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인환 시인과의 따뜻한 인연과 잊지 못할 추억②
◆ 문학동인 《전원에서》 초대손님으로 맺은 인연
/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전 금강일보 논설위원
▲ 배인환 선생님의 따뜻한 정이 담긴 수필집 - 책으로 맺은 인연, 문학동인 초대손님으로 이어졌다.
▲ 배인환 시인이 필자를 초대했던 문학동인 《전원에서》 책자 표지와 글 순서 / 본문 일부
◆ 충청권 일간지 금강일보에 발표했던 윤승원 칼럼 중에서
2012년 4월 19일
[윤승원의 세상풍정(68)]
어느 작은 문학회의 인상 깊은 국기배례
- 원로문인들의 남다른 애국심 -
윤승원 논설위원
“저희 문학회가 이번에 백 번째 모임을 갖습니다. 작품 낭송도 하고 합평도 하는 자리입니다. 조촐한 자리지만 꼭 모시고 싶습니다.”
대전의 문학모임 ‘전원에서’ 회장을 맡고 있는 배인환 시인의 전화였다. 고희를 넘긴 백발의 원로시인인데도 ‘만년소년’이라는 별명답게 언제 들어도 초록 물이 뚝뚝 떨어지는 싱그러운 목소리에 순진무구한 정이 넘친다.
농담은 또 좀 잘 즐기시는가. 상대방이 듣기 좋은 말만 골라 꼼짝 못하게 한다. “우리 회원 모두가 윤 선생님을 꼭 모셔야 한다고 결정한 일이에요.” 이렇게 과분하고 영광스러운 자리가 어디 있는가. 더욱이 ‘백 번째 모임’을 기념하는 자리라고 강조하는데, 제백사(除百事)하고 참석해야 할 일이다.
봄비가 촉촉이 내리던 날, 목련이 활짝 핀 골목을 지나 설레는 마음으로 모임에 나갔다. 낯익은 여러 문인들이 반갑게 맞아주는 가운데, 임강빈 원로시인과 변재열 대전시인협회장도 특별손님으로 자리를 함께 했다.
▲ 대전의 문학모임 <전원에서> 회장인 배인환 시인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백발의 원로시인인데도 ‘만년소년’이라는 별명답게 언제 들어도 초록 물이 뚝뚝 떨어지는 싱그러운 목소리에 순진무구한 정이 넘친다.
그런데 이 작은 문학모임에 웬 ‘태극기’인가. 비좁은 식당 방에 애초부터 설치돼 있었던 태극기가 아니었다. 깃대를 별도로 만들어 태극기 2장을 쌍으로 걸어 놓은 광경이 유독 이채롭게 보였다.
▲ 양태의 시인이 손수 만든 '펼침 막'과 남다른 정성과 공력이 들어간 '태극기'
행사명을 써 붙인 ‘펼침 막’과 함께 양태의 시인(전 고교교장)이 손수 만든 것이라고 했다. 시인의 남다른 정성과 공력이 한껏 묻어난다. 식탁위엔 나요당 여류수필가가 준비한 분홍 꽃이 화사했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하고 독창적인 개성이 돋보이는 분위기였다.
“죄송하지만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경건한 ‘국민의례’가 시작됐다. ‘국기에 대한 경례’에서는 언제 준비했는지, 소형 녹음기에서 애국가가 흘러 나왔다. ‘순국선열과 작고문인에 대한 묵념’순서에서도 숙연한 음악이 흘러 나왔다. 작은 문학모임에서 이런 의식은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경건한 ‘국민의례’가 시작됐다. 소형 녹음기에선 애국가가 흘러 나와 분위기를 한층 엄숙하게 했다.
어느 단체에서는 공식행사에서도 국민의례를 하지 않는다. 태극기에 예를 표하고 애국가를 부르는 대신 ‘산자여 따르라’는 투쟁성 행진곡을 부른다. 지나친 개인주의와 섣부른 민주화 과정에서 애국심이 실종됐다고 개탄하는 어르신들은 “애국심이 실종된 국민들이 어떻게 나라를 선진화 시킬 수 있느냐”고 걱정한다.
한평생 교육자로 살아오신 나의 장형은 미국 여행을 하면서 주택가에서도 성조기가 걸려 있는 집을 자주 보고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아침마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국기에 대한 맹세’는 ‘정식행사’에서만 행해진다.
2010년 대통령훈령으로 제정된 ‘국민의례 규정’은 애국가 제창이나 연주를 생략하는 ‘약식 절차’를 인정하고 있다. 기관․단체는 이를 준수해야 하고, 민간은 자율적으로 준용토록 하고 있다.
이 날 문학모임에서 모처럼 가슴에 손을 얹고 경건한 마음으로 태극기를 바라보고 나서 그런지, ‘행사의 무게’가 느껴지고, 낭송시의 느낌도 여느 때와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 초대 손님 - 위로부터 임강빈 시인, 김용재 시인, 변재열 시인, 윤승원 수필가
▲ 초대손님과 회원들의 작품을 수록한 책자도 나눠줬다. 양태의 시인이 손수 책자를 편집했다고 하는데, 작가소개와 작품 배열 등 편집솜씨가 뛰어나다고 참석자들은 입을 모았다.
임강빈 시인이 직접 낭송한 ‘군중’이라는 시도 그랬다.
“고암 이응노 미술관에 들렀습니다 / ‘군상’앞에 섰습니다 / 군중이 우르르 몰려옵니다 / 웅성거립니다 / 고함이나 욕설이 보이지 않습니다 / 고독도 없습니다 / 손과 손이 / 하늘 향해 높이 움직입니다 / 걸어가는 / 발자국 소리가 가볍습니다 / 참, 조용한 시위이구나 / 별천지에 와 있습니다”
▲ 참석자 모두 자신의 작품을 낭송하는 가운데, 진지한 감상평도 이어졌다.
좀처럼 듣기 어려운 원로시인의 낭송시였다.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아~”라는 감탄과 함께 “좋네요!”라는 짧은 감상평 외엔 군더더기 붙이기를 주저하는 분위기였다. 양태의 시인의 시 ‘판암동 포도밭’도 그랬다. 깃대를 손수 만들어 태극기를 달고 ‘국민의례’를 진행한 주인공이다.
▲ 이 모임의 총무로서 행사 진행도 하고, 작품 낭송도 하는 양태의 시인. 전직 고교 교장선생님이다.
한평생 교육자로 헌신해온 시인이 왜 이런 시를 지었는지 곱씹게 만들었다. 마지막 대목은 이렇다. “겨울잠 깬 포도밭에 검정바람 이네 / 8월에 익는 4월 포도밭에 흙비 뿌리네 / 안개 자욱한 미지의 낮밤을 유빙처럼 / 우리들 포도밭 / 본류가 떠내려가네 주류가 떠밀려가네”
세태를 걱정하는 원로시인의 시어엔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이 나라를 누가 지켜왔는가, 애국심을 가진 기성세대를 수구보수로 매도하며 부정하는 세력이야말로 ‘검정바람’이 아닌가, ‘본류가 떠내려가’고 ‘주류가 떠밀려가’는 상황에서 나라를 걱정하는 기성세대의 자탄(自嘆)을 읽었다. 차기 국가지도자가 될 사람은 이 분들이 소외감을 갖지 않도록 ‘국가 정체성’을 분명히 해주었으면 한다. ■
2012년 4월 19일 금강일보
2008.06.06. 윤승원 칼럼
'작지만 아름다운 문학모임' 초대를 받고
- [청촌수필] 일선 경찰, 전직 교육자 문학모임《전원에서》참석記
글, 사진 윤 승 원
내 고장의 문학모임이 모두 몇이나 될까? 다양한 장르의 회원으로 구성된 무슨 협회나, 연합회, 또는 이름이 잘 알려진 단체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드러나지 않은 크고 작은 문학모임까지 더하면 아마도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대성한 작가나 시인이 아니어도 좋다. 순수한 문학 창작은 그들의 보이지 않는 열정에서도 샘물 처럼 솟아 나온다.
누가 내 고장을 '문화예술의 불모지'라고 했는가. 깊이 있게 살펴보지 않은 이가 잘못 알고 지어낸 말일 것이다. 그게 아니면 타 지역에 비해 뒤떨어진 문화예술 분야의 열악성을 지적하기 위해 원망조로 짐짓 해 본 소리일 것이다. 그 말 속에는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행정관청의 보다 큰 관심과 지원을 주문하거나 기대하는 심정도 담겨 있다.
◆ 작은 문학모임에서 다달이 책자까지 펴내는 열정과 정성이 놀라워
그러나 내 고장의 크고 작은 문학모임에서 순수 문학의 본령을 지향하면서 창작의 열정을 불태우는 문인들의 멋과 인생살이의 아름다움을 엿본 사람이라면 그런 불명예스런 말을 쉽게 내뱉지 않는다. 그 흔한 지원금 한 푼 받지 못하면서 회원 상호간 십시일반의 회비만으로 주옥 같은 책자를 펴내고 있는 문학모임이 있다면 믿을 것인가.
엊그제 뜻하지 않은 문학모임에서 영광스런 초대를 받았다. 원로시인이자 교육자인 배인환 선생님이 앞장서 만든 문학모임이었다. 이름하여 《전원에서》.
이 모임은 2003년 대전 오류동에서 출범했다고 하니까, 연륜으로 치자면 불과 5년 남짓 되었다. 구성원도 많지 않았다. 딱 10명이었다. 처음 이 문학모임을 태동시킨 배인환, 조일남(타계), 양태의 원로시인들은 모두 전직 교장선생님들이다. 거의 고희를 맞이했거나 넘긴 분들이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은 젊은 문인들 못지 않았다.
회원인 안태승, 양창환, 이정웅 수필가도 교단에서 한 평생을 봉직한 원로 문인들이다. 여성 문인들도 있었다. 강가람 시인, 나요당 시인, 박숙자 수필가, 이옥순 수필가, 장혜원 시인 등 그 구성원의 수는 비록 작지만 작품에 대한 열의와 모임을 아끼는 정성은 그 어느 문학단체에 뒤지지 않았다.
온화한 인품에서 풍기는 충청도 선비 스타일의 풍모며, 한결 같이 나지막한 음성으로 나누는 언어에는 어느 한 분도 정이 철철 넘쳐나지 않은 분이 없었다.
◆ 경찰문인을 초대손님으로 추천한 시인은 이 모임의 회장
이 귀한 자리에 경찰 직업을 가진 필자를 각별히 초대해 준 문인은 교육자이자 번역가인 배인환 시인이다. 모임 장소는 대전 둔산동의 양태의 시인 아파트.
정해진 시간에 맞춰 오느라 땀을 흥건히 흘리면서 집안에 들어서니, 주인 어른인 양태의 시인과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안태승, 양창환, 이정웅 수필가가 벌떡 일어나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이렇게 꽃 향기 그윽한 아파트 거실은 처음 보았다. 교직에서 한 평생 종사하신 분답게 집안 어느 구석을 둘러보아도 정갈하고 모든 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중 인상적인 풍경은 전망이 탁 트인 베란다에서 저마다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화분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만개했을 때, 뜻 깊은 문학모임의 날짜를 잡은 것인지, 초대 손님인 필자로서는 실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문학모임을 가진 전직 교장선생님의 아파트 - 만개한 꽃들도 손님을 반갑게 맞아주는 듯했다. |
놀라운 것은 이뿐 만이 아니었다. 전직 교장선생님이 손수 접시에 받쳐 차려주는 맛깔스런 다과는 가만히 앉아서 대접 받기가 미안할 정도로 과분했다.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배인환 시인은 등짐처럼 메고 온 무거운 책을 한 보따리 풀어 놓았다. 고희의 연륜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문학 관련 책자를 많이도 챙겨가지고 나타났다. 이런 것이 다 문학을 남달리 사랑하는 분의 정성과 열정이라고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 원로시인이 손수 챙겨 가지고와 일일이 나눠 준 문학관련 최근 책자들 - 칠순의 연세임에도 등짊 짊어지듯 이 무거운 책자들을 한 보따리 풀어 놓았다. |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 작은 모임에서 다달이 책자를 만들어 내다니....더구나 '오늘의 초대손님'인 필자의 눈을 동그랗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초대작가의 사진을 표지에 넣고, 맨 앞장의 글 또한 필자의 졸고 수필로 장식한 것이다. 과분하여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 교직경험을 바탕으로 원로시인이 손수 책을 만든 솜씨 탁월
편집과 제책(製冊)은 총무이자 이 집의 주인인 양태의 시인이 맡았다고 한다. 양태의 시인은 내가 근무하는 대덕경찰서 인근 지역의 고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원로 시인이다. 그 연세에 이런 열정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오탈자 하나 없이 책을 꼼꼼하게 잘도 만들었다. 책을 여러 권 발간해 본 경험이 있는 필자로서는 그 정성과 노고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었다.
문제는 이런 주옥같은 책자를 어떤 문예기금이나 지원금 없이 회원들의 순수한 회비만으로 매달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다.
▲ 책자 표지 - 초대작가로 선정된 경찰 수필문학인을 표지그림으로 넣은 것도 이 모임의 각별한 배려이고 사랑으로 느껴졌다. |
▲ 작품집 맨 앞장을 장식한 초대작가의 수필 - 이렇게 실린 작품을 필자가 직접 낭송하고 회원들이 소감을 한 마디씩 개진하는 형식도 의미가 있었다. |
모임이 시작되자 회장인 배인환 시인으로부터 초대작가 소개가 먼저 있었다. 이어서 필자의 인삿말과 함께 작품 낭송도 있었는데, 장시간에 걸쳐 소감 피력과 글 낭송이 이어졌음에도 시종일관 숨 죽이고 성의껏 경청해 주는 원로문인들의 모습에 감동이 밀려왔다.
▲ 작품 낭송하는 초대작가 - 단상에서 마이크를 잡고 낭송하는 것보다 아파트 거실에 둘러 앉아 서로 얼굴 맞대고 글을 읽으니 가족처럼 아기자기하고 정이 묻어나는 것을 느꼈다. |
▲ 듣는 이의 표정도 진지 - 목소리를 가다듬어 작품을 낭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의 작품을 진지하게 음미하는 원로문인들의 표정도 경건하기까지 하다. |
▲ 한 자리에 모인 회원들 - 뒷줄 좌로부터 이정웅 수필가, 양창환 수필가, 배인환 시인, 초대작가 윤승원 수필가, 양태의 시인, 아래 좌측부터 장혜원 시인, 이옥순 수필가, 나요당 민요연구가, 박숙자 수필가(안태승 수필가는 사진을 찍느라 빠졌다.) |
◆ 작품 한 대목을 놓고 교직 경험담 쏟아내
초대작가로서 맨 먼저 졸고를 다 읽고 나니, 전직 교장선생님들이 귀한 소감을 한 마디씩 던지는데, 글을 쓰기 전에 교단의 생생한 경험을 가진 선생님들의 귀한 말씀을 들었더라면 더 좋은 글을 썼을 걸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다. 글에서 '학교 선생님들의 이야기'도 한 대목 나오기 때문이다. 바로 요 대목이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면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곧잘 들려준다. 그 중에서 선생님들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A반에서 한 이야기를 B반에서 해야 하고, 작년에 3학년생들에게 한 이야기를 올해 또 3학년에 올라온 학생들한테 똑같이 되풀이하는 선생님들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선생님의 가르침이 늘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선생님인들 직업에 대한 권태를, 그 단조로움을 왜 느끼지 않으실까? 아이들 앞에서 늘 새로워지려고 노력하는 선생님들이 새삼 고마운 생각이 든다.』
이에 한 전직 교장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어느 때는 같은 반에서 똑 같은 내용을 깜박하고 다시 한 번 되풀이하는 거야. 그러면 녀석들이 '선생님, 그 강의는 어제 했는데요' 하면 되는데, 요놈들이 그냥 가만히 듣고 있는거야. 그러면서 재미있다는 듯이 지덜끼리 낄낄거리면서 '어디까지 하나 보자!'는 식으로 잠자코 골탕을 먹이는거야. 나중에 알고 나면 김이 빠지는 거지."
또 한 전직 교장선생님은 이런 경험담도 들려주었다.
"학교 수업이란 교실마다 내용을 다르게 강의할 수가 없어. 똑 같은 내용을 다른 반에서도 똑 같이 해줘야 하는 원칙같은 게 있지. 시험출제 때문이야."
<반복> 에 대한 필자의 수필과 연관하여 문인들의 교직 경험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반복 강의를 하다보면 맨 첫 번째 들어가는 교실에서는 조금 서툴게 하기 마련인데, 맨 나중에 들어가는 교실에서는 강의내용에 가속이 붙어 100%만 해도 될 것을 그 이상 넘치게 할 때도 있어. 강의를 하고 나서 교사인 자신도 스스로의 강의 내용이 만족해서 뿌듯했던 적도 많아. 반복에 따른 완숙의 경지라고나 할까, 가르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교사로서의 신명이랄까."
여성 문인들도 거들었다.
"<반복>이란 어떤 경지에 이르면 무아지경에 빠지는 거지요. 도를 닦는 것처럼 어떤 경지에 이르기도 하고, 그에 몰입하면 지루하거나 권태를 느끼지 않는 거지요."
그러나 회원들은 작가가 이 글에서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마지막 부분을 족집게처럼 집어 내었다. 경찰 직업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일반적인 시각이 아니라 '반복적인 것'과 '단조로운 것'에 대한 한 직업인의 달관적 시각에 해석의 초점이 자연스레 맞춰졌다. 그것은 반복적인 일상을 갖는 특정 직업에 대한 독자의 새로운 인식과 이해이기도 해서 필자로서는 감명 깊었다.
◆ 경찰문인의 작품에 대한 각별한 애정 표시
한 작품을 필자가 낭송하면 이렇게 여러 회원들이 각자 소감이나 경험담을 말하는 등 합평(合評)을 함으로써 문학작품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또 다른 지식 습득, 정보 공유 면에서 일거삼득의 효과를 거두는 것이 이 모임의 장점이자 배울 점이었다.
과분하게도 이 모임의 책자에 실린 나에 졸고 수필에 대한 회원들의 작품평은 찬사와 덕담 일색이었는데, 아마도 이런 자리에 좀처럼 참석하기 어려운 경찰 직업을 가진 '초대 손님'에 대한 각별한 배려 차원이 아니었나 짐작된다.
아무튼 거칠고 삭막한 치안 일선에서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아름다운 정서로 노년을 곱게 가꾸는 분들의 귀한 자리에 초대되어 문학을 이야기하고, 인생을 노래한 것은 그지없이 의미 있고 행복한 일이었다.
머지 않은 장래, 필자 역시 퇴직하여 저렇게 아름답고 고운 정서로 인생을 알뜰히 가꾸면서 살아가는 분들처럼 건강하게 늙어갔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 보는 소중한 자리이기도 했다. 초대해 주신《전원...》 회원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고마운 마음 전한다. ▣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보람을 느끼는 현직 경찰관. 평범하지만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수필문학인. 1990년 《한국문학》 공모 산문 장원 당선. KBS와 《한국수필》 공동공모 수필당선. 2001년 <경찰문화대전> 금상 수상. 수필집 《삶을 가슴으로 느끼며》 , 《덕담만 하고 살 수 있다면》 , 《우리동네 교장 선생님》 . 《부자유친》 , 《아들아, 대한민국 아들아》 등 펴냄. 한국문인협회회원, 대전·충남수필문학회 회장 |
※ 문학동인지 《전원에서》책자에 수록된 <초대손님 윤승원 수필>
수필 단조로움과 반복에 대한 단상 윤승원(수필가. 2008년 6월 《전원에서》 초대작가) 택시기사에게 미안하다. 승차하자마자 "○○까지 가시죠."하니까, 대답 대신 힐끗 한 번 쳐다본다. 그리고는 이내 무반응이다. 그렇다고 안 가겠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자동차는 굴러간다. 그러나 운전자의 마음이 썩 내키지 않는 듯하다. 웬만큼 눈치로 살아온 사람에게 잡히는 감이라고나 할까? 기사의 표정을 정면으로 읽을 수는 없어도 뒤통수만 보고도 감지할 수 있는 어떤 불만스런 느낌 같은 것. 무슨 언짢은 일이라도 있나 싶어 조심스럽게 물으니, "방금 갔다 온 길을 또다시 가자고 하는 승객을 만났을 때 솔직히 맥이 빠진다."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가고 싶지 않은 길을 가야 할 때가 있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신께서 점지했다고 하지 않는가. 삶이 내 의지대로 핸들 돌리고 싶은 대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길이 있고, 내키지 않지만 가야 하는 길이 있다. 무슨 핑계를 대더라도 승객에게 다른 택시를 이용하라고 할 수도 있다. 승차 거부가 아니라 양해를 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사는 그런 구차한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양심적인 직업의식, 그 신뢰감이 우리를 안도케 한다. 직장에서는 매월 정례 교육이 실시된다. 전 직원을 집합시키면 민원인에게 불편을 주게 되고 업무에도 공백이 생기므로, 갑·을반으로 나누어 실시하게 된다. 어쩌다 을반에 편성된 나는 조금 싱거운 생각을 하게 된다. 강단에 선 강사가 왠지 딱해 보이는 것이다. 엊그제 갑반에서 한 말을 앵무새처럼 똑같이 되풀이하는 그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질리겠다!' 엉뚱하게도 그런 생각에 이르면 더욱 진지하게 경청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그런 청중의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한 것처럼 강단의 외래강사는 오늘이 두 번째가 아닌 처음인 것처럼 열강을 한다. 고마운 일이다. 강연 도중에 몇 차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갑반 직원들도 요런 대목에서는 틀림없이 손뼉을 쳤을 것이다. 그러므로 을반 직원들은 갑반 직원들 보다 더 열렬히 손뼉을 쳐줘야 하는지 모른다. 수고하는 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요, 보답이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면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곧잘 들려준다. 그 중에서 선생님들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A반에서 한 이야기를 B반에서 해야 하고, 작년에 3학년생들에게 한 이야기를 올해 또 3학년에 올라온 학생들한테 똑같이 되풀이하는 선생님들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선생님의 가르침이 늘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선생님인들 직업에 대한 권태를, 그 단조로움을 왜 느끼지 않으실까? 아이들 앞에서 늘 새로워지려고 노력하는 선생님들이 새삼 고마운 생각이 든다. 방송국의 요청으로 TV 생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런데 생방송이란 것도 사전에 '입을 맞추는' 리허설이라는 게 있었다. 구성작가가 써준 대로 미리 한 번 실습을 해보는 것이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 의당 하도록 되어 있는 연습이지만 그 반복의 시간이 왠지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 하느님, 제 생(生)에서 이런 연습의 시간은 부디 계산하지 말고 빼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였더니, 제작진들이 웃으면서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고 단 한 번으로 끝내 주었다. 요즘 영화관에 가려면 예측 가능한 몇 가지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이른 바 '야한 장면'에 대한 심적 대비다. 흥행에 성공했다고 하는 영화라면 그런 장면이 양념처럼 몇 차례 나오기 마련이다. 본래 단조로운 것을 싫어하는 관객의 심리를 제작자들은 잘도 간파하여 작품을 만드는 것 같다. 관객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그렇고 그런 싱거운 장면들뿐이라면 굳이 돈과 시간을 낭비하면서 영화관에 갈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온 가족이 모처럼 영화나 한 편 보자고 나설 때는 그런 장면이 어느 정도 진하게 나오는 영환지 미리 정보를 알고 가야만이 민망함을 모면할 수 있다. 얼마 전에 기회가 있어 여성 문인들과 함께 화제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정직하게 말하면 그런 야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젊은 남자들은 애써 태연을 가장해야 한다. 아무리 예술성이 뛰어난 영화일지라도, 인간의 말초와 관능을 최대한 자극하여 어떤 극한 상황에까지 이끌어 가고야 말겠다는 제작자의 강렬한 의지가 화면에 드러날 때, 관객들은 앉은자리를 추스려 보려고 하지만, 다리조차 꼬기 어려운 영화관의 비좁은 의자가 원망스러워지는 것이다. 이런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면 옛 어른들은 '어∼ 흠!' 하고 헛기침으로라도 긴장을 해소했을 터인데, 다같이 숨죽이고 있는 공간에서는 무엇보다 에티켓이 더 중요하므로 그저 꾹 참아야 할 도리밖에 없다. 더구나 옆자리에는 '점잖은 여성들'이 함께 하고 있질 않은가.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한 시인은 내게 말했다. "남녀간의 우정은 노년에 가서야 가능하다는 걸 보여 주는 영화군요." 갑작스런 시인의 관람평에 나는 그만 당황하여 이렇게 동문서답을 하고 말았다. "임자 있는 여자는 호랑이도 안 물어 간다는 옛말도 있잖습니까? 옛 어른들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불행을 자초하는 일은 없을 텐데…" 그러자 시인은 태연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영화를 보고 나올 때마다 언제나 궁금한 게 있어요. 영사기 돌리는 저분들 말이에요. 이렇게 여러 날, 길게는 한 달여 동안 연속 상영하는 영화를 질리게 볼 거 아니에요? 얼마나 권태로울까 싶어요. 본 걸 또 보고, 본 걸 또 보고……" 순간, 나는 점잖지 못한 말을 내뱉고 말았다. "걱정도 팔자시네요! 영사기 돌려놓고 한소끔 졸면 되지, 본 걸 또 보고 본 걸 또 보고 하겠어요?" 내 말에 어처구니가 없는지 시인은 "그럴까요? 참 재미있는 답변이네요. 윤 선생님은 세상을 참으로 편하게 생각하셔요." 한다. '편하게 생각한다'는 시인의 말은 틀렸다. 나를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내가 얼마나 엉뚱한 생각을 잘하는 사람인지 모르고……. 모처럼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으면서 오늘은 이발사가 몇 명의 머리를 깎았는지 궁금해서 물어 보았다. "열 분 정도 깎은 것 같아요." "힘드시겠어요. 그런데 실례의 말씀이지만, 온종일 남의 머리를 만진다는 거, 질리지는 않으세요?" "왜 안 질려요, 지겹지요. 그런데 이 세상엔 두상 스타일이 똑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지겨운지 모르고 해요." 놀라운 사실이었다. 일상 반복되는 일이지만 '두상이 똑같질 않아서 지겨운지 모른다'는 이발소 주인의 말이 내겐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택시기사가 방금 다녀온 길을 또 가게 되었다고 잠시 우울해 하지만, 아까 모셔다 드린 손님과 나는 그 얼굴이 다르지 않는가! 온 길을 다시 되짚어 갔다가 혹시 아는가! 다음 번 손님은 임산부라도 태워 병원에 당도하기 전에 자동차 안에서 순산이라도 하게 될지? 그리하여 좋은 일 했다고 회사 사장님으로부터 격려 받고, 길조(吉兆)명목의 보너스 봉투라도 받게 될지? 비약이 아니라, 건강한 상상이길 바란다. 단조로운 가운데서도 미지의 시간에 대한 예측할 수 없는 기대감으로 일상의 권태를 잠시라도 극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가끔 듣게 된다. 이 프로그램을 듣고 있노라면, 편지 내용보다도 '까르르'를 연발하며 편지를 읽어주는 여성 진행자의 독특한 웃음소리에 매료되어 덩달아 웃게 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날이면 날마다 되풀이 읽다보면 지겨울 법도 하다. 그러나 전혀 그런 빛이 없이 매일같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어댄다. 조금은 허풍스러워 보이지만, 청취자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애써 특유의 웃음을 아끼지 않는 진행자도 이 시대의 몇째 안가는 '투철한 직업인'이 아닌가 싶다. 나의 직장 역시 오늘도 변함없이 무미건조하고 피곤한 삶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수사과 직원들은 인생을 한 순간에 망쳐버린 고개 숙인 피의자들과 온 종일 대좌하면서 그들의 온갖 험악한 말들을 들어야 하고, 날이면 날마다 매연과 소음의 도로를 누비며 와장창 부서진 자동차와 삿대질이 오가는 인간들의 살벌함을 보고 돌아오는 교통사고 조사반 직원들의 피곤에 지친 얼굴도 본다. 어디 그뿐인가. 험악한 욕설과 때로는 발길질이 난무하는 집단시위 현장에서 방패 하나로 버티다가 무사히 돌아온 대원들의 안도와 지친 표정도 만난다. 내일 또 그런 일들은 어김없이 되풀이되지만, 정말 아무 걱정도 없는 사람들처럼 오늘의 표정은 그저 태연하고 담담하게만 보인다. 미지의 시간이여! 비록 단조로움과 반복의 연속일지라도, 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는 사람의 소박한 희망을 부디 저버리지 말기를…… |
첫댓글 ※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 댓글
◆ 낙암 정구복(역사학자, 문학박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1.12.22. 10:23
소중한 인연의 고리를 멋지게 풀이하셨고, 마지막 수필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감사합니다.
▲ 답글 / 윤승원 2021.12.22. 10:50
정 박사님의 따뜻한 격려 말씀에 졸고 칼럼과 수필을 소개한 보람을 느낍니다.
저의 졸고 수필 ‘단조로움과 반복에 대한 단상’은 전국공무원문예대전 입상작인데,
몇 해 전 대전문학관 기획전시 중견 작가전 ‘문학콘서트장’에서 낭송되기도 했습니다.
긴 졸고를 읽어 주신 것만 감사한데, 따뜻한 격려 말씀까지 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