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판타지 로맨스
-『금오신화』를 읽고-
박 은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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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는 최초의 한문 소설이자 전기체 소설이다. 이 소설의 저자인 ‘김시습’은 조선 초기 문인으로 생육신중 한 사람이며, 세종에게 신동이란 말을 들었으나, 계유정난 이후에 속세를 떠나서 스님이 된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는 세상을 조롱하고, 국내를 돌아다니며 슬픈 노래로 시름을 달랬다고 한다.
『금오신화』라는 제목의 뜻은, 금오(金鰲)가 경상북도 경주에 있는 금오산(金鰲山)을 뜻하는데. 계유정난 이후, 금오산에 있는 용장사에서 7년 간 은거하며 지은 새로운(新) 이야기라 하여 『금오신화(金鰲新話)』라 한다고 알려져 있다. 『금오신화』는 5개의 각기 다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인공 남자가 기이한 인물과 만나 이계에 가거나, 죽거나, 높은 존재가 되는 《판타지》소설이다.
가장 많이 생각나는 이야기는 바로 처음 나온 이야기, 『만복사저포기』이다. 대충 내용은 이렇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만복사에서 홀로 살고 있던 양생은 노총각으로 늙어가는 것을 서러워하던 중, 부처님과 내기를 해 이기고 짝을 찾아줄 것을 요구한다. 결국 부처님이 양생의 소원을 들어주어 한 여인과 만나게 되어, 그는 그녀와 깊은 사랑을 나눈다. 그러던 중, 그는 그녀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되는데…….
사실 그 여인은 일본과의 전쟁 중 살해당해 외딴 곳에 묻힌 처녀귀신이었다. 그는 이 여인의 공양을 위해 찾아온 여인의 부모와 만나지만, 아무리 부모라 해도, 귀신인 그 여인을 볼 수 없었다. 여인은 결국 다른 곳에서 환생하게 되어 사라지고, 양생은 여인을 그리워 하다가 산으로 들어갔으며, 그 뒤 그의 소식을 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이야기가 이 『만복사저포기』의 내용이다.
내가 이 『만복사저포기』가 가장 많이 생각나는 이유는 아마 조선시대에도 《판타지 로맨스》장르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심청전』같은 ‘효’이야기와 『춘향전』같은 평범한 로맨스, 모두가 잘 아는 『홍길동전』같은 ‘무협지’장르는 아무래도 많이 본 한국의 고전소설 장르이지만, 이렇게 현실과 이계를 넘나들며 사랑을 하는 《판타지 로맨스》장르는 처음 보았기에 내 기억에 가장 많이 남은 것 같다.
소설 속 이야기는 작가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써 놓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박씨전』 같은 소설은, 병자호란 이후 쓰여 진 소설인데, 병자호란의 치욕을 극복하기 위해 쓰여 졌다고 한다. 이 소설은 그와 마찬가지 인 것 같다. 조선시대는 엄격한 신분제 사회다. 따라서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소설 속엔 뭐든지 가능하다. 작가는 『만복사저포기』에서 자유로운 사랑을 표현 하고, 자신의 이상을 써 놓은 것이다.
『금오신화』에서는 내가 소개하지 않은 4개의 이야기가 더 있다. 대부분 이 『만복사저포기』와 비슷한 구조이지만, 그것 나름대로의 재미가 또 있다. ‘고전’이기에 시가 많이 나오고, 약간의 지루한 맛이 없잖아 있지만, 또 그것이 고전의 맛이 아닐까 한다. 최초의 한문 소설이자 전기체 소설, 그리고 조선의 《판타지 로맨스》인 『금오신화』를 모두 즐겨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