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일 복음의 가장 중요한 부분만 한번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나 궁금한 점이 있지 않습니까? 직업이 어부인 베드로는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그날따라 고기가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배를 깊은 곳으로 대라고 하시면서 그 장소에 그물을 내려놓아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하나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결과만 놓고 봤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게 됩니다. 순종을 하긴 하는데 그처럼 하기 전에 예수님께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고 나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따르겠다고 합니다. 왜 이 말씀을 했을까 하는 묵상입니다. 그냥 “네”하고 어차피 말씀을 따르려고 하는 의향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만 하고 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과연 베드로는 이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 내심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베드로는 헛짓을 할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보통의 경우 그런 상황이라면 그 말씀을 따르기엔 조금은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근데 그런 상황에서 말씀에 따르긴 따랐습니다. 여기서 상황적으로 봐서는 확률적으로 반반이 될 것입니다. 일단 고기가 많이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잡힐 수도 있을 수 있고 아니면 베드로처럼 허탕을 칠 수도 있을 수 있습니다. 분명 베드로는 허탕을 칠 거라는 생각에 좀 더 무게중심을 잡고 있었을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 베드로로부터 배워야 할 게 있습니다. 결과는 어찌 될지 정확하게는 모를 상황이지만 인간적인 자신의 생각을 접었다는 것입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렇게 하기 힘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평생 고기만 잡은 어부이고 또 물길 같은 것에 대한 정보나 경험치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실제 현대 학자들이 연구를 해봐도 깊은 곳에는 물고기가 그 지형에서는 지형적으로도 고기가 많이 있을 생태환경이 아니라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합니다. 이건 2000년 전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차치하고서 생각을 해보면 그렇습니다.
근데 결과는 베드로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입니다. 근데 여기서 또 하나의 중요한 반전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입에서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말이 나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고백과 함께 자신에게서 떠나달라고 요청합니다.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냥 단순히 놀라워하면서도 “고맙습니다”라는 말씀이 선행되어야 하는 게 보편적인 상황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베드로는 무엇 때문에 그 상황에서 그런 말을 했는가 하는 이유를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물론 정확한 답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저 묵상을 해보는 것뿐입니다.
이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점을 기준으로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전에 베드로가 봤던 예수님은 그저 자신보다는 좀 더 학식적으로 많이 알고 있는 스승 정도의 인간적인 스승의 수준과 같은 인성만을 봤다고 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후 일어난 결과를 본 후 예수님의 모습은 인성을 가진 분이 아니고 신성을 가진 분이라고 생각했을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왜 그렇게 추론할 수 있는가 하면 방금 전에 언급한 이야기에서 베드로는 예수님보다는 아마도 고기 잡는 부분에서는 좀 더 그래도 많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그 말씀은 자기 기준에 봤을 때는 이치에 맞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적인 판단이 앞섰을 겁니다. 그랬던 그 상황이 완전히 뒤집힌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그건 예수님의 눈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다른 눈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 비로소 베드로는 예수님의 신성을 봤다고 하는 게 합리적인 설명이 될 것입니다. 신성을 봤기 때문에 자신이 죄인이라고 하는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신성을 봤다고 죄인이라고 하는 고백은 어떤 설득력을 가져다주는 것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위대한 고백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베드로의 그 고백 속에는 이런 의미의 고백도 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저 신 앞에서는 그 어떤 사람도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고백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만큼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는 고백과도 같은 것입니다. 사람 앞에서는 죄가 있다고 해도 도토리 키재기처럼 별반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과 같은 존재 앞에서는 이와는 비교를 할 수도 없을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연출된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 사도의 앞날을 예언하는 운명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을 말입니다. 앞으로 인류 구원역사의 중요한 인물이 될 거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묵상을 해본다면 왜 그렇다면 이 사건이 연출된 후에 그와 같은 말씀을 하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속에 숨어 있는 뜻이 무엇일까 하는 묵상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손안에 잡혀들어가야 합니다. 베드로는 구원을 이끌어주는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베드로 사도를 일 대로 해서 오늘날까지 사도좌가 계속 이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손 안으로 들어가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하느님 앞에는 죄인임을 시인하는 겸손한 마음이 앞서야 우리도 베드로의 후계자로 계승된 교회라는 구원의 방주 속으로 들어갈 수가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