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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이 정도(발췌내용)가 사계님이 제 질문에 답을 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인것 같군요.. 흠.
주의검을보내사 (21.07.16 01:02)
사실 아래 발췌한 사계님의 글은 사계님이 이전에 써놓은 글이다.
특징은, 경건한 문장을 지나자마자 바로 누군가를 향해 증오를 뿜기 일쑤다. 그런 불결한 곳을 조심스레 지나서 사계님이 뭔가 성경으로 더듬대며 작성한 능동순종의 근거를 발췌해오는 것이 그닥 유쾌하지는 않다.
왜냐.이미 누군가를 향해 써둔 글을 통째로, 더구나 이렇게 길고 헤비한 내용을 리포트 쓰기 위해 억지로 읽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왜 즉석에서 자신의 주장을 빠르고 간결하게 만들어 전달하지 못하고 이삿짐을 싸듯 주절주절 뭔가를 잔뜩 내오는 것일까. 누가 논적의 이 긴 글, 더구나 나를 위해 쓴 것도 아니고 예전의 그 누구들과 싸우면서 증오로 범벅된 글을 읽고 싶겠나.
안그렇습니까, 사계님?
그럼에도 나는 이 늦은 밤 포효하다 목이 쉬었을 사계님을 위해 친절하고 싶다.
읽어보자.
사계님의 글 일부 발췌
…(하략)…
댓글
주의검을보내사 (21.07.16 01:09)
친애하는 사계님.
사계님은 우리 주님께서 행한 가장 큰 계명의 실천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병자들을 고치신 일?
오병이어를 베풀어 굶주린 자들을 먹이신 일?
어머니를 요한에게 맡기신 일?
하늘 영광 버리고 사람되어 오신 일?
세례요한에게 의를 이루자 하시고 세례받으신 일?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일?
부모를 공경하시고 공생애전까지 장자로서 목수일 열심히 하면서 옛언약 하에서 유대교 전통과 말씀대로 충실히 사신 일?
생각나는대로 편히 답변 주세요. 내일 확인하겠습니다. 굿밤요.
四季 朴埰同 (21.07.16 18:06)
주검보 님은 본문에서 “특징은, 경건한 문장을 지나자마자 바로 누군가를 향해 증오를 뿜기 일쑤다. 그런 불결한 곳을 조심스레 지나서 사계 님이 뭔가 성경으로 더듬대며 작성한 능동 순종의 근거를 발췌해오는 것이 그닥 유쾌하지는 않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주검보 님 세대주의적 사고와 이중잣대로서 내로남불 적반하장을 지적해 드렸건만, 여전하십니다.
주검보 님은 정이철 목사가 {페북} 자신의 담벼락에 링크한 ‘{바른 믿음} 정이철 <제정신 갖고 사는 목사들이라면 이 사람 글을 보면서 미친 사람 취급할 거예요.>’에 ‘좋아요’를 누르셨습니다. 이 글에는 “김병훈은 교수도 목사도 아닙니다. 처음부터 잘못된 사람이고 본질이 틀려먹은 사람입니다. 제정신이 있는 사람이 아니예요. 병자입니다. 죽어도 못 고칩니다. 마귀의 자식이예요. 두고 보세요. 무덤까지 가져갈 겁니다. 제버릇 개 못 줍니다. 영향력도 없는 사람이고, 그렇게 신경 안 써도 됩니다. 하려면 하라고 내버려 놓으면 지가 알아서 하겠지요. 제정신 갖고 사는 목사들이라면 이 사람 글을 보면서 미친 사람 취급할 거예요.”라고 말한 놈, 어떤 미친 개 같은 놈 글이 있습니다.
“제정신 갖고 사는 목사들이라면 이 사람 글을 보면서 미친 사람 취급할 거예요.”는 이창모 목사 글에도 있습니다. ㅡ또한 이창모 목사 글에는 “이는 하나님 앞에서의 경거망동이므로 이 또한 신학교 교수의 자질에 문제가 있는 것이므로 교단에서 내려오는 것이 본인에게나 신학생 모두에게 커다란 유익이 될 것이다.”고 말한 경거망동의 악취도 있습니다.ㅡ 주검보 님은 이 ‘인간말종’이 쓴 글을 읽으면서 참으로 은혜로운 향기를 느끼셨습니까? 아니면, 이 인간 쓰레기 글을 읽으면서 악취가 온 천지를 진동하는 “불결”을 느끼셨습니까?
내 편이 하면 향기고 내 편이 아닌 놈이 하면 “불결”이지요?
“증오”??? 여기에서 사랑의 하나님이신 여호와 하나님 공의의 속성인 ‘증오憎惡: 악을 미워함’(계 2:6)을 이야기해야 할까요? “사랑의 사도”로 높임을 받으시는 충견忠犬 요한 사도께서 에베소 공중 목욕탕에서 이단을 만났을 때 취하셨던 행동, 전설로 전해오는 ‘그 이단을 향한 사랑의 요한 사도 증오憎惡’를 이야기할까요?
주의검을보내사 (21.07.16 22:37)
이거 뭐 ㅋㅋㅋ 대답을 들으려고 쓰는 글이 아니구만요. 계속해보세요 ㅋㅋㅋ
四季 朴埰同 (21.07.16 20:16)
“이미 누군가를 향해 써둔 글을 통째로”??? 이창모 목사 쓰레기 글은 예장 합신 김병훈 교수님을 향해 이창모 목사가 “이미” 써둔 글입니다. 제 글은 이창모 목사와 이창모 목사 쓰레기 글에 환호하신 주검보 님을 향해 “이미” 써둔 글입니다.
제가 {페북} 이창모 목사 쓰레기 글을 링크한 정이철 목사 담벼락 글을 본 때는 지난 5월 29일 저녁이었습니다. 일단 다른 한 분과 ‘Hyd Cliffe’라는 실명(?)으로 주검보 님이 쓰신 댓글들을 수박 겉핥기로 읽었습니다. 제정신이 아닌 정이철 목사와 함께하는 Hyd Cliffe 님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정이철 목사가 {바른 믿음}에 접속할 수 없도록 저를 차단한 까닭으로, {바른 믿음} 글들을 아카이브 링크해 주시는 전종득 목사님께 {페북} 메시지를 드렸습니다.
아카이브 링크 글을 수박 겉핥기로 읽어내려갔습니다. 그러나 김병훈 교수님을 두고 ‘교단에서 내려와라.’ 하는 부분에서 ‘이창모 목사 역시 임진남 목사와 똑같이 기고만장하게 막 나가는구나.’ 생각하며 끝까지 읽지 못한 채 읽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붓은 붓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성경 원어 해석을 내세운 이창모 목사 붓은 성경 원어에 까막눈인 나에게는 대응할 수 없는 붓이다.’ 생각해 끝까지 읽는 것을 포기한 것입니다.
포기했을지라도 {페북}에 <서철원 학파 이창모 목사가 저지른 “경거망동”>을 남겼습니다. 그날 밤 아홉시 무렵이었습니다.
四季 朴埰同 (21.07.16 20:19)
지난 5월 30일 주일(일요일) 아침 여덟시 무렵이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조길선 목사님’을 검색했습니다. 지난 2월 25일 오전에 회사에서 스마트폰으로 제 페친이신 서철원 목사님께서 {페북}에 접속하신 것을 보고 ‘잡초 조길선 목사님’이 떠올라 {구글} 검색창에 ‘조길선 목사님’을 검색해 발견한 {유튜브} 동영상 <하나님 품에 안기신 조길선 목사님 추모 영상>을 보고 싶어 검색한 것입니다. 그래서 또 발견한 것이 ㅡ이창모 목사 쓰레기 글을 비평한 제 글 각주에 링크한ㅡ <조길선 목사님 추모 영상 (2):목사님 수고 많으셨습니다.>였습니다.
{페북} 정이철 목사 담벼락으로 갔습니다. 또 어떤 댓글들이 달렸는가를 보러 간 것이었습니다. 수박 겉핥기로 읽었던 주검보 님 댓글을 또 읽어내려가면서 ‘어, Hyd Cliffe 이 사람, 이창모 목사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김병훈 교수가 주장하는 능동 순종이 사실이라면 ~~~유월절 어린양은 양의 율법을 잘 지킨 착한 양으로 해야 한다든지 하는 암시만 있었어도 능동순종을 주장하는 저들이 무척이나 기뻐했을 텐데 말이다.”가 적힌 Hyd Cliffe 댓글을 읽고는 ‘아, Hyd Cliffe가 이창모 목사면, 이 댓글은 이창모 목사 글이겠구나. 그렇다면, 끝났다!’ 생각했습니다.
전종득 목사님께서 아카이브 링크해 주신 이창모 목사 글을 수박 겉핥기로 끝까지 읽어내려갔습니다. 그리고 허리에 복대를 하고 의자에 앉아 타이핑해 그날 밤 열시 무렵에 제가 운영자로 있는 카페에 올린 글이 <서철원파 이창모 목사 “쓰레기” 글을 비평함>입니다.
주의검을보내사 (21.07.16 22:41)
정신줄 잡으세요. 나는 이창모님도 아니고 정이철님도 아닙니다. 내가 그분들의 글에 동의했다고 그양반들의 아바타가 되나요? 사계님의 글에 동의하고 댓글쓰던 2018년에는 그럼 사계의 아바타였을까요?
포털의 기사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페친의 글에 예의상 눌러주는 모든 좋아요가 전부 그 상대와 일체가 되는 행위입니까? 적당히 미칩시다.
우리가 즉석에서 토론하며 생산하는 글은 평소 쌓인 실력이 있고 치열하게 공부한게 있다면 충분히 잽을 날리듯 가볍고 빠르게 주고받으면서 상대를 반박하는 동시에 서로 배울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따리 장수처럼 님의 묵어터진 글 좀 그만 가져오라는 겁니다.
본인의 청국장은 본인이나 맛있는 법이에요.
四季 朴埰同 (21.07.16 22:54)
ㅉㅉㅉ
예의상 누르셨군요. 또한 예의상 복사 붙이기 하셨구요. 또한 예의상 이단성 있는 정이철 목사 글을 주검보(Hyd Cliffe) 님 담벼락에 공유해 페친들에게 선전하는 분별없는 짓을 하셨구요. 이쯤이면, 이단에 빠졌던 과거 경력을 돌이켜보며 “적당히 미칩시다.” ㅠㅠ
주의검을보내사 (21.07.16 22:59)
내가 내 담벼락에 공유한 글에 왜 사계님이 이렇게 광적으로 질투합니까?
설령 좋아요 사랑해요 하트 뿅뿅했다 칩시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그리스도가 율법으로 칭의를 받아 의를 전가해줘야지 그렇지 않음 보혈만으로는 영생이란 어림 택도 없다는 사계님의 헛소리나 성경으로 증명해주시죠 ㅎ
四季 朴埰同 (21.07.16 23:00)
“질투”요?
분별없는 까닭으로 연자맷돌 매고 바닷속으로 들어가려면 혼자나 들어갈 일이지, ㅉㅉㅉ!
주의검을보내사 (21.07.16 23:00)
성경토론 할까요 말까요
딱 정하세요
주의검을보내사 (21.07.16 20:20)
친애하는 사계님.
사계님은 우리 주님께서 행한 가장 큰 계명의 실천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병자들을 고치신 일?
오병이어를 베풀어 굶주린 자들을 먹이신 일?
어머니를 요한에게 맡기신 일?
하늘 영광 버리고 사람되어 오신 일?
세례요한에게 의를 이루자 하시고 세례받으신 일?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일?
부모를 공경하시고 공생애전까지 장자로서 목수일 열심히 하면서 옛언약 하에서 유대교 전통과 말씀대로 충실히 사신 일?
四季 朴埰同 (21.07.16 20:50)
제 머릿속 사전에는 “유대교 전통”이라는 단어는 모세 율법을 그릇되게 해석한 ‘유대교 장로들 유전’으로 입력돼 있으니, “유대교 전통과”는 삭제해 “옛언약 하에서 말씀대로 충실히 사신 일?”로 다시 쓰시면 어떻겠습니까?
주의검을보내사 (21.07.16 22:44)
답변하면서 빼고 쓰세요. 왤케 의존적입니까.
주말씀대로 (21.07.16 23:12)
ㅉㅉㅉ 끝내 답은 못하네 ㅉㅉㅉ나같음 복음 진리 하나라도 전할맘으로 이거부터 답했겟네 ㅉㅉㅉㅉㅉ
四季 朴埰同 (21.07.16 20:41)
“이미 누군가를 향해 써둔 글을 통째로, 더구나 이렇게 길고 헤비한 내용”, “이삿짐을 싸듯 주절주절 뭔가를 잔뜩 내오는 것일까?”, “더구나 나를 위해 쓴 것도 아니고” 하셨습니다.
이창모 목사 글은 정이철 목사와 함께하는 주검보 님을 위해 쓴 글이라고 생각하셔서 끝까지 잘 읽으셨을 것입니다. 물론, 제 글 역시 정이철 목사와 함께하는 Hyd Cliffe를 안타까워한 마음이 있었기에 주검보 님을 위해 쓴 글입니다.
그런데 봅시다. 이창모 목사 글을 복사해 한글문서창에 글씨 크기 ‘10.0 pt’로 붙이기해 보십시오. 10 쪽 분량입니다.
10 쪽 분량이면서 성경원어에 까막눈인 저 같은 평신도가 읽기에는 힘든, 성경원어 해석을 담은 무척이나 “헤비한 내용”입니다. 더군다나 제정신이 아닌 정이철 목사 글에 적힌 김병훈 교수님 글을 각주로 삼은 글입니다.
이창모 목사 쓰레기 글을 비평한 제 글을 붙이기해 보십시오. 각주 빼고 5 쪽 분량입니다.
굳이 이렇게 분량 가지고 따져야 하겠습니까?
또 “주절주절”이라는 말 쓰시겠습니까?
주의검을보내사 (21.07.16 22:48)
자 그만 징징대고 위에 전통이 못마땅하면 그거 빼고 답변 주십시오.
뭘 잔뜩 써놨길래 기대했더니
읽는 수고에 비해 묵직한 내용 하나 없는 질소과자같은 글좀 그만 봅시다.
四季 朴埰同 (21.07.16 22:56)
그 질소 같은 글 유도하신 게 내로남불 대가 정이철 목사 학동인 주검보 님이신 건 전혀 생각할 수 없으시죠?
주의검을보내사 (21.07.16 22:57)
음. 이제보니
범님은 성경 토론을 할 마음이 없는게로군요^^
그냥 쫑알쫑알 씨발라먹을 소리나 늘어놓으면서 시간을 허비할 생각이었네요. ㅋㅋ
四季 朴埰同 (21.07.16 23:04)
“성경 토론”이요?
성경에서 수많은 구절을 삭제한 이단 정이철, 정이철 학동(아바타)이 “성경 토론” 운운하니, 가소롭습니다.
주의검을보내사 (21.07.16 23:05)
항복?
하기사 너무 당하니 불쌍하다고 여기저기서 전화가 옵디다 ㅋㅋ
범동님이 내 체급에서도 안되는 사람인데
혼자 달보고 짖어대는걸 누가 말려.
그러니 다들 또시작이구나 무관심하고 냅두니까 무슨 대단한 논객이나 되는줄 착각하고 자빠지던데
가여워서 상대해준걸 고맙게 생각하쇼.
주의검을보내사 (21.07.16 23:10)
남의 황금같은 시간을 개도 안물어갈 소리나 늘어놓고 정이철에 물어뜯겨서 폐인처럼 정이철정이철정이철.... 우울증 약 좀 드세요. 정회원 특혜는 여기서 거둡니다. 그럼 이만.
四季 朴埰同 (21.07.16 23:21)
“사계 님의 헛소리”???
“헛소리”를 하는 이단이니, 요한 사도 가르침을 받들어 내쫓으면 됩니다.
저는 요한 사도 가르침을 받들어 신발에 먼지 털고 나갑니다.
주의검을보내사 (20.07.17.00:08)
혓바닥 길이만큼 오래사십쇼 센세
{플교연}에서 옮겨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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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Wolf이철이 {페북} 자신의 담벼락에 링크한 Wolf창모 쓰레기 글에 “정이철 학동”이 긴 혓바닥을 날름거린 댓글들입니다. 들여쓰기 없이 옮깁니다.
Hyd Cliffe
7.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4:7~8
Hyd Cliffe
13.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골로새서 1:13~14
Hyd Cliffe
19.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사도행전 3:19
Hyd Cliffe
31.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사도행전 5:31
Hyd Cliffe
바울은 김 교수와 같은 이들이 롬5:18-19로 능동순종을 주장할 것을 미리 알았는지, 감사하게도 그는 18절에서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는 원인을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라고 말하면서, “한 의로운 행위”(e`no.j paraptw,matoj/헤노스 디카이오마토스)를 단수로 표기한다.
바울은 “한”(e`no.j/헤노스/one; a, an, single; only one)이라는 단어와 “행위”(paraptw,matoj/헤노스 디카이오마토스)라는 단수 단어로, 죄인을 의롭게 한 예수님의 유일한 행동이 오직 “십자가의 죽으심”임을 분명히 한다.
Hyd Cliffe
오리겐도 울고 갈 풍유 ㅎㅎㅎ
ㅡㅡㅡㅡ
슥3:4은 능동순종을 시사하는가?
김 교수는 “스가랴 3:4에서 더러운 옷을 벗긴 다음에 벗은 몸으로 두지 않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시는 것은 또한 그리스도의 순종의 두 측면을 시사한다.”([바른믿음], 2021.05.25, <제정신 갖고 사는 목사들이라면 이 사람 글을 보면서 미친 사람 취급 할 거예요>에서 발췌)라고 주장한다. 아마도 김 교수의 이런 주장은 슥3:4에서 “더러운 옷을 벗긴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죄 사함이며, “아름다운 옷을 입힌 것”이 그리스도의 능동순종으로 인한 의의 전가라고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김 교수의 이런 이해는 오리겐도 울고 갈만큼 심한 풍유적인 이해이며, 어처구니없는 자의적 해석에 불과하다.
계 19:8(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을 보면, 성도들이 입은 깨끗한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성도들의 옳은 행실로 상징되는 깨끗한 세마포는 무엇으로 깨끗하게 되었는가?
김 교수가 주장하는 ‘능동순종’에서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율법 순종으로 인해 성도들에게 의가 전가되었기 때문인가? 아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진술은 없다. 그러나 계7:14(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을 보면, 성도의 행실로 상징되는 깨끗한 세마포가 무엇으로 깨끗하게 되었는지 명백하게 진술되어 있다. 그것은 “어린 양의 피”, 즉 바울이 반복해서 힘주어 강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다.
Hyd Cliffe
김병훈 교수가 주장하는 능동순종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하나님의 의롭다하심의 한 방법이므로 죄인들이 결코 몰라서는 안 되는 복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구원 길을 계시하고 있는 성경은 예수의 율법 순종이 죄인들에게 의를 전가시키는 하나님의 구원의 한 방법임을, 십자가만큼의 횟수는 아니더라도 거기에 버금가는 횟수로 명확하게 진술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필자가 반복해서 말했듯이 성경 어디에도 능동순종을 지지하는 구절은 없으며, 하나도 없다. 아니 암시조차도 없다. 특히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을 선명하게 예시한 출애굽의 유월절 어린 양에 관한 기록에서도, 또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을 노골적으로 제시한 제사법에 기록된 희생 제사에서도 능동순종을 지지할만한 기록은 눈에 불을 켜도 찾아볼 수 없다.
만약 성경에 유월절 어린양은 양의 율법을 잘 지킨 착한 양으로 해야 한다든지 하는 암시만 있었어도, 능동순종을 주장하는 자들이 무척이나 기뻐했을 텐데 말이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4-15)
Hyd Cliffe
6.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로마서 6: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