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이 차려준 소박한 밥상머리 앞에서 블랑은 조선으로 들어오기 전 잠시 일본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삼년 전의 일본과는 청양지차였다.
거리의 풍경이 너무 달라져 과연 삼 년 전에 내가 왔던 곳인가? 의심스러웠다.
메이지 전부의 현대화 정책이 일본을 급속히 변화시켜 놓은 듯했다.
블랑은 사는 모습이 달라져도 각 나라 사람들의 의복은 그대로였으면 했다.
특히 동양 사람들의 전통 복장에 매혹을 느꼈다.
양복하고는 판이하게 다른 동양의 의복을 보고 있으면
그 나라 사람들의 품성을 알 것 같았다. 모양새와 색감도 대양하고 아름다웠다.
다시 가본 일본거리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기름을 바로고 있었다
모든 일상이 살기 편한 쪽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전통 의복을 차려입은 사람을 보기가 힘들었다.
양복에 가죽구두를 신을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했으며
전신전화국이 개통되어 전보로 소식을 알리는가 싶더니
곧 전화로 이쪽저쪽 소식이재빠르게 오가고 있었으며
코하마엔 증기기관차가 내달리고 있었다.
조선이 이웃 일본의 이런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블랑은 궁금했다.
-프랑스엔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있어요.
그 수녀회는 세계로 뻗어 있어요.
선교만이 아니라 아이글의 교육과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의료봉사도 같이 하고 있어요. 우선 조선에 그분 수녀님들이 들어 오면 좋을 텐데...
강연이와 같은 아이들이 의지할 수도 있을 테고요,
이웃나라 일본은 이미 성 바오로 수녀회가 파견나가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지요.
서씨는 그저 예, 하며 블랑의 말을 듣기만 했다.
서씨는 천주신앙을 품고 사는 이들 중에서 어렴풋이 천주교인이 있다는 것만을 짐작했다.
놀랍게도 천주교인에 태학생(太學生)도 있었다.
기생도 있었고 별감이 있는 가 하면 수표교 다림방의 심부름꾼도 있었다.
구중 궁궐의 궁인도 은밀히 천주교인에 끼어 있는 걸 느끼며
천주신앙엔 귀천이 없는가 보다고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따금 한 장소에 모여 미사를 볼 때는 신분에 구분 없이
한자리에 앉는다는 얘기를 전해듣기도 했다.
서씨는 천주신앙과 상관없이 역병이나 군란으로 부모를 잃은 조선의 아이들이
거처 없이 떠돌며 얻어먹고 사는 것을 푸른 눈의
외국인이 걱정하고 있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선교사님.
블랑이 서씨를 바라보았다.
-저 아이, 소백이... 강연이 말입니다. 이 집에 두고 가시지요.
미력하나마 먹이고 입히는 일은 제가 해 보겠습니다.
서씨와 블랑 서교사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 일고 있나요? 저 아리는 말을 안 합니다.
블랑 선교사는 강연의 침묵을 두고 말을 못한다고 하는 게 아니라 안 한다고 했다.
-압니다.
-그래요? 놀랍군요. 나는 저 아이와 사흘을 함께 지낸 뒤에 알았습니다
처음엔 내가 외국인이라 말을 안 하는 줄로만 알았지요.
어쩌면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겠기에 말을 안 했는데... .
-글을 쓸 줄 압니다.
말을 못하는 아이라 일찍부터 누구가 애써 글을 가르친 모양입니다.
죽 피리를 가르친 아이의 아비가 그리 했을 것이다.
-두고 가시지요.
-저 아리 뜻도 있을 테지요.
블랑 선교사가 강연을 쳐다보았다.
밥상 가까이에 앉아있던 소년이 뒤로 물러 앉았다.
초롱에서 르러나오는 불빛이 소년의 얼굴에 얼룩을 만들었다.
-저 아리는 선교사님을 은혜합니다. 허어지기 싫을 겁니다.
서씨는 강연을 바라봤다.
-선교사님이 조선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 그때까지만 여기 있거라.
지금은 마땅한 거처도 없으신 분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