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 정전(正殿)에 나오지 않고
영집현전사(領集賢殿事) 하연(河演) 등에게 명하여 중시(重試)를 치를 문신(文臣)들을
근정전(勤政殿) 뜰에서 시험보이는데, 시제(試題)를, ‘집현전(集賢殿)에서
팔준도(
八駿圖)를 올리는 전(箋)을 모의(模擬)함[擬集賢殿進
八駿圖箋]’으로써 하였다. 이날에 사옹(司饔)·다방(茶房)·예빈시(禮賓寺)에서 구례(舊例)에 따라 음식과 술을 조금 차렸는데, 임금이 중관(中官)에게 명하여 내온(內醞)과 진수(珍羞)를 하사하니, 실로 유림(儒林)의 성사(盛事)이었다.
연(演)이 인하여
팔준시(八駿詩) 절구(絶句) 1수(首)를 지으니,
팔준(八駿)이란 것은 태조(太祖)가 잠저(潛邸) 시절에 전쟁할 때 쓰던 말이다. 임금이 또 문신(文臣)들에게 명하여 그 시(詩)를 화답(和答)하게 하여 족자[軸]를 만들어 집현전(集賢殿)에 간직하게 하였다. 이튿날에 책문[策]을 내어서 별시(別試) 볼 유생(儒生)들을 시험하였는데, 강경(講經)에 입격한 50인이 들어와 응시하였다. 또
금성 대군(錦城大君) 이유(李瑜)와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 이순몽(李順蒙)·
우찬성(右贊成) 김종서(金宗瑞) 등에게 명하여 무과(武科)를
광화문(光化門) 밖에서 시험하게 하였다.
○丁丑/上不御殿, 命領集賢殿事
河演等, 試重試文臣于
勤政殿庭, 試以擬集賢殿進八駿圖箋。 是日, 司饔、茶房、禮賓依舊例設饌具。 酒半, 上命中官, 賜內醞珍羞, 實儒林盛事也。
演因題
《八駿詩》一絶,
八駿乃太祖潛邸征戰時所御馬也。 上命文臣和其詩, 作軸藏于集賢殿。 翼日發策, 以試別試, 諸生講經入格五十人入赴。 又命
錦城大君瑜、領中樞院事
李順蒙、右贊成
金宗瑞等, 試武科于
光化門外。
세종 123권, 31년(1449 기사 / 명 정통(正統) 14년) 2월 23일(갑술) 1번째기사 피마·상마 10필을 바치도록 함길도 감사에게 유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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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길도 감사에게 유시하기를,
“
그 도에는 본디 호마(胡馬)가 생산되는 땅이다.
태조께서 타시던 팔준마(
八駿馬)도 실로 그 땅에서 났고,
그 뒤에 밤색 말[栗色馬]과 옥비흑마(玉鼻黑馬)도 몸이 크고 건장하여 내가 탔는데, 이제 들으매, 도내(道內)에 좋은 말이 없다고 하나,
민간에서 매매하는 야인의 말이나, 그곳에서 생산한 말 가운데, 널리 구하고 정밀하게 골라서 그 값을 넉넉하게 주고, 피마[牝馬]·상마[牡馬] 아울러 열 필을 보내되, 만약 쉽게 구할 수 없으면 억지로 구할 필요는 없다.”
하였다.
○(甲戊)〔甲戌〕/諭咸吉道監司: “其道本胡馬産出之地, 太祖所御八駿馬, 實産其地。 其後栗色馬玉鼻黑馬, 亦體大壯健, 予乃乘之。 今聞道內無良馬, 然民間所市野人馬及孶息馬之內, 廣求精擇, 優給其價, 牝牡幷十匹以送。 若不易得, 不必强求。”
세조 30권, 9년(1463 계미 / 명 천순(天順) 7년) 1월 2일(임진) 1번째기사
괘부의 절따말과 정난의 부루말에 이름을 짓고 그리게 하다
“예로부터 집을 일으켜 세운 인주(人主)는 사방(四方)에 전쟁할 때 함께 사지(死地)를 겪으면서 재주와 힘으로 서로 도와준 것은 말인 때문에 잊지 못하고,
유비(劉備)의 ‘적로(的盧)’, 당 태종(唐太宗)의 ‘’, 우리 태조(太祖)의 ‘八駿)이라고 일컫는 까닭이다. 나는 전쟁한 땅은 없으나 세종(世宗)의 성시(盛時)에 말달리고 활을 쏘아 승부를 겨루는 날에 남보다 10배(倍)나 빨랐으므로, 3군(三軍)의 우러러보고 복종하였던 것이 어찌 말의 힘에 서로 도움이 없었겠느냐? 괘부(掛釜)의 절따말[騮]은 비록 마음에 걸리지만 정난(靖難)의 부루말[驃]은 더욱 잊지 못하겠다. 또 궁마(弓馬)의 재주[藝]는 참으로 공업(功業)을 일으킨 것이니, 이제 이것이 병을 얻어 더욱 옛일이 생각나서 그려 보려고 하는데 어떻겠느냐?”
“그러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그 말[馬]을 명명(命名)하고, 이어서 명하여 그려서 이를 기리게 하였다
○壬辰/上令
韓繼禧、
任元濬曰: “自古起家之主, 征戰四方, 偕經死地, 才力相資者馬, 故所以不忘而稱劉備 ‘的盧’、唐宗 ‘六駿’、我太祖之 ‘八駿’ 者也。 予無征戰之地, 而方世宗盛時馳射角勝之日, 十倍於他, 三軍仰服者, 豈無馬力相資耶? 掛釜之騮, 雖怏於心, 靖難之驃, 尤所不忘。 且弓馬之藝, 實是功業之所起, 今玆得疾, 益以思舊, 欲圖觀之若何?”
繼禧等對曰: “然。” 上命名其馬, 仍命圖而贊之。
첫댓글 실록 원문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 베이스 조선왕조실록을 인용하였습니다.
태조와 팔준마에 관한 내용에 대해 많은 사료 발굴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