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아끼고 아끼던 말들을 형부와 처제가 나누는데…
영화 '파주'(29일 개봉)에는 안개가 발목까지 차 있다. 실제로 안개가 낀 장면이 많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더러워져 불투명한 유리창이나 비닐 천막이 안개를 대신한다. 화면은 입자가 거칠거나 푸르게 질려 있다. 2003년 3월 시점에서 시작해 1996년과 2000년, 다시 2003년을 두서없이 오가는 이 영화의 스토리텔링은 중반까지 무척 불친절하다. 그러나 끝내 영화 속 형부와 처제가 아끼고 아끼던 말들을 나누는 결말에 이를 때, 관객들은 감독(박찬욱)의 불친절을 잊고 오랫동안 이 영화를 곱씹게 될 것이다.
학생 운동권이었던 중식(이선균)은 수배를 받자 파주로 숨어든다. 그곳에서 은수(심이영)를 만나 결혼하지만, 은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숨진다. 은수 동생 은모(서우)는 언니를 잃고 형부와 함께 살다가 문득 그를 사랑하는 것을 깨닫고 집을 나간다. 몇 년 만에 집에 돌아온 은모는 언니가 형부 말처럼 교통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은모는 보험회사를 찾아가는 한편 형부를 추궁한다.
이 줄거리는 관객을 위해 쉽게 요약한 것이며, 영화에서는 그 순서가 뒤섞여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줄거리는 감독이 의도적으로 뒤틀어놓은 것으로 보이며, 이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의 우선순위에서 뒤쪽으로 밀려나 있다. 관객은 본능적으로 주인공들의 심리와 행동의 순차적이며 논리적인 근거를 찾고 싶겠지만, 이 영화는 관객이 해석한 뒤에 영화를 끼워 맞추는 게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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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를 잃은 중식(이선균·왼쪽)은 어린 처제 은모(서우)와 함께 산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지만 그 사실을 직면하지 못하고 빙빙 돌기만 한다./명필름 제공
은수의 죽음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며 형부와 처제의 허락받을 수 없는 사랑을 비극적으로 매개하는 장치다. 사실 이 영화에서 처제에게 털어놓는 형부의 단 한 번 나약한 고백을 제외하면, 두 사람의 사랑을 확인할 만한 정황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진심으로 사랑해왔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영화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이야기를 전달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그렇기에 영화를 어떻게 해석하든 모두 정답 처리할 수밖에 없다.)
'질투는 나의 힘' 이후 7년 만에 새 장편영화를 내놓은 박찬옥 감독은 예의 사실주의는 유지하면서 자신의 색깔을 뚜렷이 드러내는 데 주력한 것 같다. 남자 주인공은 사회 변혁가에서 무기력한 수배자로, 길거리에서 커피를 파는 남편에서 아내를 잃고 철거민을 이끄는 '먹물'로 우왕좌왕하는데, 이것은 무기력한 그의 사랑을 달리 묘사하는 장치로 읽힌다.
이선균과 서우 모두 호연했다. 마지막 장면의 서우 표정은 압권이다. 그 얼굴이 '파주'라는 영화가 하고픈 말을 상징한다.
▶전문가 별점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주는 박찬옥 감독의 수작.
― 이상용·영화평론가 ★★★★
쓸데없이 잔뜩 흩트려 놓은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주워담는 재주.
― 황희연·영화칼럼니스트 ★★★☆
첫댓글 난 박찬욱감독의 작품인 줄 알고 봤다^^; 헌데 재미가 없었다... 나오면서 다시 보니 박찬옥 감독이었당 저런...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