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대를 처음 만났을 때

[고은별]

이 글은 황금펜 2008년 겨울호에 실린 박숙희 선생님의 글 <동화 예찬>입니다.

동화에 대한 사랑이 아름답고 서정적인 글 속에 자연스럽게 담겨 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느꼈던 기쁨과 사랑과 아름다움이 회원 여러분 모두에게 그대로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 나눔터에 옮겨 적습니다.

 내가 그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대는 작은 풀꽃의 모습으로 수줍게 피어 있었어요.
사람들은 모두 크고 화려한 꽃들에게 정신이 팔려 그대의 존재를 가볍게 생각했어요.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아기와 같이 순진한 마음으로 거듭나 새로운 눈을 떠,
그 눈이 작고 아름다운 그대를 발견한 것이었어요.
아무나 오를 수 없는 고원에 핀 왜솜다리꽃이나 신비의 빛깔로 옷 입은 비로용담,
첩첩산중 숲 속에 애잔히 피어있는 두메투구꽃처럼 아름다운 보랏빛 꽃잎 속에 싸여 있는
그대의 모습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어요.
그대는 그렇게 환상적인 모습에 태양처럼 밝은 풍자(諷刺)와 달님같이 은은한 상징(象徵)과
우의(寓意)의 옷을 입고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지고한 천상의 향기로 나를 불렀어요.
오! 그러니 내가 어찌 그대에게 자석처럼 끌리지 않겠어요?
그대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온 빛나는 존재였어요.
그대를 보는 순간, 그대를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어요.
그대를 만나고 난 후론 나는 밤낮 그대 생각만 하였어요.
어딜 가도 무얼해도 그대 생각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어요.
그대를 사랑하는 일은 그렇게 기꺼울 수가 없어요.
이 세상의 그 무엇을 사랑한다 해도 이토록 즐거울 수가 없을 거예요.
내 가슴속에 살아있는 그대의 혼이 너무 사랑스러워 온 세상에 소리치고 싶어요.
그대를 향한 그리움의 베틀 앉을깨에 올라 앉아있는 내 모습을 누가 지켜본다면
웃지 않곤 못 배길 거예요.
그대를 향한 내 사랑을 짜고 얽을 때 나를 좀 보셔요.
두 손을 턱에 괴고 두 눈은 꿈을 꾸는 듯 얼이 빠져요.
그 땐 내 이성이 환상의 나라로 여행을 떠났기 때문이어요.
누가 나를 바보 같다고 흉봐도 좋아요.
그대를 만나면 내 마음은 나도 모르게 풍선처럼 붕 뜨는 걸요.
몽유병자처럼 촛점 없는 눈이 되고, 바보같이 헤 벌어진 입이 되어도
그대를 만나면 그 때부터 나는 신들린 듯 바디질을 하여
아름다운 시정이 가득 찬 이야기 비단을 짜게 되니까요.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게다가 난 아직 바디질이 서툴러요.
자칫하면 실꾸리가 엉켜 이야기 비단을 망칠 때도 많아요.
그러면 나는 안타까이 마음을 바자니며 기다리다가,
그도 안 되면 훌쩍 일어나 악기를 띠잉 눌러도 보고,
변기의 물 꼭지도 쏴아 내려 보기도 하고,
과일을 한입 깨물기도 하고
강아지와 몇 마디 동문서답을 주고받가가
정원으로 나가 풀꽃의 미소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구름이 얼마나 기비얍게 떠가나 바라보기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물구나무도 훌쩍 서 보고...... .
아하! 그러다 한 바람 엉킨 실타래가 풀려 이야기 길이 뚫릴 때의 기쁨은
아무도 모를 거예요.
그대는 작지만 고아하고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기품이 있어요.
그대의 방언은 아무나 알아들을 수 없어요.
작고 쉬워 보여도 아무나 다가오기를 허락하지 않아요.
그대는 작은 체구에 큰 힘을 가지고 있어요.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다가도 그대의 말씀을 들으면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웃음을 잃은 사람에게 따뜻한 웃음을 주고,
심령이 돌짝같이 굳은 사람에게 따뜻한 눈물이 샘솟게 해요.
또 욕심 많은 사람이 그대를 만나면 그대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 양손에 가득 움켜 쥔 것을 스르르 놓아버릴 거예요.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어두운 영혼이 신(神)의 말씀으로 소성(蘇醒)하듯
그대는 긴 잠을 자고 있던 내 정열과 감성을 일깨워
예전에 나늘 지배하고 있던 잿빛의 친구들을 모두 쫓아버리고
밝고 환한 햇살 아래로 이끌어 주었어요.
우울하고 쓸쓸한 시편을 엮고 있던 내게 푸른 초장을 뛰노는 들노루같은
자유를 주었어요.
시냇물처럼 맑은 목소리로 노래하게 하였어요.
오! 그러니 내가 어찌 그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대가 주는 평안과 행복을 외치는 나팔수가 되지 않겠어요?

[김재원]

좋은 글이라 빌려 갑니다! 나도 읽었지만 일일이 칠 수가 없어서요..

[고은별]

네, 선생님. 좋은 글이라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면 저도 기쁘지요. 저는 시간 날 때마다 이 글을 다시 읽어보곤 한답니다. 읽을 때마다 제 마음 속에서 동화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지는 것을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