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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구분 |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 문법 |
커뮤니케이션 특성 |
커뮤니케이션 감각비율 |
집단의 특성 |
구체적 설명 |
문자이전 시대 |
구어형식 |
복수감각형 |
균형적 |
부족화 |
언어에만 의존하던 구두커뮤니케이션 시대 |
문자사용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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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단일형 |
다소 균형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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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소문자(알파벳)와 표음문자(한자)를 언어와 함께 사용하던 시대 |
활자 시대 |
인쇄형식 |
시각단일형 |
불균형적 |
탈부족화 |
인쇄기 발명에 따라 개인주의가 발달하는 시대 |
전자미디어 시대 |
전자형식 |
복수감각형 |
다소 균형적 |
재부족화 |
전보로부터 시작된 전자미디어가 주요 커뮤니케이션으로 등장한 신부족 시대 |
출처: 김정탁, 1998, p. 165.
오늘날을 일컬어 인터넷 시대, 멀티미디어 시대, 네트워크 시대, 디지털 시대 등과 같은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부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렇게 화려한 명칭과 함께 등장한 최첨단 미디어일수록 더욱 인간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을 추구한다는 사실이다. 이동전화도 사람의 분신처럼 작용하고 있으며, 인터넷 속의 아바타도 말 그대로 사람의 분신이다. 사람이 커뮤니케이션하는지 기계가 커뮤니케이션하는지 경계가 불분명해지면서, 사람과 기계가 하나가 되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미 공유를 위해 정보가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의 경우, 일상 생활로부터의 탈출구, 표현자유, 정보사냥, 관계유지, 관계형성 뿐만 아니라, 실제 인간 사회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거의 모든 활동들이 유사하게 재연되는 효과를 보이고 있어, 인터넷은 ‘인간 사회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유사하게 사람 바로 옆에 밀착되어 있으면서 소형 컴퓨터로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연결시켜 주는 화상 이동전화는 바로 ‘인간 자신의 확장’이다. 이제 인류는 미디어를 신체에 완전히 부착시킬 수 있는 방법까지 상상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사람과 미디어, 인간과 기계가 한 몸이 되어 작용할 것이고, 인간의 경험은 미디어와 함께 더욱 확산되어, 보다 멀리 보고 보다 넓게 들을 수 있게 된다.
<표 2>는 매스 커뮤니케이션, 텔레커뮤니케이션, 및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의 정보 전송 형태를 구분해 놓은 것이다. 오늘날의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히 일방향적․수동적인 일 대 다수의 매스 커뮤니케이션만으로 이해할 수도 없고, 쌍방향적․능동적인 일 대 일의 텔레커뮤니케이션만으로 이해할 수도 없다. 쌍방향적․능동적이면서 동시에 일 대 일, 일 대 다수, 다수 대 일, 및 다수 대 다수의 커뮤니케이션이 모두 가능한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으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이 네트워크가 사람만으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도 아니고 미디어만으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도 아니며, 사람과 미디어가 하나의 단위로서 또 다른 미디어의 도움을 받아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사람의 능동성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인간-미디어 연계’ 자체를 단위로 하는 ‘인간 중심’의 열린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이룬다는 점이다(<그림 2> 참조).
<표 2> 정보의 전송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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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 커뮤니케이션 |
텔레커뮤니케이션 |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 | |
커뮤니케이션 특성 |
Broadcast |
Narrowcast |
one-to-one |
Broadcatch |
대표적 미디어 |
TV, 라디오 |
케이블TV |
전화 |
전자신문, VOD |
정보이용자 성격 |
불특정 다수 |
특정 계층 |
개인 |
개인 (특정그룹 포함) |
정보이용자 특성 |
수동적 |
수동적 |
능동적 |
능동적 |
방향성 |
일방향 |
일방향 |
쌍방향 |
쌍방향 |
커뮤니케이션 형태 |
일 대 다수 |
일 대 다수 |
일 대 일 |
일 대 일 일 대 다수 다수 대 일 다수 대 다수 |
커뮤니케이션 내용(프로그램)의 사전제작 |
○ |
○ |
× |
○ |
스케쥴 |
○ |
○ |
× |
× |
출처: 최영, 1998, p. 50.
(2) 미디어의 발달 과정과 인간의 선택
미디어의 발달 과정을 단순화시켜 나타내면 <그림 1>과 같이 나타난다(최환진․정보통, 1999, p. 57). 이 그림에서 특징적인 사실은 최근 미디어일수록 보급률이 더 급격하게 높아진다는 사실, 그리고 최신 미디어가 생긴다고 해서 이전 미디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 미디어부터 뉴미디어까지 함께 ‘공존’하는 상태가 바로 지금의 현실이라는 사실이다. 다만, 하나의 예로서 예전에는 모든 것을 라디오에 의지했다면, 지금은 용도가 분화되어 라디오와 TV와 인터넷이 모두 쓰이면서 각기 다른 용도로 쓰인다. 라디오가 아직까지 존재하기는 하지만, ‘라디오만을 듣는 용도’로 계속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청각 이외의 다른 감각을 이용하는 일(예: 운전, 책읽기 등)을 하면서 동시에’ 라디오 청취를 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물론 라디오나 오디오로 흘러나오는 음악을 잔잔한 배경으로 들으면서 상대방과 ‘청각을 포함한’ 모든 감각을 이용한 대화를 할 수도 있다. 이 때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메시지가 우리 청각으로 들어와 어떤 의도를 전달하기보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이미지를 형성함으로써 커뮤니케이션의 배경을 구성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 다양한 미디어가 공존하고 있는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서 인간의 적극적인 선택과 상황에 따른 이용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그림 1> 미디어 발달과정: 최근 미디어일수록 보급률이 더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으며, 현재 모든 미디어가 공존하는 상태 (최환진․정보통, 1999, p. 57).
- <그림 1> 여기에 삽입 -
2) 인터넷 속의 교류: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의 확장
대인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서 컴퓨터를 이용하기 시작한 이후 인터넷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지금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꾸준히 연구되어 오고 있는 영역은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computer-mediated communication, CMC) 연구 영역이다(Hiltz & Turoff, 1978 참조). 컴퓨터를 이용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질 때, 초창기에 가장 염려했던 부분이 비언어적 단서의 전달과 정서적 반응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었다.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할 때처럼 풍부한 비언어적 단서가 결여되어 있는 상황에서 충분한 의사소통이 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상당부분 사라졌다. 그 이유는 바로 인간은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창조성과 사고력을 바탕으로 하여 컴퓨터 기호로 나타낼 수 있는 온갖 비언어적 수단들을 동원함으로써 사람들은 자신의 정서적 상태를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한 다양한 모양의 ‘이모티콘(emoticon)’―‘정서(emotion)’와 ‘아이콘(icon)’의 합성어로서, ‘감정표현부호’라고 번역됨―을 만들어 냈다. 이모티콘으로 웃는 모습도 :) :-) ^^ *^^* 등과 같이 다양하게 나타내고, 찡그리는 모습은 :( 와 같이, 우는 모습은 ㅜㅜ 또는 ㅠㅠ와 같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나타낸다(나은영, 2002, 제5장 참조). 이렇게 시작된 이모티콘은 현재 수많은 변형으로 다양한 정서를 나타내는 데 이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사이버 공간 속에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아바타를 만들고 그 표정과 치장까지 창작하여 그야말로 인간 사회를 거의 그대로 재연해 내고 있다. 아바타나 이모티콘과 같은 다양한 자기표현적 수단들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미의 공유’를 도와주는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요소로 자리잡았다. 인간은 단순히 사이버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만을 발명한 것이 아니라, 사이버 상의 의미 공유를 보다 풍부하게―실제 대면 인간커뮤니케이션에 가깝게―실행할 수 있는 수단까지 창조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속의 교류는 이와 같은 대인 간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의 확장으로 이루어진 인간 사회, 즉 커뮤니티(community) 속의 교류가 된 지 오래다. 현실 사회보다 더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이 사이버상에서 가능하다. 다만, 원래 인터넷 미디어의 발달이 ‘다양한 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터 놓을 것이라는 전망과는 조금 반대되는 방향으로 사람들이 인터넷을 이용하는 경향도 보인다. 사실 인터넷 속에서 많은 다양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인터넷 속에서마저 ‘동질적인’ 정보만을 과다 섭취하는 경향이 있다. 스미스와 콜록(Smith & Kollock, 1999)도 “인터넷이 다양한 문화와 이념을 연결시킬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관심과 고민거리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전자적 그룹으로 모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조동기 역, 2001, p. 361). 이처럼 동질적인 사람들끼리만 배타적으로 모여 서로 유사한 생각만을 계속 반복해서 주고받다 보면, ‘집단사고(groupthink)’와 유사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나은영, 2002, 제9장 참조). 예를 들면, 인터넷 자살사이트 같은 것도 ‘자살’에 관해 유사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 유사한 생각들을 주고받다 보면, 자신의 생각이 현실감각을 잃은 채 집단사고에 젖은 극단적인 결정에까지 이르게 된다. 현실 속에서보다 더 다양한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인터넷을 다양한 정보 추구에 이용하지 않고 동질적 정보에의 몰입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사람들이 자기와 유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호감을 느끼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나은영, 2002, 제3장 참조). 좀 더 냉정하게 인터넷 안과 밖에서 항상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생각을 접할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모든 영역에서 문화 차이가 나타나듯이,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에서도 문화차가 나타난다. 그 한 예로서 <표 3>을 보면, 한국과 미국의 온라인 대화명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 수 있다. 일단 한국과 미국에서 공히 자신의 성격적 특징을 대화명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공통점이다. 한국과 미국 대화명의 가장 큰 차이는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 또는 유명인의 이름을 차용하는 비율인데, 이는 단연 한국이 더 높게 나온다. 그만큼 한국인들이 미국인들보다 다른 유명인이나 소설․영화의 주인공과 동일시하며 그들을 통한 대리만족을 얻고자 하는 욕구가 더 크다고 해석할 수 있다.
<표 3> 한국과 미국의 온라인 대화명 비교
미국 |
한국 | |||
범주 |
비율 (%) |
범주 |
비율 (%) |
예 |
자신의 성격적 특징 |
45 |
자신의 특징 관련 |
42.4 |
키큰 나, 터프가이, 예쁜 달님 |
미디어, 기술 등 |
17 |
영화, 소설, 유명인 |
20.4 |
타잔, 알리딘, 공명옵빠 |
동식물 이름 |
16 |
동식물 관련 |
9.9 |
곰, 은빛 늑대, 사과꽃 |
단어나 소리 |
11 |
성 관련 |
9.4 |
까꿍, 껄걸, 쩝 |
본인의 실명 |
8 |
실명의 사용 |
6.8 |
세례명도 사용 |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 유명인의 이름을 차용 |
6 |
미디어, 기술 관련 |
5.8 |
사이버맨, 삐삐걸, 너무 느림 |
성적이거나 선동적 용어 |
4 |
단어, 소리 |
5.2 |
불타는 남자, 키스맨, 정력보이 |
출처: Beckar-Israeli, 1996; 한상진, 1997; 박기순, 1998, pp. 251-252에서 간접인용.
3) 온라인 갈등과 그 해결
(1)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에서의 개인적 갈등과 해결
사람과 사람이 커뮤니케이션하며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도 항상 갈등이 존재하듯이(나은영, 2002, 제7장 참조), 인간 사회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는 인터넷 속에서도 갈등은 있다. 이것을 온라인 갈등(on-line conflicts)이라고 하며, 온라인 갈등을 일으키는 커뮤니케이션 형태의 대표적인 예로 스패밍과 플레이밍이 있다(DeVito, 2000, pp. 205-206). ‘스패밍(spamming)’은 허락없이 보내는 불청객과 같은 메일, 같은 메일을 반복해서 보내는 행위, 또는 같은 메시지를 수많은 게시판에 올리는 경우, 심지어 집단의 초점과 관련이 없는 메시지를 보낼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원하지 않는 상업성 폭탄메일도 여기에 속하며, 이와 같은 스팸메일을 지우는 데 수신자들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부정적 감정을 유발시키고, 이것이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 상의 갈등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뉴스그룹에서 흔히 사용되는 ‘플레이밍(flaming)’은 개인적으로 다른 사용자를 공격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말한다. 플레이밍은 온라인상에서 집단의 모든 사람들이 각자에게 공격을 가하는 플레임 전쟁(flame wars)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것은 분명히 개인과 집단의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비생산적인 행위이다.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과정 중 하나인 신호와 소음의 구분 뿐만 아니라(나은영, 2002, 제1장 참조), 진실된 정보와 허위 정보의 구분, 영양가 있는 핵심정보와 영양가 없는 주변정보의 구분은 고스란히 뉴미디어를 이용하는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정보를 유포하는 사람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 간에 피할 수 없는 전쟁이 소리없이 일어나고 있는 공간이 바로 인터넷 공간이기도 하다. 정보를 유포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전면적인 중요한 정보이든 주변적인 하찮은 정보이든 그 정보의 유포가 매우 중요하겠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사람에 따라 분명히 그 중요성과 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다. 정보를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이익이 상충될 때 특히 갈등 상황으로 번지기가 쉽다.
실제 대면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도 정보의 진실성 및 중요성에 대한 판단과 구분이 중요하며, 타인 지각과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오해와 오지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나은영, 2002, 제3장과 제6장 등 참조). 그러나 인터넷 상에서의 정보 교류는 면대면 상황의 정보 교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전파 속도도 빠르고 규모도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정확성 지각(accuracy perception)의 문제가 인터넷 사회 속의 정보 흐름으로 인한 커뮤니케이션 과정 속에서 더욱 면밀히 연구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 사람이 면대면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오류를 범하는 것은 소폭의 단기적 악영향으로 끝날 지 모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연결망으로 얽혀 있는 인터넷 사회 속에서의 오류는 인류 사회 전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2)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에서의 집단적 갈등과 해결
개인의 전자우편으로 보내지는 스팸메일로 인한 갈등은 대체로 개인적인 수준의 갈등이 많지만 (이 경우에도 스팸메일을 보낸 기관에 피해자들이 단체로 집단적 대응을 보일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게시판에 올라온 글의 내용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때 감정적인 반박글을 올림으로써 일어나는 플레이밍 갈등은 개인 간 갈등으로 그치지 않고 집단 간 갈등으로 번질 확률이 더욱 높다. 대개 이 경우 처음 올라온 의견에 대한 ‘반대 의견파’와 ‘찬성 의견파’로 나뉘어 마치 실제 사회 속의 패싸움이나 ‘집단 간 갈등’과 유사한 양상을 띤다(나은영, 2002, 제10장 참조). 때로는 현실 속에서의 작은 갈등이 온라인상으로 유포됨으로써 증폭되기도 하고, 이런 과정이 일부 집단에 의해 악용되기까지 한다.
온라인 여론형성 과정도 오프라인 여론형성 과정과 상당부분 유사하지만(나은영, 2002, 제9장과 제10장 참조), 특히 소수의 의견이 과대지각될 가능성이 온라인 상황에서 더 커질 수 있다. 그 이유는 상당히 대중미디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온라인상에 떠오른 정보는 이미 한 개인의 정보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동의했을 것이라는 암묵적 가정을 일으키기가 쉽고, 여기에 한 사람이라도 동의하는 글이 더 올라와 있으면 이 가정이 더욱 힘을 받게 된다. 동질적인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커뮤니티의 경우 한 방향으로 더욱 극단적인 의견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크다. 이는 집단극화(group polarization) 과정이 온라인상에서 익명 토론으로 이루어질 때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나은영, 2002, 제10장 참조; Wallace, 1999).
동질적인 사람들끼리는 더욱 더 동질적으로 극단적인 의견 쪽으로 몰리고, 반대되는 사람과는 더욱 틈이 벌어지는 집단극화 현상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집단 간 갈등의 전형적인 결과이다. 인터넷상에서는 특히 현실 세계에서 억눌려 있던 욕구가 탈억제(disinhibition)되어, 현실 세계에서 마음껏 공격해 보지 못하여 마음 속으로 쌓였던 부분까지 한꺼번에 분출될 가능성도 높다(Gackenbach, J., 1998). 현실 사회 속에서 개인의 행동보다 군중행동이 더 과격하게 일어나는 이유도 ‘익명성’이라는 방패막이 때문인데, 사이버상의 익명성도 이와 유사한 결과를 초래하여 (책임감의 분산으로 인한) 더욱 통제되지 않는 공격성의 무작위적 확산이 이루어질 수 있다(<예시 1> 참조).
<예시 1> 위험수위에 이른 사이버 훌리건들의 난동
축구경기가 끝난 뒤 일단의 성난 관중들이 길거리에 뛰쳐나와 상대팀 응원단을 집단폭행하고 이를 저지하는 경찰관들에게도 돌팔매질을 하는 모습을 TV에서 가끔 보게 된다. 어떤 경우는 아예 경기장안에서 서로 치고 받고 싸우면서 난장판을 만들기도 한다. 급기야는 진압경찰이 동원되고 미친 듯이 난동을 부리던 몇몇 관중은 경찰관에 의해 질질 끌려 관중석 밖으로 내몰린다. 이 때문에 경기는 한동안 중단되고…. 이렇게 운동장 안팎에서 집단적으로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을 「훌리건」이라고 부른다. 훌리건이라 하면 우리는 유럽관중을 떠올리게 된다. 그 중에서도 영국훌리건들은 국제적으로도 명성이 나있을 만큼 극렬하다. 그래서 유럽 각국은 나라대항 축구경기가 있을 때면 리스트에 올라있는 훌리건들의 경기장 입장은 물론 외국인의 경우 입국자체를 막고 있다. 그런데 사이버공간에서도 현실세계에서처럼 이 같은 훌리건식 난동이 극성을 부리고 있어 걱정이다. 수백명씩 떼를 지어 특정사이트를 마비시키고, 특정인을 비난하거나 매도함으로써「사이버세상의 질서」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현실세계에서는 경찰관이 즉각 출동해 훌리건들을 진압할 수 있지만 가상공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데 고민이 있다. 한 일간지가 최근 사이버 훌리건들의 사이버난동이 매우 심각하다는 내용의 기획기사를 실어 눈길을 끌고 있다. 보도된 일부 내용을 훑어보자. 연세대는 지난 6월말 홈페이지 게시판을 일시적으로 폐쇄했다. 훌리건들이 "모 대학보다 성적이 낮은 학교"라는 등의 비방글을 한꺼번에 수백건이나 올리는 행패를 부렸기 때문이다. 또 동국대는 지난 몇 달간 학교와 특정교수들에 대해 훌리건들이 무차별 공격을 하는 것을 참다못해 오는 20일부터 교내 모든 컴퓨터에 신분증을 꽂아야 게시판접속이 가능하도록 했다. 의사들의 집단폐업으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의사와 약사간의 분쟁과 관련해서도 의사와 약사들이 인터넷게시판이나 PC통신을 통해 집단적으로 서로 비난하거나 폄하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현실공간으로 옮겨놓으면「집단 논쟁」이라기 보다는「집단 패싸움」이라고 해야 옳을 정도이다. 얼마전 경찰관들이 경찰비판기사를 쓴 특정 언론사의 홈페이지에 비난의 글을 집단적으로 올린 것도 같은 유형에 속한다. 올 초에는 중국훌리건들이 난징(南京)대학살사건과 관련해 일본의 과기청과 총무청 등의 홈페이지에 일본정부를 비난하는 글을 집중적으로 쏟아 부어 큰 파문이 일기도 했다.
출처: 이재일, 2000; http://columnist.org/ref/oldissue/2k0816.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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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개인 내 커뮤니케이션에서 시작하여 대인 및 공중 커뮤니케이션에 이르기까지 오지각(misperception)과 갈등에 관련된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원리가 인터넷을 매개로 한 사람들 간의 커뮤니케이션 상황에도 대부분 그 근간으로서 적용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자기 자신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는 이동전화의 이해는 대인 커뮤니케이션의 원리와 커뮤니케이터의 심리를 알지 못하고서는 완전히 이해하기가 어렵고, 인간 사회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는 인터넷의 이해는 인간 사회 속의 집단 내 커뮤니케이션과 집단 간 커뮤니케이션의 원리를 알지 못하고서는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결국 사람과 사람이 의사소통하는 과정, 사람과 사람이 권력 관계와 계약 관계를 유지하는 과정의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미디어를 통해 미디어와 함께 연결망을 형성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다양성의 공존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1) 변화와 다양성의 수용: 열린 커뮤니케이션 체계
일방향적 미디어가 절대적 권위를 지니고 있던 시대에는 권력이 미디어 장악력과 정비례 관계에 있었다. 그 미디어만 장악하면 원하는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다수에게 전달하여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인터넷 시대에도 물론 미디어 장악력은 중요하여, 디지털 디바이드로 인해 인터넷 이용 가능성이 희박한 사람들은 권력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에는 미디어를 소수가 완전히 장악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일부를 장악했다고 해서 이전처럼 쉽게 대중 전체를 지배하기도 어렵다. 인터넷은 본질적으로 동시에 여러 커뮤니케이션 주체를 갖는 다원적인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를 알아야 비로소 인터넷이라는 미디어를 제대로 파악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바, 인터넷의 확산적 성격으로 인해 ‘모든 사람의 마음’까지를 포함하는 인터넷 장악력은 이미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개인 단위의 민주사회에 보다 근접했다고도 볼 수 있다. 다만, 개인 정보의 감시가 중앙집중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을 최소화시키는 수단으로서(Smith & Kollock, 1999),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역할은 필요하다.
이런 사회 속에서는 열린 마음으로 다양성을 수용하는 주체가 폐쇄적인 주체보다 생존경쟁에서 더 ‘적자(the fittest)’가 되어 미래까지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높다. 다양성을 거부하는 개인과 사회는 21세기 이후 점차 도태되어 갈 확률이 높다. 다양한 인간의 빈번한 접촉은 이제 인간의 ‘정상적인’ 그리고 ‘적응적인’ 모습이지 ‘예외’가 아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평적으로 열린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개인과 사회가 적자생존의 원리를 뛰어넘을 수 있다.
다양한 인간과 다양한 미디어의 공존 속에서 뗄 수 없는 ‘관계’ 유지하며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인간 중심의 열린 커뮤니케이션 체계는 탈중심화된 수평성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한다.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 속에서 서로 연결되지 않는 닫힌 루트가 전혀 없이 모든 요소들 간의 쌍방향 관계가 가능하고, 커뮤니케이션을 독점하는 개체가 없어지거나 힘을 잃는 다원적 체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의 종류 중 공통(common)형에 가까운 모델이면서(나은영, 2002, 제8장과 제9장 참조), 동시에 인간과 미디어가 하나의 단위로서 연결되어 있는 <그림 2>와 같은 형태를 띤다.
시공간 압축으로 보다 다양한 정보, 보다 다양한 사람을 보다 빨리 접촉하게 되어 가는 현 상황에서 인간의 ‘선택’은 그만큼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왜냐 하면, 인간의 정보처리 능력에는 한계가 있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산업화를 겪으면서 도시 생활의 과부하(overloading)를 줄이기 위해 사람들로부터 오는 자극을 최소화시키려는 과정에서 소외와 무관심이 등장했듯이,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각종 정보의 홍수 속에서 그 자극을 줄이고자 인간은 선별적으로 통제를 하게 된다. 과도한 정보의 흐름이 존재하는 데이터 스모그 사회에서는 사람들 간의 커뮤니케이션 자체에 상당한 선택성이 부과될 수밖에 없다. 이미 우리는 발신자 표시 전화기 등을 이용하며 사람들 간의 커뮤니케이션 흐름마저 선택적으로 수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수신되는 정보의 다양성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유용한 정보들을 가려내는 것이 중요하다. 신호탐지 이론의 논의에서 언급한 것처럼(나은영, 2002, 제1장 참조), ‘필요없는’ 정보를 받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필요한’ 정보까지 놓쳐버리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2) 인간과 미디어 네트워크 속의 관계 사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은 너무나 유명하며, 아무도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이는 곧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으며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 살아야만 인간으로서의 존재 자체가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항상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과의 연결’을 필요로 한다. 일정하게 한정된 같은 공간에 살든 살지 않든, 타인과의 연결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이며, 이 ‘연결’은 단선적인 연결이 아닌 그물망 형식의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타인과의 연결에 개입하여 보다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도록 도와 주는 것이 미디어이다. 면대면 접촉이 거의 전부였던 원시시대에는 미디어의 영향이 거의 없었겠지만, 오늘날은 이전에 비해 그 비율이 훨씬 줄어든 면대면 접촉 이외의 거의 모든 ‘인간과 인간의 연결’에 미디어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미디어가 연결해 주는 인간은 개인일 수도 있고 집단일 수도 있고 때로는 인류 전체일 수도 있다. 따라서 미디어는 인간의 본질인 인간과 인간의 연결을 가능하게 해 주는, 거의 본질적으로 인간 옆에 있을 수밖에 없는 필수적인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변화하는 가운데 절대로 변화하지 않고 지속되는 것이 본질이라고 볼 때, 인간성의 본질은 바로 ‘다른 사람과의 연결’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과의 연결이 없으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본성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과 양육과 세대전이도 이루어질 수 없다. 이와 같은 불변의 인간 본성이 지속되어 오는 가운데 가장 큰 변화를 겪어 온 것이 연결의 도구, 즉 미디어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을 추구해 왔고, 바로 옆에 존재하는 사람과의 연결을 넘어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의 보다 신속한 연결, 더 나아가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고 존재 여부가 불투명하기까지 한 우주인과의 연결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교통기관을 발달시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의 대면접촉을 위한 시간을 단축시켰고, 통신기관을 발달시켜 마침내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 실시간 대면커뮤니케이션에 가까운 상태까지 이루었다. ‘정보의 흐름을 통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미 공유’가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이라면(나은영, 2002, 제1장 참조), 인간 커뮤니케이션은 미디어의 발달 상태가 원시적이던 때부터 최첨단 뉴미디어 시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지속되어 오고 있고, 모든 인간 생활의 근본을 형성하고 있다.
미래 사회의 모습에서도 서로의 연결을 갈망하는 인간의 본성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다만, 미래에는 ‘인간과 미디어가 밀착’된 상태에서 ‘하나의 단위’를 이루고, 이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네트워크 속의 관계 사회를 이룬다(<그림 2> 참조). <그림 2>가 기존의 관계 모델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점은 ‘사람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미디어’ 부분에서 나타난다(나은영, 2002, 제1장 참조). 이제 미디어가 사람을 벗어나 저기 저 멀리에 독립적인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바로 옆에 붙어 있으면서 사람과 일체가 되어 한 단위로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이동전화에서 더 나아가 이제 눈에 장착할 수 있는 미디어, 귀에 장착할 수 있는 미디어까지 개발되고 있는 시점임을 감안할 때, 미디어는 이제 더 이상 인간과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다. 바로 시공간을 극복하고 서로의 연결을 희구하는 인간 본성의 실현을 도와, 인간의 경험을 확장시켜 주는 제2의 분신으로서 자리매김해 가고 있는 것이 바로 미디어이다. 그 과정에서 기술력이 부족할 때에는 인간 감각기관의 일부만을 확장시킬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인간의 감각 전체가 확장되고 표현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미디어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먼 곳의 사람들을 조금 더 가까이’ 놓는 역할이다. 이 점에서 교통(transportation)과 통신(communication)의 역할이 겹친다. 통신수단의 발달로 사람이 서로를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것은 공간과 시간의 극복을 함께 제공한다(Brown, Green, & Harper, 2002 참조). 시간과 공간의 극복은 별개가 아니라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하나이다. 타임머신을 이용하여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공간을 움직이면 시간이 극복될 수 있다. 사람은 비단 현 시대의 원거리 사람들과의 연결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다른 시대의 사람들과도 접촉하고 싶어하며 끊임없이 시공간을 극복하여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자 한다. 바로 그 ‘연결의 욕구’ 속에 미디어의 본질이 숨어 있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는 ‘해당 장소에 함께 있는 사람’만이 구술자의 이야기를 듣고 영향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책이 대량으로 인쇄되면서 한 사람이 전달하는 같은 메시지가 수많은 사람에게 동시에 전달될 수 있었다. 즉, (한 사람의) 저자와 (수많은) 독자들 간의 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책이라는 미디어가 실행한 것이다. 전화기의 발명으로 비록 청각정보에 국한되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극복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이제 선의 연결이 없이도 거리가 극복될 수 있고 청각 뿐만 아니라 시각 정보까지 무선으로 먼 거리에 전달될 수 있다.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시간과 공간의 극복이 동시에 무척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인터넷은 사람과 사람의 연결 이외에 ‘집단 간의 경계’를 점차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다. 인터넷을 통해 개인 단위로 국경을 쉽게 넘나들 수도 있고, 직장과 가정의 구분을 이전보다 덜 뚜렷하게 만든다. 인터넷과 이동전화의 도움으로 미국에서 하던 일을 한국에서도 똑같이 할 수 있고, 직장에서 하던 일을 가정에서도 똑같이 할 수 있다. 미디어와 밀착되어 있는 사람들이 개인 단위로 연결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글과 소리와 영상으로 생산한 모든 대상들이 하이퍼텍스트를 통해 서로 연결될 수 있다. 그것도 순식간에 실시간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혁명이다.
사람과 미디어가 하나의 단위로서 네트워크를 이루는 관계사회 속 정보의 흐름을 살펴 보면, 지금까지 여성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관계(relation)’와 남성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정보(information)’가 점차 일체화되어 가는 현상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관계만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고 정보만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관계에 관한 정보’를 추구하기도 하고, ‘정보들 간의 관계’를 파악하기도 한다. 이것은 인터넷 세계에서 정보들이 관계를 이루고 있고 관계들이 정보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바로 이 점에서 미래 사회는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이 수렴되는 열린 커뮤니케이션 체계 속의 통합 사회를 형성한다. 학문들 간의 ‘경계’를 보다 중요시했던 근대 산업사회의 테두리를 떠나, 이제 사회과학 전체를 하나로 볼 수 있는 시각이 형성되어 가고 있다.
3) 인간, 미디어,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미래
초기의 미디어는 인간으로부터 떨어져 ‘저기 저만큼’ 존재하는 미디어였다. 그러나 인간과 인간을 효율적으로 연결해 주며 그 사이의 정보 흐름을 중개하는 미디어가 점차 발달할수록 미디어는 점점 더 우리의 몸에 밀착되어 오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의 실시간 대화나 회의가 전화를 통해 가능해지고, 단체 회의도 화상 컴퓨터를 이용해 가능해졌다. 이제 사람이 바로 앞에 컴퓨터를 놓고 먼 거리 사람과 화상회의를 하는 단계를 지나 이동전화 무선인터넷을 통해 돌아다니면서까지 먼 거리 사람들과 화상회의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호 연결성과 경계 파괴의 맥락 위에, 무선화로 인한 이동성(mobility)까지 가미되어, 인류의 세계는 미래학자 아탈리의 말 그대로 “1만여 년의 정착생활을 청산하고 첨단 디지털 장비로 무장한 채 세계를 떠도는 유목민”이 되어 가고 있다(김창호, 2002).
그 다음 단계는 내가 손으로 들고다니지 않아도 이미 내 신체의 일부에 부착되는 미디어가 발달할 차례이다(Kerckhove, 2002). 발달이 더 지속되면 이제 우리 신체의 일부로서 미디어가 기능하게 될 지도 모른다. 먼 곳의 사람을 동시에 볼 수 있으면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동시에 들을 수 있는 미디어를 우리의 눈과 귀에 부착하고, 우리는 바로 앞에 있는 사람과 마주보며 이야기하듯 먼 곳의 사람과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범위가 미디어의 도움을 받아 점차 확대됨을 의미한다. 사람과 사람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치 바로 앞에 마주보고 앉아 있는 것과 같은 상태의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미디어의 가장 큰 기능은 사람과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시공간의 제약을 줄여 주는 것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보의 흐름으로 이루어지는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디어의 발달 단계가 아직 미숙할 때에는 인간 감각의 사용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지만, 점차 미디어가 발달할수록 인간은 모든 감각기관을 다 이용하여 지구 저 편의 사람들과 시공간을 초월한 대화를 마치 지금 바로 앞에 보면서 이야기하듯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맥루언이 말한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함의에서 더 나아가, 21세기 이후 미디어의 모습을 더욱 포괄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미디어는 인간의 경험을 확장시키는 도구’이다. 인간의 신체도 다른 사람과의 정보의 흐름을 돕는다는 측면에서 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언어도 미디어이고, 목소리도 미디어이다. 다만 이것은 즉각적 미디어(immediate media)의 범주에 속한다. 즉각적 미디어라는 것은 그만큼 커뮤니케이션의 주체인 ‘사람’과 밀착되어 있는 미디어라는 뜻이다. 오늘날의 이동전화는 ‘자기 자신’의 확장이며 인터넷은 ‘인간 사회’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동전화나 인터넷과 같은 뉴미디어는 기존 미디어에 비해 훨씬 더 즉각성(immediacy)이 큰 미디어이며 시공간을 초월한 사람 간의 정보 교환을 가능하게 한다. 즉, 미디어는 발전할수록 인간과 더 밀착되어 마치 인간의 분신처럼 기능하며, 미디어의 도움으로 인간 사회는 시공간을 극복하고 더욱 넓은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이 더욱 빨리 접촉할 수 있는 네트워크 사회가 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발전 방향은 일방향에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으로, 제한적 감각기관 이용에서 오감을 모두 이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가고 있으며, 이로 인해 결국 이 세상 모든 사람들과의 동시접촉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하고 있다. 바로 미디어의 인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3. 과학과 예술, 언어와 비언어, 그리고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는 인간과 인간을 관계 짓기 이전에 한 인간을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 한 사람(화자, 작가, PD)이 미디어를 통해 자기를 표현하면, 다른 사람(청자, 독자, 시청자)이 그 표현을 보고 듣고 느끼며 의미를 공유하고, 청자가 다시 미디어를 통해 자기를 표현하여 화자에게 또 전달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인간의 언어적․예술적 표현과 기술이 만나고, 문화와 과학이 만난다.
어떤 사람은 예술작품을 생산하고, 어떤 사람은 과학기술을 생산한다. 그러면 이것들이 예술이냐 과학이냐의 경계를 뛰어넘어 서로 연결되고, 또 다른 사람은 소비자가 되어 그 예술작품과 과학기술을 소비한다. 이 과정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보의 흐름은 어김없이 일어나며, 따라서 이 과정도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패러다임 속에서 과학과 예술은 하나로 묶인다. 과학과 예술이 모두 인간이 창조하는 인간 중심의 행위이며,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예술이 승화되어도 그 주체는 인간이다. 과학과 예술은 모두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도와주는 수단이지만 도움을 주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비디오 아트, 영상 예술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예시 2> 참조), 과학과 예술은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영역이 아니라 서로 도움을 주는 관계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보의 흐름을 긴밀하게 서로 다른 방향에서 도와주고 있다. 과학적 기술을 이용하여 예술적 표현이 더욱 다양해질 수 있고, 예술적 상상력이 더욱 인간적인 과학기술 디자인의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Norman, 1988). 예술은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인간 서로 간의 표현과 의미 공유를 도와 줌과 동시에, 테크놀로지로 인해 변화된 인간의 환경에 반(反)환경 또는 대응환경으로서 감시하고 조기경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McLuhan, 1964).
<예시 2> 인간과 기술, 예술과 과학, 동양과 서양의 만남을 나타낸 월드컵 개막식: 상생(相生)과 공존(共存)
화해와 교류를 염원하는 지구촌 축제의 막이 올랐다. 21세기 첫 대회인 2002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의 개막식이 31일 오후 7시30분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30분간 압축적이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주며 진행됐다. 프랑스와 세네갈의 개막전에 앞서 펼쳐진 개막식의 주제는 ‘동방으로부터(From the East)’.
짧은 시간이었지만 투입된 인원만 모두 2천5백명에 달하는 대대적인 이벤트였다. 세계 정상을 자랑하는 정보기술(IT)을 활용한 깜짝쇼와 함께 우리 고유의 우아함과 정중함으로 60억 세계인을 축구의 열기 속으로 안내했다. 화려한 개막식이 불과 30분만에 끝난 이유는 '축구 그 자체가 핵심'임을 강조하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방침 때문이다. 그래서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의식(儀式)에 소요되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개막식은 ‘동방으로부터’라는 대주제 아래 환영, 소통(communication), 어울림, 나눔이라는 4개의 소주제로 나눠 동양적 상생(相生)의 정신을 전세계로 전파했다. 지구촌 각지에서 찾아온 손님을 환영하는 프롤로그는 4백명의 축하무용단과 취타대의 공연으로 시작해, 공동개최국 한국과 일본의 국가연주에 이어 환영사와 대회사로 이어졌다. 김대중 대통령이 개막을 선언하자 무용단과 기원패의 군무가 펼쳐졌고, 마당에서는 전 인류가 공감하는 평화를 실현하는 커다란 의사소통의 장이 한바탕 펼쳐졌다. 어린이들의 조각배 띄우기에 이어 열림패가 소리를 통한 소통을 시도했고, 특별 제작된 북이 세계 각국의 북과 함께 등장해 어울리며 의사소통의 매개체로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또 한국의 기술로 만들어진 IMT-2000을 이용, 관중이 직접 개막식에 참여하는 모습이 2백50여대의 액정표시장치(LCD) 모니터를 통해 비춰졌다.
셋째 마당은 어울림의 시간. 사방의 객석에서 어울림 천이 관객의 손에 의해 그라운드로 옮겨지고 날줄과 씨줄이 돼 어울림의 바다를 만들었으며, 그 위로 영원한 평화를 상징하는 문양들이 한 폭의 수묵화로 연출됐다. 그 한 가운데서 ‘평화의 종’이 솟아오르며 평화의 메시지를 온누리에 전했다. 종에 부착된 LCD 화면에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상영돼 예술과 첨단 테크놀로지가 조화를 이루며 수많은 관중의 탄성을 자아냈다. 피날레는 어린이들의 합창으로 장식됐다.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세계 어린이들과 모든 출연진이 하나가 돼 한국의 전통민요인 ‘아리랑’을 토대로 새로 작곡된 ‘상암아리랑’을 합창했다. 이어 한국의 브라운 아이즈와 일본 케미스트리 등 두 나라 로컬 월드컵 가수들의 공연이 펼쳐지고 밤하늘을 수놓은 화려한 불꽃놀이가 개막식 행사의 대미를 장식했다.
- 특별취재단 (기사 입력시간 : 2002.05.31 18:21) http://www.joins.com
인간의 모습은 이제 기계․미디어와의 공존 속에서 문화를 완성하는 네트워크 인간의 모습으로 규정된다. 미디어의 속성이 점차 인간의 속성을 닮아 가고 있고,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도 보다 다양화되어 문자언어, 음성언어, 영상언어로 각각 또는 통합적으로 전달되는 멀티미디어 시대이다(주창윤, 2000, p. 346). 대표적인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각 커뮤니케이션(visual communication) 영역에도 ‘영상’ 제작만이 아니라 사람이 시각적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모든 커뮤니케이션 영역이 포함되는 것이다. 어떤 미디어나 도구의 도움 없이 사람이 시각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의 연구에서부터 복잡한 영상제작 도구의 사용으로 메시지의 전달과 경험이 다양해질 수 있는 단계까지 통합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언어적 영역에서는 물론이려니와, 비언어적 영역에서도 인간이 먼저 어떻게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끼는가를 이해한 연후에 미디어를 이용하여 제작하고 전달하고 이를 경험하는 과정을 이해한다면, 더욱 본질적인 커뮤니케이션 과정의 이해에 근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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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국커뮤니케이션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