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봉 정공 묘갈명(參奉鄭公墓碣銘)
공은 휘가 찬헌(纘憲), 자가 백도(伯度)이니 포은(圃隱 정몽주) 선생의 11대손이다. 증조 준(儁)은 전첨을 지냈고, 조부 운한(雲翰)은 군수를 지냈으며, 부친 귀징(龜徵)은 종사랑이다. 모친 영산 신씨(靈山辛氏)는 충의위 응종(應宗)의 딸이다.
신부인은 어버이가 늙고 형제가 없어 시집간 뒤에도 집으로 돌아가 봉양하였다. 공은 스무 살에 부친을 잃고 집안이 영락하여 모친과 외조부모를 모셨는데, 누이 하나와 아우 넷은 모두 어렸다. 공은 몸소 농사지어 끼니를 마련하고, 또 양육하고 성취시켰으며 때를 놓치지 않고 혼인시켰다. 외조부모의 상을 당하자 상을 치르는 데 필요한 도구를 마련하여 조금도 후회가 없도록 하였다. 막내 누이는 마음의 병을 앓았는데 십수 년 동안 약물로 간호하다가 머리와 수염이 하얗게 세었다.
공은 외가에서 나고 자라 항상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만년에 황려(黃驪 여주)에서 용인(龍仁)으로 돌아와 형제와 함께 살며 아침저녁으로 즐거워하였다. 당시 신 부인은 여전히 무탈하였는데, 공은 색동옷을 입고 온화한 얼굴로 마음을 기쁘게 해 드렸다.
상을 당하자 자기 힘으로 예를 다하였다. 충의공이 유언으로 공에게 제사를 지내게 하였는데, 공은 친족이 아닌데 제사 지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여겨 조정에 상언하여 종인(宗人)을 골라 후사로 삼았다. 전답과 노비는 모두 그에게 주고 자기는 아무 것도 갖지 않았다.
경진년(庚辰年,1700, 숙종 26) 순릉 참봉(順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곧 작은 일에 연좌되어 유배되었다가 오래지 않아 풀려나 돌아왔다.
동시에 벌을 받은 자들은 차례로 서용되었으나 공은 죽을 때까지 홀로 곤궁히 살며 분수를 지켰다. 나이 68세 되던 기해년(己亥年,1719) 2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묘소는 포은의 묘소에서 수백 보 떨어진 곳에 있다. 배위는 수원 최씨(水原崔氏)로 홍질(弘耋)의 딸이다. 1남 1녀를 두었으니 아들은 진(鎭)이고 딸은 사인 윤광태(尹光台)에게 시집갔다. 계배는 원주(原州) 이면(李葂)의 딸로 공의 묘소에 부장하였다.
5녀를 낳았는데 참판 조영복(趙榮福), 진사 이태기(李泰基), 사인 이영석(李永錫), 관찰사 윤경룡(尹敬龍), 사인 유언태(兪彥泰)가 사위이다. 진의 아들은 관제(觀濟), 흥제(興濟), 겸제(謙濟), 건제(健濟), 순제(順濟)이다. 사위 윤광태의 아들은 목(睦), 숙(塾), 채(埰)이며 딸들은 사인 홍옥(洪沃)과 도사 이여신(李礪臣)의 아내가 되었다.
사위 조영복의 아들은 정언을 지낸 중회(重晦)와 중뢰(重賚)이며 딸은 진사 이최중(李最中)에게 시집갔다. 관찰사 윤경룡의 아들은 태국(泰國)과 사국(師國)이며 나머지는 모두 어리다. 공은 자질이 순후하고 질박하여 속은 너그러웠으나 겉은 엄격하여 한번 보면 덕 있는 어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평소 술을 좋아하였으나 온화하고 공경한 태도를 잃지 않았으며, 선을 즐기고 의를 좋아하는 마음은 천성에서 나왔다. 곤궁한 친구가 있으면 옷을 벗어주고 먹던 음식을 건네주면서도 어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중제(仲弟) 찬조(纘祖)는 경학과 행실이 있어 형제간에 서로 지기가 되었다.
한번은 종인과 두루 의논하여 포은의 묘소 아래 재실을 짓고 친족들과 계를 결성하여 1년에 한 번 조묘(祧墓)에 제사 지냈다. 또 때때로 화수회(花樹會)를 열었다고 한다. 나는 주자(朱子)의 글을 읽다가 왕상서(汪尙書)에게 외가의 일을 처리하는 데 대해 논한 내용을 보고 의리가 정당하다고 여겼는데, 후세에 그 뜻을 터득한 사람이 드물다.
공은 의심없이 과감히 결행하였으니, 이 한 가지 일만으로도 한 시대를 격려할 만하다. 공의 집안에서의 행실은 쓸 만한 것이 많지만 나머지는 모두 생략한다. 진이 명을 청하기에 다음과 같이 명을 짓는다.
문수산과 / 文秀之山
모현촌이여 / 慕賢之村
살아서 거주하고 죽어서 장사 지내니 / 生居死葬
오직 정씨의 집안이라네 / 維鄭氏門
훌륭한 그대의 선조 / 皇皇爾祖
오랜 세월 지나도 더욱 높네 / 百代彌尊
그대는 그대의 몸을 삼가 / 爾愼爾身
구천에서 따르리라 / 以從九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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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脚註]
[주01] 참봉 정공 묘갈 :
이 글은 정찬헌(鄭纘憲)의 묘갈명이다. 정찬헌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백도(伯度)이다. 1652년(효종3) 태어나 1719년(숙종
45) 2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주02] 왕상서(汪尙書)에게 …… 내용 :
《회암집(晦菴集)》권30〈답왕상서(答汪尚書)〉에 직접 외조의 제사를 지낼 것이 아니라 후사를 세우고 도우라는 내용이 있다.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 최예심 장유승 권진옥 이승용 (공역) |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