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 남짓, 검은 막 아래의 좁은 공간. 5명 엄마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초롱이’ ‘지킴이’ ‘보석이’가 된 엄마들. 이젠 자신이 인형이라고 생각될 만큼 인형들과 정이 들었다.
“여러분 잘 들었죠? 낯선 사람이 따라오라고 하면 가면 될까요?” “안돼요, 안돼요.” “우리도 방울이와 보석이처럼 우리 모두 몸을 잘 지키고 아껴야 해요.” “네~.”
40여분의 인형극이 끝나고 무대 밖에선 대답소리가 우렁차다. 땀범벅이 된 엄마들의 얼굴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미소가 번진다.
#피노키오 인형극단
서른 셋에서 마흔 셋, 4살부터 대학생까지의 자녀를 둔 9명의 엄마들. 아무 공통점이 없는 이들을 묶는 이름은 ‘안산YWCA 성교육 인형극단 피노키오’다. 네댓명씩 짝을 지어 유치원과 어린이집, 보육원 등을 돌며 어린 아이들에게 성교육과 성폭력 예방을 내용으로 하는 인형극 공연을 하고 있다.
“유아교육기관 교사로 일하던 때에 통학버스에서 여자아이가 다른 아이의 팬티를 벗긴 일로 떠들썩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부터 막연히 유아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지요.” “부모교육을 받다가 성상담까지 하고 있는데 유아 성폭력이 뜻밖에 심각하더군요.” “아파트에서 아동 성추행 사건이 발생해서 주의 방송을 부탁했는데 어른들은 집값 떨어진다고 쉬쉬하고, 경비실에선 방송요구를 묵살하는 걸 보고 충격받았어요.”
개인적인 경험은 달랐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는 한결같은 엄마 마음이 이들을 YWCA 여성과 성 상담소에서 운영했던 ‘성교육 인형극 지도자교실’ 강좌로 이끌었다.
스티로폼을 깎아 그 위에 종이와 석고를 바르고 색칠과 라커칠을 한 후 머리 붙이고 옷 만들어 입히고…. 강사를 초빙해 인형을 직접 제작하고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내용들을 함께 정리해 대본을 만들었다. 녹음에 더빙, 편집까지 엄마들 스스로 하고 나니 어느새 전문가 못지않은 인형극단이 꾸려졌다.
#본인도, 가족도, 이웃도 변화시킨 인형극
2002년 10월 시작된 인형극 공연은 지난해 100회를 훌쩍 넘겼다. 주로 안산을 중심으로 한 경기도 지역에서 공연했지만 서울, 천안, 조치원, 제주도 등 전국을 돌며 초청공연도 가졌다.
무릎꿇고 양팔을 계속 움직이다 보니 무릎도 시리고 어깨도 빠질 듯한 쉽지않은 일. 그래도 부모와 아이들이 변화되는 걸 보며 느끼는 보람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단다.
“이건 음낭이고 이건 질이에요, …이렇게 남자, 여자의 몸은 다르고 각기 하는 일도 다르답니다.”
인형의 몸을 보여주며 10여분 동안 남녀의 몸을 설명하고 나서 실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유아 성폭력의 사례를 인형극으로 공연한다.
“손녀를 데리고 오신 한 할머니가 어떻게 그렇게 분명하고 쉽게 설명하느냐며 집에서도 이렇게 얘기해 주면 좋겠다고 아주 좋아하셨어요.”(이인숙·43·안산 본오동), “또래간에 성추행이 있었던 한 유치원의 초청으로 인형극을 한 적이 있었는데 처음엔 우리아이가 그럴 리 없다고 난리치던 가해자 엄마가 공연을 함께 본 후 아이를 야단쳐 달라며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얘기를 듣고 뿌듯했죠.”(김라미·41·안산 초지동)
처음엔 각종 성폭력 얘기를 하면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듣기 싫어하던 남편들이 요즘은 “장비 실어나르느라 차가 엉망이 됐다”고 가끔 투정을 하면서도 친지들에 자랑할 정도로 뿌듯해 하게 됐다.
‘성폭력은 여자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던 이웃과 친지들의 생각도 이들의 설명에 조금씩 바뀌고 있다.
누구보다 이들 스스로가 변했다. 자연스럽게 성교육 강사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어떻게 하면 보다 재미있게 진행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레크리에이션 강사 자격증을 준비하는 이까지 생겼다. 인형극은 집에만 있던 평범한 아줌마들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했다.
#인형으로 꿈꾸는 새로운 소망들
“유치원 때 배운 것들은 스펀지처럼 흡수되고 나중에도 잊혀지지도 않지요. 보통 큰 사고가 있어야 대책을 세우는데 어렸을 때부터 습관을 길러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설마 내 주변에 있는 일일까 생각하는 분이 많은데 실제로 많습니다. 내 자식 일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잘못된 성정보만 넘칠 뿐 정말 알아야 할 것들을 모르고 있습니다. 유치원에서 청소년기까지 그 시기에 맞는 실질적인 교육이 있어야 합니다.”
이들이 안타까움 속에서도 입을 모으는 것은 “어쩌면 우리 때와 하나도 변하게 없나”라는 점이다. 그럴수록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새롭게 다짐한다.
텔레비전이든 길거리든 인형극만 나오면 시선이 절로 멈춰진다는 엄마들. 이들은 앞으로 더 많은 꿈을 꾸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는 양성평등 인형극을 함께 공연하고 있으며, 앞으로 인형극을 통해 기본이 바로서는 아이들을 교육하고 싶다는 꿈도 꾸고 있다. 오는 3월에는 장애아를 둔 부모들을 위해 작년 가을부터 준비한 장애아 성교육 교재를 펴낼 계획이다.
유난히 추운 겨울. 이들은 어느 누구보다 뜨거운 가슴으로 방학을 보내고 있었다.
〈글 송현숙기자 song@kyunghyang.com〉
〈사진 정지윤기자 color@kyunghyang.com〉
-유치원 자율에 맡긴 성교육 “잘돼갑니까?”-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초·중·고교에서는 연간 10시간의 성교육 권고사항이 있다. 시·도교육청이 매년 초 각급 학교의 성교육 계획사항을 보고받고 있는데 시행률이 99%에 이른다. 교육내용이 형식적이란 비판은 있지만 유치원에 대해선 그나마 아무런 조항이 없다. 단지 홈페이지(www.edugender.or.kr)를 통해 교육자료를 보급, 각 시설에 자율적으로 맡기고 있다. 작년 ‘내몸은 내가 지켜요’라는 유아 대상 성폭력 예방 비디오를 제작한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주의 상담팀 권주희 간사는 “사회적 인식은 낮지만 실제로 유아 성폭력이 많이 일어나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비디오를 제작했다”며 “어른들 말씀을 잘 들으라는 교육이 워낙 뿌리 깊었던 데다 가해자들이 ‘피해사실을 말하면 엄마를 죽인다’고 협박하면 절대 얘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부모가 상당기간 피해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권간사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따라하거나 피해당한 아이가 다른 아이에 가해하는 등 유아 성폭력은 또래간에도 많이 발생한다”며 “피해자 예방뿐 아니라 가해자 예방을 위해서도 어렸을 때부터의 성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첫댓글 라미 부회장님,,, 사진빨이 장난(?)인데요? ㅎㅎㅎ 각자의 위치에서 열쒸미 활동하는 모습 보기 좋아요..근데 아무리 바쁘구 유명인사가 되더라두 모임있을때 함 얼굴좀 보여주셔요!!!
죄송.... 지역방송엔 간간히 나왔는데....전국적으로 뜨니 매스컴위력 대단하데요.....사진빨, 실물 이젠 어쩔수 없더라구요....
와우...울 카페에는 진짜 대단하신 분들이 많으신거 같아요. 라미누님...멋짐다.
기사 내용 꼼꼼하게 잃어습니다...역쒸 라미 샘 ~ 내 자녀가 소중하기에 누구든 해야 할일이라 생각합니다. 정말 이새대 모든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소중한 분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의 잔치입니다. 한데 거시기 교육만? 하나요? 아님... 우린 암만 들어두 이해가 안가니~ 이론보다 실습이 중요하다구 말씀하신 중학교 샘 말씀이 영~ 기억이 남음은? 일까요!!!
축하합니다...언제 공연한번 볼 영광을 주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