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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구충청향우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영기
고목
석산 1
메마른 대지에 홀로선 고목
부서지는 모래밭 내린 뿌리 힘겨워도
바라보는 태양 눈부신 햇살에 실은 희망
홀로선 몸 더욱 서글픈 삶이여라
마지막 잎 새 부러워 하늘 보며 원망해도
부서지는 햇살 아래 힘겨운 몸뚱이
너를 보는 마음 안타까워
내 몸은 눈물조차 말랐다오.
나그네
석산 2
구멍 난 문풍지 사이로 들려오는 소리
빼 꼼이 열면 엄니 주름가득 시린 얼굴
문수산 턱에 올라 시린 동풍 맞바람에
고향의 겨울은 연기 따라 춤을 춘다.
고향
꿈에도 그리워라 찾아 온 걸음 앞에
사립문 다 닳도록 반가운 엄니 모습
이별 앞서 반가움도 가슴에 고이 묻고
다시 오마 길 떠나는 그대는 나그네여
靑山
석산 3
토담산간 너와집에
한歲月을 묻어 두고
筆 末에 품은 세상
구름 위에 드리우니
寂寞江山 고요 속도
외롭지 아니 하고
靑山은 나와 함께
벗을 삼아 가자하니
마주 든 잔속에는
百年歲月 녹아내려
다시 올 한 時節도
반가웁지 아니 하네
복사 골에 봄
석산 4
봄바람 사이 길로
흰 구름 한가로워
넓은 나래 펼친 하늘
활짝 핀 가슴마다
봄이 왔네.
봄아 왔네
복사 골에 봄이 왔네
천둥오리 자맥질에
떡붕어도 꼬리치고
해바라기 고개 들어
햇님 얼굴 견주는 날
봄이 왔네.
봄이 왔네.
복사 골에 봄이 왔네
마구간 송아지도
어미 따라 들녘가고
병아리 솔개 피해
어미 쫓아 종종걸음
봄이 왔네.
봄이 왔네.
복사 골에 봄이 왔네.
님 그리워
석산 김 희 주 5
사립문 밖 넓고 넓은 골 깊은 밭이랑에
함박눈 내려앉아 그 흔적 감추는데
한 치 속사람의 시름담은 얕은 골은
어이하여 변한 강산 그리도 무색할까
가지 끝 잎 새 마냥 님 그리워 아니 갈 제
손 뻗어 잡고픈 맘 너와 내가 뭐 다를까
태산에 올라보면 발치 아래 손 맞닿고
이고 질 날들 많다 걸음 좁은 발길에도
백발이 휘 날릴 제 인연마저 가져가지
손 저어 애원해도 허공 속엔 님 없더라.
. 단풍
이 영 균 6
그대를 가슴에 담아온
그날의 빨간 내 가슴은
내내 황홀함 이었습니다.
홀로 깊은 계곡을 만져 봤을 때
물소리도 빨간 옥 소리로
내게 크게 외쳤습니다.
그대를 멀어져 갈수록
내 마음 속에서는
벌써 아쉬움이 빨갛게
여운으로 남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그대를 잠깐
잊어버린다 해도
영원히 그대는 이 안에 있을 겁니다.
그대의 마음을
만져 보지 못한 이 들은
보고도 황홀함을 모를 겁니다.
그대를 위해서 내가 말합니다.
언제나 그대가 나를 보고 싶어 한만큼
그리움이 쌓이고 7
쓸쓸함이 불어와서
겨울가고 봄여름 또 가면
그대 곁으로 내가 달려 갈 겁니다.
이렇게
그대를 생각하는 나는 행복합니다.
비
이 영 균 8
나를 깨우는 작은 속삭임이
잠결에 들려옵니다.
차가운 느낌으로
어깨를 흔들어 나를 깨웁니다.
창 밖에서 꽃잎들도
나지막이 이야기 합니다.
웅크리고 잠들어 있는
아내에게 포근하게 이불을 덮어 주라 말합니다.
바람타고 내게로 와
얼굴을 부비며 몸짓으로 말을 건네옵니다.
아직 잠들어 있는 아내에게
포근히 감싸 안고 입맞춤을 하라 합니다.
이른 새벽부터
비가 오고 있습니다.
달 국에 햅쌀 밥
이 영 균 6
나지막한 지붕 위
누더기 합판 한 장으로
햇볕을 가리고
나뭇개비로 불 지핀
녹슨 깡통 화덕에선
까맣게 그을린 냄비가
후루루 푸푸 달각달각
풀떼기를 내뿜으며
댓 박 팔아온 보리쌀이
밥이 되어간다.
등짝에 업혀
빽빽 울어대는 아이를
가슴 짝으로 쓱 땅겨다
젓꼭지를 입에 물려
울음 뚝 그치게 하고
한쪽 귀 없는 밥상에
상을 차려 놓고는
아낙은 잠깐 앞치마로
숯검정을 닦으면서
긴 숨 내쉰다. 7
어젯밤에 봐 두었던
달동네 지붕 위에 걸린
달을 따다 숭숭 썰어놓고
반짝이는 은하수를
한 움큼 쥐어다가 양념하여
다 쭈그러진 냄비로 국을 끓이고
쏟아지는 햇살 받아다
반짝반짝 하얀 밥을 지어
시부모님을 봉양 하였으면
아낙은 소원했다.
언덕 위 그곳을 지날 때면
허기지고 암울 하던 때를
살아 온 가난한
달동네를 그려보게 한다.
황혼의 적사장
이 영 군 8
황혼이 붉게 물든 적사장에
마주 보고 선 그대 눈 속엔
부딪쳐서 깨어진 파도처럼
긴 세월로 엉클어진 내가 있고
황혼 빛에 물든 잔잔한 그대를
마주 보고 선 내 눈 속엔
검붉은 노울 담은 수평선처럼
긴 세월로 녹아 물든 그대가 있소
마주 선 검붉은 두 그림자
지는 황혼을 추억으로 잡고 서서
붉은 노을처럼 수줍던 숫처녀로
그대가 내게 오던 날로 돌아가오.
한 낮에 푸르고 잔잔한 바닷물에
바람 탄 작은 파도에도 쓸려버리는
그대는 백사장에 작은 모래성 같아
나의 손길에 작은 행복을 느꼈다오.
돌아보면 애써 쌓은 우리의 행복은
파도가 쓸고 간 모래성 같아서
언재나 위태로운 체 또 쌓고 쌓았소. 9
그래도 나는 그대가 있어서 행복 했소
모래밭에 물거품 되어 세월 속으로
내가 사라져 그대를 이별 할지라도
나는 다시 그대 짝이 되어 태어나서
황혼의 적사장에 그대와 함께 서리다.
호수처럼 그대는 나를
이 영 균 10
그 나무는 두어 가닥 가지에
몇 개에 잎을 달고
여린 모습으로
오래 전 호수 가에 싱어 졌다
호수 가에 아지랑이가 피어나면
나무는 파릇한 봄을 가져다가
새파란 호수를
초록빛 수정으로 바꿔놓았고
여름날 폭염으로 지쳤을 땐
무성한 가지를
호수에 거꾸로 담그고
바람 불러와 살랑살랑 더위를 식혔다.
여름날 무성했던 잎들은
스산한 가을 밤 찬 이슬에
한잎 두잎 낙엽 되어
잔잔한 호수 깊이 어느덧 감춰졌고
앙상한 나목으로
겨울을 보낼라치면 호수는
호수 깊이 두껍게 어름을 덮고 11
긴 밤 동안
쓸쓸함을 감싸 안아 주었다.
호수처럼 그대는 나를
별 만큼이나 숫한 세월을
거울이 되어 지켜보고 감싸주었지
마지막 한 잎 까지도
세월이 더 지난 후엘 지라도
모기 12
정 건 우
빨리어 주겠느니 모기여
빨 거라
염천(炎天) 속에서도
짓물러지지 않고 버팅인
전성(全盛)이 지나도 정밀한 생명
세 평 남짓한 어둠을
둘이서 가루다
앵앵거리는 활개 짓이
네 저항의 전부며
온전한 삶의 표현임에
숙연해진다
활활 깨 벗고 나를 내어 놓느니
적나라하게 굴곡진
혈맥의 상공을 비행하다가
펄떡이는 부위에
착륙 하려무나
그리하여
어둡고 깊은 곳을 잠행하며
새빨갛게 들이키고 싶었던
삶의 열정을 13
깊이깊이 천착(穿鑿)하거라
척박한 내 피부가
가려우면 가려울수록
네 삶은 붉은 동력으로
벅차오르리라
강변맨션 정 건 우 14
강변맨션 나 들목 횡단보도 위에
흰색 스프레이 페인팅 표식이 어지럽다
길 건너던 어떤 이의 일생이 나동그라진 듯
해 어스름을 따라 귀가하는 무리와
어둠을 기다려 집을 나서는 무리가
부닥치는 여기
산 밑을 돌아 바다로 흘러갈 강가에 서있는
아파트 어느 棟 두 집의 창문이 까맣게 타겠구나.
오가는 걸음걸이의 분분한 속도만큼
높낮이 서로 다른 숨결로 곰곰이 사는 사람 들 제 가슴의 불처럼 밝히고 꺼버린 발코니에서
스스로 물에 던져보는 상념의 분량만큼
반사되어 온 빛으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우리 삶도 저렇게 휘적휘적 가고 있는 물 같아서
불빛 속을 자글자글 거리며 흐르고 흐르다
어둡고 깊은 곳에서 장중해지는 것이다
가라앉은 깊이만큼 무거워지는 것이다
산을 등지고 가는 강은 불빛을 좆아 잘박거리고
층층이 쌓인 삶들이 쉼 없는 숨길로 점멸하고 있는
강변맨션.
3 오래된 LP 음반을 돌리며
정 건 우 15
참으로 오랜만에 손때 푸진 낡은 전축의 문을 열었다
턴테이블 덮개를 들어 올리자마자
낡 삭아버린 허전함이 섟 하니 휘돌아 나온다.
더 젊었던 시절의 밤을 내게 저당 잡힌 표식으로
하얗게 지새운 새벽까지 곤두섰던 덮개
입영통지를 받은 날 처럼
닫힌 문 안쪽으로 달그락 대며 꿍겨 박아
슬프게 정리한 사날 같은 감성
닫힘은 쉬이 열림을 전제했던 사늑함 이었으므로
익숙해버린 침묵은 감내하기 힘든 서글픔 일 것을
동심원을 따라서 층층이 패인 상념의 골에는
도 루 코 면도날로도 박리되지 않는
설 여문 감성의 표피가 모재(母材)처럼 쌓여있다
허전한 심사는 백신을 주입한 주사바늘이 되어
센터 포인트가 정확히 관통된 아픈 상념을 안고 도는
오래된 LP음반의 층층이 깊은 16 동심원으로 파고든다.
어릴 적 들었던 자정의 사이렌이 목청 잠겨든 소리로
돌아보기 바로 전까지 나를 따라 와서
들끓어 막혀가는 기도를 터뜨리며 내뱉은 울음
데이비드 커버데일도 어언간 나처럼 늙어갔느냐
이 닫힌 어둠속에서 공명하듯 숨을 바수어
여물다 말아 좀살궂은 내 감성을 세균처럼 배양했다
오느냐
정건우 16-2
너 사는 집 뒤란 봉창에
건들바람이라도 불었느냐
뿌둑한 호박씨 반은 졸며 까다가
찢어진 창호지 속을 비집어
팽팽히 당겨 든 햇살에
자리 찾는 티끌이라도 혹시 보았느냐
어지러워 기댄 벽에
마른 진흙이라도 쏟아졌느냐
님 인가 해서 그래 길을 나섰느냐
네가 온다면
나는 또 가슴을 앓는다.
영 기별할 줄 모르게
소낙비처럼 와서
텅 빈 시골 간이역
오롯이 서 있는 우체통처럼
대청마루 기둥에 등대고 있다
기침도 없이 가느냐.
네가 간 후에야
너 온 것을 아는 가슴
물이 나가듯 시린걸
아느냐
동구 밖 초입 선돌에
정신 나간 이 처럼 서 있으면
너는 또 오느냐.
빗소리
그 여인 17
어느 후미진 곳에
멈춰 서 있을
낙엽의 존재
봄기운에
단잠 자듯...
남겨진
내 하얀 여백에
굵은 붓으로
가는 붓으로
오늘도
빗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바람
그 여인 18
아침을 여니
밤새
창가에 머문 바람이
날 반깁니다.
이제는
보내야 할까 봅니다
그 바람에
겹겹이 쌓인
그리움일랑 모두
봄님 따라 가기 전에
보내야 할까 봅니다.
뜨거운 비
그 여인 19
겹겹이 쌓인 그리움들이
외롭게 날개 짓 할 쯤
굳게 닫아 버린
나의 가슴에서
오늘도
뜨거운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잠자는 영혼처럼
차가운 바람만이 잔잔히
가로등 불빛에
뜨겁게 입맞춤 합니다
찬란한 네온 불빛 속에 .
번지듯 묻어 사라지는 밤안개는
그래도 내 마음 아는가봅니다
바람이 불어
세찬 공기가 밤하늘을 가를 때
가로등 불빛은 어느새
불씨 되어
오늘도
내 가슴에서
뜨거운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갈색 빛 그리움
그 여인 20
크림처럼
뿌옇던 내 창문 유리에
노을님이 오셨는가.
노 오 란 듯 붉은 빛이
살포시 앉았습니다.
가을바람 사는 길섶 넘어
곤한 잠자리 들려다가
차마 노을님
그냥 갈수 없다기에
나 그냥 꼬~옥 안았지요.
겹겹이 멍울진 그리움
가을 단풍잎에 토해 내고
눈에 뵈지 않는
하얀 조각 되어 허공으로 흩어집니다.
가을 빛 선율에
사정없이 그을린
그리움 하나
노을빛에 사알 짝 데워진
갈색 빛 찻잔
후~후~ 불어
내 안에 담습니다.
그리움의 호수
그 여인 21
밤새 내리는 빗소리에
그만
잠이 깨고 말았지요.
검푸른 하늘가엔
그리움 가득 안은 채
밤비는
주룩 주룩
내
가슴으로 쏟아지니
잠 못 들 수밖에요
퍼내도
고여 있는
내 그리움의 호수
내리는 저 빗물이
비워 줄 수만 있다면
나 곤한 잠 들 수 있으련만
은행나무 연가
윤준경 22
우리 집 은행나무는 혼자였다
아무리 둘러봐도 짝이 없던 은행나무는
연못 속에서 짝을 찾았다
그것이 제 그림자인줄 모르고
물속에서 눈이 맞은 은행나무
물에 비친 제 그림자에 몸을 포개고
만 명도 넘게 아기를 가졌다
물방개는 망을 보고
연잎은 신방을 지켜주었다
해마다 가지 사이에 돌멩이를 얹고
그림자에게 시집 간 은행나무
한 가마니씩 은행이 나와도
그것이 그리움의 사리인줄 몰랐다
바람이 세게 불 때마다
연못이 걱정된 은행나무는
날마다 그 쪽으로 잎을 날려 보내더니
살얼음이 연못을 덮쳤을 때 은행잎은
연못을 꼭 안은 채 얼어있었다
독도
윤준경 23
여기가 내 고향인 걸 이제 알았다
풀도 나무도 산도들도
다 고향 것이다
발등을 적시는 바닷물이며
불어오는 바람
거리의 글씨까지도 우리 것
(어쩌면 한자도 우리 것인지 몰라)
들려오는 음악도 우리 것이다
우리 고구려 역사를 탐내는 때 국, 중국아
고구려인의 기상을 너희와 동질이라고?
안될 일, 역사의 기록을 바꾼다는 것은
안될 일, 내 아버지가 쓰신 소설에도 명백히 기록된 것을.......
하지만, 생각해 보라
우리나라 44배의 땅 덩어리
쪼그만 반도 하나 내놓는 것은 아주 쉬운 일
세계사에 남을 공로이며 수천만에 존경받을 일이다
명령을 내려라
청도는 한국 땅
오늘부터 대한민국에 편입된다고
금간 유리잔에 대하여
윤준경 24
금간 유리잔을 버리지 않는다.
금은 유리의 무늬를 따라 엷게 흘러
아무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유리에 생긴 굳은 살
유리를 더 단단하게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금이 깊다
만남과 이별 사이
이상과 현실 사이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면서
몸의 일부가 기형으로 부풀었다
내 몸의 굳은 살, 발가락이 기형이다
사람아, 사람을 버리지 마라
네 몸에도 너만 아는 금하나 있다
버려진 우산
윤준경 25
길가에 우산 하나 버려져 있다
부러진 은빛 관절이 햇살에 눈부시다
누구의 비를 막아주던 어머니 같은 존재였을까
손만 잡으면 금방 부엌으로 갈 태세다
우산보다 더 많은 어머니가 길가에 버려져 있다
졸아드는 어깨를 추스리며 은행 문을 나설 때
문 옆에서 나에게 손을 벌리시던 몸집이 아주 작아진 어머니
무덤 속 어머니는 여러 모습으로 자주 부활 하신다
나도 천천히 부활 하나보다.
나무들의 아버지
윤 준 경
산에 갔더니
나무들이 줄지어 맞아 주었습니다.
서어나무 정금나무 층층나무
야광나무.......
예쁜 이름들을 목에 걸고 있었습니다.
언제 사람으로부터 이런 환대를 받아 보았나요.
아그배나무 산뽕나무 물 박달나무.
호랑버들 왕 괴불...........
내 이름 지으신 이가 떠올랐습니다.
추억 속에도 안 계신
나의 아버지
두릅나무
모감주나무
졸참나무 물푸레나무........
이따금 세상이 아름다운 건
이렇게 아름다운 나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토록 세상이 어두운 건
준경(俊卿)......처럼 잘 되라고 지어주신 이름들이
빛을 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무들의 아버지는 누구인가요.
참 훌륭한 자식들을 두셨습니다.
사과 속
윤준경 27
사과 한 쪽을 들고 책을 읽다가
그만
아들의 책상 위에 사과 속을 놓는다
아들은
못 볼 것을 본 듯 얼굴을 찡그리며
겨우 집어 쓰레기에 버린다
부끄러운 무게만큼 일어나는 회한의 파고,
'나는 제 무엇도 다 치워줬는데
그런데 이상하다
코를 막고 얼굴을 돌리며
미운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아야 할
냄새 나고 더러운 그런 것들이
떠 올려도 떠올려도 찡그려지기는커녕
노 오란 나비 한 마리 날개를 털고 나와
사과 속 같은 향기만 잡히는 것이다
향기 속 꽃가루만 묻어나는 것이다
가을 그리스도
전 선 구 36
풍성한 들판에 두 팔 벌린 그리스도
누더기 걸치시고 하루 종일서 계셔
귀 모아 내 말 들어라 알곡 추수하란다.
대지엔 풍년들어 기름진 들판인데
아직도 그리스도 주린 배로 서 계셔
애타게 목이 쉬도록 하늘소리 외친다.
곡간에 쌓인 곡식 산같이 가득하고
따사한 방안에는 잔치 벌려 흥겨운데
늦가을 그리스도는 찬 서리 밤을 센다.
천왕 사에서
37
雲霧와 僧舞가 어울리니
나도 모를 발길이
천왕 사에 다다랐네.
諷經도 울지 않으매
하늘 보며 땅을 보며
숨소리 움츠린 채
경내에 들어서니.
無想의 낙엽들이
우수에 젖은 창가
경전 뜰에 수북이 쌓여 간다.
하늘을 지붕 삼고.
부처님 섬기면서
암석 틈사이로
생을 꽂아놓고
스쳐가는 계절만큼
인고의 설법으로
인간의 脫을 벗기네.
낙엽을 떨 구어 내듯이
내장된 무거운 것들
五慾을 떨쳐 버리고
불심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고
나는 山寺에서 마음을 비우네.
봄 여인
38
깊은 산 구비 구비엔
아직 남은 잔설은
꽁꽁 얼어붙은 채로
봄을 기다린다.
참나무 가랑잎으로
겨우내 이불 삼아
긴 잠자던
땅 끝 속 뿌리들...
조금씩 고개를 든 다
가늘게 떨리는
산수유 꽃망울은
제 몸 갖추기 위해
꽃샘바람과 동행한
햇살이라도 좋단다.
천년만년
꽁꽁 얼어붙은 채
서 있던 빙산은
남풍소식 들고 온
봄기운에
그만 녹아 버린다.
아! 1
여기저기서 39
생명이 움트는 소리...
봄 여인 되어
내 가슴도
그렇게 녹으리라
아직은 아니랍니까
40
먼 산과 냇가엔
뽀-오얀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언 가슴 녹는 소리에
눈꽃 이불속 긴 잠 깨어
기지개 피우련만...
아직은 아니 랍니까
고운 햇살 밀어 내며
창문 비집고 들어오는 꽃 샘 바람
내 활화산 식지 않아
아직은 아니 랍니까
차라리
자유로웠을 앙상한 건목 가지에
추적추적
봄비 한 차례 내리고 나면
죽은 듯 침묵하던 마른 풀잎에
움트는 절규의 소리
연두 빛 젖은 휘파람 소리로 들려옵니다.
사정없이 풀어 놓는
황홀한 봄 내음과
그 경이로움...
새를 불러다 들으리까 41
나비를 불러다 맡으리까
그대 안에 혼자이고 싶어라
(정파/심종은) 42
나,
그대 안에 혼자이고 싶어라
늘 가까이는 없어도
혼자이고 싶어라
매일 매일이 아니고
어느 한 순간만이라도
그대 가슴에
홀로 남고 싶어라
격정(激情)의 날이 오면
불붙듯 쉽사리 타올랐다가
삽시간에 흔적을 지워버리고 마는
티끌이 아니고
바쁜 일상생활에 쫓기어
때론 잊기는 하더라도
그대 가슴 한 구석
슬며시 숨어 있다가는
슬프거나 괴로울 때면
생각나는
외로운 시간을
소스라치며 깨어나
토닥거리듯 함께 어울려 주다가
그대 영혼에 스며든
그림자처럼 홀로 머물고 싶어라
아들아
장자골 김영기 46
아들아
효라는 이름은
그리 아쉽지 않으니라
그냥 너의 맑은 눈만
내게 향해 있음 족하니라.
아들아
좋은 옷은
그리 아쉽지 않으니라
부끄럽지 않게 사는
네 모습만 있음 족 하니라
아들아
진수의 먹을거린
그리 아쉽지 않으니라
마음을 편안히 해주는
네 가슴만 있음 족 하니라
아버지를 묶은 아들의 괴로움
김영기 47
(1)
"내가 무얼 잘못 한기여"
"니 가 나를 이렇게 할 수 있어"
"발로 걷어 찰 기여"
고개 푹 숙이고 앉아 있는 아들은 마음이 찢어지도록 괴롭습니다.
팔순을 넘긴지도 몇 해 째
비록 기골이 장대하고 풍채가 장부답다지만
이미 노환 앞에 무너져가는 마지막 인생의 모습
모든 게 옛날 만 같지 못해 투덜댑니다.
말도 안 되는 말을 연실 흥얼댑니다.
이따 끔은 생트집을 잡고 반항을 합니다.
그리곤
몸에 규칙같이 달려있는 링 겔 줄이며 기저귀 호흡 줄 그 무엇이던
성가시다 생각 되는 것은 마구 뜯어내며 한바탕씩 침상 난동을 피운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조금만 안정을 취하시면 풀어 드리겠습니다."
아들은 혼자말로 연실 중얼거립니다.
"물론 제게 아무런 권리도 없습니다. 그러나 얼마 동안이라도
더 사시게 하고 싶고 좀 더 편안하게 건강하게 해 드리고 싶어서
아버지의 핏방울 몇 남매들은 노심초사 최선을 다 기울이고 있습니다. 지금은 의사들의 지시와 규칙에 순응해야 하는 과정 이예요. 그런데도 왜 그리 강짜를 부리셔서 주위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시는 겁니까?
아들이 아버지의 양손을 병상에다 묶어 맬 때 서글픈 심정을 아버지가
어찌 아시겠습니까. 분노하는 발길에 한번 채이면 코피라도 날 것만 같았습니다." 48
아직 진정 되지도 않았는데 애쓰시는 아버지가 너무 가련하여
일각일촌 죄스러움을 견딜 수가 없었다. 매었던 끈을 다급히 푸는 아들의 눈시울엔 수정 알 같은 눈물이 송알송알 맺힌다.
(2)
"내가 뭘 잘못 한기여,
니 가 뭐여 경찰이여 형사여"
"예 내가 형사예요"
"쯩 있어 어디 쯩 내놔봐
너는 가짜 형사여"
한 노인이 이생에서의 마지막 수순을 밟는다.
싱그럽던 좋은 시절도 있었건만 이미 강한 면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남아 있는 쥐꼬리만 한 것들을 모조리 써본다.
횡설수설 지껄여도 보고 이사람 저사람 시선만 맞닿으면
궁성궁성 말을 걸고 육중한 팔 다리를 이리 저리 뒤척여본다
옆 침상 앞 침상에는 발가락이 뭉개진 이 두 팔이 부러진 이
위장이 빵-구 난 이 408호 병실에는 이런 이들이 같이 있다 49
모두들 서로서로 정겹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인데 이 노인장이 심통을 놓는 것이다.
움켜쥔 것도 쥐었던 것도 지금에 와서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모든 것은 다 제자리로 돌아갔다. 다만 갈 이 와 보낼 이 와의 사이에 미 직 지근한 도덕성 부스러기 때문에 영글어진 자식들이 교대교대 자리를 지키며 수발을 든다. 기저귀를 갈아 대고 등때기를 닦아주고 이도 닦아주고
이것저것 하나서부터 열 가지 참으로 번거로운 부담이다
피차 무엇이 더 기대 되겠는가. 서로 각각 다른 기다림의 시간뿐인걸
지금은 마지막 청산의 시간 더 웃을 것은 더 웃고 더 울 것이 있으면 더 울고 남이야 알아듣던 말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실컷 흥얼대고
손도 발도 자꾸자꾸 움직여서 자기 현실을 확인시켜야 한다.
화려했던 것들 황홀했던 것들 그 멋졌던 것들이
지금 노환 앞에서 사정없이 부서지고 있지 아니한가.
앉고 눕고 먹고 자는 모든 것들을 남들이 부추겨야 가능하다.
속에 남은 게 있어 할 말을 마저 하고 퍼 한다한들 101
뉘라 귀 담아 들을 것이며 신경질을 부리고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댄들 누가 깃털인들 움직이랴
아! 이 허망한 것이여!!
물은 흘러서 어디로 가나?
대구의 눈물
김영기 50
재앙인지 재란 인지
이 땅엔 사흘이 멀다
끔직한 사건 사고
무력한 인생들이 연실 울어 댄다
비를 억수로 퍼 부어
논밭을 까뭉개고 집들을 훑어가더니
그 아픔도 위로 받지 못한 채
눈보라는 서둘러 살을 찢는다.
아 어찜이냐
어찌하여 이 민족은 또
땅을 치며 통곡을 하여야 하는 것이냐
한인간의 심심풀이가
온 민족의 가슴에다 피멍을 안기느냐
엄청난 참변을 만든단 말 이냐?
저 통곡의 한들을
어찌해야 한단 말이냐
누군지도 모르면서
시꺼멓게 끄슬린 시체를 끌어안고
멀쩡하던 인생들은 미치광이로 추락 한다
아침 잘 먹고
사뿐사뿐 걸어 나갔는데
타다 남은 숯덩이로 발길에 채 인다.
뼈다귀만 남은 이 51
열쇠 하나 남긴 이
흔적도 없는 이
아 어찌하여 이런 일들이 있다 더냐
아침 먹고 나오면서
마지막 길일 줄을 그 뉘 알았더냐
변고들이 줄을 이음인 게
심상찮은 징조로다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면
때가 이른다 하더니
지금이 그 때가 온 것이더냐
참새 한 마리도
소홀히 한 적 없던 이가
이 땅에 퍼 부어대는 분노여
아! 이 어찜이드냐
니느웨의 곡성이
이 강산에 만산이 되어야 한다
민족아 회개를 서두르자
차안에서 쓴 편지
장자골 김영기 52
(지체장애자 인정 재활원 생들과 1일 봉사자로 봄 소풍을 다녀오며)
송 순 옥 에게
순옥아!
네 손을 잡았든 손이
아직도 따듯하구나!
나는 너를 사랑하지 못했는데
너는 나를 따듯이 사랑해 주는 구나
내가 너보다 건강하게 태어난 게
많이 부끄럽구나.
너는 몸만 장애이지만
나는 건강한 게 이유가 되어
욕심 시기 질투 중상모략
못된 것들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울 줄 모르는 뻔뻔스러운
마치 야생마 같은 내 인품이
한없이 부끄럽구나!
순옥아
나는 네 손을 잡고 있는 동안이나마
너의
정직하고 맑고 티 없는 순결함을 느끼며
내가 너같이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 가하는 생각을 했단다.
그러나 이세상은
그렇게 살 수 있는 현실이 아니란다.
먹고 입고 이일 저 일을 하며
살자는 것이 그렇게 쉽지 못하단다.
너의 따듯했던 사랑은 금세 지워지고
밖에만 나가면 전쟁하는 군인같이
살아야 한단다.
아마도 하나님은 우리 순옥이를
자기의 아들, 예수같이 보실 것이다
순옥아
우리 잊지 말자
나도 살다가 힘이 들면
우리 순옥이를 생각할게
너도 사람이 그립고 사랑이 그리우면
이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굳세게 살아.
오늘 네가 부른 할아버지란 이름
내 귀 안에다 담아 두고 간직할게
네게 글을 쓰는데 자꾸 눈물이 흐른다.
그리고 선물 받았는데
그 섬세하게 만든 것을 들여다보며
정상적인 이들이 만든
컴퓨터 이상으로 의미가 있구나!
순옥아
내 마음
조금 떼어 네 옆에다 두고 갈게
만져도 보고 안아도 봐
오늘은 이만 쓸게.
*송순옥이는 인천 인정 재활원 생활자 나이는 스무 살 그는 나의 짝 이었다 나 보다 약하지만 나보다 더 건강하다고 보여주고 싶어 했다 잡은 손을 더 꼭 쥐고 싶어 했다 내가 화장실엘 갔다 오는 바람에 반이 찍는 사진도 못 찍었어도 불평 한마디 않았다 그러다 점심시간을 기다리며 벤 취에 낮아 있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머리를 짧게 깍은 순옥인 모자를 쓴 나보다 먼저 느끼며 제 걱정은 안하고 할아버지 비 맞는 것이 큰 걱정이었다.
“할아버지 비 많이 와 차 안에 타고 있어” 말 안 듣는 할아버지를 야속스리 생각하며 몇 차례나 강권을 하였다. 나는 새삼 보석 같은 사랑을 배워 왔다
지금도 행복합니다.
김영기
어렵고 힘들어도
인생으로 태어났던 것이 행복합니다.
원수 같은 자식 때문에
평생을 기 못 펴고 살았대도
그래도
없는 이보단 있는 이는 어깨에 힘주고 삽니다.
도피자로 죄수로 사형수로 살아도
그래도
죽은 것보단 살아있음이 행복합니다.
다시 또 태어난대도
개돼지로 태어나기보단
그래도
인생으로 태어나면 행복하겠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행복을 모를까
깨어진 고려청자
김 찬 배
천년의 역사를 지니고도
한조각 파편 되어
천하 디 천하게 뒹구는 구나
아픈 육신들이여
인간의 과욕은
胡亂 (호란) 과 倭亂 (왜란) 으로 사탄되어
무참히 짓밟아 버렸구나.
妹 (매) 甁 (병) 의
아름다움도 날씬한 가는허리
定座 (정좌) 해 있는 주병의
도도함도 꿋꿋함도
빛깔까지도 뭉개져 버렸구나.
비애와 원한에 찬 원혼만
도깨비 불이되어
허물어진 가마자릴
천년이나 지켜오네
조각 난 청자들아
깨어진 육체들아 이제 모이려 무나
청옥 같은 네 몸에다
신비의 천을 감아 눈부시게 광을 내고
우주 공간을 날아다닐
천 마리 운학도 새겨 넣어
비 색 찬란한 청자
靈妙 (영묘) 한 氣 (기) 를 담은 청자
그 청자를 창조하는 가마에선
이글거리는 불기운이 오열하리라
봄의 향기
봄기운은
따사로운 볕을 받으며 炸裂 (작렬) 하기 시작 한다
동토를 녹여 내니
짓 눌렸던 소리들이 기지개를 편다.
이제 대지는
신비로운 장관을 연출하리라
묵은 각질이 벗기우 듯
녹고 남은 얇은 얼음 층이
갓 화장 마친
꽃 디 처녀 나쁘닥 처럼
잔잔한 빛을 발산한다.
밑으로
탯줄을 타고 도는 핏방울 소리처럼
청아한 물소리 울려온다.
내 영혼 실을 만큼
대지의 기운은 따사롭고
내 육체를 묻을 만큼
코 밑의 기류는 향기롭다
어쩌면 어여쁜 비구니의
목탁 두들기며
천수경 외는 청미한 모습처럼
이리도 아름다우냐.
아! 신이시여
이토록 신비로운 조화를 부리시는
당신은 뉘시나이까?
(니쁘닥 = 전라도 사투리 얼굴)
여름의 환희
김찬배
창문을 열자
뒷산의 녹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네
하늘도 대지도
푸름으로 응고 되어 화석이 되었네.
바다마저 제 빛 잃고 푸름에 질식하니
참으로
푸르고 푸르고 푸르구나.
어느 에메랄드가 이를 넘보랴
포대기 살 같은 넓은 바단
지친 인생들을
금빛 백사장에 포근히 잠재우고
바위에 부딪힌 하얀 포말 따라
갈매기 떼 노래로 화답하고
조개 줍는 아낙네 바구니에는
여름의 추억이 그득히 채워진다.
녹음지친 들녘은
하늬바람에 일렁일렁 춤을 추며
목 곧게 치켜들고 햇빛 듬뿍 머금으며
알알이 성글어 가을로 달려가 네
잠자리 잡던 아이도 나비 잡던 아이도
하얀 이 드러내고 신바람 나더니
어느새
잔디위에 쌔근쌔근 잠이 드네.
당신을 그리며
조 평 진 1
함께
걸어간 세월들은
마치지 못한 숙제 같이
뒤돌아 보여 지며
빛바랜 앨범 속에
멈추어 서서
망부석이 되었는데
세월만
물 따라 바람 따라
흘러 흘러가는구나.
아~
돌아가고 싶어라
너와 내가
함께
손잡고 서 있던
그 하늘 아래로.
(수필) 바느질 사 랑
조 약 돌 11
오랜만에 바느질을 하려고 반짇고리를 꺼냈다.
바늘은 실을 만나더니 하나밖에 없는 귀를 틀어막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 한 듯 삶의 궤도를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정성을 다해 온몸으로 헝겊을 찌르며 곡예를 하며 질서 있게 걸어간 한 몸이 된 실은 피멍이 들면서도 엄살 부리지 않고 묵묵히 바늘이 걸어간 길을 따라갔다.
바늘과 실의 굵기가 틀리 다 던지 아니면 바늘 가는데 실이 안가면 아무 의미도 없고 아픈 상처만 뚫려 있는 헛걸음질만 한 것이 된다.
원래가 바늘은 군더더기 없는 곧은 성품이지만
그래도 더 곧게 매우 똑바로 걸어야만 한다.
조금이라도 비틀거리고 걸어가면
그 길은 어김없이 쪽 가위로 뜯어내고 다시 박아야한다.
심지어는 모두 뜯어내고 처음부터 다시 박아야할 때도 있다.
요즈음은 초등학교 때부터 남학생들도 학교에서 바느질을 배우는 모양이다. 아들아이가 학교에서 가정시간에 만들었다는 손가방은 제법 쓸 만했다.
하기야 남자도 바느질정도는 기본으로 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바느질을 생각하면 내 고정관념으론 우선 먼저 어머니
또는 여자들이 떠올랐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여학생은 가정시간에 바느질, 요리 등을 배웠고 남학생은 기술시간에 전기 같은 것을 배웠던 것으로 알고 있다.
여고 시절
나는 한복 만드는 시간이 몇 시간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그때 당시 우리학년은 8반까지 있었는데 쉬는 시간에 옆 반으로 달려가 너희 반가정 들었니?
그럼 그 시간 나하고 바꿔서 수업 받을래?
이 반 저 반 옮겨 다니며 국어, 영어, 수학은 제쳐놓고 그날 하루는 하루 종일 반마다 옮겨 다니며 한복 만들기만 실컷 했다. 12
한복의 곡선은 정말 아름다웠다.
반마다 옮겨 다니며 한복 만들기에 열중인 나를 가정선생님은 눈치를 채셨는지 못 채셨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다 가정선생님의 안색을 살펴볼라치면 조용히 미소만 지으실 뿐이었다.
가정선생님의 미소는 왜 어머니의 미소처럼 다정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 우리 어머니는 가정선생님보다도 아마 더 솜씨가 좋으셨던 것 같다.
헝겊으로 인형을 만들고 그 속에 솜을 넣고 눈은 까만 단추로 머리카락은 빨간 털실로 인형 옷도 예쁘게 만들어 주셨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은 어머니가 직접 바느질을 해서 만들어 수까지 놓아준 가방에, 대바늘로 짠 털 코트를 입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늘 반짇고리를 옆에 끼고 계셨다.
떨어진 양말을 깁고, 무릎이나 팔꿈치가 헤어지면 다른 천을 동그랗게, 아니면 토끼모양으로 오려 예쁘게 땜질을 잘도 하셨다.
나는 어떠했는가?
바지 단만 줄이려도 세탁소로 들고 가야했고,
어머니처럼 불편한 숯불다리미도 아닌 편한 전기다리미를 가졌으면서도 다림질을 제일 귀찮게 여겼다.
이런 나에게 변화가 생겼다.
여고 다닐 때 그리도 좋아하던 바느질을 배우기로 작정한 것이다.
배움의 장소로 달려가 우선 홈패션 반에 들어가 기초를 익히고 다음에는 한복을 배워보려고 결심했다.
홈패션 반에 들어가는 첫날부터 재봉틀 앞에 앉은 나는 미친 듯 춤을 추는 재봉 바늘처럼 정신없이 바느질에 푹 빠져들었다.
우리 홈패션 반은 재봉틀이 20대여서 20명이 등록을 하였는데 끝날 때는 다섯 명 정도만 꾸준히 나왔고 그 중에 세 명만이 개근상을 타게 되었는데
나는 물론 13
하루도 안 빠진 개근생이었다.
그 동안 그 시간에 겹치는 다른 모임을 빠진 것은 물론이고 동네에서 동해바다에 놀러 가는 것까지 포기했으니 당연했다.
집에서도 연습을 하기 위해 빈방에 재봉틀을 들여놨다.
중고품인 재봉틀을 닦고 또 닦았을 뿐 아니라 잠들기 전 재봉틀이 잘 있나 열어보고는 안방으로 건너왔다.
요즈음 우리 집의 분위기가 부드러운 헝겊을 만질 때처럼 따스하다.
아이보리색 커튼, 이불, 식탁보, 연둣빛 앞치마 분홍빛 잔잔한 꽃무늬가 있는 손가방 등이 있기 때문이다.
내 대견한 소품들을 거실에 진열해 놓고 감상을 하고 또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만든 이불을 접고 그 다음 아이보리색 커튼을 열어 제치고 커다랗게 만든 앞치마호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이것저것 둘러보면 아직도 만들고 싶은 것이 수두룩했다.
식당 하는 친구들에게는 이렇게 호주머니가 커다란 앞치마를 만들어 주고 싶고, 아이들에게는 필통을, 다른 친구들에게는 조그마한 손지갑을 만들어 하나씩 나누어주고 싶다.
예전의 어머니도 풀 한번 쑤면 어디 문에 구멍이 났나. 바람벽이 벗겨졌나 관찰하고 다니시더니 내가 그 꼴이었다.
낡은 베개껍데기를 새로 만들어야겠고
요 껍데기를 새로 만들어야겠고
평소에는 보이지도 않던 일거리가 끝이 없었다.
옷장을 정리해 평소 바지 기장이 길었던 바지는 기장을 알맞게 줄였고 거의 오래 전 아이들 임신했을 때 입었던 임신복까지 꺼내 허리선을 푹 줄여 이제는 키가 나보다 더 큰 딸, 아들 앞에 입고 서서는 얘들아 엄마 어떠니? 괜찮니? 묻곤 했다.
이런 저런 고생 끝에 드디어 나의 바늘도 엄마의 바늘처럼 미친 듯 없는 길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상상 속의 모양을 박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드디어 바느질을 제대로 해냈다.
바느질을 해 보니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바늘 가는 데 실 가면 되는 것이다. 14
삶도 사랑도 그런 것이 아닐는지.
봄비 내리거든
그여인
복사꽃 향기 스며든
님 계신 창가에
봄비
조용히 내리거든
그대 그리워 찿아 간
내 발 걸음이라
생각해 주오
연두 빛 향 휘감은
그대 잠든 가슴에
봄비
가만히 내리거든
그대 그리워 흘린
내 눈물이라 생각해 주오
김영기 선생님, 안녕하시지요?
양양해입니다.
문학지의 단간으로 서운하였던 터였는데
선생님께서 아름다운 짐을 스스로 짊어지시니
경의를 표합니다.
새 봄, 희망의 3월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부디,
소망하시는 모든 것들
새 봄에 소생하는 자연처럼 환하고 아름답게 의미되소서.
가정에 행복과 건강과 사랑이
언제나 가득가득 채워지시길 기원드립니다.
건강 건필하세요.
양양해드림^
ㅁ 겨울 가로등 ㅁ
-양양해-
긴긴 겨울밤
열기를 안고 있어도
나는 춥다
흰 눈이라도 펄펄 날려야
사람 그리워 붉게 충혈 된 이 마음
감출 수 있을 텐데.
ㅁ 겨울 북한강변에서 ㅁ
- 양양해-
북한강변 밤나무 우듬지에
버겁게 얹혀 진 까치집을 보면서
새털 같은 눈발들이
주춤거림도 모르고 흩날리는 것을 보면서
내 가슴에 앙금처럼 내려앉은 이름들에 짓눌려
평화로운 대지에 마음 내려놓지 못하는
나를 보았다
삶의 바퀴 순순히 따라 돌면서도 때로는
훨훨 눈발처럼 허공에 떠 있어야
오롯하니 영혼의 순환이 느껴지던 자유마저
오늘은 내려놓지 못하여
북한강 무심해 뵈는 물에게 생뚱맞게 물었다
유구히 흐르는 것에만 마음 둘 수 있는 너는
온전한 내려놓음이니
진정 좋으냐.
ㅁ 아버지 그리움ㅁ
-양양해-
황토(黃土)를 보면
만지고 싶고 향내 맡고 싶고
손바닥이 얼얼하게 비비고 싶다
붉은 잔등 황토밭 지하 세상 찾아드신 아버지
황토 빛 미소로
시도 때도 없이 지금까지도
길을 막고 서 계신다, 첫눈이 흩날리는 날이면.
그 늘
임 채훈
한없이 크시고
한없이 넓으셨던 아버지
쉴 곳이 필요 할 땐
말없이 큰 그늘이 되어 나를 품어주시고
지치고 괴로 울 땐
힘과 용기를 주시며 나를 다독여주시던 아버지
그 아버지는 내게
몸집도 조금 씩 조금씩 떼어 주시고
힘도 조금 씩 조금씩 나누어 주시더니
내가 커가는 만큼
아버지는 자꾸만 작아지신다.
이제는 내가
아버지의 그늘이고 싶다.
하늘같은 나무
임 소연
늘 변함없이 내 곁을 지켜주고 있는 나무
힘이 들 때 같이 힘들어하고
기쁠 때 같이 웃어주고
아플 때 나 대신 아파해주고 싶어 하는 나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작아지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주름이 생기고
조금 씩 조금씩 허리가 꺾이는 나무
그늘이 넓고 포근하고
날 사랑해 주며 내 삶의 받침목 되고
내가 잘못해도 내 편인 나무
아버지란 이름을 가진 ‥‥‥.
내게는
그런 나무가 있습니다.
향촌연가 8편
나 태 현
(1)
참새 떼는 서산을 넘고
닭은 달구 장에 오른다
마을 앞 들판엔 땅거미가 깔리고
건너 마을 창문 불빛이 밝아진다
검은 하늘별은 보석 같고
둥근달은 은하 옆을 흐른다
(2)
실바람은 삐 비 꽃을 흔들고
아지랑이 핀 언덕에선 종달새가 짝을 짓는다
달래 캐는 정심이 댕기 곱고
윤옥이는 정심이가 그리 좋단다
찔레꽃 피고지고 지고피고
매정한 정심이는 장연이 한테 시집갔단다.
(3)
나비는 장다리꽃밭에서 놀고
아카시야 꽃 반에선 벌 이 벌이 꿀을 빤다
종달새는 진달래 덮인 솔폭 밑에 알을 낳고
재비는 처마 안에 둥지를 짓는다
봄 속에 삼라만상이 춘정에 넘치고
두 달 된 강아지새끼도 암 수놈이 좋아 한다
(4)
장대비는 오동나무 잎을 두들기고
어미닭은 병아리를 품어 솜털을 말려준다
삼밭에 상추는 풋 마늘과 더불어 푸르고
어머니는 머슴들 군것질로 꽁보리를 볶는다.
아버지는 논두렁 무너질까 걱정인데
마구간에 황소 놈은 팔자가 늘어졌다
(5)
죽순竹筍은 송아지새끼 뿔같이 돋아나고
지나가는 바람 없어 대나무는 졸고 있다
뒤뜰 감나무 감똑이 톡톡 떨어지니
꼬맹이들이 묵주를 만들어 목에 걸고
볼 태기가 터지게 우물댄다.
장 닭이 홰를 치고 때를 알리는 정오에
흰 구름은 봄을 싣고 중천을 흘러간다
(6)
하늘은 깨질 듯 맑고
고추잠자리 한마당 어루어졌다
팥알 같은 팽나무열매 노랑 파랑 잎 새에 곱고
빨랫줄에 옥양목 눈같이 희다
열두 덕석 고추는 가을볕에 더 곱고
장독 뒤에 코스모스 뜰 악에 향기를 풍긴다
(7)
구름은 바람으로 날개 달아 하늘을 건너고
달은 햇빛 머금어 밤을 밝힌다
황소는 논밭 갈아준 품삯으로 여물을 얻어먹고
돼지는 죽어 고기 줄 테니 밥 달라 꿀꿀 댄다
자연은 댓 가 없이 주고받고 만년을 사는데
콩 팥 가리는 중생들은 칠십을 못 사네
(8)
하녕울 방죽에 낚싯대를 넣고 한나절을 보낸다.
붕어는 없고 피라미만 모인다.
저만치 낮은 곳에 연꽃이 곱고
이쪽에선 꼬맹이들이 꼬치 내놓고 물장구친다.
어차피 붕어 잡으려 낚싯대 넣은 것이 아니니
방죽 밑 논에 가서 피나 몇 폭 뽑자
서울 대공원에서
나 태 현
서울 대공원에 가면
학처럼 마음을 펴고
사자처럼 기氣가 산다.
식물원에서
좌초 잎처럼 마음이 넓고
야자수처럼 키가 큰다
호숫가에 앉아서
거울처럼 마을을 비추고
능수버들처럼 새싹이 튼다
공원에서
커피 향처럼 향긋한 사랑의 대화이고
필름처럼 스쳐가는 사랑의 영상이다
어디론가 가고 있다.
나 태 현
대공원 소풍날이다
4호선 서울 랜드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시간을 지키는 나지만
오늘은 10분이 늦었다
기다리는 친구들을 반갑게 만났다
여자 동창들이 나온다니까
남자 동창들도 많이 나왔다
역시 남녀가 좋다
각자 배낭을 메고
동물원 입구를 지나
청계산 쪽으로 간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산자락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고 사색 한다
가다 보면 저수지가 나오고
흐르다 추운 물은 얼음판이 되었다
양지에 앉아
연인 같은 남녀가 이야기 한다
우리 일행들은
넓은 공원 마른 풀에 앉아
각자 싸 온 도시락을 풀고
점심을 먹느라
모이면 어디서나 그 말 뿐이다
그 말이 인생의 전부다
그 말에는 여자들이 한 수 위다
마음껏 웃고
이제 헤어질 때가 되었다
집에 좋아 집으로 간다
술이 좋아 술로 간다
친구가 좋아 친구로 간다
춤이 좋아 춤으로 간다
아, 우리들은 어디론가 가고 있다
남하 일기 (南下 日記)
~ 유난히도 추웠던 그해 겨울 그리고,-
김 창 종 ( 金 昌 鐘 )
1950년 0월 0일
친가 다섯 식구, 외가 여섯 식구, 큰댁 두 식구, 열 세 식구가 모였다. 내 서울 신설동 집은 만원이다.
외할머니 명령으로 알짜배기 곡식 (참깨, 들깨,) 기름 짠 것 꿀 조청 등을 가지러 시골 외가로 갔던 어머니와 큰 외숙모가 밤늦게 돌아 오셨다. 중공군이 장위고개 밑 곰보 할멈 국밥집 모롱이까지 당나귀에다 짐을 싣고 와 둘러앉아 수염 고드름을 녹이며 국밥과 막걸리를 황토 불가에 둘러 앉아 먹는걸 보고 크게 놀라서 장위고개를 넘어 안동 김 씨네 종가 돌산 밑으로 등짐도 벗어 던지고 저린 오금을 겨우 펴고 사시나무 떨 듯 떨며 오셨다.
미아리 공동묘지도 무섭지 않았다고 했다. (중공군이 돈암동(되넘이)고개를 넘어온다)
1960년 0월 0일
눈이 50cm는 왔다. 한강이 꽁꽁 얼었다. 오늘 안으로 중공군 1개 사단 4만명이 인해전술로 수도 서울을 쳐들어 온다는 소문이 서울 장안에 퍼졌다.(정말은 아닌데 소문은 무성했다.)
1951년 1월 0일
오늘은 세상없어도 지고이고 소 등에다 싣고 서빙고 다리를 건너 청계리로 가야 한다고 했던 진외종조부 댁 일행은 새벽녘 길을 떠났다. 병자호란 때 되놈(중국 만주호족)이 넘어 온 고개여서 되넘이 (돈암동)고개인데 또 되넘이 온다고 외조부가 말씀하였다. 「임진이북은 재작호지야(臨津以北 再昨胡地 也)」(임진강 북쪽은 두 번 중국 되놈의 된다) 는 「정감록」의 기록이 맞는다고 하셨다.(정감록은 우리 민족의 장래를 예언한 예언서였다.)
1951년 0월 0일
소 등에다 무거운 짐은 싣고 열세 식구는 이고 지고 서빙고 빙판을 건너 청계리로 가니 벌써 밤이다. 진외종조부 서녀( 室女) 의 마을로 가니 외조모가 행방이 모연하다. 온 식구가 산 구릉에서 소리쳐 내 이름을 부르며 외조모를 찾은 지 6시간 만에 겨우 외조모를 찾았다. 눈물로 맞았다.
진외숙모가 김일성, 모택동 군대가 팔로군을 앞세우고 땡크와 함께 질서정연하게 남진한다고 하였다. 눈이 휘둥그래 신작로에 나가보니 당나귀 등에다 잡곡을 빻아 만 듯 미수가루 한 푸대를 싣고 인민군 소년병이 중공군 누비바지 차림의 2명과 함께 황토 불을 쬐고 앉았는데 당나귀 코나 인민군 중공군 코 모두 까맣고 소년병의 딱콩총이 너무 길어 땅에 끌렸다.
질서정연? 땡크 부대의 위용? 모두 거짓말이다. ‘당나구 땡크?’ 진외숙모의 남편이 진외숙은 연세대 교수로 있다가 월북 김일성대학 교수로 김일성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했다.(빨갱이(?)부인) ‘중공군은 축지법을 써서 몇 백리도 하룻저녁에 간다.’ 고 했다 (빨갱이거짓말)
(새빨간 거짓말을 잘해 빨갱이인가? )
1951년 0월 0일
중공군이 마을을 점령하고 피란을 간지 주, 부자네 집 땅굴을 꼬쟁이로 쑤셔 식량을 찾아내고는 볶아서 가루로 만들어 전대에다 담아 메고는 당나귀를 타고 개미 같이 행렬을 지어 남으로 갔다. 쌀을 뺏은 집 대문에다는「양곡차용증 (중화인민공화국 의용군 대대장 소좌 000.) 」이 붙여져 있었다.
(식량을 양민들에게다 빼앗는 인민의 군대 ?)
1951년 0월 0일
“남으로 가야 산다. 김일성대학 교수 네 식구야 남기고 가야지 ··· 우리는 태극기 밑으로 가야 살아 ··· ”
중공군에게 포위된 우리 열세 식구는 밤을 틈 타 이고이지 남양반도를 향해 떠났다. (중공군이 없는 곳으로 ---)
“ 함께 한 무더기 가져서 가면 몰살되기 십상이다. 두 패로 나누어 가자.”
조부님의 지시로 1대 2대로 나누어서 남하하였다. (조부모 외조부 큰댁과 어머니는 1대 나와 남은식구는 2대였다)
1951년 0월 0일
하루 12시간을 걸었다 ( 저녁6시~아침6시 )
오줌 한 방울 한 숨, 한 번, 안 쉬고 야목 다리 굿게 장터를 지나다 중공군 전초 부대를 만났다. 하늘에는 야광 탄 (夜光彈) 이 수도 없이 터지는 속을 들을 지나 빙판을 지나 강을 건너 도착 한 곳은 남양 읍 ( 지금의 화성 시 )이다. 1대 (1진)와 만났다. 약속된 읍사무소 앞에서 제일 가까운 국밥집이었다. 온 가족이 얼싸 안고 울었다. 동쪽 하늘이 붉더니 해가 솟았다. 대문을 보니 태극기가 겨울 아침 바람에 휘날렸다. ‘ 태극기가 저렇게 선명(鮮明) 할 수 있을까 ?’ 눈물이 절로 났다.
낮에 남하한 형님의 얘기는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 하게 하였다.
“ 아, 글쎄··· 물이라도 한 그릇 얻어먹고 누룽지나 보리개떡이라도 얻어 먹 을 요량으로 어느 집을 찾아들면 미군 폭격기가 폭격한다고 내 쫓지 뭐야 ···
“그래서?”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되돌 아 서서 멀리 나오다 보면 우리가 찾아갔던 집 을 몽땅 폭격기편대가 폭격하여 잿더미가 되는 게 아니야 ···? ”
“우리 식구가 그 집에 들어가서 누룽지라도 얻어먹다가 폭격에 맞고 재가 될 번했네--”
단 1명의 희생자도 없이 남양원에 도착하여 임시로 만든 돌 아궁이에다 솥을 얹고 아침밥을 지어 먹으며 그리도 그리워 찾아 온 게양된 태극기를 바라보며 한 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 종간 나 새끼야 눈밭에 뒹구는 시체가 되고파 --? 응? 콱 쏴 죽여 줄 까 ?
팔로군 장교라는 조선쪽 중공군이 남하한다고 소리 지르며 욕하는 소리를 뒤로 하고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달려 온 40km의 남행길이었다. (눈밭에 총탄을 맞고 죽은 시체가 될 뻔 했다 총소리를 내어 우리를 죽이면 미군에게 발각되어 역습을 당할까봐 우리에게 총을 쏘아 죽이지 못했던 것이다)
1951년 0월 0일
남양 읍 고 모리로 정착지로 정하고 공회당 방 한 개와 사랑을 거처로 삼고 피란지의 생활은 시작되었다.(낯선 공회당의방은 그런대로 결딜만했다)
1951년 0월 0일
냉이, 달래, 꽃다지, 아카시야 순, 쑥을 뜯고 바다 갯펄에서 잡은 빗 죽, 까막죽, 동죽, 모시조개, 대합, 백합, 바지락을(잡아다가) 된장을 넣고 국을 끓이면 양식 보탬도 되고 반찬도 되었다. 오늘은 빗 풀, 까락 풀을 20개나 캐었다.
마을 소녀들이 「옷 갇음꾸려 매는 법」 「조개 잡는 법」을 가르쳐주었다.(순박한 마을 소년들과 금방 친구가 되었다.)
1951년 0월 0일
인동넝쿨을 뜯어 한약 상에다 팔면 용돈을 준다고 하여 한보따리 뜯어다 말려 오후에 한약 상에 팔아 그 돈으로 보리쌀 두 말을 사 왔다. 오후 늦게 모시조개도 캐고 능정이게도 잡고 방게도 잡고 누룩 지 생선 한 마리도 잡아 와 어머니께 칭찬을 들었다.(이튿날 고양이에게 물려간 누룩 지를 찾아 온 마을을 헤맸다.) (나쁜 고양이놈 하필이면 내 생선 「누룩 지를―-」)
1951년 0월 0일
짬둥어 10마리를 잡아다 구워 먹었다. 마을 애들을 모아 놓고 노래를 가르쳤다. 서울학생은 노래도 잘 한다고 칭찬을 듣고 형님의 하모니카 소리는 일품이어서 마을 소년 소녀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장날이어서 큰 산 홍범마을 호랑이 산지기 할 배가 장에 가는 날이어서 산 갗에 가서 땔나무 한 짐을 해 왔다. 땀을 바가지로 흘렸다.
“내 손자새끼 피란길에 잘 먹지 못해 기운 빠져 땀바가지나 흘린다.”
고 우셨다. 내 가슴이 아팠다.
‘어서 서울 수복이 되어 하얀 쌀밥 그릇 수북이 담아 실컷 먹었으면―-’
(흰쌀밥은 그 모습조차 잊은 듯 했다)
1951년 0월 0일
마을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쳤다. 오늘은 유행가 노래다. 「귀국선」「찔레꽃」재미있어서 아이들이 손 벽을 쳤다. 마을 이장님이 나를 「꾀 도리 노래선상」이라고 놀려냈다. 얼굴이 타 올랐다.
(그래도 선상님 소리를 들으니 좋았다)
1951년 0월 0일
아침 일찍 서신으로 함박조개, 소라를 잡으러 마을 소녀들과 함께 가서 떡도 먹고 노래도 온 종일 불렀다. 조개를 한짐 잔뜩 잡아 지고 와서 할머니께 칭찬도 듣고 나니 어깨가 으쓱했다.
1951년 0월 0일
마을 교인들이 김치를 걷어 가지고 왔다. 마음씨 고운 크리스챤들이었다. 쌀, 보리 값이 올랐는데 오르기 전 값으로 우리에게 팔았다. 정말 고마웠다.(마을사람들은 모두 종교인들이었다)
1951년 0월 0일
참죽나무를 베어 윷도 만들고 나막신도 만들고 지팡이도 만들어 주시는 경채 언니의 아버지는 고마운 목수 아저씨인데 6·25때도 서울 명동성당 수녀님 세분을 빨갱이들 몰래 숨겨주었다는 착한 어른이었다. 타고난 목수라고 들 했다. (배우지도 않고 목수가 된 천재였다)
1951년 0월 0일
「홍 벌 (남양 홍 씨 조상의사당)」마을을 참배했다. 남양 홍 씨는 아니지만 무사히 서울 수복하여 평화의 날이 오게 해 달라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온 종일 바람이 불고 파도가 높았으며 집채만 한 파도가 마을을 삼킬 듯 밀고 왔다가 또 물러갔다. (무서웠다 또 무서웠다)
1951년 0월 0일
떡 장사 나간 큰외숙모와 어머니가 늦게 까지 귀가하지 않았다. 동구 밖 마을 신장 목 돈대 위에서 비둘기 한 쌍인 양 형님과 기다렸다. 멀리서 흰옷 입은 두 여인이 오는가싶더니 안 보인다.
“떡이 안 팔려 떡 광주리 (바구니)바다에 던지고 함께 빠진 건 아닐까?”
“엑 끼 고얀 놈 재수 없는 소리--- ”
형이 꿀밤을 주었다. 눈물이 솟구쳤다 큰 돛단배 소금장수들이 주막에서 떡 두 광주리를 몽땅 높은 값에 샀다고 헐레벌떡 고갯 마루를 넘어 오신 어머니는 상기된 얼굴로 함박꽃 웃음을 웃으셨다.(쌀 한 가마 값은 된다니--)
1951년 0월 0일
맑은 하늘 위에 네 대의 1329 폭격기 편대가 흰 줄 네 개를 그으며 지나갔다.
“ 야- 1329야 평양 가서 김일성빨갱이 머리 까부시고 오렴아- ”
우리는 마을 아이들과 1329를 향해 소리쳤다.(아주 큰소리로 손나팔을 불며--)
1951년 0월 0일
마을 청년단장이 국준 으로 입대하여 특무상자가 되어 휴가를 왔는데 MI소총에다 총탄 120발을 갖고 왔다고 했다. 마을 어른들을 모아 놓고 사격 연습을 시켰다. 중공군이 또 처 내려오면 총 하나쯤은 쏠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온 종일 MI총 소리가 마을 안에 콩 볶는 소리, 솥 깨지는 소리를 냈다. ( 중공군 1명이라도 더 잡지 웬 총 쏘기는 하는 감--- 못 마땅했다)
1951년 0월 0일
서울이 임시 수복되었다고 했다. 공회당 뒤 공터에 버려진 찌그러진 자전거 바퀴를 뽑아 손수레를 만들고 짐을 싣고 수원으로 향했다. 마을 소년 소녀 들이 동구 밖 먼발치 까지 배웅을 나와 이별을 아쉬워하며 울었다. 「서신어촌」까지 떡보따리를 이고 함박조개 잡이 소풍을 함께 갔던 정님이 경채 두 소녀는 마을 장승이 서 있는 돈대바위 뒤에서 우는 모습이 멀리서도 보였다. ‘망할 놈의 전쟁 언제 끝나서 내 다시 고 모리 가 볼까나? ’
산 모루 분교 교실에서 노래가 바람 곁에 들려 왔다.
(1)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 한다
원한이여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
(2)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앞으로 앞으로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추풍령 고개 마루에서 마지막 나누어 피던
화랑담배 연기속에 사라진 전우야
------ 떠 른다 네 얼굴이 꽃같이 별 같이--」
「백두산 까지 앞으로 앞으로 무찔러 찔러 대한 남아의 총같이 번쩍 거린다. 원수야! 오랑캐야! 압록강 건너서 어서 빨리 물러가라 두손들어라 ··」
= 1951년 가을 이후 일기 생략=
( 이 일기는 당시 중학생이던 필자의 증언의 기록인 실기(實記)의 일부이다.)
인생사
차 경섭
우아한 면사포에 새색시는 천사 같고
이승은 아름다운 낙원이니 설어마라
우리 내 인생살이는 다 그렇고 그렇기에
세월을 탓 하랴만 너 나 없이 늙어간 몸
해 저문 들길에는 길손 바삐 간곳없고
발목을 잡고 늘어진 불치병도 수많더라.
저 하늘 뭇별들은 뉘를 위해 반짝인지
빈궁한 살림에도 아름다운 사랑 있고
들새는 가을이 좋아 날개 짓이 난무련만
구정물 똥물이나 들이켜 할 개 같은 자
버르장머리 없는 호래자식 분명 터라
주막집 개다리소반 사라지니 꽃뱀 많고
흐르다 머문 달빛 어둠 함께 사라지니
찬란한 햇살타고 고삿 쓰는 작은 새여
대지의 넉넉한 품엔 뭇 생명이 피고지고
삼팔선
차 경 섭
포연이 쓸고 간 곳 넋이라도 있고 없고
언제나 너그러운 청산이요 강물이여
낱낱이 쐐기를 박는 인생사에 법 많건만
세상은 아사리 판 잉잉 소리 벌떼 같고
생사를 알 수 없는 혈육이요 고향이여
이제는 냉전체제도 시류 따라 변하련만
누란의 조국운명 피 흘려서 지켰거늘
원한의 삼팔선은 허리감고 옥죄이니
영약이 있다 하여도 불로장생 뉘 하리오
너와 나 통일노래 부르다가 부르다가
팔팔한 정령 잃고 핼쑥해진 몰골이여
뼛골에 사무친 원한 조국통일 기약 없고
용광로 불길 같은 훈훈한 봄 절실 건만
저승꽃 덕지덕지 피운 모습 가히 없고
자유와 평화를 위해 그 얼마나 피 흘렸던가.
나목의 억정(1)
자경
잎도 꽃도 털어 내고
고가처럼 서있다
흰 눈발 희뜩희뜩
바람 높게 부는 날
아자살
고운 장지문
가지 끝에 열어둔다.
나목의 억정.(2)
앙상한 가지에다
겨울노래 걸어두고
설화로 피워내는
소록하고 소담한 정
사르르
화선지위에
수묵화로 번진다.
나목의 억정.(3)
가물한 끝가지에
나래 접은 새 한 마리
머리에 하늘이고
깊은 사색 가슴앓이
사래는
나래 짓에도
흔들리는 저 하늘.
나목의 억정(4)
이토록 적막하게
아픈 철이 있을까
잿빛처럼 앓는 열병
먹물같이 번질 때
가지에
열두 줄 매어
가얏고로 뜯어라.
나목의 억정.(5)
잎도 꽃도 털어 내고
알몸으로 서 본다
떨치듯 벗어버린
짓누르던 무거운 짐
이제사
인업 마저도
못내 아쉰 그리움.
나목의 억정.(6)
작은 새 날아와서
깃 떨구고 떠난 자리
고요가 밀물처럼
그리움 안고 오면
미련은
잔물결 일 듯
가지 끝에 맴돈다.
나목의 억정.(7)
비비새 나무 끝에서
나래 치지 말아라
새하얀 눈밭에서
깊은 꿈을 꾸고 있다.
아직은
놓을 수 없는
아른 이는 봄꿈을.
나목의 억정.(8)
가느란 숨결소리
수척히 추인 어깨
겨울 해 바람 끝에
식어 가는 저녁나절
가물 한
혼을 붙들고
기다리는 겨울 남가.
雅號: 自耕
姓名: 全 先 九
住所: 慶北 榮州市 下望洞 246-101
http://cafe.daum.net/juggyegugok
電話: 054-634-2317
1.영광여중근무
2.전국시조공모전 입상
3.시조문학. 문예비전 등단
시조문학회 회원
문비문학회 회원
달가람시문학회 회원
영남시조시인협회 회원
구곡시문학회(직전부회장)
영주지부시조분과 위원장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한국 시조작가협회간사
한국문인협회
시집 1.봄을 기다리는 나무
2.민들레 피는 아침
동인지. 1. 까치노을(구곡문학)
2. 낙강 (영남시조)
3 달가람( 달가람문학)
4. 문비 (문비문학)
이른 봄날
저만치 서있는 산 아래
도란도란 눈 녹아 흐르는 물소리
잠자던 초록 천사들
놀래어 화들짝 눈을 뜨고
따스한 햇살
발아래 내리어
어느새
온몸으로 온기가 오를 때
갇혔던 감각이
새로이 피어나듯
움직여 기지개로
용솟음하니
청정한 먼 하늘에
동공 높이하고
한없이 마음 쫓아
새봄의 향기를 만난다.
2005년 3월 3일 원 명 숙
삶
雪香조 남인
내 마음속에
질퍽하게 고인
숙명의 질긴 끈을 놓을 수 없어
오늘도
생채기를 내는 내 모습에
몸을 떤다
세월의 땟물 배어든
지갑하나 들고
현실의 무게 가늠하며
삶의 질곡과 타협 해본다
그럴때마다
쓸모없는 자존의 모서리가
독버섯처럼 고개들땐
시린 가슴으로 달래며
희망을 노래 한다
언젠가는
삶이라는 고된 정체를
내 앞에서 무릎 꿇게 하리라...
그리고
내 삶을
가만 가만 안아 주리라
학생 원고 청탁을
안녕 하세요 글 사랑 문학 봄 호에 올려드릴게요 선생님 계시는 학교
학생의 작품 2명만 보내주십시오 장르나 편수에 구애 없이 자유로이
보내시면 됩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글 사랑문학편집장
(전용 카페 = cafe.daum.net/글사랑문학)=글사랑문학 원고 방에
연락 전화 011-9245-0276 032-581-0276
주소 = 404-816 인천 서구 가좌동342번지
장자골 김영기
先生님의 玉稿를 기다립니다.
안녕 하세요 하시는 일 크게 번영하시고 가정이 평안하시기를 삼가 기원합니다.
저는 인천에 사는 장자골 김영기입니다. 이진호 회장님이 운영하시던 글 사랑문학 출판에 관하여 부족하지만 소생이 봄 호부터 작업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워낙 능력이 부족한지라 여러분의 도움이 절대 필요 합니다
이번 봄 호부터 착수하였으니 선생님의 옥고를 몇 편 부탁드립니다.
1. 원고 보내실 때
(우선 글 사랑문학 카페에 회원으로 가입을 하셔야 합니다)
1) 장르나 매수 편수에 제한 없이 보내주십시오
2) 기한이나 시일에 구애 없이 항상 올려주십시오
3) 올리실 때 태그 없이 실명으로 올려주십시오
2. 원고 보내시는 방법
1) 메일 = kyg0276@hanmail.net
2) 카페 = cafe.daum.net.글사랑문학(한글로 치면 됩니다)
(글 사랑문학용 원고 방에다 올리세요)
3) 팩스 = 032-571-7164
4) 우편 = 우404-816 인천 서구 가좌4동 342번지(김영기)
*올라온 글은 당호에 못 올리면 다음호에 올리도록 하겠으니 하시라 도 올려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2005년 2월 일
(김영기의 연락전화 = 032-581-0276 011-9245-0276)
김 영기 올림
신인등단 응모 작품을 올리시는 분들에게
문학을 지망하시는 선생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미 문학의 뜻이 있어 등단을 생각 하셨다면 주저 하지 마시고 열심히 올리십시오. 장르나 매수 편수에 구애 받지 말고 쓰신 글이 있으시면 수시로 많이 올려놓으시면 몇 편을 골라서 입선작으로 하겠습니다. 당 월호에 실행이 안 되었을 경우라도 기다리시면 차호에서 실행 되도록 하겠습니다.
원고 올리시는 방법
1. 원고 보내실 때
(우선 글 사랑문학 카페에 회원으로 가입을 하셔야 합니다)
1) 장르나 매수 편수에 제한 없이 보내주십시오
2) 기한이나 시일에 구애 없이 항상 올려주십시오
3) 올리실 때 태그 없이 실명으로 올려주십시오
2. 원고 보내시는 방법
1) 메일 = kyg0276@hanmail.net
2) 카페 = cafe.daum.net.글사랑문학(한글로 치면 됩니다)
(글 사랑문학 창작수업 방에다 올리세요)
3) 팩스 = 032-571-7164
4) 우편 = 우404-816 인천 서구 가좌4동 342번지(김영기)
*1. 봄 호는 시일이 촉박하오니 2월 말까지 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 올라온 글은 당호에 못 올리면 다음호에 올리도록 하겠으니 하시라 도 올려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김영기의 연락전화 = 032-581-0276 011-9245-0276)
만약에 본인이 좀 부족하다 싶어서 감수 교정 받기를 원 하시는 분은
“창작 수업 방”에다 제목 앞에(감수요)를 붙여서 올리시면 교수님들의 감수를 받아서 본인 메일로 직접 전송하여 드리며 이렇게 몇 번 거듭 습작 하다가 어느 경지에 이르면 등단절차 착수하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