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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8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송년주일 설교
제목 : <12월 설교 시리즈 – ‘제사(Sacrifice)’>4. 속건제(guilt offering)
본문 : 레위기 5장 15절(14~19절)
누구든지 주에게 거룩한 제물을 바치는데, 어느 하나라도 성실하지 못하여, 실수로 죄를 저지르면, 그는, 주에게 바칠 속건제물로, 가축 떼에서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를 가져 와야 한다. 성소의 세겔 표준을 따르면, 속건제물의 값이 은 몇 세겔이 되는지는, 네가 정하여 주어라. <새번역>
번제, 속죄제, 화목제로 이어지고 있는 12월 설교 시리즈 제사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는 바로, '속건제'입니다. 여러 장에 걸쳐 중복되는 내용과 다양한 방법으로 인하여 속죄제와 비슷해 헷갈리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한 이 속건제는 아주 간단하게 표현하면 '죄의 빚을 갚는 제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속건제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나 사람에게 가시적인 손해나 피해를 발생시킨 죄를 해결하는 제사로서, 재미있게도 죄를 빚의 개념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빚을 지게 되면 반드시 갚아야 하듯이, 우리가 죄를 범하게 되면 그 순간 하나님께 빚을 지게 된다는 개념을 부과함으로 속건제를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에게 진 빚을 갚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만 죄를 고하고 용서받는 속죄제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 이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속건제를 드릴 죄에 해당하는 내용을 레위기 5~6장은 3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첫째, 성물에 대하여 부지중에 범한 죄
둘째, 계명 중 하나를 부지중에 범한 죄
셋째, 이웃에게 범한 죄
첫째 성물에 대하여 부지중에 범한 죄를 예로 들어본다면 만약 어떤 사람이 성전에 있는 성물을 가볍게 생각하고 떨어뜨려 깨지거나 파손되었다고 하면 그는 하나님께 자신이 성물에 대하여 부지 중에 범한 스스로의 죄를 위하여 숫양 한 마리로 속건제를 드리고 동시에 손해를 끼친 자, 그 성물을 관리하는 자에게도 반드시 원금에다가 1/5을 더한 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뿐만 아니라 그 성물을 관리하고 담당하는 이에게까지 피해를 끼쳤으니 응당 배상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죄제를 또 다른 이름으로 배상제(Reparation Offering)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속건제는 특별히 사람에게 실수로 범죄 하였을 때, 실수였다고 하면서 잘 몰랐다고 하면서, 그 사람에게는 아무런 사과도 용서도 구하지 않고, 단순히 하나님에게 회개를 하는 것만으로 결코 죄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피해를 입은 사람과도 문제를 해결해야 함을 보여주는 제사인 것입니다. 원금은 당연히 배상해야 하는 것이고, 오분의 일을 더해야 하는 이유는 나의 잘못을 인하여 받게 된 피해자의 마음의 고통까지 보상해야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속건제 정신은 단순한 벌금의 개념이 아닌 실수였다고 하더라도, 잘 모르게 했던 행동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자신의 죄를 깨달은 자가 바치는 속죄의 마음이 담긴 배상금이라는 것에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실수로라도 아니면 잘 모르고서라도 죄를 짓지 않으려는 단호한 신앙적 자세를 가지게 해 주고, 공동체에서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게 하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보여주는 제사이기도 하였습니다. 결코 입으로만 회개하는 것이 아닌 물질적 배상을 실천함으로 죄에 대한 경각심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속건제를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짜 회개가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학자 고든 웬함은 자신의 책 <레위기>에서 "구원의 길은 예배를 통해서, 그리고 우리가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에게 배상하는 것을 통해서 온다."는 속건제 정신의 중요성을 논하였고, 랍비이며 레위기의 대권위자인 제이콥 밀그롬도 자신의 저서 <레위기>에서 "속건제는 회개에 대한 성경적 기원으로 민수기 5장 5-10절 이 직접적인 병행 구절이다."고 한 것은 진짜 회개가 무엇인지를 말해 주고 있는 속건제 정신을 실천하지 않는 현대 교회에 '신학적 반성'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소리로 들으며 충분히 묵상해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속건제 봉헌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은 당연히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과 그 것만큼 중요한 이웃 관계의 회복이며, 참교회가 되고자 하고, 참으로 성전답게 살아가려고 하는 이들에게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고 하는 큰 계명의 틀을 추구하게 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배우려 하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큰 유익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던지는 힘 있는 선포로 속건제 봉헌은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의 산상설교에서 팔복으로 '피스메이커'가 되어야 할 사명에 분명한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 <마태복음 5장 9절, 새번역>
어디를 가든 이 말씀을 실천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에게 속건제사는 아주 중요한 과정과 교육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속건제에 대해서 잘 보여주고 있는 신약의 3가지 이야기를 통해 2025년 우리의 삶에 속건제의 깊은 의미를 적용해 보고자 합니다.
첫번째 이야기, 마태복음 5장 23~24절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 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 <새번역>
이 구절이야말로 공동체를 위한 속건제의 정신이 담긴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하여 3가지를 묵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 제단에 재물을 드리는 것보다 형제와 자매와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형제나 자매가 나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마음과 상황을 무시한 채, 제물을 드리고자 한다면 그 제물을 하나님은 받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분명 예배를 드리는 것, 그 이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반드시 관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면 먼저 화해가 필요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고, 용서를 해 주어야 하고 화평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가장 먼저 우리 삶에서 관계에 대한 문제를 돌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인처럼 왜 나의 제물을 받지 않냐고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나의 삶을 돌아보면서, 먼저 해야 할 일을 하고 돌아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많은 이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만 해결되면 사람과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묻어둠의 저주’를 추구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구약과 신약을 이어오는 그 ‘묻어둠의 저주’는 직접 용서와 화해와 화평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결코 풀리지 않는 재앙과도 같은 숙제였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이웃도, 공동체도 하나님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 말은 언제나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이신 주님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사랑하여라.'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마가복음 12장 29~31절, 새번역>
성경에서 말하는 흠 없는 경건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깨달아 이렇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고난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며, 자기를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 새번역>
혹여나 오늘도 우리 마음속에 어떤 형제나 자매가 나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혹여나 그 누군가가 오늘 아침에 내 가족은 아니었습니까? 그렇다면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일을 준비하는 안식의 날에 이 속건제사가 우리에게 늘 필요한 것입니다.
둘째, 진짜 제물을 드리는 것은, 진정한 예배는,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삶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돈이나 제물에 환장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 드릴 진짜 예배는 삶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느냐에 대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 <호세아 6장 6절, 새번역>
셋째,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기다려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얼마나 많은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를 계수하는 예배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얼마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예배를 드리기까지 우리를 기다리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화해와 용서와 화평을 이루고 돌아와 다시 제물을 드릴 날을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깨달아, 하나님의 아버지가 원하시는 예배를 드릴 그 날을 하나님은 오늘도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인내로서 우리의 예배를 기다리고 계신다면, 우리는 실패하고 쓰러지고, 어렵고 막막하더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예배를 드리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 누가복음 19장 1~10절
예수께서 여리고에 들어가 지나가고 계셨다.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그는 세관장이고, 부자였다. 삭개오는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려고 애썼으나, 무리에게 가려서, 예수를 볼 수 없었다. 그가 키가 작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보려고 앞서 달려가서, 뽕나무에 올라갔다. 예수께서 거기를 지나가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러서 쳐다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 그러자 삭개오는 얼른 내려와서, 기뻐하면서 예수를 모셔 들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서, 모두 수군거리며 말하였다. "그가 죄인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갔다." 삭개오가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새번역>
종교개혁가 마틴루터는 참 성도의 변화를 향한 3가지 회심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머리의 회심, 두 번째는 정신의 회심, 세 번째는 돈지갑의 회심이다"
바로 이 회심을 가장 잘 보여준 인물이 있다면 ‘삭개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삭개오는 그냥 자신의 집에 거하시겠다고 하시는 예수님께 집만 내어 드리면 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자신의 집 뿐만 아니라 마음의 집도, 그 중심도 내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드리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삭개오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세리장으로서 저지른 잘못이 있다면(아마도 직업 때문에 손가락질을 받는 것으로 인하여 큰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적으로는 그렇게까지 잘못이 있진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 부분부터 해결하려고 하는 마음을 먼저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찾아오신 것에 대한 감사, 그리고 그 예수님께 나의 마음을 드리려고 하는 결단, 아마도 자신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돈'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지 않고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본인 역시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 이 삭개오에 대한 이야기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속건제의 의미를 깊게 느끼게 해 주는 이야기냐고 물으신다면 '물질 만능주의'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삭개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으기에 급급하고, 채우기에 급급합니다. 자신의 것만을 돌아보느라고 다른 사람의 고통은 생각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눈물, 아픔을 돌아보기는커녕 다른 사람의 무능력을 질책합니다. 우리가 교회 재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때 모두가 공감한 부분이 있습니다. 구제비로 사용되어 져야 하고, 흘려보내야 하고, 누군가를 살리기 위하여 우리의 재정은 사용 되어 져야 합니다. 반드시 그래야 교회입니다. 진짜 교회는 교회다운 일을 해야 합니다.
교회의 층수와 평수가 높아지고 넓어져 갈수록 하나님의 사랑은 점점 줄어져 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배부를수록 세상은 굶주리는 것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모셔 드릴 것이면, 예수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내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드리고 싶다면, 그런 그리스도인이라면 먼저 삭개오와 같이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드디어 나눌 마음, 기꺼이 갚을 마음, 부자가 된 것에 대한 빚진 마음으로 베푸는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부자가 아니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흘려보내야 합니다. 그게 가장 두려운 돈이라고 할지라도, 아니 돈이기에! 하나님을 믿고, 그것을 통하여 오늘도 흘려보내고, 베풀어야 하고,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마태복음 6장 24절, 새번역>
세번째 이야기, 마태복음 25장 34~40절
그 때에 임금은 자기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어 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할 것이다. 그 때에 의인들은 그에게 대답하기를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리고,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언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갔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임금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할 것이다. <새번역>
마지막으로 속건제는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에게 한 것이 하나님께 한 것이라는 예수님의 비유를 실천하기 위한 마음의 기초라는 것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만 아니라, 바로 그 한 사람이 하나님이라는 마음으로, 나 역시도 하나님만큼이나 이웃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어떻게 소중하게 여기는 것입니까? 바로 그 이웃을 하나님처럼, 예수님처럼, 그리고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존중이 있지 않으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속건제였기 때문입니다. 2007년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이었던 영화 ‘밀양’에서 모두를 힘들게 만들었던 한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범이 교도소에서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고, 마음이 평온을 얻었다고 전도연에게 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그 살인범이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용서의 완성은 자신이 죽인 아들의 어머니로부터의 용서 후여야만 했습니다. 진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라면 끝까지 그 용서를 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기적인 용서, 반쪽짜리 용서, 면피용 용서가 아닌 진짜 모두가 인정하는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그 어머니에게도, 살인범에게도, 모두에게도 진짜 평온이 임하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교회가, 그리스도인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있습니다. 사람을 귀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위하여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삶을 마땅히 병행하여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무도 사랑하시는 그 한 영혼을 위해 우리도 같이 사랑에 동참하여 섬기며 존중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동역자 여러분, 예배자 여러분! 하나님은 결국 12월 설교 시리즈 ‘제사’를 통하여 다시 한 번 가장 큰 계명에 대해서 상기시켜 주고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예배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나서 이웃을 살리는 교회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그렇게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가 되어 이제 일어나 빛을 발하는 2026년으로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다시 예배로부터 시작합시다. 그리고 삶에서 그 예배를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이어갑시다. 그래서 2026년에는 더 많은 영혼들에게 축복과 평안과 사랑과 생명의 통로가 되시길 마음 다해 축복합니다!
결단 찬양 – 일어나 빛을 발하라(2026년 교회 표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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