 전장에 나갈 수 있게 하는 게 바로 진리의 허리띠입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 그 진리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그리고 은사로 주어지는 믿음 위에 굳게 서는 것이 복음의 군사들의 기본 무장이에요.
호세아서를 보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하십니다. 참 놀랍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몰랐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 진리의 말씀, 말씀의 진의를 몰랐다는 거에요 그렇게 '그들이 지식을 버렸기에 나도 그들을 버린다'고 하십니다.
이같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은 성도에게 있어서는 그만큼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도인가 아닌가의 구분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판별되는 거예요. 어떤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 참 하나님과 그 진리의 말씀을 믿는가, 아니면 각자가 조작한 다른 하나님, 다른 예수를 믿는가?.. 이스라엘 역사 내내 하나님이 진노하신 게 바로 이스라엘의 다른 하나님, 즉 우상 섬김이었단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나의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것과 오히려 말씀, 진리로 인해 나의 소유가 털려나가도 그것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는지 그 차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문제 역시 그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기 백성들에게 허락하신 특권이고 은사로서 복입니다. 성경은 그들을 진리의 사랑을 받은 자라고 합니다.
(살후 2장)
9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놀랍죠? 악한 자 마귀는 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자는 끝내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일을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은혜와 진리로 이 땅에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 1장)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은혜와 진리로 오신 한 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온전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다른 거 없어요.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 된 교회에게만 머리이신 그분으로부터 주어지는 지식이고 믿음이란 말입니다. 성경 백 독하고 신학 학위 몇 개 있고 온갖 것 다 해도 하나님은 알 수가 없어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 안(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생명이 나누어진 자들)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의 모든 서신에서 그렇게도 강조한 게 엔 크리스토스, 그리스도 안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서 온전히 알게 되고 또 그분을 마침내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가장 마지막에서 바울 사도는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않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라고 선언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게 아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죽음 같은 사랑이 먼저 우리에게 부어졌기 때문에 우리도 마침내 그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거예요. 본래 우리 안에는 그 사랑이 없단 말입니다. 그렇게 진리의 사랑을 받은 자, 예수의 사랑을 받은 자가 구원함을 받고 그 진리로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이 1장)
1 장로인 나는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2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로 말미암음이로다
3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는 진리라고 하죠.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는 예수, 그 사랑 모두 같은 말이에요. 이렇게 우리와 함께하는 진리를 마음으로 가졌을 때 우리는 사단, 곧 비진리에 대해서 분별하고 대적할 수 있습니다. 이건 매우 중요해요. 오늘날 기독교가 말 그대로 무당 잡교가 된 이유가 바로 진리에 대한 분별이 없어서입니다. 분별이 없다 보니 비진리와의 싸움자체도 포기해 버린 것입니다. 싸울 대상을 모르니 싸울 수가 없지요. 비진리와의 전투를 치를 수 있는 건 비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성도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전투하는 교회는 언제나 이런 비진리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어서 진리의 허리띠를 동여매고 깨어있으라고 하는 겁니다.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으라고 하는 게 그런 뜻이에요.
초대 교회로부터 오늘까지 진리의 전투는 계속 이어져 왔고 또 세상 끝 날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단의 공격에 대처하는 것은 진리의 띠를 매고 믿음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3년간 목회한 에베소 교회를 떠나면서 장로들을 불러놓고 이와 같이 당부합니다.
(행 20장)
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무서운 말이지요, 사단의 계략 중 하나가 사람을 좇게 하는 겁니다. 교회 안에도 당을 짓고 사람을 좇게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개신교 교단이 이백 개입니다. 장로교 교단만 170개랍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예수를 좇은 게 아니라 사람을 좇은 거예요.
그리고 어그러진 말은 다른 복음입니다. 계시 된 성경 외에 사람의 말을 더하는 게 어그러진 말입니다. 사람에게서 나온 온갖 신학들 잘 분별해야 하는 거에요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바울 같은 대 사도도 자기 능력으로는 교회에 침투한 비진리 마귀 세력을 끝까지 막아내지 못한다고 한단 말에요. 그래서 사도는 은혜의 말씀에 부탁한다고 하죠. 복음의 능력입니다. 비진리와의 전투에서 이기는 것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란 말입니다. 성도는 다만 그리스도라는 진리, 그 복음, 십자가라는 복음에 대해 증거할 따름이에요. 복음을 듣고 믿는 건 오직 주의 성령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오직 말씀의 능력이 우리를 모든 불의한 것들로부터 지켜냅니다.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지켜내는 게 아니라 말씀이 우리를 지킵니다. 구원은 우리의 선택이나 능력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 때부터 바울이 복음을 전한 교회에는 이단들이 어김없이 찾아와서 다른 복음으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율법주의, 영지주의, 교회사에 나오는 페라기우스, 알미니안주의, 몬타누스, 아리우스.. 등등 그 외에도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부정하는 여러 가지 이단, 가현설 온갖 비진리가 이천 년 동안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혀 왔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이름은 달라도 그 본질은 다 같습니다. 인본주의입니다.
그래서 나온 게 뭔가 하면 교회사에 나오는 각종 신경들, 신조들이에요. 그 대표적인 게 사도신경입니다. 그 외에도 많죠. 니케아 신조도 있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 있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등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들이 다 비진리와의 전투를 통해서 나오게 된 교회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항상 평온해서는 안 돼요. 이단들의 공격과 그로 인한 교회 내에서의 싸움 충돌과 갈라짐이 있어야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세상 속 교회에는 반드시 악한 영들의 공격이 있기 때문에 그 교회 안에 진리에 서 있는 성도 한 사람만 있어도 이런 진리의 전투가 반드시 벌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진리의 전투를 싫어하는 자들이 대부분의 교회를 장악하고 있어서 다들 진리에는 관심이 없고 교회 하기에만 열중하기 때문에 비진리에 대해서 ‘아니오’를 하는 성도를 어떻게 해서든지 그 성도의 입을 막고 그를 쫓아내어 교회의 평화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이게 오늘날 세상 교회 현실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은 다 큰성 바벨론 밖의 길가에 서 있는 거에요.
이런 현상은 이미 초대 교회에서부터 있어 왔기에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 서두에서부터 이렇게 강한 어조로 질책합니다.
(갈 1장)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세상 속 교회는 반드시 다른 복음이 유통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런 세상 교회를 향해서 저주를 퍼부을 수 있는 사람이 성령 받은 성도입니다. 여기 우리 교회 옆에도 큰 교회들 있죠? 여러분이 주일날 오전 대예배 시간에 그들 앞에 서서 저주 한번 퍼부어 보세요. 그거 다른 복음이라고...그거 하라고 여러분에게 진리의 띠를 매어 주신 거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는데, 그 땅끝은 아프리카도 중동도 아니고,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땅끝입니다. 이 자리에 서서 ‘아니오’라고 외치는 거에요. 당신들 거기 있으면 다 죽는다고, 함께 심판받지 말고 나오라고 소리 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전신갑주를 입혀주신 성도인 것입니다. 그들만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에요.
(고후 11장)
20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기가 막히죠?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를 향해 꾸짖는 말입니다. 뺨을 때리고 잡아먹는데도 뭐가 뭔지를 모르고 그냥 끄는대로 끌려가는 거예요. 이게 세상 교회의 현실이란 말입니다. 오늘날은 아예 비진리, 다른 복음이 대부분 교회를 장악하고 있는데도 누구 한 사람 ‘아니오’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말씀이 고갈된 말세의 현상입니다. 지금이 그 마지막 때란 말입니다. 믿는 자를 찾아 보기 힘든 악한 때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일상화되어 있는 범죄가 뭔지 아세요? 거짓말이에요. 유튜브를 틀어도 거짓말, 교회 설교조차 거짓말이에요. 사람들에게 대놓고 사기 치는 사람들 있지요. 그 대표적인 게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이죠. 이들의 공통점은 힘, 권력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형법상 사기죄는 중범죄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다른 복음, 다른 예수로 사기를 치는데 그걸 범죄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오히려 사기 치는 강단 밑에서 ‘아멘’하면서 박수 치고 야단이죠. 다들 거짓말에 한목소리로 아멘 하기 바빠요. 그들이 사람들의 영혼을 매매하는 아주 악랄한 범죄자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잖아요. 교회가 사람들의 영혼을 매매하는 곳이 되어 버렸어요. 한 마디로 집단 살인입니다. 그런 악행을 저지르는 곳을 귀신의 처소, 사단의 회당이라고 합니다. 마귀를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가 세운 거짓 선지자를 좇아 집단 자살을 하는 곳이 세상 교회가 되어 버린 슬픈 현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도들은 그 큰 성 바벨론에서 쫓겨나서 길가에 선채 그들을 향해서 외쳐야 한단 말이에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예수의 피 뿌림을 입은 자가 있을까 해서 그 죽은 자의 무리를 향해서 오늘도 외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저처럼 ‘그것 아니오’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테니까... 귀먹고 눈 먼 그들과 함께 심판받지 말고 거기서 나오라고 외치는 겁니다. 아무런 반향 없는 광야의 소리지만 진리를 가진 성도는 그들을 향해서 외쳐야 합니다. 잠시 후면 오실 그리스도 우리 주를 맞이하기 위해 저와 여러분은 오늘도 그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말씀의 지팡이에 의지해서 세상을 향해서 외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그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 중에서 첫 번째인 ‘진리의 허리띠’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요, 다음 시간에는 ‘의의 흉배’에 대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진리의 영을 주셔서 진리와 비진리를 분별하게 하시고 또 진리의 사랑을 받은 자로 그 사랑을 나누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를 공격하는 악한 세력들을 대적하기엔 우리는 너무 무력하고 약합니다. 오직 주님이 입혀주시는 전신 갑주로 이 영의 전투를 잘 치러내면서 그렇게 잘 죽고 잘 살아나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주님의 승리를 찬송하는 복된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