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올해의 작가에 건축가가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2002년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승효상은 한국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중견 건축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올해 미국 건축가 협회 명예 회원에
추대되었으며, 2000년도 베니스 비엔날레의 본 전시 초대작가로 출품하는 등 국외적으로도 명성을 얻고 있다. 승효상은 <수졸당>(1993), <대학로 문화공간>(1997), <수백당>(1999), <웰콤 시티>(1999), <파주출판단지>(2000) 등의 대표적인 건축작품을 통해 건축가협회상, 한국건축문화대상, 김수근 문화상 등을 수상하였다.
- 장 소 : 국립현대미술관 제 1전시실
- 기 간 : 2002. 8. 28 ~ 10. 27
이번 전시에서 승효상은 'Urban Void'라는 주제로 미술관을 하나의 새로운 땅으로 인식하고, 그 위에 새롭고 이상적인 도시공간을 건설한다. <수졸당>, <수백당>으로 대표되는 그의 주택 건축을 포함하여, <중곡동 성당>, <웰콤 시티>, 중국의 <북경 클럽하우스>, <파주출판도시> 등 승효상의 대표적인 건축물들은400여 평의 전시공간에 다양하게 구획된다.
이 공간들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도시 속을 걷는 듯한 공간 체험을 유도한다. 이 공간은 그 동안 현대 도시가 보여준 계급구조의 공간을 벗어나 비 계급적인 공유의 공간, 삶의 공간을 지닌 도시의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서 한국 건축문화에 새로운 담론과 가치를 제공해 줄 것이다.
건축가 승효상은 <공간(空間)>의 고(故) 김수근 문하에서 건축을 시작했으며, 이후 '빈자의 미학(Beauty of Poverty)'이라는 건축적 화두를
통하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건축세계를 발표해 왔다. 그는 건축의 공간적 배경을 이루는 주변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과 그 속에서 거주하는 사람의 삶의 가치가 공유되는 새로운 개념의 건축을 제시한다. 그는 건축이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건축은 중심과 주변으로 나누어진 대도시의 계급주의적 건축,
삶과 유리된 과장된 조형으로서의 건축을 거부한다. 그의 건축은 그
곳에 생활할 사람이 공간 속에서 스스로의 삶을 가꾸어 갈 수 있도록
한다. 그의 건축이 갖는 극도의 단순성은 이런 측면에서 이해된다. 그가 사용하는 건축재료 역시 이러한 특성을 드러낸다. 무채색 노출콘크리트와 시간에 따라 표면이 부식되는 내후성 강판인 코르텐 강(Corten)의 사용은 이러한 내부와 외부 공간의 단순한 구조와 어울리는 순수한 재료들이다.
이렇듯 승효상은 또 다른 창조를 위한 여백의 공간, 주변과의 관계성을 지닌 공유공간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를 승효상은 '빈자의 미학'으로 명명한다. 빈자는 마음이 풍요한 자이다. 주변과 삶을 공유하는 자이며, 그의 말대로 "가짐 보다 쓰임을, 더함보다 나눔을, 채움보다 비움을 중요시"한다.
이번 전시의 주제인 'Urban Void'는 이러한 '빈자의 미학'의 연장선에서 파악된 새로운 도시설계에 관한 건축적 화두이다. 승효상이 추구하는 도시공간은 현대의 모더니스트 건축가들이 추구했던 마스터플랜(Master Plan)과는 대조적이다. 모더니스트들은 인간의 이성으로
미래의 모든 것을 계획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결정론자였다.
인간의 가치나, 의미가 희석되고 기능주의적, 계급주의적 관점이 팽배한 이 세대의 도시는 편리는 하지만 인간의 삶 자체를 풍요롭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 승효상은 "인간의 이성은 미래에 대한 모든 것을 확정할 수는 없고, 결정할 수 없는 부분을 인정해야 한다. 마스터플랜이
갖고 있는 오만을 버려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바로 지금, 현재인 것이다.
승효상은 이러한 현재의 요소를 갖고 건축을 하며, 알 수 없는 부분을
비워놓는다. 이러한 불확정의 빈 공간은 그 공간에 사는 사람의 의지에 의해 바꿔나가거나, 채워지는 것이다.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은 처음에는 텅 빈 듯한 백색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이후 다양하고 변화 있는 공간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되며, 이제까지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건축과 도시 공간을 체험하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 도시는 현대의 도시 속 개인의 섬처럼 고립된 단순히 붙어있는 공간이 아니라 심리적 공유를 일으키는 모여
사는 공간이며, 채우지 않는 빈 공간, 무목적의 공간이다. 그 공간은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서서히 채워지게 될 것이다.
『올해의 작가』전은 1995년부터 시행된 국립현대미술관의 대표적인 기획전 중 하나이다. 주로 한국미술문화의 흐름에 크게 기여하거나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는 미술작가를 선정하여 집중 전시하지만 이번 전시는 한국현대건축의 성과와 새로운 가능성을 승효상이라는 건축가를 통해 집중 조명해 본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며 한국의 건축문화에 대한 이해를 한 단계 끌어올릴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의 산업개발 경제시대에 잘못 인식된 건축에 대한 태도, 즉 "부동산은 있어도 건축은 없고, 건물은 있어도 건축 문화는 없는 불임의 시대"에 살았던 우리에게 21세기의 새로운 문화혁명으로서 우리의 삶과
주거조건, 환경으로서의 건축을 다시금 되새겨 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http://www.moc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