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것 참 야단났다네.
세상에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며칠 전 일이라네.
몇 년 전부터 말도 붙여보지 못한 조금 아는 여성이 내게 오셨지.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별나라에서 온 듯한 고상한 여인이라 감히 엉큼한 생각조차 갖지 못했다네.
그녀는 걷는 모습조차 평범한 우리 주변의 여성들과는 달라보였다네.
나잇살은 오십 중반은 넘은 것 같아 보이는 그 여인이 허리도 꼿꼿했고 사쁜한 발걸음이었다네.
흔히 그 나이에 보이는 O형 다리가 아니었다네.
잠자리를 할 때 다리를 휘감는 여인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칼슘이 빠져 변형된 다리 모습이 아니었다네.
그런 그녀는 몬로워킹까지 하는 거야.
흐트러지지 않고 일자로 걷는 모습은 아주 기품있게 보였다네.
모습이 우아하면 우리 같은 잡놈들은 접근하기 어렵다네.
전자모기향처럼 먼곳에서 피어올라도 모기가 접근을 하지 못하듯, 우리는 기품 있고 고상한 여인들은 두렵다네.
막가파식으로 생기신 분들은 편하고 좋은데 말이야!
그 여인은 패션감각도 뛰어나 시장에서는 팔지도 않고 볼 수 없는 옷들을 입더란 말이야.
옷차림 역시 값어치 나가는 듯한 옷을 입으면 우리 눈엔 전자모기향이 되어 보인다네.
저렇게 우아한 여인은 감히 어째보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망상이기에 일찌감치 포기를 해 버린다네.
언제나 내 사무실 앞을 지나며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여인이, 언제나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그녀가 오셨다네.
사무실을 향하며 다가오는 그녀는 심장이 멎을 듯한 아름다운 걸음으로 오는 거야!
내게 한 걸음씩 다가올수록 나는 숨이 막혀왔다네.
내게 데이트를 신청하러 오는 건 아니겠지, 왜 오는 걸까!
팔짱을 끼고 문 앞에 서있던 나는 아주 예의바르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네.
"어서오세요!"
나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서 우아한 그녀의 옷깃조차 스치지 않으려 비켜섰다네.
만약, 옷깃이라도 스쳤다면 맺지 못할 인연 때문에 몸살을 앓을 것만 같았다네.
소파에 앉으시라고 말한 뒤, 베트남 산 다람쥐 커피를 정성껏 내려 끓여 나왔다네.
실장은 마침 손님과 집을 보려고 나간 사이에 오신 거야!
이런 사실은 하늘이 주신 절묘한 기회라고 보아야 옳겠지.
실장은 한 번 나가면 남의 사무실에서 궁둥이가 짓무르도록 있다 오는 체질이라 충분한 여유는 있다고 생각했다네.
내가 인생을 살아오며 체험한 것은, 고상하고 도도하게 보였던 여성들의 자존심 내지 콧대는 의외로 쉽게 무너뜨렸다네.
나는 이제부터 내가 터득한 방법을 쓰기로 했다네.
그런 여인들은 남자들이 자기에게 굴종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무시한다는 것이지.
마당쇠를 부리는 안방마님처럼 행세한다는 거야!
나는 그녀의 앞자리에 앉아 허벅지 위에 팔꿈치를 괴고 커피를 홀짝이는 입술을 보고 있었다네.
음큼한 내 생각은 도톰한 입술을 보자 마른침을 삼켰다네.
나는 그 여인이 커피를 마시고 내려놓자 어떻게 오셨느냐 물었다네.
"집을 내어놓으려고요!"
아! 드디어 그녀에게 접근할 기회가 오는구나!
이제까지 안개와 같았던, 베일에 싸였던 그녀의 윤곽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치솟았다네.
시작이 반이라고, 내 눈동자는 빛나고 있었다네.
새로운 여인을 볼 때마다 '톰슨가젤'을 노려보는 '치타'의 눈이 되어버리는 기질을 어쩌란 말인가!
주소도 알 수 있고, 자연스레 전화번호도 알 수 있었고, 그래야 거래가 이어지지 않던가?
그게 부동산 사무소에서 이루어지는 수순이 아니던가!
그녀에게 가격과 이사 가능한 날을 적고 다음 수순으로 들어갔다네.
부동산은 무엇보다 '임장활동'이 필수라네.
지방 땅만 필요한 게 아니라 집도 현장에 가서 요모조모 살펴야 한다네.
옛날 어떤 이는 부동산만 믿고 계약을 했는데, 지나는 길에 그곳을 갔더니 공동묘지라는 거야!
그러하기 때문에 꼭 현장에 가서 논인지 밭인지, 돌무더기인지 옥토인지, 임장활동은 필수라네.
그리고 그 땅을 들어가는 곳에 길은 있는지, 남의 집 대문을 통해야 갈 수 있는지 보아야 한다네.
차도 사람도 들어갈 수 없는 땅은 '맹지'라 하여 공짜로 줘도 쓸모없는 땅이라네.
임장활동은 비단 땅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집도 마찬가지라네.
집도 고급자재를 썼는지, 싸구려 벽지로 도배를 했는지, 씽크대도 며칠 후 무너질 고물인지를 확인해야 한다네.
그러하기에 나는 그 여인의 집으로 가서 내부를 볼 수밖에 없었다네.
내 옆자리에 탄 그녀의 모습을 보는 순간 운전도 어려우리 만큼 심장이 떨리고 있었다네.
봉긋하게 솟은 젖무덤을 보자 내 눈은 시각장애가 오는 듯했다네.
저런 여인이 나를 짓뭉갠다는 생각을 하자 까무러칠 것 같은 흥분이 샘솟았다네.
그 여인의 집으로 가서 나를 안고 와락 안겨오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다네.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피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있었다네.
내일 삼수갑산을 간다 하더라도, 지구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피하지 말자고 다짐했다네.
나는 언제나 여인과 단둘이 있을 때면 여인에게 성추행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망상에 빠진다네.
오래 전, 어떤 여인에게 급습당한 상처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고 응어리진 때문이라네.
그래도 이 여인에게는 피하지 않겠다고 다짐다짐하며 함께 간 거야!
약간의 언덕을 올라가는 그녀의 집 ㅡ
차를 세우고 대문을 열고 들어간 그녀의 집은 생각보다 컸다네.
작은 마당에 잘 손질된 잔디도 있고 분재처럼 생긴 아담한 소나무도 몇 그루 있는 집 ㅡ
거실로 들어가자 그녀의 솜씨인 듯한 그림들이 여러 개 벽에 걸려있더군.
무엇보다 그녀의 침실이 보고 싶었다네.
그곳에 들어가서 그녀가 떠민다면 힘없이 침대로 쓰러지겠다고 생각했다네.
"아!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러지 마세요!"
옛날의 나는 그렇게 애원했다네.
이제 나는 그녀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 아픈 상처를 가진 옛날의 나는 아니라네.
이번만은 넘어져주자고 내 자신을 타일렀지.
아주 잘 정돈된 침대, 그 침대 위에 내려진 얇은 망사 커튼이 드리워진 침실은 그녀의 나신만 올려지면 더할 나위 없었다네.
그러나 내 바람은 잠시 후 깨어졌다네.
목욕탕에서 나온 젊은 남자 ㅡ
그녀의 아들인지, 대학생일 듯한 사내 녀석의 존재는 내 꿈을 산산조각 깨뜨려버렸다네.
내가 돈만 많다면 사고 싶은 그 집을 나오며 쏟아지는 가을 햇볕을 보며 한없는 부끄러움만 느꼈다네.
그래도 그게 어딘가.
미녀와의 데이트를 즐겼다고 생각하며 마음은 편해졌다네.
그게 또 문제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미녀만 보면 밝아지는 내 표정을 본 아내가 의심을 한 나머지 내 뒤를 캘 줄이야!
아내는 체육대회 가던 날 주차된 차 안의 블랙박스를 보았다네.
멀리 있는 아들을 불러 검색한 블랙박스엔 그녀와 나의 함께 탄 영상, 그녀의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 거야!
친구!
내 허벅지엔 손톱자국이 무성하고 밥도 얻어먹지 못한다네.
어떡하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자기보다 미인만 보면 의심을 하는 아내는 벌써 며칠째 들볶아 사람을 못살게 한다네.
그녀를 데리고 오라고 한다네.
부끄러워 남에게 말도 하지 못하고.....!!
자네 차에도 블랙박스가 있는가?
내 이야기를 교훈삼아 자네도 처신을 잘하게나.
그날, 그녀와 내가 모텔로 들어갔다면 내 인생은 끝났겠지?
자동차 블랙박스는 운전자를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게나.
블랙박스는 포맷을 자주 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게나.
자네도 바람을 핀다면 택시를 이용하든지, 모텔을 다녀온 뒤 포맷은 꼭 하게나!!
잘있게!
첫댓글 ㅉㅉ.제목을 안보고 열심히 읽어내려간
내 잘못도 크다네.^^
앞으로는 미녀와 집을 보러 갈때는 옆자리에 마누라를 대동 시키길...ㅎ
요즘 시골로 집을 보러다니는데. 남자 종개사들 대부분 여성 동무 한사람을 대동하고 오더군요.
여성 중개사분이 나오시거나... 그나저나 고객집을 방문했다고 그 정도이면 평소에 얼마나...ㅎㅎ
참 잼있게 잘 읽었습니다.
글 솜씨가 대단 하십니다..^^
잘 읽었습니다 씹는 맛이
여간 아니네요~~~
존 주말 되시고요
임장활동 많이 들어본. 단어입니다.
재미가 쏠쏠 할거 같네요.
아, 참 재미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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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아픔에 재미를 느꼈다니, 그나마 아픔이 사라지는 듯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앗! 고준위 해학!!
이렇게 고준위 칭찬도 받는군요.
소설가로 투잡을 하셔도 될 듯 합니다. ㅎㅎ
투잡을 하다니요?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데.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답니다!
헉 ! 정말 몰라서 묻는겁니다, 블랙박스 의 녹화는 어느정도의 분량이 녹화 저장 되어 있는건가요 ?
뱅기의 조종실 자동녹음은 엔드레스 타입으로 약 삽십분정도의 최근 것이 녹음 되며, 지난거는 자동 삭제 되는타입 인데요
그래서 사고당시의 상황및 내용 파악이 가능한거쥬 ㅎㅎ
제 차 블랙박스는 움직임이 있을 때만 돌아간답니다.
주차했을 때는 접근하는 움직임이 포착되어야 돌아간답니다.
그러니 일정한 시간이 지나도 앞서 녹화된 것이 지워지지 않죠
감사 합니다. 녹화저장 되는 최대시간은 어느정도인가요 ? 예를들면 한시간 또는 두시간분량 으로표현 하면요 !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릅니다만, 몇 기가냐에 따라 저장용량이 다르다고 하더군요. 오래 저장하려면 32기가 정도는 되어야 할 겁니다.
판매자에게 물어보십시오.
저는 문외한입니다.
부동산 중개업자라서^^
도움 못 드려 죄송합니다.
감사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