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서란(房瑞鸞)은 선주(宣州)의 향공진사(鄕貢進士)이다.
조위총(趙位寵)이 반란을 일으키자 서북(西北)의 여러 성(城)들이 모두 그에게 붙었다. 방서란이 그의 형 방효진(房孝珍)과 방득령(房得齡)에게 말하기를, “조위총이 여러 성의 토호(土豪)들을 위협하고 회유하여 가짜 관직을 주고 그들에게 군사를 모아서 서경(西京)으로 모이게 하기에 우리들 역시 그 중에 끼었다.
〈하지만〉 나의 장인 윤중첨(尹仲瞻)이 병마판관(兵馬判官)으로서 사촌형인 윤인첨(尹鱗瞻)의 휘하에 있는데, 사위가 장인을 공격하는 것은 인정상 차마 못할 일이다. 하물며 조위총이 반역[不軌]을 꾸미고 있으니 끝에는 반드시 자멸할 것이라, 형님들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방효진 등도 그렇게 생각하고는 밤중에 몰래 고을 사람들을 달래며 말하기를, “조위총이 처음에 적신(賊臣)을 베겠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았기 때문에 여러 성들이 행동을 같이하고자 군대를 동원하여 대궐로 향하였다. 서울 근방[郊畿]에 이르러 교전하자마자 패하였고 관군(官軍)이 추격하자 시체가 서로 베개를 벤 듯이 누웠다. 비록 패잔병들을 수습하여 다시 대항하려 해도, 기세가 이미 꺾이어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믿는 것은 오직 험준한 지형과 견고한 성뿐이므로, 만약 왕의 군대가 하루아침에 서경을 함락시키고 병력을 옮겨 주둔시키면 성 전체가 가루가 되고 말 것이다. 또한 조위총의 의도는 적을 토벌하는 것에 그치지 않으니, 우리들도 만약 생각을 고치지 않는다면 같은 악당으로 여겨져 추한 이름을 후대에 남기게 될까 두렵다. 그러니 이제 먼저 군사를 일으켜 반역자를 제거하고 귀순(歸順)하려고 하는데 그대들의 생각은 어떠한가?”라고 하니 고을 사람들이 모두 동의하였다.
〈그러나〉 도령낭장(都領郞將) 의유(義儒)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조위총의 임명을 받아 장군이 되었기에 혼자만 옳지 않다고 하였다. 방효진이 그를 활로 쏴서 죽이고 즉시 의주(義州)에 사람을 보내 보고하였다. 의주 사람들 또한 조위총이 임명한 장군 경작(景綽) 등을 죽이고 호응하였으며, 〈온〉 사람 편에 머리를 들려서 지름길로 달려가 행영(行營)에 급히 보고하니, 여러 성들이 소식을 듣고 모두 군대를 해산하였다.
이 사실을 들은 왕은 기뻐하며 방효진에게는 산원(散員)의 벼슬을 주고, 방서란은 동정(同正)으로 내시(內侍)에 배속시켰으며, 방득령은 본 고을에 머물게 하고 호장(戶長)으로 삼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효진 혼자서만 벼슬을 받은 것을 질투한 고을 사람들이 방득령과 그의 어머니를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