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다큐멘터리 Loose Change의 내용을 편집한것 입니다.
이글을 이유없이 고통속에 죽으신 분들을 위해 바칩니다.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 45분 비행기 충돌..
항공기 탑승객 266명 사망, 뉴욕 세계무센터 희생자 2752명, 총 210억 달러 규모의 재산피해
1945년 7월 28일에도 B-25폭격기 한대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79층에 충돌한 일이 있었다. 그빌딩은 지금도 무사하다...
WTC 쌍둥이 빌딩
20만 톤의 강철, 32만 5천㎥ 의 콘크리트, 103개의 엘레베이터와 43600개의 창문 60000톤의 냉각장치와 109m짜리 TV안테나 로 구성되어있다.
각 건물의 구조 중심부는 각각 26m x 40m 로서 90cm x 40cm 두깨의 사각철골기둥 46개로 이루어져있다.
북측 건물은 1970년에 완공되었으며 417m 높이였다. 남측 건물은 1973년 완공되었으며 높이는 415m에 달했다.
정부는 이 거대한 건축물이 겨우 4만 리터의 항공유 때문에 무너졌다는 것을 믿으라고 한다...
거기다, 쌍둥이 빌딩은 거의 자유낙하속도로 주저앉았다. 20만 톤의 강철이 산산이 조각난것이다. 32만 5천㎥ 의 콘크리트는 가루가 되어 먼지로 변했고 수천 명의 목숨이 눈깜짝할 새 꺼졌다.....
그렇다면 WTC를 무너뜨린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뉴멕시코 광물공학연구소의 부사장 반 로메로는 이렇게 말했다. "동영상을 기초로 판단하건대, 전 비행기들이 WTC에 충돌한 후 안에 있던 폭발물들이 건물을 붕괴시켰다고 생각합니다. 붕괴장면이 비행기 충돌의 결과로만 보기에는 너무 질서정연합니다."
하지만, 열흘 뒤 그는 말을 바꾼다. "분명히 화재 때문에 붕괴되었습니다."
그가 그토록 갑작스럽게 생각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도시공학교수이자 WTC공사 감독이었던 하이먼 브라운은 이렇게 증언한다. "건물은 허리케인, 강풍, 폭발, 비행기충돌 등 뭐든지 견디고도 남을 만큼 설계됐습니다. 건물들은 '150년간의 폭풍'과 보잉707기의 충돌을 견디도록 설계되었지만 1100℃로 연소되는 항공유 때문에 강철구조가 약해졌습니다."
WTC 구조에 사용된 강철을 시험한 언더라이터스 연구소의 케빈 라이언은 국립표준기술연구소의 프랭크가일에게 보낸 편지에 적기를,
"우린 강철구조물들이 ASTM E119 인증을 받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 기준을 통과하려면 실험 표본이 1100℃ 에서 여러 시간동안 견뎌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동의하다시피 그 강철은 이 기준들을 통과했고요. 뿐만아니라 심지어는 화재 인증을 거치지 않은 강철조차도 빨갛게 달구어지는 1650℃에 이르기까지 녹지 않는다는데 이견이 없으시리라고 봅니다. 왜 브라운 박사가 1100℃의 열에 고급 강철이 녹았다고 주장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 설명입니다. 정말 강철이 녹거나 약화됐다면 이는 분명 어떤 종류의 항공유 때문도 아닙니다. 두 건물의 짤막했던 화재 진행 시간은 둘째치고라도 말이죠."
라이언의 진술은 소위 "전문가"들의 견해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들은 1100℃의 화재가 WTC를 무너지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이 편지를 쓰고 며칠 후, 케빈 라이언은 직위해제되었다.
목격자 한 명은 남측 건물에서 2.5블럭 떨어진 Church가에 서 있던 중 10층과 15층 내부에서 빛이 몇 군데서 반짝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건물 붕괴 전, '따닥'하는 소리와 함께 6번의 섬광을 목격했다.
북측 건물 로비의 유리창들이 모조리 깨졌었고 벽의 대리석판들도 떨어져나갔다.
당국은 승각기로를 타고 내려온 화염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이를 무마했다. 하지만 WTC의 중심부와 승강기로는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밀폐돼있었다.
불이 400m를 내려와서 건물 하단의 8개 층을 파괴할 에너지를 갖추기엔 공기가 모자랐을 것이다.
다시말해.. 지하에서 거대한 폭발이 있었다는 것...
붕괴에 대해 과학계의 견해는 어떨까?
WTC의 붕괴는 뉴욕주 팔리세이드의 콜롬비아대 관측소에 의해 관측됐다. 남측 건물은 진도 2.1 북측 건물은 진도 2.3을 기록했다.
김원영은 볼린에게 그들의 지진계가 32km떨어진 책석장 폭파를 잡아낸다고 했다. 3.6톤의 질산암모늄으로 폭파가 이뤄지면 진도 1~2의 지엽적 지진이 일어난다고한다. 1993년의 WTC 폭탄테러는 지면과 떨어져 있었기에 관측조차 되지 않았다. 붕괴 순간, 파편들의 낙하에너지는 WTC와 주변 건물들에 의해 흡수됐다. 건물들은 잡석이나 먼지로 부서지고 여러 피해를 입었을지언정 땅을 흔들지는 못했다.
(유)Controlled Demolition사의 사장 마크 로이조는 AFP지와의 인터뷰에서 지반에 47개의 중앙 지지기둥이 연결된 WTC지하에 9/11 후 한 달도 더 되어 말 그대로 "강철이 녹은" 열점들이 발견됐다고 했다.
놀랍도록 고온을 보이는 이 지점들은 지하 7층의 승강기로 바닥에서 발견됐다. 녹은 강철은 "잔해를 정리중이던 3주, 4주, 5주째에도" 발견됐다. 로이조에 따르면 녹은 강철은 WTC 7번 건물에서도 발견됐다
가장 높은 온도를 보인 지점은 남측건물의 동쪽 모서리로 747℃가 기록됐다. 지하에서 녹은 강철의 온도는 이것의 두배보다도 높았다.
아직도 항공유 때문에 WTC가 무너졌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아마 묻고 싶을 것이다 건물 안에 폭탄이 설치돼 있었다면 대체 어떻게 발각되지 않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을까?
WTC에서 재무분석가로 일하던 벤파운틴은 피플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9/11 전 몇 주 동안 예고도 없던 훈련이 수차례 열려 쌍둥이 빌딩과 7번 건물의 일부 구역에 "보안상의 이유"로 대피령이 내려졌다고 증언했다.
북측 건물의 경비원이었던 다리아 코드는 뉴스데이지와의 인터뷰에서 경비대가 9/11 2주 전부터 12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6일(목요일)에는 폭발물탐지견들이 갑자기 현장에서 철수됐다고 증언했다.
그렇다면 누가 이걸 다 승인했는가?
부시 대통령의 동생 마빈은 회계연도 1993부터 200까지 시큐라콤의 이사였다. 지금은 스트라테섹으로 더 잘 알려진 시큐라콤사는 미-쿠유ㅔ이트계 법인의 보조를 받는 전자보안회사인데 유나이티드 항공, 델레스 국제공항, 그리고 1990년대 초반부터 9/11때까지 WTC의 보안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마빈은 또한 9/11 때 WTC 일부의 보험을 맡았던 HCC 보험지주회사의 전직이사였다. 이와 관련된 더 자세한 정보가 공개될 예정이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증권거래위원회는 조사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WTC의 잔해라도 조사해서 진상을 규명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줄리아니 시장은 조사관들이 보기도 전에 잔해를 해외의 재생공장으로 실어보냈다. 심지어는 연방재난관리청조차 WTC터에 들어갈 수 없었다. 사실상 그들은 범죄현장을 차단한 채 모든 증거물들을 파괴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장에 들어갈 수 있었던 기관은? Controlled Demolition사! 그들은 1995년 오클라호마시 폭탄테러 정리도 담당했다.
그보다 더한 사실도 있다. 2001년 7월 15일, C.D.사는 2차 세계대전 시대의 120미터짜리 연료탱크 두 개를 폭파했다. 폭파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진행됐으며 주변에서는 민원이 빗발쳤다. 이 현장은 지금까지 출입이 제한돼있으며 폭파 이유도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고있다.
그건 그렇다 치고, WTC에서 벌어진 사건의 진실은 아주 단순하다고 본다. WTC는 아주 치밀한 계획에 의해 폭파공법으로 해체되었다. 이것은 미국인들에 대한 심리적 공격이었으며 군사적인 수준의 정밀도로 실현되었다.
휴대폰 통화들에 대해 알아보자
우선, 통화자들 자체가 너무도 이상하다. 통화 대부분은 전화 건 사람들이 다시 걸겠다며 끊기까지 고작 몇 문장 길이다.
알려진 바로는, AA11편의 승무원 베티 옹이 기내에서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납치범이 있는상황에서 너무나도 태연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또한, 거의 마지막에 그녀는 "빌딩들과 물이 보여요, 맙소사!"하고 소리쳤단다. 매들린은 12년차의 보스턴 출신 승무원이었다. 그녀라면 맨하튼을 알아봤을 것이다.
마크 빙햄으로 알려진 한 남성은 올케 집을 방문중이던 어머니 앨리스에게 전화하였다. 전화 건 사람이 말하길, "어머니? 마크 빙햄입니다." 당신은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서 성과 함께 풀네임을 써본 적이 있나? "어머니 사랑해요, 뉴웍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비행기 안입니다. 괴한 세 놈이 비행기를 장악했는데 폭탄을 갖고 있대요 에어폰으로 전화드리는 거예요 저 믿으시는 거죠? 그렇죠?"
"그래, 믿는다, 그런데 그 괴한들은 누구냐?"
그 때 영어로 들리는 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그의 말에 끼어들었다. 30초간 못 알아들을 소리가 이어지더니 다시, "저 에어폰으로 전화하는 거예요. " 어머니는 다시 물었다."그 괴한들이 누구냐고?"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다시 묻길, "저 믿으시는거죠? 그렇죠?" 다시 침묵이 흘렀고 전화는 그냥 끊어졌다.
베티 옹의 통화를 제외하면 이들 중 공개된 통화는 지금껏 없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공개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왜냐고? 이들 통화는 하나도 이루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physics911.net의 운영자 키 듀드니는 혼자서 연구를 하나 진행했다. 아킬레스 프로젝트로 명명된 실험에서 세스나기를 타고 휴대전화를 시도해봤다. 그는 고도에 따른 통화성공률을 시험하기 위해 8,000피트 고도로 상승했다. 4,000피트에서의 성공률은 40% 8,000피트에서의 성공률은 10% 상용 민항기의 순항고도인 32,000피트의 성공률은 0.6%로 계산되었다. 다시말해 100번 걸어서 한 번도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심지어 AA항공사도 정부의 주장을 곤경에 몰안허었다. 2004년 7월 15일, 아메리칸 항공에 탑승중인 승객들이 기내에 설치된 새 기지국 덕분에 마치 땅에서처럼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게됐다. 2001년 9월 11일에 기내에서 휴대폰이 그렇게 잘 터졌다면 왜 아메리칸 항공사는 2004년에 수천달러를 퍼부어 이 기술을 개발했을까?
의심의 여지가 없이, 휴대폰 통화들은 조작된 것이다.
납치범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2001년 9월 14일, 법무부는 19인의 납치범 명단을 발표해다. 하지만 9월 23일, BBC보도에 따르면 그중 와리드 알 셰리가 모로코 카사블랑카에 무사히 잘 있다고 한다. 그들은 또 덴버에서 공부하다가 여권을 분실하고 지금은 사우디 텔레콤에서 일하는 압둘라지즈 알로마리도 찾았다. 같은 보도에서 FBI국장 뮐러도 인정하기를, "일부 납치범들의 신원은 미심쩍습니다."
그렇다면 몇명의 납치범들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드러났을까? 최소한 9명이다. 웨일 알 셰리, 모한드 알 셰리, 칼리드 알미다르, 살렘 알라즈미, 사이드 알감미, 아메드 알마니 위에 두명은 앞서 언급했고..
9월 20일과 27일, 뮐러 국장은 CNN에서 "납치범들의 신원을 증명할 어떤 합법적인 증거도 없다"고 시인했다. 게다가 AA77편의 공식 부검 보고서에도 납치범들 이름은 없다. 머리말에도 이들의 누락에 대한 언급이 없다.
납치용의자들이 알카에다의 조직원이거나 비행기에 탑승했다는 증거조자 없다면 도대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하는 명분은 무엇인가?
오, 그렇지 빈 라덴 자백비디오! 2001년 12월 14일, 정부는 빈라덴의 9/11 테러에 대한 자백이라며 비디오를 하나 공개했다. 그들은 이를 아프가니스탄 잘랄라바드의 모처에서 찾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 테이프에는 잘못된 점들이 많다. 첫째, 영상의 화질이 형편없다. 둘째, 화면속의 남자는 빈 라덴처럼 생기지도, 행동하지도 않았다. FBI 홈페이지에 따르면, "오사마는 왼손잡이다." 라고 나온다 하지만 동영상에 그는 오른손으로 뭔가를 적는다. 게다가 이슬람 율법으로 엄격히 금지된 금반지까지 끼고 있다. FBI파일에도 이에 대한 설명은 없다.
정부가 한 점의 의혹도 남김없이 9/11의 배후가 알카에다가였음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미국인들은 이를 믿지 않아도 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 의문이다. 왜 미국 정부가 이런 짓을 했을까? 흥분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선, 2001년 7월에 WTC를 산 래리 실버스테인이 있다. 9/11이후, 실버스테인은 72억 달러의 보험료를 청구했다. 그는 각 비행기가 서로 다른 테러공격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2004년 12월 6일, 법원은 그가 22억 달러만 보상받도록 판결했다.
다음으로 UA, AA항공사와 보잉사에 들어간 풋옵션들이 있다. 샌프란시스코 클로니클지에 따르면, 아직도 투자자들이 $250만의 차익을 거둬들이지 않고 남겨뒀다고 한다.
9/11 자체에 대해 말하자면,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컨바"라는 독일 컴퓨터 회사가 WTC의 폐허에서 발견된 400여 개의 하드에서 여러 회사와 회계사들의 손상된 자료를 복구하는 일을 담당했는데 컨바는 그들이 복구한 32개의 컴퓨터에서 9/11 때 불법 내부자 거래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증거를 찾아냈다고 한다.
컨바 소속의 전문가 리차드 바그너에 따르면, "일부 사람들은 비행기 충돌의 대략적 시각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의심되며 이들은 이를 이용해, 1억달러가 넘는 자금을 미리 빼돌렸다. 그들은 컴퓨터가 파괴되면 그들의 거래도 추적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한 것 같다."
분석을 마친 후, 컨바사는 그 결과를 FBI에 넘겼다. FBI는 이들을 색출할 법적인 책임이 있었지만, 지금껏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
계속해보자,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WTC 지하에 세계에서 가장 큰 금저장고 중 하나가 매설돼 있었다. 이 금의 가치는 1993년에 $10억으로 추정됐고 소문에 따르면 쿠웨이트인들이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WTC가 무너지던 날 금의 양은 "1993년의 수준을 한참 뛰어넘었다." "금은 결국 2001년 말에 온전하게 발견됐다."고 한다.
사실일까?
타임스온라인의 보도에 따르면, 2001년 11월 1일 대량의 금이 WTC가 무너진 자리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줄리아니 시장은 $2.3억이 WTC현장에서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뉴욕상품거래소에서는 노바스코샤 운행, 체이스맨하탄은행, 뉴욕, 홍콩, 상하이은행 소유의 금괴 총 $9.5 어치를 보관하고 있었다. 한 회사만 해도 이렇다.
소문에 의하면 WTC 지하에 $1600억의 금이 묻혀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금이 다 어디로 갔을까?
다시 2001년 11월에 발견된 금 얘기로 돌아가서,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그 금은 WTC 5번건물 지하의 운송터널에서 몇 대의 찌그러진 차량과 10륜트럭이 있는 현장에서 뱔견됐다. 시체는 한 구도 없었다. 노동자들이 금에 접근하려 하자 당국에서 현장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FBI와 비밀검찰부 요원들이 여기 참여했다. 현장을 떠나도록 지시받은 한 노동자는 기자에게 "제가 밑으로 내려가려 했다면 절 쐈을 겁니다."고 말했다. 중장비 기사들과 다른 노동자들은 100명이 넘는 무장경관들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 작업했다.
다시 정리해보자 WTC 4번 건물의 금이 WTC 5번 지하에서 빈트럭과 호송차량 몇대와 함께 발견됐다. 그들이 남측건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는 결론을 내도 무리가 없을듯하다. 건물 안에 있던 소방관들은 건물이 무너질거라고 생각도 못했을 때 그들은 어떻게 금을 버려두고 도망갈 판단을 할 수 있었을까?
1670억 달러의 금, 발견된 것은 2억 달러... 하지만 '돈'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9/11이후, 부시 대통령은 이를 구실로 지금까지 그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말하거나 실행할 수 있게됐다.
애국자법 (반테러법) 국토안보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
이제 우리가 9/11의 진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다 수천 명을 죽인 거짓말 또 수천억, 수조 달러의 돈을 위해 수십만 명을 더 죽이는데 쓰인 거짓말...
그대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이유도 없이 고통속에 죽엿다.. 그대들이 얻은건 대체 무었인가.. 그것이 과연 영원한 것인가?
2001년 9월 11일, 이날 항공기 탑승객 266명 사망, 뉴욕 세계무역센터 2,752명 사망. 뉴욕시는 WTC 현장에서 343명의 소방대원들을 잃었다...
(자료출처- Loose Change ) 여러분에게 진실을 알려드리기위해 Loose Change 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며 정리한것 입니다. 개인적으로 Loose Change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시는게 이해가 더욱 빠르리라 생각됩니다. 힘들게 편집하며 적었습니다.. 다른곳에도 진실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만, 간단한 출처라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mail: nelsonbk@naver.com
다큐멘타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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