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 정철 선생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그러나 그가 사랑했던 여인, 강아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K 선배를 따라 강아의 묘를 찾은 것은 지난 봄, 호시절이라하나 매서운 바람이 품속을 파고드는 어느 날
이었다. 경기도 고양군 삼천리 골에 송강의 묘가 있었고, 그 오른 쪽 골짜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강아의
묘가 있다.
그들은 使臣과 기생의 신분으로 마주했다. 송강이 명나라를 다녀 오던 길에 강아를 만나게 되었지만, 평
양에서 그를 따라 내려왔을 때는 '남과여'의 의미였으리라. 이후 강아는 한 번도 송강의 옆을 떠난 적이
없다고 한다. 송강이 노후에 아버지 묘를 지키며 외롭게 지내던 시절에도 강아는 곁에서 벗이 되고 동반
자가 되어 주었다.
눈에 보이는 강아의 묘는 슬프다 못해 서러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사방으로 우거진 잡목은 길을 묻어버
렸고 사람이 다닌 흔적이라고는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돌보지 않은 적지 않은 세월 속에 봉분은 낮
아져 가로세로 길이가 석자나될까? 높이는 두자가 채 못될 것 같은 작디작은 무덤이다. 그나마 옷도 벗겨
져 붉은 알흙이 들러나고 떼가 살은 것은 뒷부분 반쯤이다. '살아생전 혈육 한 점 남기지 못했단 말인가.
이것이 한 남자를 평생 사랑한 대가란 말인가, 출신이 기생이기 때문일까. 생각이 꼬리를 문다.
송강의 묘는 조카가 진천군수로 부임하면서 그곳으로 화려하게 이장되었다.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님을 바라보았던 강아는그마저 할 수 없게 되었고, 恨 이 되었으인가 해마다 사월이 되면 이름 모를
붉은 꽃이 그녀의 무덤에 피어난다고 한다. 마치 피를 토해 내듯이...
그가 강아의 사후를 자손에게 부탁했던들 그녀의 묘가 지금의 그 모습일까.
러시아 혁명의 주역 레닌에게 숨겨놓은 여인이 있었다면 믿는 사람이 있을지?
그의 연서들이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테른에 공개되었다. '이네사 아르만트'라는 미모의 러시아 혁명가가
그 주인공. 그녀는 '레닌의 '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저서를 읽고 뒤늦게 볼세비키가 되었고.그를 존경하
게 된다. 아르만트가 그를 직접만난 것은 1910년 파리 망명시절이라 한다. 당시 레닌은 한 살 위의 '크르
프스카야와 결혼한 후이고 아르만트는 네 아이를 두고 나편과 헤어진 상태다. 슈테론紙는 '니이보다 열
살쯤 늙어 보이는 혁명동지이자 아내인 크루프스카야와 단조로운 결혼생활을 하던 레닌에게 나이보다 열
쌀쯤 젊어 보이고 우아한 아르만트의 등장은 혁명사업 중의 커다란 휴식이었다'.라고 평가했다.
레닌은 혁명사업을 협의한다며 파리의 오를레앙가 카페에서 수 시간씩 그녀와 함께 있는가하면 코펜
하겐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회의에 열흘씩 동반하기도 했담가 역설적이게 아르만트의 부르주아적 면모를
아끼고 사랑했다. 가끔씩 그녀에게 베토벤의 '열정'을 연주하게 하고, 우아한 그녀의 옷차림에 매혹되기
도 했다. 그들의 사랑은 십 년 동안 지속되었다. 병약한 아르만트가 카프카스 지방에서 세상을 등질 때까
지었으니 죽음만이 그들을 갈라놓을 수 잇었던 셈이다.
레닌은 크렘린궁 외벽 혁명가의 기념 묘지에 그녀를 안장시켰다. 지금도 서로 바라볼 수 있는 위치란
다. 혁명가의 마음엔 과업을 이루어야 하는 냉철한 마음만이 가득할 것이라는 상상은 나의 오산이었다.
어름처럼 차가왔을 것같은 레닌에게 그토록 여인을 사랑할 수 있는 따스한 마음과 뜨거운 열정이 어디에
숨었더란 말인가. 더구나 사랑에 대한 그 의리가 놀라울 뿐이다.
두 여인은 모두 그녀들이 사랑했던 사람의 ' 곁의 여자'. 살아 생전에 누가 더 행복했으리란는 비교는
할 필요가 없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란 겉모습만으로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아는
기생이라고 편안하게 귀애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송강이 유배를 갈 때마다 곁을 떠나지 않고 애절한 사
랑을 했지만 그녀를 불행했다고 말 할 수는 없으리라.
아내의 입장에서 강아를 보면 동정의 여지가 없다. 부처님도 돌아앉는 시앗이 아니겠는가. 허나 같은
여자의 시선으로 생각하면 참으로 그녀의 생애가 가엾다. 한 남자를 평생 사랑한 대가가 황폐한 무덤 속
에 누워있게 되다니, 이제는 진천으로 떠나간 님의 '곁의 여자'도 되지 못한다. 차마 상식이 아닌 사랑의
값을 치르는 거라고 말하기엔 가슴 저려온다. 북풍한설은 커녕 꽃샘추이조차 막지 못할 떼도 없는 그 무
덤을 보면...
돌아오는 사월, 그의 무덤에 恨이 피어오를 때, 나는 다시 찾으리라는 다짐을 해 본다. 술 한잔을 받아
강아를 찾아간다면 외로워 보이는 넋에 위로가 될 것인지...
어디선가 "사랑은 어쩔수 없는 운명이겠지만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인연은 집착을 낳고, 집착은 번뇌와 고통을 줄 뿐이라"는 말과 함께...
그러나 누가 인연의 줄을 끊을 수 있단 말인가.
____98년 겨울
그로부터 삼사년이 흐른 금년 사월 나는 강아의 묘를 다시 찾았다. 스스로에게 다짐한 약속도 있고해
서 ....
강아의 묘는 놀랍게 변했다. 봉분은 살리었고 잔듸도 곱게 살아 있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석화가 핀 제석
이며, "의기 강아묘"라는 비석까지 세워져 있었다. " 누가 지수씨 글을 읽었나봐." 같이간 문우의 말이었
다. 그런다. 사실이 아니라해도 그 한 마디는 글 쓰는이의 보람이었다.
처음의 슬픈 모습 그대로라면 해마다 찾으려 했던 마음을 접고야 말았다. 더이상 강아는 불행해 보이
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월이건만 恨 맺힌 붉은 꽃은 없었고 앙증맞은 노란 꽃이 여기저기 피어 있어 평화
로웠다. 저만치 만개한 벗꽃잎을 따다가 강아에게 권하고 남은 청주에 띄워 마셨다. 한 모금의 술기운이
실핏줄을 타고 짜릿하게 번졌다. 그것이 영혼의 맑은 울림 같기도 했다.
첫댓글 난향님의 행동이 한편의 시입니다. 진천이 시댁이라 '송강 정철의 묘'라는 안내판을 수시로 보는데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강아에 대한 이야기는 왕의 여자라는 TV연속극에서 봤어요. 혁명가 레닌은 그 힘든 생활이기 때문에 더욱 여성적인 것이 필요 했으리라 봅니다. 새로운 거 많이 알고 갑니다.
사랑은 어쩔수 없는 운명이겠지만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인연은 집착을 낳고, 집착은 번뇌와 고통을 줄 뿐이라"는 말과 함께... 마음에 와 닿는 말이네요 인연도 집착도 번뇌도 고통이 따르군요
새로운사실을 알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의기강아의 산소가 단장이되어서 기쁩니다.옛날이나지금이나 인간의감정은 같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