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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믈
김 정 한
1
그 결과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또쭐이는 어떻게 하더라도 그 오 원을 구해서 김주사에게 드렸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만약 그래만 했다면 적어도 일 년 동안은 무사하였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실상은 그러지 못했다. 이렇다.
일이 발생된 것은 칠월이었다. 칠월 어느 뜨거운 날, 또쫄이는 자기가 부치는 박양산의 논에서 김을 매다가 점심을 먹으려고 집으로 향했다. 거친 벼잎과 끓는 물기운과 메탄가스와 비료 썩는 냄새에, 스치이고 찌이고 탈려서 얼굴은 빨갛게 부어오르고 두 눈은 가득 충혈되고 목구멍 안은 바싹 말라붙었다. 그리하여 골머리가 뻐개지도록 아프고, 몸이 빙빙 돌려 어지러운 것을 근근이 참으며, 억센 벼줄기에 스쳐서 힘줄이 붉게 드러난 거무튀튀한 팔뚝에, 땀 밴, 석새 베옷을 벗어 걸치고서 논귀를 떠나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가 막 언덕 위에 올라서자, 거기 있는 느티나무 그늘에 뜻밖에 김주사가 부채질을 하고 앉아 있었다. 김주사ㅡ 그흔 지주 박양산의 사음이다. 또쭐이는 그를 보자 곧 이렇게 인사를 여쭈었다.
“들에 나오셨습니까, 이 더운데!”
그도 커다란 입가에 웃음을 띠워서 대답했다.
“그래, 송생원인가! 아마 저기서 김매는 것이 자넨 듯해서 입때〔여태〕 여기서 기달렸네그려, 더웁지?”
“괜찮아요. 그런데 왜 곧 부르지 않았어요? 무슨 말씀이 있었습디까?”
“그래, 마 이리 와 좀 앉게. 천천히 이야기하세……”
그래서 또쭐이가 곁에 가까이 가니까, 김주사는 큰 입을 한층 더 크게 벌려가지고, 교만한 태도로, 그러나 어찌 보면 매우 너그러운 듯이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들으니 자네에게 노는 돈이 얼마 있다지?…….”
“거짓말입니다! 저에게 돈이 있을 리가 있습니까?”
“아니, 그러지 말고, 날 한 오 원만 빌려주게. 있는 줄은 내가 다 아니까…….”
“네?…….”
하고 또쭐이는 놀랐다. 무리는 아니다.
―왜냐하면, 자기에게는, 오 원은커녕 오십 전도 없을 뿐 아니라, 또 자기에게 돈 빌리러 올 처지가 절대로 아닌 김주사가 자기 같은 가난뱅이에게 돈 오 원을 빌려달라는 것은 참으로 천만의외였기 때문에 누가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또쭐이는 이렇게 말했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주사님께 없는 돈이 저에게 있겠습니까, 어디.”
“그럴 게 아니라, 이 사람―”
“아닙니다. 사실 돈이 없습니다. 있다면, 주사님 같은 양반이 말씀하시는데 어디 안 디릴 수 있습니까!? 없으니 그렇지요!”
“참말로?”
“무슨 거짓말할 리가 있습니까?”
“정말 그래!? 그럼 가겠네.”
하고 앉았던 돌에서 일어나서더니, 김주사는 이마에 주름살을 깊게 잡아 보이면서 사기그릇 부서지는 듯한 소리로 이렇게 노하였다.
“예끼 이 사람! 그래 안 하는 법이다. 늙은 사람이 일부러 여까지 찾아와서 말하는데, 대접을 해서라도 그럴 수 없지! 안 된 사람 같으니!”
그리고 김주사는 돌아도 안 보고 그곳을 떠나버렸다. 정말 기막힐 일이다.
또쭐이는 한참 동안이나, 〔8字 정도 판독 불능〕 정신없이 서서, 떠나가는 김주사의 뒤통수만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없는, 이상한, 그러나 어떤 의미가 없지도 않을 듯한 연극이었다. 무슨 재미없는 일이 다가올 듯한 불쾌한 전조같이 느껴졌다.
2
그리고 몇 달이 지나서, 겨울이 왔다. 소작료 납입기가 왔다. 소작인들은 일 년 동안 피땀 흘려 지은 곡식을 반도 더, 그것도 제일 잘된 것만 골라서, 일 년 내 손가락 하나 놀리지 않은 지주의 창고에 갖다 넣지 않으면 아니 된다.
또쭐이도 박양산에게 바칠 소작료를 그의 열다섯 살 되는 아들과 같이 김주사댁 뜰에 가지고 갔다. 둘이서 구루마로 두 번 운반했다. 모두 넉 섬 열 말이다. 풍년이 져야 여덟 섬 날 둥 말 둥 하는 서 말 반지기 논에 넉 섬 열 말! 그러고도 지세를 소작인 측에 쳐 넘긴다.
소작인들은 가져온 차례대로 세를 바쳤다. 되질은 김주사 아들과 머슴이 하고, 그 감독은 물론 김주사다. 되질을 어떻게 하는지 열 말에 적어도 한 말 이상이 축이 난다. 그 때문에 소작인들은 예비로서 보통 몇 말 더 가지고 간다. 그러나 만약 모자랄 때에는 큰일이 난다. 먼저 되쟁이가 화를 낸다.
“왜 이렇게 가져 왔소?”
다음에는 사음一김 주사가 나선다.
“여보게 자넨 남의 토지를 그저 지어 먹을 배짱인가? 왜 그 모양이여?”
마지막에 그 작인은 박양산 앞에 꿇어앉아서 꾸지람을 듣게한다.
“예끼 못생긴 사람! 졸아지게 그게 뭐냐? 심사가 그러니깐 항상 못 살지!? 어서 가서 떨어진 것을 마자 가지고 오게. 어서 가!”
설사 어떠한 이유가 있더라도, 이에 대하여 싫다고 해서는, 아니, 싫은 표만 보여도 그 자리에서 곧 논이 떨어지고 만다. 무서운 일이다. 그 때문에 싫어도, 의제로 좋은 웃음을 얼굴에 드러내서 예, 예 하고 항복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마침내 또쭐이 차례가 돌아왔다. 그러나 다행히 모자라지는 않았다. 도리어 두어 말 남겨 가게 되었다. 그래서 또쭐이는 인젠 안심하고서, 목에 감았던 무명 베수건을 풀어버리고서 박양산 앞에 나아갔다. 실상은 칭찬을 받을 줄 믿고 있었다.
언제나같이 박양산은 자선가다운 태도로써 이렇게 물었다.
“자넨 누군가?”
또쭐이는 공손히 대답했다.
“송또쭐입니다.”
“송또쭐이?”
“네, 저― 구서리 있는……”
“아― 그래, 그럼 저― 돌아간 송치삼 노인의 둘째 아들이지?”
“네.”
한즉, 박양산의 얼굴에는 지금까지 꾸며져 있던 자선가인 듯한 관대한 표정은 별안간에 어디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예 지주다운 차디찬 표정과 날카로운 눈깔로써 또쭐이를 흘겼다.
“응…… 이놈―!?”
또쭐이는 박양산의 이러한 태도에 혼을 잃었다. 벌벌 떨면서……
“네……?”
하고 무슨 까닭인지 몰라서 쳐다보았다.
박양산은 우레같이 고함을 내질렀다.
“네? 라니, 이놈! 내 앉아 들으니 네가 좋은 나락은 골라서 네가 처먹고 나에겐 제일 나쁜 것만 돌려서 갖다준대지? 이 망측한 아이 도적놈 같으니! 명년부터는 내 논 부치지 마라! 일 없다, 이젠.”
“하늘이 여기 내려다보지만ㅡ”
“잔소리 말아라, 이놈!”
“무슨 그럴 리가 있습니까? 이 자리에서 목숨이라도 결어서 맹세하겠습니다.”
또쭐이는 전력을 다해서 변명 했다. 사실 그는 그러기는커녕, 전연 그 반대였다ㅡ박양산의 논이 실농될 때는 반드시 다른 논의 좋은 나락을 대신으로 갖다 바쳤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게 대관절 어찌된 셈이냐?
박양산은 술냄새를 내뿜으면서, 끝까지 또쭐이를 내밀었다.
“뭐가 그러찮단 말이냐? 이 아이 도적놈아! 한번 안 된다면 안 된다, 가거라! 가거라! 가거라!……”
참으로 땅 팔 일이다. 또쭐이는 어쩔 줄을 몰랐다. 그때 다행히 김주사가 곁에 와서 이렇게 말해주었다. 먼저 박양산을 향해서,
“선생님 좀 참아주십시오.”
하고 이번에는 또쭐이에게,
“이 사람 저리 나가게. 선생님께서 벌써 기분 좋잖게 되었는데, 그런 소리 했자 별수 있나! 무슨 할 말이 있으면 이 다음 기분 좋을 때 조용히 할 것이지. 우선 가게! 어서 집으로 가게!”
하고, 아주 점잖스럽게 또쭐이의 어깨를 살푼 건드렸다.
이것을 다행으로 또쭐이는 겁을 먹은 그냥 마룻바닥에서 일어섰다. 그는 지게를 힘 없는 등에 붙이고서 김주사의 집을 나왔다.
그러나 또쭐이는, “명년부터는 내 논 부치지 마라!”고 한 박양산의 말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무서운 악마의 손과 같이, 언제까지나 또쭐이의 가늘게 야윈 목줄기를 졸라 쥐고 있었다. 사실, 그는 숨이 잘 안 쉬어졌다.
그는 조약돌 많은 시골길에, 풀죽은 다리를 터덕거리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거 확실히 어느 놈이 내 부치는 논을 떼어 부치기 위하여 나를 먹어댄 모양이다. 박양산이나 김주사를 찾아가서 그런 비열한 거짓말을 한 모양이다. 대체 어떤 놈일까?…… 김주사? 그럴는지도 모르겠군, 그놈이 하도 남의 논을 잘 떼어 부치니깐. 그리고 지난여름 그자가 나를 찾아와서 아지 못할 연극을 한바탕 했겠다? 쥐새끼 같은 놈! 하여튼 어떤 놈이든지 닥쳐라! 난 박양산과 오 개년간의 소작 계약을 맺었것다. 아즉 삼 년은 남았다. 그처럼 수얼하게 물러앉을 것 같디!? 쳇!’
그는 조약돌에 발을 차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는, 소작료를 바치고 돌아올 때 하는 농민의 버릇으로, 길가의 작은 술집에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소주를 먹기 시작했다―한 잔, 두 잔, 석 잔, 넉 잔…… 곁에 있던 동무가 만류해 보았다. 그러나 그는 듣지 않았다. 연방 더 빨아댈 뿐이다. 결국은 소주에 취했다. 빨갛게 취해버렸다. 혀가 맘먹은 대로 돌아가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돌아가지 않는 둔한 혀로써, 이렇게 부르짖었다.
“어느 놈이든지 제발 내 논을 떼, 떼기만 해봐! 그를 그냥 두는가!? 아무리 내가 못 먹어도 도끼 하나쯤은 맘대로 쓰, 쓴다, 이놈들!?”
3
춘분 드디어 번경이 시작되었다.
또쭐이가 이웃집 소를 빌려가지고 들에서 팩질을 갈고 있으니깐, 그의 조그만 딸아이가 찾아와서 빠른 입으로 이렇게 조잘거렸다.
“아부지! 한어머니께서 어서 오시래요. 머들 있는 김주사댁에서, 안골 우리 논을 간다고, 어서 아부지를 데리고 오시랬어요.”
또쭐이는 머릿속에 뜨거운 핏줄기를 느꼈다―김주사! 논! 오 원! 소작권! 과연 김주사!…… 또쭐이는 전부를 량했다.
“어디 가보자!”
순간 또쭐이는 굳센 결심을 품었다.
어린 딸아이의 말과 같이 안골 논을 갈고 있는 것은 과연 김주사댁 사람들이었다. 김주사의 아들 두 분과 머숨이었다. 셋이서 소 두 마리를 가지고, 안골 안이 터지도록 의기양양하게 고함을 내지르고 있었다. 이러한 건방진 광경을 보자, 또쭐이는 한층 더 화가 났다. 화에 북받쳐서 간도 한층 더 커졌다. 그리하여 그는 김주사의 아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다.
“여보게 이게 무슨 짓이야? 왜, 말없이 남의 논을 갈긴 갈아? 응? 건방지게! 대관절 누구의 허가냐?”
물론 김주사의 아들도 이에 대해서 가만있지 않았다. 계집애 호양질을 해도 제 할 말은 다 있다고, 그도 얼굴을 빨갛게 해가지고 떠들기 시작했다.
“무슨 짓이냐고? 건방지게? 누구의 허가냐고? 그래 아무의 허가면 왜? 지주의 논이니깐 물론 지주의 허가겠지?”
“어떤 놈의 지주가 그래? 오 개년 소작 계약은 어쩌고?”
“그야 내가 알 수 있나? 금년부터는 소작권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만 알 뿐이지.”
“예끼 화적놈의 새끼! 전부가 네 애비 그놈의 수작이다! 어디 해보자…….”
“뭐가 어 째?”
농민이란 지루한 입다툼은 할 줄 모른다. 그런 점잖은 일에는 영리치 못하다. 곧 주먹이 나선다. 저편이 틀린 줄을 알기만 하면 곧 주먹으로써 해결해버 린다. 또쭐이도 그러한 농민이었다.
“뭐, 내 말이 틀렸니, 그래? 응? 이 간사한 쥐새끼 같은 놈아!”
하고 그는 김주사 아들의 뺨을 한 대 무쭐하게 갈겼다.
이리하여 주먹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또쭐이에게 비하면, 김주사 아들은 힘이고 잽이손이고 붙을 나위가 없었다. 김주사의 아들은 몇 번이나 땅바닥을 끌어안았다.
그러나 그때, 여태껏 멀리서 두 사람의 싸움을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던, 김주사의 다른 아들과 머슴이 두 사람 곁에 달려왔다. 그리하여 싸움은 크게 벌어졌다. 또쭐이 한 사람을 향해서 여섯 손말이 한꺼번에 덤벼들었다. 하나마 또쭐이도 그렇게 쉽게 물러앉을 겁쟁이는 아니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반항했다. 곧 일장의 격투가 계속되었다. 네 사람은 모두 몇 번씩 땅바닥에 넘어졌다. 넘어지는 놈 위에 다른 놈이 걸타붙었다. 마치 공싸움하듯이. 그리하여 결국은 네 사람이 모두 팔에 힘이 빠졌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끝에 가서는 또쭐이가 봇도랑에 내리박히게 되었다. 또쭐이가 불꽃같이 화를 내가지고, 입에까지 묻은 진흙을 닦으면서 다시 일어서니까, 김주사의 아들이 부르짖었다.
“이놈아 그런 게 아니다, 법에 가자! 주재소에 가자! 너 같은 놈들을 길들이기 위하여 저기 법이란 것이 있다! 아느냐? 이놈, 어서 가자!”
또쫄이는 이렇게 말하는 자의 주둥이를 냅다 치더니, 어느 여가에 그 손으로써 그놈의 오른편 팔을 틀어쥐고서 앞으로 몰았다.
“가자, 어데든지 좋다. 법이면 더욱 좋다. 주재소라면 누가 겁낼 줄 아니? 똥 싸고 빌 줄 아니? 응? 이 개새끼 같은 놈아!”
“넌 거기 서 있어!”
두 사람이 주재소 문을 열고 안에 들어서려니깐, 몹시 젊은 조선 순사가 귀찮은 듯이 그들을 힐끗 쳐다보더니 또쭐이만은 안에 못 들어오게 했다. 전신이 뻘덩어리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부득이 그는 밖에 서 있었다. 마치 얻어먹는 사람처럼.
“어째 왔어?”
순사는 먼저, 김주사 아들을 향해서 이렇게 물었다. 김주사 아들은 거게 대답했다.
“다른 게 아니라, 내가 논을 갈고 있으니깐, 저기 있는 저 사람이 찾아와서 일을 방해할 뿐 아니라, 게다가 또 사람까지 치고 야단을 하니깐 그래요. 어쨌든 저런 놈들은 법을 쓰시는 경관 나리께서 잘 처리 해주셔야겠습니다.”
한즉, 순사는 문밖에 서 있는 또쭐이를 보고 이렇게 부르짖었다.
“넌 무슨 까닭으로 남의 일을 방해해? 그리고 왜 또 사람은 쳐?”
또쭐이는 무거운 목소리로써 대답했다.
“손질이야 양편이 다 같이 했지만, 저자가 괜히 내 논을 갈기 때문에 그랬어 요.”
순사는 다시 김주사 아들 쪽으로 향했다.
“왜 너는 남의 논을 갈았어? 도적놈 아니냐?”
“아니, 그런 게 아닙니다. 논은 저놈 논도 아니고, 내 논도 아닙니다. 박양산의 논입니다. 그런데 소작권만은 내가 가졌어요.”
“아닙니다, 나리!”
하고 또쭐이는 문밖에서 떠들었다ㅡ
“그 말은 신용할 수 없습니다. 지주야 박양산입니다만, 나는 그 박양산과 재작년에, 오 개년간의 소작 계약을 맺고, 여태껏 그 논을 지어왔습니다. 그 소작증이 아즉 집에 가만히 있습니다.”
“아니, 저도 소작증을 가졌습니다.”
하고, 김주사 아들은 매우 흥분된 손으로써, 개아춤에서 조그만 종잇조각 하나를 꺼내가지고 순사의 테이블 위에 놓으면서 태연스럽게 말을 이었다ㅡ
“여기 있습니다. 이것입니다. 작년 겨울에 낸 것 입니다.”
순사는 그 종잇조각을 잠깐 들여다、보더니, 곁에 있는 부장에게 일본말로써 무어라고 지껄였다. 서류 정리를 하고 있던 부장은, 귀찮은 듯이 두어 마디 캐물었다. 그것을 조선 순사는 두 농민에게 번역해 들려주었다.
“소작증은 두 분이 다 가졌을는지 모르나, 우리는 그 최근의 것만을 신용한다. 오 개년 계약을 한 자는 아마 지주에게 무슨 좋지 못한 일을 해가지고 소작권을 빼앗긴 모양이지. 하여튼 최근의 것이 유력하다. 하니깐ㅡ” 하고 김주사 아들에게, “당신은 곧 가서 논을 가시오” 하고 다음에 또쭐이를 향해서, “넌, 너 일 보러가! 다시는 방해를 놀아서는 안 된다. 잡아다 가둔다! 알겠니?”
그러나 또쭐이는 불복이었다.
“하지만 나리! 나는 아즉 지주에게 대해서 조금도 좋지 못한 일을 ㅡ”
하자, 순사는 얼른 그의 말을 끊었다.
“잔소리 말아! 우린 그런 것 모른다. 그런 소리는 박양산에게 가서 해! 우리도 바쁘니 어서 가! 가!”
별수 없이 또쭐이는 그곳을 벗어났다.
또쭐이는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집에서는 어머니와 아내가 죽어가는 사람처럼, 기운 없이 울고 있었다. 참 정말 소작인에게 있어서는 논 떨어지는 것이 죽는 것과 별로 틀림없다.
또쭐이는 자기에게도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억지로 눌러 숨기면서, 그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될 수 있는 대로 침착한 태도로써 이렇게 타일렀다.
“울긴 왜들 울어요? 박양산 논 아니면 어디 굶어죽을 것 같습니까? 논 없으면 다른 일이라도 하지요. 염려 말아요, 조금도! 어째도 어머니하구 처자쯤은 넉넉히 벌어 먹일 테니깐.”
4
그리고 이삼 일 뒤였다.
“주사님계십니까?”
“응 그 누구냐?”
“송또쭐이 올시다.”
“또쭐이 그래 들오게!”
김 주사댁 사랑이었다.
또쭐이가 그날 들에서 저물게 돌아오니깐, 그의 어머니가, 낮에 김주사가 찾아와서 저녁에 그를 자기 집까지 꼭 좀 나와달라고 하고 간 것을 말했다.
“얘 어서 저녁 먹고 가봐! 행여나 또 다른 논이라도 돌려줄는지 아나?”
그러나 또쭐이는 저녁밥도 먹지 않고, 선걸음에 나섰다. 물론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일주의 희망을 가슴에 품고서.
……또쭐이는 조심스럽게 김주사의 방문을 열고 안에 들어갔다. 방 한구석에 앉았다.
한즉, 김주사는 갑자기 일어나 앉아서, 긴 담뱃대로써 또쭐이의 턱 밑을 들이받으면서 이렇게 떠들었다.
“예끼 망측한 아이 도적놈 같으니! 건방지게 네가 이놈 내가 부치려는 논을 못 갈게 훼방을 논다고? 누구 앞인 줄 알고 그래? 응, 이 본데없이 자란 놈아!”
너무나 의외였기 때문에 또쭐이는 정신을 못 차렸다. 이자가 미치지나 않았나 하고, 한참 동안 김주사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마침내 그도 무섭게 화를 냈다. 김주사에게 지잖게 큰 소리를 냈다.
“아이 도적놈이라고? 야 이 늙은 놈아, 정신 좀 차려라! 그래 무고히 논 떼인 놈이 도적놈이냐, 맘대로 남의 논 뗀 놈이 도적놈이냐? 어느 놈이 도적놈이란 말이냐? 응? 이 늙은 놈아!”
하고 또쭐이는 번개같이 김주사의 머리에서, 커다란 관을 벗겨가지고, 와드득 와드득 찢어서 문밖에 내던졌다.
김주사는 가장 위엄 있는 듯이,
“그래 못하지, 이놈―?”
하고 긴 담뱃대로써 또쭐이의 턱을 또 한 번 들이받았다.
또쭐이는 불길같이 화를 내가지고 건방진 긴 담뱃대를 뻬앗아, 도리어 김주사의 가슴패기를 사정없이 콱 지르면서 이렇게 떠들었다.
“이놈―? 야 이자가 또 양반 상놈을 가릴 모양이로구나! 그래 넌 양반! 주사! 그러나 뭐 하잔 물건이냐? 남의 논 떼는 주사냐? 주사! 내 밑구덩으로 난 주사냐!? 더러운 늙은 도적놈 같으니.”
한즉, 김주사는 이 역시 의외로, 그러나 이번에는 가장 인정스러운 듯한 웃음을 얼굴에 드러내면서 어지간히 낮은 목소리로, “그거 다 무슨 소리냐? 이 사람 송생원, 왜 자네가 그런가, 응? 남의 집에 와서 어쩌자고 그리 떠들어? 이웃집에서 들으면 뭐라고 하겠니? 참게! 젊은 사람이란 대처 원…… 그런데 송생원! 내가 오늘 저녁에 자네더러 꼭 좀 나오란 것은 다른 게 아닐세. 좋은 논이 한 자리 생겼는데 자네 생각이 어떨는지 물어볼라고 그랬네. 어떤가 마음에…… 논은 이 사람 구새들에서는 그만한 것이 없네 그려! 만약 마음에 있거든 한 오십 원만 구해오게. 어떤가?…….”
하고, 손바닥으로써 또쭐이의 뺨을 거짓말같이 살푼 쳤다.
“오십 원은 뭐 하잔 돈입니까?”
또쭐이는 수상스럽게 물었다.
“오십 원? 응, 그건 지주 조고만히 드리고, 작인에게 조고만히 주는 것 아닌가! 그걸 어디 내가 먹을까 봐!?”
하고, 김주사는 새치미를 뚝 떼었다.
“논은 대관절 어떤 논입니까?”
“바로 자네 동리 앞에 있는 논일세그려 저― 그 춘삼이가 부치는.”
“뭐? 춘삼이 부치는 논을!?”
“그래, 왜 그렇게 놀래?·…….”
하고 김주사는 재미없이 비쭉비쭉 하면서, 또쭐이의 눈치를 살폈다.
또쭐이 는 말했다.
“그럴 수 있나! 춘삼이는 내 이웃 사람일 뿐 아니라, 친구요 또 나와 같이 가난한 사람인데……”
“그건 다 배부른 소리지!?”
“뭐? 배부른 소리?” 하고 또쭐이는 참다못해서 그예 다시 소리를 높여 부르짖었다. “배고프면 그래, 괜히 죄 없는 사람의 논을 떼어? 응? 이 늙은 도적놈아! 춘삼이가 그래 무엇이 나뻐? 오 원에 속았지만 오십 원에 안 속는다, 이 자식! 아나 오십 원! 못된 쥐새끼 같은 놈 같으니! 누구를 또 속이려고?”
“이런 망측한 놈이 있담? 늙은 사람을 대해서·……얘 태식아 어서 와. 이놈 잡아내.”
말이 끝나기 전에 또쭐이는 머리 위에 어떤 무쭐한 것을 느끼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굵다란 방망이었다. 때린 것은 김주사의 큰 아들― 태식이었다.
다음에 작은아들이 번개같이 날아와서 ,
“이런 무, 무무, 무도한 놈이 있담그래!?”
하고 말을 더듬거리면서, 쓰러져 있는 또쭐이를 마루 끝에 끌고 나오더니 풋볼 차듯이 축 밑에 차내렸다.
그때 다행히, 담 너머서 구경을 하고 있던 이웃 사람들이 쫓아와서 겨우 싸움을 진정시켰다.
또쭐이는 이웃 사람들의 손에 끌려서, 김주사의 집을 떠났다.
혼자서 캄캄한 들길을 걸으면서, 또쭐이는 생각했다.
“어째도 내가 원수는 갚고야 말 것이다! 먼저 주재소에 가서·…… 뭐? 주재소?……?”
그는 생각을 그치고 중얼거렸다.
-끝-
2016년 4월 2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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