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공용화.
내수시장이 제 구실을 하기위해서는 최소한 1억이상의 인구가 있어야 한다.
소비재의 채산성이 가지는 한계 때문이다.
그래서 인구 5천만인 우리는 처음부터 ‘수출’ 로 먹고사는 나라가 됐고 이 패턴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다.
수출은 곧 무역이고 모든 거래는 우리끼리가 아닌 다른 나라와 해야한다.
그 거래에서 사용되는 세계공통어가 바로 ‘영어’ 다.
지금처럼 약한 영어로는 세계시장을 파고들기도 어렵다.
영어가 약하다는것, 그건 그냥 단점이 아니라 죽고사는 문제와 연계돼 있다.
그만큼 ‘국제어의 소통’ 은 절대적인 요구다.
영어의 공용화는 할것인가 말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시작하느냐의 문제다.
이미 우리는 한참 뒤지고 있다.
원칙에서 서구문명은 유대-그리스도교의 정신이 그 핵심이다.
‘Septuaginta'
보통 ‘70인역성서’ 라고 부르는 책이 그것이다.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역된 이 성경의 원전은 ‘히브리어 구양성서’ 다.
‘70인역성서’ 는 히브리어 성경의 그리스어 번역이다.
이미 그때의 세계는 그리스어가 국제어가 되어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지 않으면 죽은책이 될수도 있었다.
말하자면 시대적인, 현실적인 요구에 의해 히브리어성경은 그리스어 성경으로 번역
될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사건은,
유대인인 예수의 가르치심과 그에대한 기록이 히브리어가 아니라 그리스어로
기록된 사실이다.
‘신약성서’ 는 처음부터 히브리어가 아니라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다.
예수 자신은 그리스어를 쓰지않았다.
그분께서는 고전히브리어의 하나인 ‘아람어’ 를 주로 쓰셨으며 지금은 시리아의
일부지역에 남아있는 언어다.
구약성경이 그리스어로 번역되고,
신약성경이 처음부터 그리스어로 기록 되었다는것은 그게 그때의 ‘국제어’ 였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급속한 전파와 확장은 그리스어에 의한 혜택도 컸다고 봐야한다.
그때의 세계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 전부였다.
따라서 서양문화사에서 지중해를 중심하는 국가간의 접촉은 모두가 그리스어를
매개로 했다.
그리스어 알파벳은, 지금은 영어의 알파벳 이기도 하지만 본래는 페니키아의
상인들이 장사에 필요한 기록 때문에 만든것이며 이집트의 상형문자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세계가 비록 서로다른 언어를 쓰면서도 접촉하는 일은 고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지중해가 중심이 되었던 헬레니즘의 세계에서 그리스어는 모두의 소통을 가능하게한
국제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케도니아의 ‘힘’ 에 의한 통일이기도 했다.
그리스어는 신화와 신학, 그리고 철학의 언어이기도 하다.
다음의 사건이 '불가타-Vulgata' 다.
불가타는 ‘라틴어로 번역된 성서’ 다.
382년 교황 ‘다마소’ 의 명으로 히에로니무스가 편찬했으며,
신약은 386년,
구약까지 포함해서 완성한것이 404년이다.
불가타는 이미 그리스어로 번역된 ‘70인역성서’ 를 텍스트로 했으며 신약은
그리스어로 된 텍스트를 사용했다.
라틴어는 인도유럽어족의 이탈리아파에 속하는 로마인들의 언어다.
기원전 1세기이후 지중해 세계의 공용어, 공통어로서 넓게 쓰여졌으며 우수한
문학을 남기기도 했다.
특히 라틴어는 법(法)의 언어이기도 하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루투갈, 루마니아어의 근원이 된 언어이며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의 언어이기도 하다.
지금도 영국의 유명한 ‘이튼스쿨’ 에서는 영왕이 이 학교에 왕림할 때
생도대장이 교문밖에서 기다리다 여왕이 도착하면 정중한 라틴어 환영사를 하는
전통이 살아있다.
라틴어는 기원전 3세기경부터 그리스문화권과 접촉하면서 고전라틴어가 형성
되었다.
인류의 문화사는 이로서 두 번의 ‘국제어’ 를 가진셈인데,
그리스어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대왕의 정복과 함께 광대한 지역이 헬레니즘
문화권에 편입되면서 ‘세계어’ 가 되었다.
알렉산더대왕은 전장에 나가면서도 ‘호메로스’ 를 지참했다고 한다.
이는 스승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이 컸기때문으로 해석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강도높게 그리스 문학과 철학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다고 한다.
그의 스승은 플라톤 이었으며 그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이기도 하다.
헬레니즘은 무력만이 아니라 문화와 철학으로 지중해세계를 지배했으며 피 정복지의
백성들은 스스로 그리스어를 배워 썼다고 한다.
유대인인 사도바울의 유창한 그리스어 구사는 놀라울 정도다.
성경이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번역되었다는 것은 지중해 세계의 지배세력이
마케도니아에서 로마로 교체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팍스 로마나 -PAX ROMANA 는 실질적인 세력이었으며 1천년을 이어온 로마의
힘은 세계를 라틴어로 통일했다.
두 번째의 국제어가 등장한 것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모든 학문적 교류는 라틴어 하나로 모두 해결되던 시기였다.
1604년,
라틴어 성경은 드디어 ‘영어성경’ 으로 번역된다.
영국왕 제임스1세의 지원으로 47명의 학자와 성직자에 의해 1607년부터
3년에 걸쳐 번역되어 1611년에 출판되었다.
‘King James Version-흠정역(欽定譯) 성경’ 이 그것이다.
성경이 영어로 번역 되었다는 것은 이제 세계가 ‘영어’ 의 세상이 됐다는 뜻이다.
‘영어산문의 숭고한 금자탑’ 이라는 찬사를 받는 이 흠정역, 킹 제임스 버전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영어를 공부한 모든 사람들에게 실로
오래동안 사랑을 받아온 ‘정신적 지주’ 였다.
지금은 여러나라에서 학자들에 의해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원전에서 직접 자기의
모국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일이 일반적 이지만,
Septuaginta, Vulgata, 그리고 King James Version 은 인류문화사에서
‘국제어’ 의 등장과 위치를 시대적으로 대표하는 소중한 인류의 자산임은 더
말할것도 없다.
1944년 7월,
미국 뉴헴프셔주 브레튼우주에서는 44개국 대표가 모여 2차대전 이후 자유로운
세계무역체계를 만들기위해 ‘브레튼우주협정’ 을 체결했다.
국제통화문제, 국제결산은행의 청산문제, 적산의 처리등을 결정했으며
IMF 와 세계은행 의 설립을 결정했다.
그후 1947년 10월 제네바에서,
‘관세와 무역에관한 일반협정-GATT’ 가 체결되었으며 지금의 WTO-세계무역기구
가 그 후신이다.
2차대전 이후 세계는 본격적으로 국가간 상업거래가 활발해 졌으며 브레튼우주
협정과 GATT 는 ‘무역’ 의 기준과 규칙을 정한 약속이었다.
국가간의 교역인 ‘무역’에서 수출입계약서나 대금지불방법, 그 청산은행등을 위한
일체의 서류작성은 어느 일방의 언어가 아닌 제3국 언어를 쓰는것이 관행이며
지금은 그것이 ‘영어’ 다.
무역뿐 아니라 국가간의 ‘국제적인 협정, 협약’ 도 그 공용어는 거의가 ‘영어’ 다.
말하자면 지중해 시대의 그리스어와 라티어가 국제어 였다면 지금의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에서 국제어는 ‘영어’ 인 것이다.
PAX AMERICANA 의 시대가 그것이다.
내수시장이 제 구실을 하기위해서는 최소한 1억이상의 인구가 있어야 한다.
소비재의 채산성이 가지는 한계 때문이다.
그래서 인구 5천만인 우리는 처음부터 ‘수출’ 로 먹고사는 나라가 됐고 이 패턴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다.
수출은 곧 무역이고 모든 거래는 우리끼리가 아닌 다른 나라와 해야한다.
그 거래에서 사용되는 세계공통어가 바로 ‘영어’ 다.
시장에서는 모두가 함께쓰는 ‘말’ 을 잘해야 장사도 잘 할수있다.
아주 간단한 이치가 그것이다.
지금은 물건을 만들어서 내다 팔기만 하는 시대가 아니다.
다른나라 물건도 사 와야 하며 특히 외국인 투자를 받아들여 산업의 규모를
키우고 이문을 나눠먹는 시대다.
그 누가 국제공용어인 영어소통이 어려운 나라에 투자하겠는가.
지금처럼 약한 영어로는 세계시장을 파고들기도 어렵다.
영어가 약하다는것, 그건 그냥 단점이 아니라 죽고사는 문제와 연계돼 있다.
그만큼 ‘국제어의 소통’ 은 절대적인 요구다.
학교에서 10년이상 영어교육을 받고,
사교육비의 40%가 영어교육에 쓰이고 있는데도 왜 우리의 영어는 약한것일까.
영어를 일상적으로 쓸수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말은 생물과 같은것이어서 쓰면 쓸수록 늘고,
쓰지않으면 죽어버리고 만다.
아무리 입시용의 암기,독해 위주의 영어공부라 해도 계속해서 쓸수있는 공간이
있다면 살아날수가 있는것이다.
영어의 공용화는 할것인가 말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시작하느냐의 문제다.
이미 우리는 한참 뒤지고 있다.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들을 여행해 보면 영어 때문에 모국어를 못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것을 알게된다.
영어공용화의 구차한 반대는 결국 우물안 ‘폐쇄성’에서 오는 고질병일 뿐이다.
그리스어 시대가 있었고,
라틴어의 세계가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영어의 시대인 것이다.
인터넷 검색사이트의 80% 이상이 영어다.
우리나라 메니아중 자유롭게 이 사이트들에 접속할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제 영어공용화는 더 미룰수가 없는 다급한 숙제다.
이미 늦었기 때문에 서둘러 실시해야 한다.
그 방법에서는 유연해야 하고, 점진적일수 있어도 공용화 자체는 결코 미루어서는
안된다.
언제나 막차를 놓치면 멀고먼 길을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른아침의 런던,
나는 체크아웃하기 위해 호텔 로비로 내려갔다.
그때 사색이 되어 내게 달려오는 한국인 아주머니가 있었다.
페키지 여행을 따라왔는데 일행이 자기만 남겨두고 떠났다는 것이다.
이 아주머니가 시간을 지키지 않아생긴, 드문 불상사였다.
영국런던의 한 복판에서,
아는 사람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전혀 모르는 이
아주머니는 글자그대로 ‘죽은목숨’ 이었다.
나는 프런트데스크에 부탁, 전화로 가이드를 불렀으며 버스는 다시 돌아와
아주머니를 태우고 떠났다.
‘말’ 을 못하면 이렇게 된다.
그때 그 아주머니에게 필요한 말은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 다.
영어만, 아주 기초적인 영어만 할수 있었어도 그렇게 사색이 되지는 않았을것이다.
아마도 그 아주머니는 그 지옥같았던 순간을 평생잊지 못할것이다.
나역시 그 아주머니가 내게 달려오면서 한 말을 평생잊지 못한다.
‘아이구, 이제 살았네.’(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